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애들아.”
“왜?”
“말씀하십시오. 형님.”
“가문에서 날 죽이러 출발했대.”
박혁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시계를 보았다.
게이트에 들어 온 지는 꽤 됐지만, 상대가 벌써 움직일 거라곤 예상을 못했다.
“널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구만. 그래서 누가 오는 거야?”
“패왕대.”
“도왕의 친위부대인 패왕대 말하는 거야?”
“어.”
“와 씨. 너무하네, 진짜.”
말은 가볍게 하지만 눈에 살기가 번들거린 박혁진이었다.
이미 이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 내용.
정보를 살짝 흘렸다고 바로 암살을 시도하려하다니.
어지간히 이준을 죽이고 싶어하나보다.
“그리고 또 있어.”
“또? 패왕대로도 모자라다는 거야?”
“이신의 엄마가 직접 신력권가의 부대를 이끌고 온대.”
“정도껏 해야지!”
박혁진의 말에 허수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이건 비상식적인 행동입니다.”
“어쩌겠어. 날 죽이고 싶다는데.”
이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박혁진과 허수는 흥분했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아하는 표정이다.
“제가 형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너나 다치지 말고.”
“이 상황에서도… 절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허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걸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야 할까. 참 쉽게 감동하는 녀석이다.
“그냥…”
“더는 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형님을 꼭 지키겠습니다.”
허수가 가슴을 치며 결의를 다졌다.
“그래 고맙다.”
이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선을 돌려 박혁진을 봤는데, 녀석 또한 허수와 똑같았다.
“넌 또 왜.”
“크흑… 이 자식! 이런 상황을 얼마나 많이 겪었으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조금 전 살기를 번들거렸던 녀석이 맞나.
이젠 자신의 팔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그만해.”
“크흑. 내가 신력과 패왕을 가만두나 봐라.”
그러면서 자신의 팔에 코를 풀려는 게 아닌가.
“이 자식이 미쳤나! 네 옷에 풀어!”
“나는 널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데 콧물 정도는 받아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아휴. 이걸 그냥.”
원래는 항상 이준이 말을 잘랐지만, 지금은 박혁진이 손을 들어 이준의 말을 잘랐다.
“됐고. 3스테이지 먼저 깰 거야?”
“그래야지.”
“오기 전에 가능해?”
“너만 실수 안 하면 가능하지.”
“시이일-수? 준아. 나 검룡이야. 학교 랭킹 1위.”
“언제 적 말이냐. 이젠 내가 랭킹 1위거든?”
“꺼져, 저번에 랭킹전 하다 말았잖아. 그러니까 아직은 내가 1위야.”
이준과 박혁진이 서로 티격태격 거리는 사이.
3스테이지에 도착했다.
평평한 땅 중앙.
파란색 문양으로 된 거대한 돌이 박혀 있었다.
서울 숲 게이트의 마지막 몬스터였다.
“형님. 3스테이지의 공략법은 뭡니까?”
“2m정도의 크기의 골렘 세 마리가 나올 거야. 그걸 동시에 죽이면 돼.”
“쉬운데?”
“쉬우니까 한 번에 성공하자.”
세 사람이 3스테이지에 진입했다.
주변에 투명한 막이 생성되어 결계를 쳤다.
동시에 2m쯤 되는 세 마리의 골렘이 땅에서 튀어나왔다.
쿵쿵.
손과 발이 생긴 골렘.
녀석들을 보며 이준이 깜빡한 말을 했다.
“겹치게 상대하면 안 돼.”
“알았어.”
“명심하겠습니다.
박혁진과 허수가 각자 무기를 꺼내 골렘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준도 자신이 맡은 골렘을 향해 갔다.
파멸겁은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게 하고, 주먹을 사용했다.
쾅쾅!
혼원신공을 담아 공격하니 육중한 골렘이 뒤로 조금씩 밀려났다.
한 5분이 지났을까.
“준아! 이놈 죽으려고 해.”
이미 예상하던 시나리오였다.
세 명을 동시에 죽이는 게 1단계 조건.
어느 한쪽이 먼저 죽인다면 똑같은 짓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준은 파멸겁이 아닌 주먹으로 골렘을 상대했다.
