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뭐?”
이준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마겁이 도난당했단다.
대체 어떻게 보관했기에 마겁이 도난당할 수 있을까.
이준은 한지유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거짓말이지? 나한테 장난치려고 한 말일 거야. 그치?”
“정말이야.”
“미친. 언제?”
“어제 저녁에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돼.”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면 바로 4대 성지의 금역에 들었다.
그곳에서 허수를 계속 가르쳤다.
그러니 바깥소식을 모를 수밖에.
“넌 언제 알았어?”
“오늘 알았으니까 이렇게 찾아오지.”
“하긴.”
도난당한 물건이 무려 마겁이다.
외부로 쉽게 알리지 못했을 터.
이해는 갔다.
‘그런데 누가 마겁을 가져갔을까?’
[그놈들 아니냐?]
‘이세계 악마들이요?’
다르게는 천외천이라 부르는 자들이었다.
[그래. 첫째와 연관이 있으면 마겁을 꼭 취하려 할 것이니라.]
‘치사하게. 내 물건을 새치기해?’
이준의 눈이 번들거렸다.
마겁은 무극자 사부와 관련 있는 물건. 그의 막내 제자인 자신에게도 지분이 있었다.
그걸 다 떠나서, 천무대전의 부상으로 주어진 물건.
1등을 하면 자신의 손에 떨어지게 될 마겁이다.
그런데 천무대전이 진행되던 도중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다니.
참을 수 없었다.
‘회수해야겠어요.’
[당연하느니라. 절대 놈들에게 마겁이 들어가면 안 돼.]
무극자 사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준도 그럴 생각.
마겁을 다른 누구에게도 뺏길 생각이 없었다.
절친인 박혁진이나, 친구들에게도 말이다.
“그러면 천무대전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
“지금 회의 중인 것 같아.”
“그렇단 말이지?”
“왜?”
“지유야. 너 나한테 빚 있잖아.”
“뭔 빚?”
“내가 너 특성 개화시켜 줬잖아. 설마 잊은 건 아니지?”
“안… 잊었지.”
이준이 씩 웃었다.
한지유는 빚지고 못 사는 성격.
이걸 물고 늘어지면 그 어떤 부탁도 들어줄 아이였다.
“부탁이 있는데.”
“가능한 것만 말해.”
“내가 무슨 양아치도 아니고. 당연히 네가 들어줄 수 있는 거야.”
“뭔데?”
“이사장님한테 부상을 바꿔 달라고 제안해 줄 수 있어?”
한지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겁이란 물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그리고 지금 천무대전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1등 상품을 바꾼다 해도 천무대전이 이대로 끝나면 무용지물.
무슨 생각으로 상을 바꾸자고 한지 이해가 되지 않은 그녀였다.
그런데도 궁금했다.
과연 이준의 입에서 어떤 상품을 제시할지.
“어떤 상품으로 대체하자고 해?”
“천무대전의 원래 상품인 혈신의 지도. 가능하겠어?”
“그 정도라면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어. 하지만 천무대전이 중단되면 어떡하지.”
천무대전이 중단되면 이준만 좋았다.
천무대전의 조약 사항.
만약 부득이한 경우 대회가 중단될 시, 가장 임팩트 있고 우수한 인재에게 상품을 수여한다, 였다.
이대로 중단 되면 1등 상품은 자신에게 올 터.
혈신의 지도는 이미 획득한 것과 다름없다.
남은 건 도난당한 마겁을 회수하는 것뿐.
오히려 자신에겐 기회였다.
두 가지 모두 취할 수 있었으니까.
“중단되는 건 위쪽의 결정이니까 상관없고, 부상만 네가 바꿔 줘.”
“알았어. 그러면 내가 너한테 빚을 갚는 거지?”
“응.”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든 빚을 탕감해 주지 않을 거다.
이미 한지유에게 여러 도움을 줬다.
휘연검을 골라 줬고, 연검을 연마할 도움을 줬다.
수련을 같이하면서 특성을 개화시키기도 했고.
이 중 한 가지 빚만 깔 생각이다.
“좋아. 거래 성립.”
