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악마 교관]
등급: S
설명: 친구들을 굴리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사부가 왜 자신을 굴렸는지 이해했습니다.
효과: 상대 특성 개화, 수련 경험치 100%(높은 등급일수록 엄청난 효과를 봄.)
정말 미쳤다.
등급도 등급이지만, 수련 경험치 100%!
뒤에 써진 말이 더욱 가관이다.
높은 등급일수록 효과가 좋단다.
‘가르칠 의욕이 샘솟네요.’
[홀홀. 내가 이래서 제자를 키웠느니라.]
아이들과의 훈련이 최고의 보상으로 찾아왔다.
심지어 박은비, 서혜지, 남선호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마치 동경과 존경심이 가득 담겼달까.
“준아, 고마워.”
박은비가 이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릴 수련에 끼워주지 않았으면 특성을 개화하지 못했을 거야.”
“이게 다 준이 덕분이야.”
남선호와 서혜지도 이준의 곁으로 와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뭘 이런 걸로.”
이준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S급 특성을 개화한 한지유도 정신을 차렸다.
“고마워….”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생에는 주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한지유.
요즘 들어서는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고, 감정을 조금씩 겉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표현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했다.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한지유는 다시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이왕 수련한 김에 천무대전이 열리기 전까지 빡세게 해보자.”
“좋아!”
네 사람은 밤새 녹초가 될 때까지 수련에 매진했다.
다음 날 권법 수업 시간.
매일 같이 녹초가 될 정도로 수련을 한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는 매가리가 없었다.
마치 수업 듣기를 포기한 사람들처럼 바닥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게 아닌가.
세 사람을 보며 이준이 피식 웃었다.
‘힘들겠지. 한지유도 저렇게 뻗어 있는데.’
세 사람만이 아니라 한지유 또한 몸에 힘이 없었다.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하려고 몸을 움직이고 있으나, 몇 번 주먹을 휘두르다 쉬고를 반복했다.
특성을 개화한 네 사람은 몸의 과부하도 생각하지 않고 움직였다.
어떻게든 B급 특성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혹은 S급 특성은 어떤 기능을 할까.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피로를 생각하지 않았다.
네 사람은 이미 특성을 개화하기 전부터 몸에 무리를 했다.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계속 수련을 했으니.
저렇게 맥을 못 추릴 만했다.
한지유는 어떻게든 수업을 따라갔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골골대고 있었다.
그때 그들에게 5반의 새로운 담임이 된 차경진이 다가왔다.
“지금 제 수업에서 농땡이를 피우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어제 무리하게 수련한 바람에….”
“피로는 심법과 수련으로 풀면 됩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네….”
세 사람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그들은 어제 이준이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개화한 특성을 떠올리며 어떤 무공에든 간에 적용해 보라고 했지?’
‘난 내공을 섬세하게 컨트롤해야 한다고 했어.’
‘준이가 해 준 말은 언제나 옳았어.’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십보신권을 펼쳤다.
박은비는 기공술을 바탕으로, 서혜지는 면밀한 내공 컨트롤을.
남선호는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파방팡팡-
그들의 손을 타고 나간 경기가 허공을 터트렸다.
차경진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저 세 명 E급 각성자 아니었어?’
그중 한 명인 5반의 반장.
노력은 하지만 그게 다였다.
15가문 연맹에 속하지 않은 학생.
학교의 공용심법을 사용하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건 뭔지. 차경진은 놀라 입을 열 수 없었다.
펑펑!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
심지어 지원계열인 서혜지와 전혀 존재감이 없었던 남선호란 학생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내가 놓친 게 있었나?’
차경진은 세 사람에게 호기심을 가졌다.
십보신권을 쓰는 자세가 완벽하지 않지만, 각자의 개성을 살렸다.
다중 공격로와 내공의 섬세한 컨트롤, 거기다 쾌권까지.
이곳에 있는 어떤 학생보다 더 눈이 갔다.
한참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더, 더 이상 못 하겠어.”
“하악… 나… 하악… 도.”
세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잘못 봤나?’
차경진이 세 사람을 뚫어지게 보았다.
* * *
다른 수업도 똑같았다.
선생들은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5반의 반장이 그렇게 노력하더니 드디어 빛을 보나 봅니다.”
“서혜지는 어떻고요. 치유에만 능력이 있는 줄 알았더니 암기술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어요.”
“남선호를 보셨습니까? 무려 쌍검술을 개화했답니다.”
“허. 그 희귀하다는 쌍검술을요?”
선생들은 저마다 세 사람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네. 이준 학생과 수련하다가 개화했답니다.”
“등급은 물어보셨습니까?”
“물어보진 못했지만 D급 이상은 되지 않겠어요?”
“5반에 재능 있는 학생이 3명이나 늘었군요. 차 선생님은 반을 맞자마자 좋겠습니다.”
차경진은 선생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이준 도련님과 수련을 했다라….’
대체 어떤 수련을 했기에 세 사람이 그렇게 변했을까.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훈련을 보고 싶었다.
“앞으로 제가 더 노력해야죠.”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친김에 직접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었다.
“차 선생 가려고?”
“네. 할 일이 생겨서요.”
“차 선생은 세 학생 중 마음에 든 사람이 없는 건가?”
“스카우트에서 빠지겠단 소리지?”
“네. 전 빠질 테니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세요.”
“경쟁자가 한 명 사라져서 좋군. 어서 가시게나.”
