제147화
이준은 신력권가에서 나와 곧장 사마련의 영역으로 왔다.
그의 목적지는 도련.
도악이 우두머리로 있는 집단이었다.
[제자야.]
‘말리지 마세요.’
[친구의 복수를 하려하느냐.]
‘사부님이 말리신다 해도 여긴 쓸어버려야겠습니다.’
이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사마련이 범죄자 집단이며 15가문 연맹보다는 못하다곤 하나.
한 명이서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약한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무극자 사부가 말리려하는 것 같았는데.
[끌끌. 이 사부를 뭘로 보는 것이냐. 난 네가 복수를 한다면 확실히 끝내놓으라고 말하려는 참이었으니라.]
‘네?’
[도귀의 일을 너는 잘 처리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히려 적의 화만 돋우는 꼴이니라. 적을 상대할 땐 확실히 밟아버리고 너에 대한 공포를 각인 시켜줘야 한다. 알겠느냐?]
그때의 이준은 할 일이 많았다.
권왕인 아버지에 대한 도발도 해야 했고, 패왕도가와도 척을 진 상태였다.
거기다 사마련의 도련까지 적으로 돌린다면 혼자 감당하기 벅찰 터.
그래서 파천자란 이름으로 도귀를 벌한 거다.
물론 자신의 일을 하나, 하나 다 끝내 놓으면 당연히 도귀와의 일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결국 다른 일을 먼저 신경 쓰다가 일이 터진 거다.
‘사부님 말이 옳아요. 제가 안일했어요.’
[알았으면 지금부터 일을 확실하게 매듭지어라. 무림에서 사부가 적은 많았지만, 내 뒤통수를 칠 수 없었던 건 무림에서 공포로 군림했기 때문이니라. 사부의 이 점을 본받아야할 것이야.]
‘예.’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최고의 효과는 역시.
압도밖에 없다.
벌벌 떨게 만들 만한 무력으로 우두머리를 찍어 누른다면 쫄따구들은 알아서 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극자 사부는 만족하지 않았다.
[우두머리만 죽인다고 공포가 조장될 것 같으냐 제자야?]
‘그럼 다 죽여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구나. 잘 듣거라. 네가 사마련이란 단체에 속한 도련을 건드린다 치자. 여기서 도악을 죽였다. 도련에 속한 이들은 두려움에 떨겠지. 하지만 그 뿐이다. 도련은 사마련에 속한 한 단체에 불과하느니라. 넌 도악을 죽이고 사마련이란 거대 단체를 적대시 하는 것과 같다.]
‘아.’
이 점은 간과했다.
도악만 죽이면 끝나겠지.
단순하게만 여겼다.
하지만 무극자 사부는 도악의 뒤에 있는 사마련까지 생각했다.
사마련의 입장이 되어보자.
적대 세력이 자신의 세력을 박살냈다.
가만히 보고 있겠나.
곧바로 응징에 나서지 않을까.
아무리 현재 휴전 상태라 하나, 도귀가 15가문 연맹에 끌려간 것과 도련이 박살난 건 엄연히 달랐다.
사마련의 입장에선 15가문 연맹과의 전쟁을 벌여서라도 상대를 응징해야만 했다.
그게 사마련 소속 각성자의 불만을 잠재울 방법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에잉, 쯧쯧. 여태까지 무엇을 들었을꼬.]
‘제자가 아둔해서 사부님의 큰 뜻을 아직까지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내 친히 너를 위해 쉽게 말해주겠느니라. 결론은 말이다. 제자야.]
‘예.’
[그냥 싹 다 죽이면 되느니라.]
‘아니, 사마련을 통째로요?’
못할 것은 없었지만 너무 과하게 나가는 건 아닌가 싶었다.
사마련을 통째로 제거한다는 것은 패왕도가 하나를 무너뜨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15가문 대 사마련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죄 없고 소중한 사람들을 다치게 할지도 몰랐다.
[가아아알! 나약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 누누이 말했지 않느냐. 악독한 놈들을 상대하라면 똑같이 독해져야 하느니라. 뿌리까지 모조리 태워버리면 복수는커녕 그들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거기다 사마련은 존재는 악 그 자체였다.
