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그 무렵.
뭍에 진을 친 패왕도가와 신력권가의 앞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거미줄에 걸려 있는 시체들.
머리와 팔, 다리가 없이 무언가에 뜯긴 시체들이 널렸다.
“오, 오지 마.”
투신단 중 한 명이 겁에 질린 채, 바지에 실례를 했다.
두 눈동자가 공포로 가득했다.
그의 앞에 있는 건 나가쉬였다.
이곳의 주인.
녀석은 침입자를 기다렸다가 잡아먹는 중이었다.
“아, 안…”
콰직!
팔과 다리가 거미줄에 묶여 움직이지 못한 투신단 인원은 나가쉬에게 머리를 뜯겨 버렸다.
“캬악.”
나가쉬들이 괴성을 질렀다.
아직 배가 차지 않은 모양.
녀석들은 배가 찰 때까지 먹이를 먹었다.
단, 포식을 한 후에는 며칠 가량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식량창고에 먹이를 저장한 후에 배가 고파지면 다시 먹기 시작할 뿐.
녀석들이 도망친 이들을 쫓기 위해 수상 동굴을 나왔다.
바닥에는 선명한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냄새를 맡으며 어디로 갔는지 찾는 나가쉬들.
여덟 개의 다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녀석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신의 동족이 인간들을 둘러쌌다.
“크흑. 퇴로가 끊겼어”
최대웅이 이를 악물었다.
거미들에게 둘러싸인 그와 일행들.
모두의 얼굴에 낭패의 빛이 스쳤다.
200명이던 인원이 어느새 반으로 줄었다.
나가쉬는 어디서 자꾸 튀어나오는지 숫자가 계속 늘었다.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이민욱이 최대웅에게 물었다.
여기서 믿을 사람은 그뿐이었으니까.
최대웅이 입만 뻥긋거렸다.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전음을 사용할 때 보이는 현상이다.
‘자네, 귀환석 있나?’
‘가지고 있습니다.’
‘신이도 있겠지?’
‘네.’
‘아무래도 수하들을 미끼로 주고 우린 귀환석을 사용해야겠네.’
귀환석은 아주 귀했다.
정말 위험한 순간에 목숨을 구해 주는 소모형 아이템이다.
외국 마법 가문이 만들어 낸 응급구조 도구였다.
엄청나게 고가의 물건이었다.
너무 비싸서 일반 각성자는 지니지도 못했다.
천중호수 같은 위험한 게이트를 공략할 때나 들고 갔다.
지금과 같은 경우를 대비해 사용하려고 말이다.
‘저희만 말입니까?’
‘아니면 우리도 같이 죽자는 소린가?’
‘그건 아닙니다.’
이민욱도 같이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수족인 투신단을 모두 데려왔다. 이들이 죽으면 자신의 기반이 무너진다.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시 수족을 만들려면 시간이 꽤 걸릴 터.
너무 아까웠다.
최대웅은 이민욱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도 가문을 물려받지 못한 둘째의 입장.
이민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민하지 말게. 기반은 언제든 만들 수 있어. 내가 도움을 주겠네.’
‘정말입니까.’
‘살아나간다면 뭐든 못 하겠는가.’
‘사돈어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진즉에 2구간에서 생방송은 끊어진 상태였다.
자신들이 실패하고 나왔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거다.
전 국민이 봤을 천중호수의 난이도.
AA급 각성자가 대거 참여한다 해도 여긴 깰 수 없는 불패의 게이트였다.
‘그런데 다른 가문은 괜찮겠습니까?’
‘우리도 이럴진대 그쪽은 이미 죽거나, 먼저 도망쳤을 거네.’
‘하긴 그렇겠군요.’
이민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신에게 전음 했다.
‘신아, 아무래도 상황이 좋지 않다.’
‘제가 뚫을 수 있습니다.’
이신은 자신의 힘을 만끽하고 있었다.
검붉은색 패기가 몸에 가득했다.
이것만 있으면 저 괴물들을 싸그리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돈어른께서 퇴각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입구로 돌아가는 게 더 힘들 텐데, 차라리 제가….’
‘귀환석을 사용하기로 했어.’
이신은 이민욱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만 깨면 여태 자신이 뒤집어쓴 오명을 털어낼 수 있다.
거기다 이준도 여기서 죽여야만 했고.
어쩐지 꼭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꼭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맡겨 주세요.’
‘신아!’
이민욱이 이신을 불렀지만, 그는 이미 나고쉬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잘 안됐나?’
