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혈신의 지도(개방)]
등급: SSS
난이도: SSS
설명: 파천혈신이 제자들과 등을 지고 은거한 장소를 가리키는 지도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1인 전승 문파인 혼원문을 만들었습니다. 혼원문에 출입할 수 있는 자는 딱 한 명. 혼원신공을 9성까지 익힌 제자여만 가능합니다. 만약 혼원문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파천혈신. 즉 무극자의 모든 진전을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효과: 혼원문 출입 열쇠.
등급은 SSS급인 건 놀랍지 않았다.
무극자 사부와 관련된 아티팩트.
어찌 보면 당연한 등급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부님. 혼원문이 있는 장소인데 왜 난이도가 있죠?’
[큼큼. 사부의 무공이 어떤 무공이냐. 응당 내 진전을 모두 얻으려면 그만한 자격이 주어져야 하느니라.]
‘그 말은 즉, 사부님의 진전을 얻으려면 관문과 같은 시험을 치루라 이 말씀이십니까.’
[옳지. 제법 이해가 빠르구나.]
‘혼원신공이 9성에 이르러야지만 들어갈 수 있단 내용에서 알아봤습니다.’
9성의 경지.
아득히 높았다.
현재 자신의 혼원신공은 고작 5성밖에 되지 않았다.
이 정도에도 각성자 등급으로 AA.
무협지로 따지면 초절정의 경지에 있었다.
그런데 9성의 경지를 밟아야 된다니.
대체 얼마나 강해져야할까?
이준은 슬쩍 사부에게 물었다.
‘9성의 경지면 어느 정도입니까?’
[알려주랴?]
‘네.’
이준이 고개를 격렬히 끄덕였다.
사부의 모든 진전을 얻을 수 있는 곳에 들어갈 자격.
어느 경지에 들어야 하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하실까.
곧이어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블S]
‘네?’
잘못 들었나?
방금 더블 S라고 한 것 같은데.
귀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찰나, 사부의 음성이 재차 들렸다.
[이곳의 등급으로 SS급. 무림의 기준으로 현경에 들어야지만 혼원문에 들어갈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느니라.]
이준의 눈이 번쩍 떠졌다.
앞에 있는 한민성도 덩달아 흥분했다.
“왜? 설마 혈신의 지도에서 뭐라도 발견 했어?”
이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고 있었던 한민성이다.
그렇기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닙… 니다. 자세히 보는 중이에요.”
한민성의 질문에 이준이 얼버무렸다.
그보다 이준은 빨리 무극자 사부에게 궁금증을 물어보고 싶었다.
‘사, 사부님. SS급도 있어요?’
[당연하지 않느냐, 이놈아. 네가 가진 무기나 장비, 무공 스킬에도 S이상의 등급이 표시되 있는데 그것도 몰랐단 말이냐.]
이준이 입을 떡 벌렸다.
정말 몰랐다.
자신이 언제 이런 높은 등급을 볼 수 있었겠나.
모든 게 무극자 사부를 만나고부터였다.
심지어 지구에서 가장 강하다는 열 명.
그들은 전부 S급 각성자였다.
그 이상의 등급을 지닌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각성자 등급으로는 S급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S급이 끝이 아니란다.
사부에게 얻은 무공만 특별한 줄 알았건만.
S급 이상의 등급이 있다니.
‘새, 새로운 사실을 알았어요.’
[끌끌. 앞으로 네가 밟아야할 경지이니라.’
‘제가 밟아야할 경지….’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AA급을 넘어 S급.
S급을 넘어, 전생에 단 한 명도 도달하지 못했던 SS급에 오를 수 있다고 하니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홀홀. 우선 S급, 화경부터이니라.]
‘옙!’
이준이 우렁차게 대답했지만.
[네가 내 제자 중에 제일 약한 놈이다 이놈아.]
꼭 초를 치는 무극자 사부였다.
이준은 사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정보창을 닫았다.
혈신의 지도를 품에 고이 넣자, 한민성이 다급히 물었다.
“뭔가 발견했지?”
“아니요?”
“거짓말 치지 마라. 신기지가의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치려는 거냐.”
“전혀 아닌데요.”
“우리 사이에 이럴 거야?”
“저희 사이가 뭔데요?”
이준이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한민성은 말문이 막혔다.
이준과 그는 학생과 이사장의 관계이면서 식객과 가문의 혈족의 사이.
엄밀히 말하자면 딱 필요에 의해 맺어진 인연이다.