“공격하지 말고 피하고 있어. 허수 네가 상대하고 있는 골렘의 체력은 얼마야?”
이준도 공격을 중지하고 허수에게 물었다.
“저도 거의 끝나갑니다.”
“단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때까지 체력을 깎아.”
“네!”
허수의 참마도가 빠르게 골렘을 부숴갔다.
돌의 파편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지고, 거의 무너질 때.
“다 됐습니다.”
“그러면 동시에 부숴.”
이준이 외침에 박혁진과 허수가 골렘을 향해 검기와 도기를 쏘아냈다.
이준도 혼원신공이 담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세 마리의 골렘이 몸통이 터지며 박살났다.
“끝이야?”
“아니. 저기 마지막 보스 남아 있잖아.”
필드 가운데 땅에 박혀있던 파란 문양이 새겨진 돌이 위로 올라왔다.
“저것만 처치하면 끝나.”
* * *
[블루존 게이트인 ‘암석의 거인’의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00p를 획득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손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오히려 1, 2 스테이지가 더 오래 걸렸을 정도.
박혁진과 허수는 여전히 보스가 남긴 아티팩트에만 관심을 가졌다.
“주, 준아! 등급이 B+야. 여기 블루존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게이트였구나?”
“혀, 형님. 전 이걸 가져도 되겠습니까?”
허수의 손에 든 건 하나의 마정석이었다.
짙은 푸른색.
거기다 크기가 머리통만 했다.
저 정도의 짙은 색을 띠고 있는 거라면 최소 A급.
가격은 최소 1억에서 최대 9억 가량했다.
박혁진은 허수에게 인심을 썼다.
“에잇. 그래. 너 가져.”
“가, 감사합니다.”
허수가 박혁진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준은 완전히 제외하고 행동하는 두 사람이었다.
사실 저 정도 마정석 덩어리 따위, 앞으로 그가 얻을 광산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개평 하나 주는 셈 치는 거랄까.
이준은 두 사람에게 관심을 끄고, 그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보았다.
[암석의 거인의 주인이 사라졌습니다.]
[게이트의 주인이 되시겠습니까? (Y/N)]
‘어.’
[암석의 거인의 새로운 주인이 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게이트의 주인이 되자, 바로 반응이 나왔다.
[암석의 거인에 허락받지 않은 자가 방문했습니다.]
[살기를 감지했습니다.]
[침입자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둬.’
[침입자를 탈주시키지 않았습니다.]
[침입자는 게이트 주인의 마음에 따라 언제든 탈주시킬 수 있습니다.]
이준은 곧바로 홀로그램 상단에 뜬 맵을 클릭했다.
지도 확대되면서 게이트의 지형이 보였다.
‘이제 2스테이지 지점이네.’
무수히 많은 빨간색 점으로 표시된 건 최미진과 패왕대였다.
‘더 데려와도 모자랄 판에 날 아주 병신으로 보네.’
아직도 자신에 대해 모르는 최미진이었다.
서자에다가 혈족계승조차 받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선입견은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터였다.
TV나 인터넷에서 자신의 활약상을 보았다면 슬슬 현실을 인정할 때도 되었건만.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어림도 없었다.
이제 갓 AA급을 찍었던 풍사도 최대웅도 패왕도가의 무력대인 흑사자단을 홀로 사냥할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자신은 최대웅은 물론 도왕 최강규와도 동수를 이뤘는데 이 정도의 병력을 데려온다고?
죽고 싶다고 안달 난 것과 다름없었다.
‘모두 다 지옥으로 보내주지.’
이준이 홀로그램을 끄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암흑으로 뒤엎였던 곳.
보스를 처치하자 불이 밝혀졌다.
마정석 광산이 있는 장소였다.
박혁진과 허수는 아티팩트에 정신이 팔려 새로운 지역이 나타났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다 챙겼지?”
“어. 흐흐. 우리 세 명이서 게이트 오니까 완전 꿀이다. 다음에도 또 오자.”
“그러자.”
“헤헤. 다음은 어딜 갈까? 레드존 게이트를 도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난이도가 낮은 곳을 한 번 찾아봐야지.”