“그러면 네가 고생해 줘.”
이준이 한지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 쓰다듬었다고 또 팔팔 뛰는 건 아닌지 살짝 쫄았는데 의외로 가만히 있는 그녀.
심지어 입가엔 살짝 미소가 걸렸다.
이준이 손을 내리자, 한지유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참,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 나 가볼 테니까 1등 상품 바뀌면 연락 줘.”
이준이 어색한 듯 손뼉을 치며 한지유를 지나쳤다.
* * *
무사고 대 회의실.
각 가문의 수장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단, 패왕도가의 가주만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무사고의 이사장.
한민성이 책상에 놓인 스탠드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다들 어젯밤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아시리라 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무대전을 중단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찬성이오.”
“블랙존 게이트의 물건이 도난당했는데, 당연히 물건부터 찾아야 하지 않소? 찬성합니다.”
이곳에 있는 과반수가 동의했다.
그들은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15가문 자제들은 거의 모두가 탈락한 것.
이대로 천무대전이 중단된다 하더라도 손해 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들러리가 되지 않아서 다행.
더 진행됐다간 먼저 탈락한 자기 자식들의 실력과 명예만 더 실추될 거라 여겼다. 그러니 모두 천무대전의 중단에 동의한 것.
8강에 진출한 철혈과 신기도 마찬가지다.
우승은 정해져 있었다.
이준.
그보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인 학생은 없었다.
자기 자식들이 이준과 붙게 되면 탈탈 털릴 터.
이대로 천무대전이 중단되는 게 나았다.
“아시겠지만, 1등에게 주어진 상품이 도난됐습니다. 천무대전이 중단됐다고는 하나 제일 임팩트 있었던 학생에게 상품은 주어지는 게 천무대전의 규칙입니다. 어떤 게 좋겠습니까?”
“으음…”
“그게 고민이긴 하겠소.”
15가문 연맹 수장들은 생각하는 척했다.
표정을 보니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자기 자식들이 받지 않을 상품이기에 어영부영했다.
저들의 태도에 한민성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웅웅.
폰이 울렸다.
조카인 한지유의 전화였다.
가주들이 참석한 회의였기에 한지유의 전화를 무시했다.
뚝.
전화가 끊겼다.
그러다 다시 울리는 전화에 이번에도 무시했다.
잠시 후.
조카에게서 하나의 깨톡이 와 있었다.
한민성은 회의 도중 조카의 깨톡을 열어 봤다.
[작은아버지. 이준이 1등 상품을 원래 주기로 했던 혈신의 지도로 바꿔 달래요.]
‘이준 학생이 천무대전의 규칙을 알아?’
천무대전은 여태껏 한 번도 중단된 일이 없었다.
그래서 천무대전의 규정을 아는 이는 이사장과 각 가문의 가주밖에 없었다.
선생들도 잘 모르는 규정이다.
‘지유에게 부탁한 시기도 너무 공교로워.’
마치 천무대전이 중단될 걸 미리 아는 듯한 느낌이다.
자신의 과민반응이었으면 좋으련만.
이준은 항상 상식을 뛰어넘었다.
‘상관은 없나. 1등 상품은 그에게 갈 거니. 혈신의 지도를 주는 것도 괜찮겠어.’
이준이라면 수수께끼에 가려진 혈신의 지도의 비밀을 풀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가 됐다.
그리고 신기지가에서 이준은 식객이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존재.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관계 발전에 영향을 줄 거라 여겼다.
마음을 굳힌 한민성이 자신의 형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님.’
그의 전음에 한지웅이 고개를 돌렸다.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한지웅이 자연스럽게 다른 가주들의 대화에 참석했다.
다른 한쪽으론 한민성과 전음을 나눴다.
‘무슨 일인데 전음이야?’
‘지유에게 깨톡이 왔어.’
‘나를 두고 너한테 왜?’
한지웅의 전음에는 질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딸을 향한 사랑이다.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야.’
‘나 농담 아니야. 우리 예쁜이가 나를 건너뛰고 너한테 왜 깨톡을 하는데?’
