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수업이 끝난 이준은 게이트를 통해 학교 밖으로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홍대에 있는 지하 경매장이었다.
“오신다고 말씀이라도 해 주시면 제가 마중 나갔을 텐데.”
이준이 인피면구를 쓰고 오자, 곧바로 알아차린 한상인이다.
“괜찮습니다. 아티팩트를 사러 온 게 아니라서요.”
“그래도 오셨는데 제가 안내를 안 할 수는 없죠.”
“그러면 묘목이랑, 벼 종자랑 밀을 대량으로 사려는데, 좋은 품질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그런데 그건 왜?”
“나무랑 벼를 기를까 합니다.”
“파천자 님께서 말입니까?”
한상인의 얼굴에 물음표가 잔뜩 떠올랐다.
“비슷합니다.”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아니고 스케먼들이다.
녀석들이 농사를 지으면, 페어리들이 밭에 버프를 건다.
그러면 1년을 기다리지 않고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만에 비상식량이 확보될 거다.
이 얼마나 좋은 자급자족 생활인지.
생각 만해도 힐링이 됐다.
‘스케먼이 참 쓸 데가 많아.’
그러니 이세계의 악마들도 스케먼을 제일 먼저 이용한 걸 테고.
이준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반 물건을 파는 경매장으로 왔다.
여긴 사람이 한산했다.
지하 경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분을 밝히기 꺼리는 이들.
그런 사람들이 일반적인 물건을 사겠는가.
수수료가 무려 30%다.
여기에 추적 불가능한 계좌로 돈을 받으면 추가로 20%가 붙는다.
무려 50%에 육박한 수수료 때문에 일반적인 물건은 이곳에서 구매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파천자 님께선 암상의 최고 고객이시라 모든 물건에 수수료가 면제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감사드리죠.”
암상과 이준의 거래는 이미 체결되었다.
패왕도가의 가주를 죽이는 모든 일에 암상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 암상을 이용한 모든 수수료 면제.
지하 경매장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특혜였다.
‘이래서 VVIP, VVIP하는 구나.’
이준은 사양 않고 태블릿PC 화면에 나와 있는 목록을 전부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허허. 이러다 쇼핑 중독에 걸리겠구나. 제자야.]
‘괜찮습니다. 다 구매해 봤자….’
이준이 장바구니에 담아진 금액을 보고 멈칫했다.
생각보다 금액이 꽤 됐다.
[다 구매해 봤자 20억쯤은 되는구나.]
‘제, 제가 이렇게 많이 담았습니까?’
금액 중 상당 부분이 묘목이었다.
[통 한번 크구나. 암 고금제일인의 제자가 그 정도 통은 되어야지. 그냥 구매하거라.]
무극자 사부가 더 사라고 부추겼다.
그러니까 사고 싶은 마음이 싹 가라앉았다. 왠지 또 뒤통수 맞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준은 자신이 고른 장바구니 리스트를 한상인에게 넘겼다.
“여기 있습니다.”
“이걸 전부 구매하는 겁니까?”
“네.”
한상인은 태블릿PC와 이준을 번갈아 보았다.
그는 많은 각성자를 보아왔지만, 이준 급의 각성자가 묘목이나 사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대체 이 많은 나무를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정보력을 이용해 알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령 장소는 어디로 하시겠습니까?”
“아무도 사용 안 하는 커다란 공터 있습니까? 사람의 눈이 안 닿는 곳이면 더 좋습니다.”
“부산 같은 곳이라면 몰라도… 서울은 없습니다.”
부산은 혼돈지대.
게이트 브레이크가 수십 개는 되었다.
몬스터가 안에서 튀어나와 아수라장이 된 도시.
옛날에는 제2의 수도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버려진 곳이었다.
“부산이 좋겠군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물건들이 출발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이준이 한상인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려는 그때.
전광판에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이 들어왔다.
아니, 이준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참마도가 암상에 숨어 있었어?’
마를 밴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도로, 미래엔 널리 알려진 물건이다.
사마련의 도귀가 가지고 다녔던 도였나?
무튼, 그 쓰레기 같은 놈이 들고 다니기엔 너무 아까운 도였다.
그니까 얼른 차지해야 한다.
이준이 한상인을 보며 말했다.
“저 경매 참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전광판에 뜬 경매는 VVIP만 참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당연히 됩니다. 따라오시죠.”
이준이 한상인의 뒤를 따라갔다.
* * *
그 시각.
VVIP 룸에선 젊은 남자가 아주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사마련에서 나온, 팔악 중 도악의 아들인 길필성이었다.
“우리 총알은 얼마야?”
“20억을 가져왔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네.”
아니,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다.
“참마도. 이름 한 번 마음에 들어. 저런 물건을 암상은 어떻게 구했을까?”
길필성이 탐욕스러운 눈으로 홀로그램을 보았다.
길쭉한 도신. 베일 듯한 날카로움이 화면 너머까지 전해졌다.
길필성은 손가락으로 참마도를 눌렀다.
[참마도]
등급: A
설명: 도군이 쓴 무기로, 마교를 상대할 때만 사용했다.
효과: 힘 +50, 체력 +40, 마인에 대한 공격력 +40%
‘이 정도는 차 줘야 간지가 나지.’
길필성은 참마도를 다른 A급 아이템과 동일 선상에 놓았다.
참마도의 숨겨진 능력을 몰라서 그런 것뿐.
만약 숨겨진 능력을 알았다면 절대 20억만 준비하지 않았을 거다.
적어도 30억 이상의 금액을 준비했을 터다.
“시작한다.”
길필성이 손을 비볐다.
경매가 시작되고, 그가 곧바로 1억을 올렸다.
다음 참가자 1억 2천을 올렸다.
점점 올라가는 금액들.