박혁진은 벌써부터 다음 게이트를 깰 계획을 구상했다.
이준은 박혁진을 무시하고 2스테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경공을 사용해 움직이는 세 사람.
장애물이 없어서 그런지 빠르게 나아갔다.
“바깥 시간은 저녁 10시 훌쩍 넘었는데, 여긴 이제 해가 진다.”
“타이밍 좋네.”
박혁진의 말에 이준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밤.
사람을 공포를 몰아넣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조금 더 움직였을 때는 해가 져 있었다.
우뚝.
박혁진과 허수가 동시에 멈췄다.
“느꼈지?”
“예.”
“허수 너 정말 조심해야할 거야. 네 무공을 안다면 패왕도가가 절대 살려주려고 하지 않을 거니까.”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 형이 지켜줄 테니까 너무 긴장은 하지 마.”
박혁진이 허수의 어깨를 툭 치며 긴장을 풀어줬다.
“준아. 이제 어떡할 거냐?”
“어둠속에서 공포를 심어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뭐 같아?”
“기습?”
“맞아. 한 명씩, 한 명씩 죽일 거야. 옆에 있는 동료가 어떻게 죽은지도 모르게.”
박혁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 오래 걸릴 텐데. 게이트가 닫히면 어쩌려고.”
“문은 닫히겠지만, 게이트가 사라지진 않을 거야.”
“당연히 이것도 네 사부님이 가르쳐 주셨겠지?”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혁진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S급 각성자에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보다 더 대단한 사람을 사부로 둔 이준이라 여겼다.
그러니 저렇게 확신을 하는 거겠지.
“그래. 난 네 말에 따를게.”
“고맙다.”
“친구 사이에 무슨.”
박혁진이 코를 쓱 닦았다.
* * *
게이트의 2스테이지 구간에 든 최미진과 패왕대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떴다.
[블루존 게이트인 ‘암석의 거인’이 클리어됐습니다.]
최미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벌써?”
같이 가고 있는 최순호도 살짝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정보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블루존 게이트를 이 정도로 손 쉽게 끝내는 건 딱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이미 공략법을 알고 있는 것.
다른 하나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게이트를 클리어 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이준에게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한 최순호였다.
“신기지가에서 얻은 정보라 확실합니다.”
그의 질문에 성우건이 대답했다.
“신기지가의 정보가 무조건 맞다고 할 순 없지. 이준을 감싸고 도는 곳이 신기지가 아닌가. 거짓 정보를 흘려 우리를 이끌어 내는 걸 수도.”
“쯧. 그럴 수도 있겠어.”
최미진이 혀를 찼다.
성우건이 물어온 정보라 믿고 바로 움직였다.
만약 급한 게 아니면 조사를 철저히 한 후에 움직였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거야.”
“물론입니다. 누님. 패왕대가 움직인 이상 이준의 목은 꼭 딸 겁니다.”
“그래야지. 속도를 더 올려야겠어.”
“최고 속도로 나아간다.”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패왕대와 귀살대가 앞으로 치고 갔다.
슉슉슉슉.
그들의 볼에 차가운 공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저 바람 소리에 불과했다.
대열의 맨 뒤.
패왕대의 대원 중 한 명이 땅을 밟고 나아가려는 순간.
“흡!”
어둠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와 입을 틀어막았다.
다른 쪽 손에 들린 단검으로 패왕대원의 목을 그어버렸다.
푸확!
패왕대원이 눈을 부릅뜬 채 절명했다.
그를 죽인 사람은 이준이었다.
‘이제 이십 명.’
패왕대원을 조심히 내려놓고 다시 움직였다.
무극군림보를 이용해 땅에 난 풀잎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은밀히 이동했다.
어느새 다시 패왕대원의 뒤에 붙은 이준.
또 한 명의 입을 틀어막고 단검을 심장에 박아 넣었다.
이준은 이 지난한 작업을 계속했다.
푹푹!
이번에도 한 명을 더 죽였다.
이준이 죽인 숫자만 벌써 오십 명.
패왕대가 이상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제 슬슬 눈치채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