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패왕도가와 신력권가의 진영.
그들은 빙하의 협곡 반대편으로 왔다.
수상 동굴로 들어가기 전, 뭍.
그곳에 텐트를 쳤다.
“선배님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민욱이 최대웅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선배이기 이전에 사돈어른.
최태민에겐 작은할아버지가 됐고, 이신에겐 작은외할아버지가 됐다.
“배우지 못한 망종 아닌가. 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게.”
최대웅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내심은 그러지 못했다.
여유로운 표정에서도 숨기지 못한 게 있었다.
‘A급밖에 안 된 놈이 내 기운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이준이란 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했다.
얼굴이 사색이 되지도 않았고, 몸을 움직이는데 힘겨워하지도 않았다.
‘기운을 숨길 수 있어? 그 나이에?’
이것 말고는 없었다.
작심하고 기세를 푼 최대웅이었다.
18살짜리 고등학생이 받아칠 만한 기운이 아니다.
그래서 의아했다.
어떤 놈이길래 저리 태연할까.
‘느낌이 좋지 않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위화감이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그런 느낌.
최대웅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지웠다.
레드존 게이트인 천중호수에 들어와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 거라고 치부했다.
한편 이준 쪽 진영도 빙하의 협곡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한지유가 이준을 걱정했다.
“가문이랑 떨어져도 괜찮아?”
“어. 원래 이럴 생각이었어. 그리고 수상 동굴 쪽이 더 위험해. 여긴 안 위험하니까 내 살길 찾아온 거지.”
샥쿠와 샤크로아의 거처는 빙하의 협곡. 겁을 집어먹은 녀석들이 이곳으로 오면 다시 천중수로 도망칠 터.
하나 수상 동굴은 달랐다.
그 주위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샤크로아의 천적 나고쉬였다.
몸집 큰 거미.
독 대신 냉기를 쓰는 무지막지한 놈이다.
그것도 모른 채, 나고쉬의 둥지에 자리 잡는다?
생각 만해도 소름이었다.
“이런 정보는 대체 어디서 얻었어?”
“비밀.”
“우리한테도 안 가르쳐 줄 거야?”
박정연이 팔짱을 끼며 노려봤다.
곧 심술을 부릴 거라는 전조 현상이었다.
옆에서 박혁진이 그녀를 더 부추겼다.
“헤헤. 준이가 이곳에 대해 빠삭한지 난 알지롱.”
“치사하게 둘만 공유한다 이거지? 그러면 나도 지유랑 준이에 대한 비밀을 공유해야지.”
“…아, 암상에서 정보를 줬어.”
이준이 먼저 실토했다.
박정연이 한지유와 공유하려는 건 어릴 때의 치부였다.
다른 사람이 몰랐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박정연이 득의양양해했다.
“너 암상도 알아? 그래서 우리 제안을 계속 거절했구나?”
한지유는 그제야 이해가 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지가의 정보력과 유일하게 맞먹는 단체.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암상밖에 없었다. 어떤 부분에선 암상의 정보력이 더 방대할 때가 있다.
별 볼 일 없는 정보까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게 암상이란 조직이었으니까.
[아주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구나.]
‘아예 거짓말은 아니거든요.’
천중호수에 대한 정보는 암상에서 주워들은 게 맞았다.
[믿어주마. 끌끌.]
‘진짠데.’
이준이 속으로 억울해했다.
자신이 회귀를 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다음 계획은 있어?”
한지유가 눈을 빛냈다.
이준의 성격이라면 무턱대고 편을 가르진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이 협곡에 4구간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어.”
“정말인가?”
현원단주의 눈이 커졌다.
4구간이라면 바로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이었다.
그 지름길을 알고 있다고 하니, 안 놀랄 수 없었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해요.”
“그것도 네 사… 아니지 암상이 가르쳐 준 거야?”
박혁진이 사부라고 말하려다가 재빨리 바꿨다.
이준의 매서운 눈빛에 움찔했다.
“어. 그래서 내가 준비물을 챙겨왔지.”
이준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그건 보상으로 받은 아티팩트잖아?”
“이게 천중호수를 깰 수 있는 열쇠거든.”
“뭐라고!?”
한지유를 비롯한 이곳에 있는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 엄청난 사실을 암상은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암상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데, 이 정도였어?’
한지유는 신기지가의 정보력을 더 키워야 된다고 생각했다.
“배고픈데 밥부터 먹고 출발할까?”
* * *
이준 일행은 밥을 먹고 빙하의 협곡에 들어왔다.
곳곳에 깃발이 꽂혀 있었다.
샤크로아의 몸에 그려진 문신과 똑같았다.
“정말 이곳이 샤크로아의 서식지였어.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적진에 들어왔다.
혹시나 모를 기습에 대비해야 했다.
“여기쯤이려나.”
“얼음 호수 바닥은 왜?”
이준이 가리킨 곳은 꽁꽁 얼어붙은 바닥이었다.
“말했잖아. 지름길이라고.”