그걸 아는 한민성이었기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음….”
“농담이에요.”
“그러면 혈신의 지도에 비밀을 가르쳐 주는 거야?”
“비밀입니다. 대신 방학 때 신기지가의 식객으로서 일을 해드릴게요.”
“식객으로서의 일?”
한민성의 눈이 반짝였다.
이준이 식객으로서 해줄 일은 하나.
신기지가의 명운이 달린 중대한 일이다.
“제가 서울 숲 게이트를 깨면 혈고독술을 드리죠.”
“혈고독술… 그 물건을 정말 우리에게 줘도 되나?”
“제겐 필요 없는 물건이에요.”
혈고독술은 이준에게 필요 없는 무공서다.
백날 이준의 몸에 고독을 심어봤자, 그에겐 혼원신공이 있다.
고독이 몸에 들어오면 혼원신공이 악으로 판별해 공격할 터.
굳이 혈고독술 같은 저급한 무공을 배울 필요는 없었다.
신기지가와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하는 거래면 됐다.
“대신 신력과 패왕에 제 소문 하나만 내주세요.”
“어떤 소문?”
“제가 서울 숲 게이트를 단독으로 깬다는 거요. 딱 그 날에 소문을 내주세요.”
“쉬운 일이군.”
한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고독술을 준다는데 그깟 소문하나 못 내주겠는가.
신기지가가 가진 부동산을 주라고 해도 다 줄 수 있었다.
그만큼 한민성은 혈고독술이 필요했다.
아니, 신기지가는 혈고독술이 간절할 지경이다.
* * *
“그러면 모두 방학기간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저와 수련을 할 학생은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성심성의껏 가르쳐드리겠습니다.”
2학년 5반 학생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경진의 지옥 수업.
전에 했던 훈련보다 더 빡세졌다.
죽겠구나 할 정도로 훈련을 시키니 학생들이 치를 떨었다.
다신 참가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다.
차경진의 눈을 피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네!”
“전 오늘부터도 가능해요.”
“저두.”
박은비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바로 서혜지와 한지유도 차경진의 수련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좋습니다. 그러면 저녁에 뵙도록 하죠.”
차경진이 교실에서 나갔다.
박은비와 서혜지가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준아. 너도 올 거지?”
“오늘은 얼마나 빡세게 할 거야?”
두 사람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준을 보았다.
옆에 있는 한지유도 함께.
다른 자리에 있었던 남선호도 슬쩍 합류했다.
“오늘은 안 돼. 일이 있어.”
“무슨 일?”
한지유가 민트초콜릿을 까서 하나는 자신이 먹고 하나는 이준에게 슬쩍 건넸다.
이준이 고개를 젓자, 하나가 더 왔다.
‘더 주라는 소리가 아닌데.’
안 받으면 민트초콜릿을 하나씩 추가할 기세.
마지못해 받았다.
‘그보다 이사장님이 지유한테도 말 안 했나보구나.’
의외로 입이 무거운 한민성이었다.
자신이 계획한 일을 들으면 분명 말리려 할 터.
한지유와 박정연이 알면 안 되는 일이다.
“혁진이네 가봐야 해.”
“검제 할아버지 만나?”
“그럴 수도?”
“와.”
“검제님을 만날 정도라니. 옆에 있어서 실감이 안 났는데 준이도 거물이었지?”
화제를 잘 돌린 것 같았다.
학생들이 반을 빠져 나가고, 이준 네 일행이 제일 뒤에 나왔다.
“준아. 내일은 나올 수 있지?”
“아마도?”
“그럼 내일 봐.”
“어. 열심히 수련하고 있어.”
이준이 한지유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시야에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 이준이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왁!”
박혁진이 두 손을 들고 놀래켜 왔다.
“왔냐.”
“놀라는 척이라도 해라.”
“그러고 싶은데 네가 다가오는 거 다 느껴졌어.”
“이 자식, 강하다고 으스대는 거냐?”
“어.”
“재수 없어. 여자들은 네가 이렇게 정 없고 무심한지 알아야하는데.”
박혁진이 슬쩍 스마트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준에게 바로 들키자.
“헤헤.”
웃는 걸로 무마하려는 박혁진이었다.
이준이 녀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우. 이놈이 무슨 학교 랭킹 1위야. 머저리지.”
“말이 심하다. 준아. 나 아주 마음 여린 남자야.”
“지랄.”
이준이 무극자 사부를 무시했던 것처럼 박혁진에게도 똑같이 행동했다.