3억이 되었을 때, 그가 곧바로 5억으로 올려놨다.
팔짱을 끼며 소파에 등을 기대는 사이.
금세 1억이 뛰었다.
“아쭈? 쫌 있는 놈이 붙었나 본데?”
하긴 A급 장비를 5억에 사려는 건 도둑놈 심보였다.
길필성이 금방 가격을 올렸다.
7억.
서서히 금액이 높아지고 있다.
경매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금액이 두 자릿수로 올라갔다.
10억을 넘고 15억을 넘자, 길필성도 초조해졌다.
“시팔! 어떤 새끼야.”
“도련님과 다른 한 명이 경합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감히 내 물건을 탐내? 이 새끼 누군지 찾아와.”
“알겠습니다.”
길필성의 수하로 보인 남자가 VVIP룸을 나갔다.
그는 금액을 17억으로 올렸다.
1억이 아닌 2억을 올렸던 것.
그러나 상대방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3억을 올렸다.
20억.
그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20억을 가지고 있으나, 그 이상은 없었다.
쾅!
“개자식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경매를 계속 진행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20억 이상은 아버지의 승인이 필요했다.
다른 문제는 더 높은 금액으로 사간 장비가 A급인 참마도라 하면 크게 혼날 수 있었다.
지금의 무기보다 더 좋은 것도 수두룩했으니까.
고민 끝에 결국 포기 선언을 했다.
“아아악, 어떤 새끼인지 알기만 하면 그냥!”
마침 VVIP룸이 열렸다.
나갔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누군지 찾았어?”
“예.”
“어떤 새끼야?”
“파천자란 닉네임을 쓰는 자입니다.”
“파천자? 아주 미친 새끼였구먼?”
광오한 별명에 길필성이 비웃었다.
“최근 들어 굉장히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유명하다는 말에 눈에 질투가 맺혔다.
그는 도악의 아들이지만, 이렇다 할 이름을 날리지 못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사마련의 자제들은 15가문 연맹의 자제들보다 언제나 밑에 있었다.
악당, 빌런, 범죄자, 마인들의 집단.
악마의 자식들이라 불려 항상 폄하 당했다. 그래서 인기에 항상 목말라 있었다.
15가문 연맹 놈들도 이름을 날리는데 우린 왜 못 날리나 하고.
“개나 소나 다 유명하다고 하군.”
최근 그의 심기를 건드린 놈도 있었다.
창귀, 권귀란 별명으로 불린 이준이란 놈이라 했던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슈퍼스타 마냥 틀면 나왔다.
거기에 배알이 꼴려 있는 상태였다.
“희귀 아티팩트만 판 인물로 이곳을 이용한 고객 모두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어떤 희귀 아티팩튼데?”
“위락대평원의 보스 몬스터에게 얻은 장비와 요정의 꽃밭 아티팩트 등. 다양한 희귀 물품들을 경매에 내놓았다 합니다.”
남자의 말을 들은 길필성이 음흉하게 웃었다.
입꼬리를 말아 올려 가며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만 같은 표정을 했다.
“그 정도로 유명하단 말이지?”
희귀 A급 아티팩트.
귀가 쫑긋 세워지게 만든 이야기였다.
‘놈을 털어서 사마련으로 귀환하면 아버지가 칭찬해주실 거야.’
희귀 아티팩트를 파는 놈이라면 분명 다른 좋은 것도 있겠지.
거기다가 자신이 오늘 못 얻은 참마도까지.
털어가면 딱 좋지 않을까.
“놈이 암상을 나오면 기습할 수 있게 대기해.”
“알겠습니다.”
남자도 길필성과 같은 얼굴을 했다.
이런 일은 자주 있었던 일.
평소대로 하면 됐다.
* * *
“낙찰 축하드립니다.”
한상인이 직접 경매에 낙찰된 물건을 가져왔다.
길쭉하게 생긴 네모난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고 있는 참마도가 보였다.
[호, 상당히 좋은 물건이구나.]
‘역시 사부님이세요. 바로 알아보시네요.’
[홀홀. 노부의 눈은 아무도 못 속이니라. 이 오묘한 시스템조차 노부를…]
또또.
무극자 사부가 한껏 어깨를 편 채,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젠 익숙해져서 이준은 물 흘러가듯 넘겨 들었다.
그는 참마도의 정보창을 띄웠다.
[참마도]
등급: A
설명: 도군이 쓴 무기로, 마교를 상대할 때만 사용했다.
효과: 힘 +50, 체력 +40, 마인에 대한 공격력 +40%
그냥 평범한 A급 아티팩트였다.
이걸 20억에 낙찰받은 건 손해도, 그렇다고 이득도 아니었다.
그럭저럭.
무난한 무기를 얻었다고 보면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었다.
참마도의 본래 모습.
이준이 도를 잡아 내공을 불어 넣었다.
지잉-
도에 회색 아지랑이가 넘실넘실 흘렀다.
한상인이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도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는 걸로 보였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파천자가 가져온 장비들은 죄다 최상급 물건들.
그런데 그가 고작 평범한 장비에 20억을 쏟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경매에 낙찰된 물건을 전달해 주러 왔다.
대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웅웅.
이준이 가진 참마도에서 도명이 울렸다.
한상인이 경악했다.
“도명!”
무기와 그걸 쓰는 자의 마음이 일치해야지만 울리는 소리였다.
고작 몇 분.
아니, 몇십 초를 잡았다고 울릴 만한 그런 소리가 아닌데.
그는 그 어려운 걸 너무도 쉽게 해냈다.
“눈으로 보고도 믿겨지지 않아.”
정말 자신보다 어린 나이가 맞을까.
노회한 AA급 각성자가 반로환동 한 게 아닐까 의심될 지경이다.
한상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준은 참마도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참마도의 정보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