‘죄송합니다. 제가 신이를 데려가겠습니다.’
‘돌아가면 애들 교육을 좀 시켜야겠어.’
‘그리하겠습니다.’
사돈 관계라지만, 경쟁 가문이기도 했다.
그에게 교육을 시키라고 말을 들었다는 건 자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내 단단히 혼내 주겠어.’
이민욱이 이신을 잡으러 움직이려는 사이.
푸확!
이신의 검붉은색 패기 주먹이 나고쉬의 몸통을 관통했다.
‘저 녀석이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이신의 무위에 이질적인 기운을 눈치채지 못한 이민욱이 자리에 멈췄다.
이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크하하하. 내가 바라던 게 이거야.”
그가 발을 뒤로 휘두르며 나가쉬의 몸통을 찍었다.
쩍!
딱딱한 갑옷이 육중한 각법에 부서졌다.
그는 한 마리 야수처럼 날뛰었다.
제힘에 취한 듯, 내공을 무지막지하게 사용했다.
스무 마리를 죽이자 이신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허억… 허억….”
이신의 어이없는 활약으로 나고쉬가 흥분했다.
동족을 죽인 적에게 극도로 적의를 드러냈다.
족히 100마리 정도 되는 나고쉬가 입에서 거미줄을 뿜었다.
“아악!”
“피, 피부가 녹고 있어.”
“내… 발이!”
독성을 내포한 거미줄에 공략대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제 되었다. 여기서 더 하면 도망가지도 못해!”
이민욱이 이신을 거칠게 잡았다.
그리고 투신단주와 천왕대주에게 입을 뻥긋거렸다.
곧바로 품속에서 귀환석을 사용한 이민욱.
최대웅과 최태민도 귀환석을 사용했다.
“단주님!”
“저,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너희들의 복수는 곧 해 주마. 미안하다.”
투신단주가 바짓가랑이를 잡은 수하를 발로 차며 사라졌다.
아직 귀환석을 쓰지 않은 천왕대주.
그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이준 도련님을 찾아봐야겠다.”
“대주님!”
“이신 도련님께서 우건이 너를 많이 챙기신 듯하다. 네가 죽으면 슬퍼하실 것 같으니, 나 대신 가라.”
사형준이 쓰게 웃으며 귀환석을 젊은 청년에게 건넸다.
그는 이신에게 단환을 준 인물이었다.
“대주님….”
그가 사형준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는 척했다.
“어서 가라.”
사형준이 우건이란 청년 대신 귀환석을 작동시켰다.
빛이 그의 신형을 감싸며 사라졌다.
남은 이들은 망연자실했다.
자신들을 버리고 간 상관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천왕대는 들어라.”
사형준이 내공을 담아 천왕대에게 전했다.
“우린 이준 도련님의 생사를 확인한다.”
갑작스럽게 떨어진 명령에도 천왕대는 곧바로 대답했다.
“명을 받듭니다.”
사형준이 숨기고 있던 힘을 풀었다.
천왕대의 대주로서의 힘이 아닌, 권신단 부단주로서의 힘을 내보였다.
그의 전신에서 거대한 힘이 올라왔다.
이신의 조잡한 패기가 아닌, 진정한 신력의 힘이었다.
쾅!
사형준이 활로를 뚫기 위해 선두로 치고 나갔다.
* * *
쿵!
진동이 일어났다.
이준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 황보세가의 힘이다.]
‘신력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아버지 말고는 없어.’
신력의 힘은 천왕신공에서 발휘된다.
이신도 천왕신공을 배우고 있지만, 이 정도의 기운을 컨트롤하지 못한다.
그때 떠오른 한 사람.
천왕대주이자, 본래의 신분이 권신단의 부단주인 사형준이었다.
‘5년 후에나 그의 정체가 알려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힘을 드러냈다는 건 강한 적을 만났다는 소리.
나고쉬로는 그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거다.
뭘까.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이때까지 샥쿠가 도망친 것 말고는 다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갔다.
이 진동이 있기 전까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구경이라도 가지 그러느냐. 저 정도의 힘을 선보인다는 건 위험하다는 뜻. 덜떨어진 놈들도 볼 겸 구경이나 해 보거라.]
‘여긴 보스 몬스터가 있어도 안전하니까 가 볼까요?’
[보스 몬스터는 어떤 놈인데 사람이 왔는데도 안 나타나느냐. 이놈도 아주 골때리는 놈이구나.]