“그런데 안 가?”
“한 명 더 데려가려고.”
“누구?”
“마침 오네.”
본관 건물에서 허수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녀석의 등 뒤에는 하얀 천으로 둘둘 말린 물건이 있었다.
“형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허수가 달려와 멈추며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하지 말라는 데도 항상 하는 행동.
이준도 포기한지 오래다.
“아, 데려갈 사람이 허수야?”
“어.”
“혁진 형님도 서울 숲 게이트에 가는 겁니까?”
“그래. 임마. 이 형님 뒤만 잘 따라와. 내가 안 다치게 잘 보호해 줄 테니까.”
“아닙니다. 제가 선발대로 나가 위험한지 확인부터 해보겠습니다.”
허수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몸집도 커다래 제법 든든한 녀석.
의리 하나는 기똥찼다.
이래서 박혁진이 허수를 많이 아꼈던 거다.
“시간 됐다. 움직이자.”
이준 일행은 무사고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울 숲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한 이준이 한민성에게 깨톡을 보냈다.
[시작해주세요.]
보낸 지 10초도 안 되서 답장이 왔다.
[ㅇㅋ]
* * *
신력권가의 안채.
이신의 방엔 북풍한설이 몰아쳤다.
핼쑥한 안색을 한 이신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링거를 꼽은 채 눈을 감고 있는 그.
옆에는 이신의 엄마인 최미진이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중얼거렸다.
“찢어죽일 놈. 천한 핏줄을 타고난 서자 주제에 신력권가의 후계자인 내 아들을 건드려?”
최미진의 눈에 귀화가 피어올랐다.
신력권가의 안주인으로 있지만, 그녀도 한 때는 각성자.
도왕 최강규의 여동생이기도 했다.
“이 어미가 널 이렇게 만든 놈을 꼭 죽여주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우건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준은 잘 감시하고 있어?”
“네.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말해봐.”
“이준이 블루 존인 서울 숲 게이트를 홀로 클리어 한다는 정보입니다.”
“확실해?”
“신기지가의 세작으로부터 들은 정보입니다.”
뿌득.
최미진이 이를 갈았다.
이신의 단전을 부숴 폐인으로 만든 범인이다.
이준을 죽이기 위해 계속 기회만 엿봤지만, 죽일 수 없었다.
그러다 때마침 기회가 온 것.
최미진은 결코 이준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귀살대는 준비 됐지?”
“절반뿐이 없지만 준비를 마쳤습니다.”
“패왕도가에 지원을….”
“이미 도왕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벌써?”
“도왕께서 패왕대를 보내주신답니다.”
패왕대.
도왕 최강규의 친위부대로 패왕도가의 최고 무력부대이다.
신력권가의 권신단이 있다면 패왕도가에는 패왕대가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A급 각성자로 되어 있으며, 대주는 AA급 초입에 든 실력자다.
어지간한 가문은 1시간도 채 되지 않고 쑥대밭으로 만들 능력자들.
도왕은 여동생을 위해 자신의 친위부대까지 선뜻 내어주었다.
“오라버니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이미 뜻을 전했습니다.”
최미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인 이신을 내려 보며 말했다.
“갔다 올 때는 이준의 목을 들고 오마.”
그 말을 남기고 최미진이 방을 나섰다.
한편.
서울 숲 안으로 들어온 이준은 미끼에 걸려들 물고기를 낚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고! 당신은 타 게이트의 주인입니다.]
[서울 숲 게이트의 주인이 당신을 적대시합니다.]
[서울 숲 게이트의 주인이 입구를 봉쇄하려합니다.]
[그대로 두시겠습니까? 거부하시겠습니까?(Y/N)]
‘거부’
[4대 성지의 금역 주인이 게이트 봉쇄를 거부했습니다.]
[서울 숲 게이트의 주인이 당황해합니다.]
파랑이의 등급이 높아지니 게이트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게이트를 닫는 걸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이중 하나였다.
닫힌 문도 강제를 열 수 있는데, 그깟 문을 닫지 못하게 하는 게 일이겠나.
누워서 떡먹기다.
‘이제 미끼가 올 때까지 게이트나 둘러보고 있을까?’
누가 올지 모르겠으나, 서울 숲은 신력과 패왕의 인원만 들어올 거다.
한민성 이사장이 다른 각성자는 다 걸러 낼 터.
자신은 이곳으로 들어온 이들을 요리하기만 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