방화, 폭력, 살인, 강간, 약탈 등.
하나, 수많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정부가 어쩌지 못했다.
범죄자라곤 하나 사마련도 각성자들이 속한 단체였으니까.
‘역시 사부님이십니다. 강하게 나가야 하는 것이군요.’
[악을 잡을 수 있는 건 그보다 더 큰 악이라는 걸 명심해야하느니라.]
‘네!’
이준은 무극자 사부의 말을 가슴속에 깊이 생겼다.
악은 더 큰 악으로 잡는다.
멋진 말이다.
이준 또한 사마련을 잡기 위해 악당이 되기로 먹었다.
도련의 정문.
이준이 파멸겁을 꺼냈다.
짧은 막대기가 길어지면서 붉은 창으로 변했다.
웅웅.
파멸겁에서 공명음이 들려왔다.
이준의 몸속에 깃든 혼원신공을 반가워하는 느낌이다.
“도련부터 박살내볼까?”
지금은 도련을 압도적으로 박살내야 했다.
차후에는 사마련까지 모조리 처리해야겠지만, 우선은 도련이 시작이다.
이곳이 박살내고, 싸움의 흔적을 본다면 당분간은 사마련이 잠잠할 터.
그게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각성자의 힘이었다.
이준은 파멸겁의 떨림이 잦아지자, 땅을 박차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 * *
콰아아앙!
“으억!”
“컥!”
“악!”
먼지구름 사이로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퍽퍽퍽-!
먼지를 뚫고 날아오는 신형들.
걸레짝이 된 도련의 각성자들이었다.
“끄으윽…”
“도주… 님….”
바닥에 널브러진 이들의 숨이 끊어졌다.
그 모습을 본 길성수가 버럭 소리쳤다.
“어떤 새끼가 겁도 없이 내 영역을 침범한단 말이냐!”
길성수가 도를 뽑아 내리 그었다.
그의 도신이 무형의 강기로 길어진 상태였다.
도강을 품은 도가 먼지구름을 일도양단했다.
엄청난 풍압에 먼지가 주위로 날아가 버렸다.
먼지 안에 있는 젊은 청년.
후드 집업을 입은 고등학생이 도강을 가뿐히 막고 있었다.
“넌?”
“이준. 너희의 죄를 물으러 왔다.”
“이준이라고?”
요즘 핫한 인물인 건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자신조차 뛰어넘는 무공을 가지고 있다 들었다.
그런데 그 놈이 갑자기 미쳤는지 도련에 찾아와서 주변은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그것도 선제 공격을 하며 말이다.
길성수는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이준이 왜 갑자기 저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패왕도가를 갑자기 습격했던 것처럼 도장 깨기 식으로 다른 세력들을 하나하나 점거해 나가려는 것인가?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온단 말이냐!”
길성수는 도강을 유지한 채 도를 맹렬히 휘둘렀다.
이준은 도강을 받아치지 않았다.
콰광쾅쾅!
무극군림보를 사용해 도강을 피할 뿐.
길성수의 도강은 애꿎게 땅만 공격했다.
‘공격로가 다 보여.’
SS급 특성인 투신체의 능력.
싸움의 경험이 많을수록 빛나는 특성이었다.
전투에 특화된 특성.
신이 내려준 신체라 보면 되었다.
그뿐인가.
길성수가 익힌 무공은 명부도법이다.
AA급에 달한 등급.
도법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해있었다.
그런 명부도법의 약점이 보였다.
천무지체의 효과.
무공 이해도가 100%여서 그런 것 같았다.
명부도법의 장점부터 단점까지.
전부 이준의 눈에 선명히 보였다.
‘도악이 가지기엔 과분한 무공이네.’
명부도법은 아주 강맹했다.
그렇다고 수비를 도외시하지도 않았다.
공, 수 밸런스가 아주 좋았다.
이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게 존재했다.
그건 바로.
‘지금.’
길성수가 도강을 회수하려는 순간.
아주 짧은 간극으로 명부도법의 단점이 눈에 보였다.