차경진이 선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그녀가 향한 곳은 랭킹 20위만 누릴 수 있는 개인 수련장이었다.
“한지유가 쓰는 수련장이라 했지?”
별관 수련 동으로 간 차경진이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선생이 온지도 모르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
차경진도 창문을 통해 안쪽을 보았다.
“중력이 4배?”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학생들도 그 사실을 알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E급이 중력 4배를 견디는 거 실화냐?”
“대체 그동안 어떤 훈련을 했기에 저게 익숙해 보여?”
“봐봐, 이준이 던진 암기를 피하고 있어.”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가 발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중력이 4배나 오른 공간을 보법을 사용해 피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암기를 몸으로 받아내는 게 거의 80%에 가까웠다.
그래도 E급이 중력 4배나 되는 공간에서, 이준이 던진 암기를 받아낸다?
‘나도 저건 힘들어.’
이준이 던진 암기는 살아 숨 쉬며 움직이기까지 했다.
B급인 자신이라도 저런 공간에서 수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못 할 건 아니지만, 학생들이 하기에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안쪽 수련을 보고 있었다.
‘이준 도련님이 약점만 골라 공격하고 있어.’
한지유는 이준이 던진 쇠침을 검으로 일일이 쳐내고 있었다.
침이 교복을 찢으며 지나간 것도 있지만, 대부분 막고 흘려냈다.
‘철왕에게 직접 암기술이라도 배우신 건가?’
1학년 신입생인 암화조차 이준이 선보이고 있는 화려한 암기술을 하지 못한다.
얼추 흉내나 낼 정도?
그만큼 이준의 암기술은 뛰어났다.
한참이 지나서야 수련이 끝났다.
이준이 개인 수련실을 나왔다.
차경진과 딱 마주친 이준이었다.
“어? 여기서 뭐 하세요?”
“아.”
차경진이 당황했다.
수련 장면을 넋 놓고 보다가 갈 타이밍을 놓쳤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더 저들의 수련을 지켜보고 싶었다.
“애들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요?”
“이준 도련님한테 할 말이 있습니다.”
“저한테요?”
“네.”
차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이다.
결연하기까지 했다.
“뭔데요?”
“저도 이 훈련에 참여하고 싶어요.”
“선생님이요?”
“도련님 덕에 저 아이들이 성장한 걸 알아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좋은 훈련을 직접 참여하고 배워서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차경진의 폭탄 발언에 아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옥의 권법 수업을 담당한 선생이.
학생인 이준에게 직접 수련을 배워 보겠다고 요청한 것.
선생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기에 놀랄 만했다.
하나, 한지유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 수련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으면 참여해 보고 싶은 게 당연했다.
오히려 등급이 높은 각성자일수록 이준의 수련은 겪어 보고 싶을 것이다.
자신 또한 그랬다.
이준과 별 차이를 못 느꼈는데, 훈련을 같이함으로써 뼈저리게 느꼈다.
이준은 넘볼 수 없는 벽이라고.
거대한 산이 이준과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격차를 느꼈다.
다른 아이들은 등급이 낮아, 이준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좋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왔다는 건 다른 사람도 달려들 수 있다는 이야긴데. 전 귀찮은 건 딱 질색이거든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음… 따로 수련할 곳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때 한지유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 가문 어때?”
“보는 눈이 많지 않아? 그리고 학교 규정상 밤늦게 외출하는 건 불가능한데”
“여기랑 똑같은 첨단 수련장도 있고 선생님과 함께면 늦은 외출도 괜찮아.”
“그러면 내일부터 너희 집에서 수련하자.”
그렇게 같이 수련할 사람이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 * *
이준은 영등포 쪽에 위치한 신기지가로 왔다.
한옥으로 된 신력권가와는 달리, 이곳은 모든 게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이곳이 지유 집이야?”
“이런 곳을 놔두고 기숙사에서 사니까 얼마나 갑갑하겠어.”
박은비와 서혜지가 연신 감탄했다.
일반 각성자인 두 사람은 오대 가문에 속한 신기지가를 처음 봤다.
그들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곳.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신기지가가 속해 있었다.
“따라와.”
한지유가 안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아가씨. 오셨습니까.”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그녀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어디 계신가요?”
“아가씨가 오신다고 수련장에 가 계십니다.”
“알았어요.”
한지유가 경공을 써서 움직였다.
다른 일행들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정문에서부터 수련장까지.
얼마나 넓은지, 경공을 써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인상 좋은 남자가 기계를 만지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오, 왔어?”
신기지가의 가주.
신기학사 한지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보자 일행이 얼어붙었다.
“이사장님?”
“여기에 왜?”
“하하. 내가 민성이와 똑같이 생겼긴 했지. 잘 왔다. 외톨이인 지유의 친구라고?”
“아버지!”
한지웅의 말에 한지유가 버럭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한지웅이 입에 미소를 머금었다.
친구가 없었던 딸.
항상 사람을 멀리했는데, 친구가 생겼단다. 심지어 가문에서 극비로 훈련한다고 아이들까지 데려왔다.
사회성이 없던 딸의 큰 변화였다.
“아이쿠. 우리 딸이 화를 내니 무섭구나.”
장난스럽게 말한 한지웅이 차경진을 아는 척했다.
“홍련권까지 온 줄 몰랐습니다.”
“신기지가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길이 머문 곳엔 이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