‘만년금구입니다. 지금 알을 낳고 있어서 물 밖으로 못 나올 겁니다.’
[뭐라!?]
무극자 사부의 놀란 음성이 들렸다.
‘깜짝이야. 왜 그러십니까?’
[지금 만년금구라 했느냐?]
‘네.’
[내가 키우는 녀석도 만년금구였느니라.]
‘그렇습니까. 설마 사부님이 말씀하신 녀석과 이 녀석이 같다고 여기시는 건 아니시죠?’
사부님의 나라는 고려.
지금은 2025년.
족히 1000년은 훌쩍 넘었다.
천중호수의 보스 몬스터와 사부님이 키웠다던 영물이 같을 수 있을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무극자 사부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보지 않고 단정할 수 없다. 황금이가 여기 있다면 네 사형이 되느니라.]
“푸웁!”
“뭐야 왜 그래?”
“아, 아니야.”
이준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렸다.
[네 이놈. 상당히 기분 나쁜 웃음이구나.]
‘차라리 파랑이가 더 귀엽습니다. 안 그러니, 파랑아?’
‘뀻!’
가슴께에 파랑이가 꿈틀거렸다.
이준의 말을 격하게 반박하는 것 같았다.
두 사제 간이 누가 더 작명 실력이 형편없는지 입씨름을 했다.
도진개진.
두 사람 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작명 실력이었다.
그러는 사이.
쿵-
전보다 더 큰 진동이 느껴졌다.
이준이 박정연과 일행을 향해 말했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혼자 어디 가려고? 너라도 여긴 위험할 거야.”
“괜찮아. 그리고 여긴 위험한 게 없으니까 편히 쉬고 있어.”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에서 편히 쉬라니.
정신 나간 소리였다.
이준이 왔던 길로 사라졌다.
현원단주가 한지유에게 다가갔다.
“이준을 스카우트하려는 건 아는데 너무 끌려다니는 것 같아요. 아가씨.”
“그런 말 마세요. 2구간을 통과한 것도 다 이준 덕분이에요.”
“예?”
“게이트가 클리어되면 이준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명성을 얻을 거예요.”
현원단주는 한지유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준이 2구간을 통과하게 해 줬을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현원단주였기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건 창궁검단도 똑같았다.
따르는 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한편 빙하의 협곡에서 나온 이준은 군림보를 이용해 날아가다시피 했다.
‘신력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시야에 보이진 않지만, 기감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때 한 가지 드는 의문점.
있어야 할 기운들이 없었다.
‘작은아버지는 물론 최대웅의 기도 느껴지지 않아.’
나고쉬는 포식하면 절대 먹이를 먹지 않는다.
무엇보다 녀석들은 입이 짧다.
최대웅이나, 이민욱 등은 끝까지 살아남을 터.
그러면 절대 죽지 않는다.
포식을 하고 제 둥지로 돌아갈 테니까.
그걸 알고 있었기에 편을 나눠서 갔다.
저들이 된통 당하고 있을 때, 보스 몬스터를 클리어하고 나오려 했다.
‘가 보면 알겠지.’
이준의 발이 땅에 닿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수십 장을 가르고 나아가는 그의 신형.
어느새 2구간에 도착했다.
쿵!
저 멀리서 붉은색의 빛이 번쩍였다.
이준의 신형이 방향을 바꿨다.
소리가 나는 곳에 가까워지자, 흔들림이 거세졌다.
무식할 만큼 강한 힘이 땅을 뒤흔들었다.
‘신력의 힘은 이제 한계야.’
드디어 폭음이 들린 장소에 도착했다.
이준의 눈에 잡힌 한 사람.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사형준이다.
주변 땅은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곳곳에 웅덩이가 있었다.
그 아래 널려 있는 시체들.
투신단과 흑사자단이었다.
그나마 천왕대의 무위가 제일 뛰어나 버티고 있는 것.
홀로 고군분투한 사형준 때문인지.
절반가량의 천왕대가 살아 있었다.
이준이 이민욱과 이신의 시체를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두 사람의 시체는 없었다.
“X발. 진짜 상종 못 할 인간들이네.”
중요한 이들에게만 값비싼 귀환석을 지니게 하는 건 어느 가문이나 똑같았다.
신력권가도 예외는 아닐 터.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수하들을 미끼로 삼고 도망치다니.
진짜 개 같은 짓거리를 일삼는 가문이었다.
치가 떨렸다.
이런 수치스러운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게.
“엿 같아서 돌아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