공격을 회수할 때 끊기는 내공.
높은 등급의 각성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물론 약점을 안다해서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다.
그 약점을 잘 파고들어 공격 하냐가 관건.
여태껏 도악이 살아남아서 칠악에 속했던 이유는 이 약점을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
그만큼 도악이 뛰어났기도 했다.
하지만 도악은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났다.
이준이 가진 특성은 투신체와 천무지체였다.
이 두 가지의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했으니.
파멸겁이 뱀처럼 움직여 정확히 도악의 손등을 찔렀다.
“큭!”
도악이 황급히 뒤로 밀려났다.
뚝뚝.
그의 손에서 피가 떨어졌다.
도수에겐 손이 생명.
무공을 펼치는데 지장이 생겼다.
도악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도 자신의 간극을 잘 알고 있었다.
명부도법을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항상 주의해온 터.
오늘 그 약점이 노출되어 버렸다.
고등학생의 애송이에게 말이다.
“도주님 저희가 엄호하겠습니다.”
도련의 각성자는 길성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겁 없이 이준을 향해 뛰어갔다.
어찌 보면 충성심이 뛰어난 이들.
다르게 생각하면 주제도 모르는 이들이다.
‘사부님.’
[말 하거라.]
‘어떤 방법으로 이겨야 사마련이 겁을 먹을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무극기가 최고지만, 그건 아직 네가 사용 못하니… 진흑룡벽이니라.]
‘진흑룡벽이요?’
[전3식과 후2식의 조합이니라. 한 번 극성으로 펼쳐보아라.]
무극자 사부의 말이었다.
이준은 혼원신공을 파멸겁에 불어넣자.
머리에 사부가 가르쳐준 초식이 떠올랐다.
형상을 따라 진흑룡벽을 펼쳤다.
파멸겁의 창대가 바닥을 찍었다.
쿠우웅!
창대가 박힌 땅이 흙과 함께 하늘로 들렸다.
철근과 콘크리트, 흙이 하나의 형상을 만들었다.
용의 머리
거대한 용이 활짝 벌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무극창법 전3초식은 흑룡벽.
앞 글자에 진이 붙기 전이다.
그 순간!
흑룡이 입에서 여의주가 나타났다.
그 여의주가 검은 빛을 뿜어내더니, 주변의 사물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어?”
“흐, 흑룡?”
“몸이… 말을 안 들어!”
“빠, 빨려 들어간다아아!”
도련의 각성자들이 거대한 흑룡의 아가리로 빨려 들어갔다.
퍽!
도악만 땅에 도를 박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는 보았다.
자신이 힘겹게 일궈놓은 건물과 수하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여기서 끝나면 다행.
이곳에 모인 도련의 모든 각성자들이 흑룡의 아가리로 들어가자.
콰득!
흑룡이 아가리를 닫았다.
그 안에서 비명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뼈가 씹히는 소리와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혈향.
도악의 눈이 부릅떠졌다.
“흡!”
눈앞에 비현실적이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런 괴상한 무공은 보지 못했다.
흑룡의 형상이 움직이며 사람을 뼈째로 씹어 먹는 광경.
소름이 끼쳤다.
어떤 무공이기에 지금과 같은 공포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는지.
도를 잡고 있는 길성수의 손이 떨려왔다.
흑룡이 아가리를 벌리자.
아가리 안쪽은 사람의 형체라곤 구분할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취이익!
아가리에서 떨어진 검은 액체에 닿자, 시체가 부식되어 가루가 되는 게 길성수의 눈에 보였다.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희귀한 아이템들을 암상에 내다 팔고 있다는 파천자.
하나같이 강한 몬스터를 상대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 심상치 않은 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다 자신의 아들을 단신으로 박살 내 놓지 않았나.
눈앞의 존재가 파천자라면.
도악의 명성을 땅바닥에 처박은 존재가 눈앞의 고등학생 소년이라면.
그가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너만 남았네? 넌 어떻게 죽여줄까?”
음성의 주인은 이준이었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 더 큰 악이 되기로 한 이상.
이준의 손속엔 자비가 없었다.
그야 말로 악의 화신이나 다를 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