한지웅이 질투를 포기하지 않자, 한민성은 무시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준 학생이 1등 상품으로 혈신의 지도를 달래.’
‘이준이 천무대전의 규정을 아는 건가?’
‘나야 모르지.’
‘혈신의 지도를 달라는 이유는?’
‘나도 방금 지유한테 깨톡 받았어. 아무것도 몰라. 그냥 달래.’
한지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준의 의도를 전혀 모르기 때문.
그는 의도치 않은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계산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가 좋은데, 이준은 그 범위를 넘어섰다.
자신의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은 고등학생.
적으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다.
천만다행인 건 이준이 신기지가의 식객이라는 것.
지유와 친하기도 하고, 지유를 잘 챙겨주기도 했다.
이게 아니었다면 절대 이준의 뜻에 따르지 않았을 터.
지금은 좋은 관계에 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한 한지웅이었다.
‘이사장인 너의 생각이 상품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하지. 우리 가주들은 그냥 의견을 제시할 뿐이야.’
그는 이사장인 한민성에게 결정을 전적으로 맡긴다는 뜻을 내비쳤다.
‘알았어. 그러면 이준 학생에게 혈신의 지도를 지급하는 걸로 결정할게.’
한지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민성이 가주들을 향해 말했다.
1등에게 혈신의 지도를 주자고 제안하자, 모두 찬성했다.
블랙존 게이트에서 얻은 아티팩트지만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 물건.
비밀을 밝히지 못하면 종이 쪼가리와 똑같았다.
여러 가문이 합동해 지도의 비밀을 풀어보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
이후로 각 가문의 가주들은 혈신의 지도에 관심을 껐다.
그러니 순순히 1등 상품으로 동의한 거다.
* * *
지잉-
이준이 4대 성지의 금역으로 들어왔다.
“파랑아!”
그가 파랑이를 부르자, 저 멀리서부터 빨빨 달려오는 작은 점이 보였다.
얼마나 재빠른지.
작았던 점은 순식간에 커졌다.
“뀨우!”
이준의 곁에 온 파랑이가 폴짝 뛰어올랐다.
품에 안긴 파랑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뀨우?”
자기를 왜 불렀냐는 표시였다.
“우리 귀여운 파랑이가 해 줄 일이 있어.”
“뀨웃!”
뭐든지 시켜 달라고 자신감을 표한 파랑이다.
이준은 게이트에서 나왔다.
학교 화장실.
곧바로 마겁이 보관되어 있던 장소로 갔다.
‘전생에는 혈신의 지도가 박물관에 있었으니까, 마겁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거야.’
이준은 호수 다리를 건너 박물관에 몰래 진입했다.
보안이 철저한 박물관.
대 각성자용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저기에 찍히면 신기지가의 비선에게 바로 발각될 터.
이준은 수미천왕신공이 아닌 혼원신공을 꺼내 들었다.
혼원신공은 대 각성자용 CCTV를 무용지물로 만들 능력을 가졌다.
대기의 흐름은 물론, 전파도 차단하고 망가트릴 수 있었다.
물론 이건 하수에게나 쓰는 방법.
혼원신공을 몸에 두르고 군림보를 펼치면 CCTV는 자신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다.
‘입구에 세 개.’
이준은 열려 있는 박물관 입구를 빠르게 지나쳤다.
바람이 불법하지만, 주변의 나뭇가지도 흔들리지 않았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온 이준의 눈에 들어온 건.
‘조사대가 있네.’
어젯밤 박물관에 침입한 범인의 흔적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이준은 그들을 무시했다.
제일 안쪽인 3동으로 갔다.
‘이쯤이면 되겠지?’
이준은 파랑이를 품에서 꺼내며 속삭였다.
‘파랑아. 내 내공과 비슷한 기운을 찾을 수 있겠어?’
‘뀻!’
파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았다.
요리조리.
파랑이가 자유롭게 다녔다.
녀석이 워낙 작은 덕도 있지만, 자신이 CCTV를 먹통으로 만든 바람에 들키지 않고 침입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킁킁거린 지 3분.
드디어 파랑이가 흔적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