박정연의 물음에 대답한 이준이 망치를 고쳐 잡았다.
한쪽은 평평했고, 한쪽은 송곳처럼 뾰족했다.
뾰족한 곳으로 얼음 바닥을 내려찍었다.
쩌어엉-
굉음이 협곡에 울려 퍼졌다.
이 정도의 소리라면 주변에 있던 몬스터가 모여들지 않을까.
“경계를 늦추지 마라.”
창궁검단과 현원단이 검을 잡고 주변을 경계했다.
쩡-
이준은 있는 힘껏 망치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샤크로아가 나타났습니다!”
자신들의 서식지에 침입자가 나타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건 당연했다.
이준이 고개를 돌려 나타난 몬스터를 보았다.
아까 도망친 샥쿠와 샤크로아였다.
“저놈들은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만 하고 이준은 계속 망치질을 했다.
단단했던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샥쿠가 안절부절못했다.
샤크로아도 샥쿠의 눈치만 봤다.
이준이 망치질을 할 때마다, 샥쿠가 움찔거렸다.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이준의 기운.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끼게 했다.
상대의 전의를 완전히 상실시켰다.
안절부절못한 샥쿠가 다시 천중수로 도망쳤다.
보스가 도망치니, 부하들은 오죽할까.
36계 줄행랑뿐이었다.
마침 쩌억 소리가 났다.
거의 다 된 모양이다.
이준은 더욱 힘을 내서 망치를 휘둘렀다.
“좀 깨져라.”
스트레스를 풀듯 망치를 내려치니, 드디어 얼음 바닥이 갈라졌다.
“피, 피해!”
조각난 얼음을 디딤발 삼아 피하는 공략대였다.
“물로 들어가야 해요.”
이준은 그 말을 남기고 먼저 차가운 물로 뛰어들었다.
뒤따라 박혁진이 물속으로 들어가니, 나머지 인원도 전부 입수했다.
이곳은 천중호수와는 달리, 일반적인 물이었다.
이준이 밑으로 헤엄쳐서 내려갔다.
그의 눈에 하나의 동굴이 보이자.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푸하.”
물에서 빠져나온 이준이 숨을 내쉬었다.
수중 동굴을 통과하자 좌우로 보이는 거대한 빙벽.
바깥과 똑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기만 통과하면 됩니다.”
이준 일행은 앞으로 쭉 걸었다.
한참을 걸은 후 일행 앞에 나타난 거대한 철문.
이준이 망치를 문에 가져다 댔다.
철장의 망치에서 빛이 나더니 철문에서 소리가 났다.
철컥, 그그긍-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렸다.
[시크릿 루트를 발견했습니다.]
[보상으로 5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거대한 동굴 안.
투명한 유리 벽이 반짝이며 이준 일행을 반겼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모두가 동굴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들은 계속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는 동안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저, 저길 보십시오.”
현원단이 앞쪽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앞으로 쏟아졌다.
그곳에는 짙은 파란색으로 된 수정이 한가득했다.
“마정석?”
“저렇게나 많이 있는 건 처음 봐요.”
한지유의 눈이 커졌다.
투명한 유리에 박혀 있는 수정은 마정석이었다.
모두가 마정석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색도 굉장히 파래.”
짙은 파란색은 마력의 순도가 높다는 뜻. 적어도 A급에서도 최상은 될 마정석이다.
“하나에 억은 되겠다.”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걸 캐내는 것도 문제.
400명이 있다지만, 이들은 모두 전투 요원.
마정석을 전문적으로 캐는 채광꾼이 아니었다.
모두가 마정석에 푹 빠져 있을 때, 이준만이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보다 더 대단한 곳을 안다.
신기지가에서 받을 서울 숲 게이트.
그곳에 마정석 광산이 있다.
이곳은 새 발의 피였다.
이준은 마정석 말고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극빙하수.
극음의 성질을 지닌 영약이다.
이 동굴을 지나, 보스가 있는 곳에 있는 영약.
빨리 파랑이에게 먹이고 싶었다.
“자자, 그건 나중에 생각하시고 빨리 보스 몬스터에게 가죠.”
“우리 인원만으로 충분해?”
“응. 녀석은 지금 공격할 수 없거든요.”
“보스 몬스터의 정체를 알고 있어?”
“가 보면 알아.”
이준이 씩 웃었다.
박혁진은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준이 사부님의 정체가 뭘까? 우리 할아버지보다 더 대단한 사람 아니야?’
그는 이준이 이럴 때마다 매번 놀랐다.
노력은 열심히 하지만, 혈족 계승을 못 받아서 뒤떨어진 친구.
어느 순간 자신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이젠 자신과 비교할 수 없게 성장했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이준의 사부 덕.
할아버지인 일제도 이준을 이렇게 강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대체 어떤 위인이길래 이준을 괴물로 만들어 낸 걸까.
‘나도 한 수만 가르쳐 달라고 하고 싶다.’
대한민국 국보급 전력인 자신의 할아버지 말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박혁진이었다.
참 그다운 생각이다.
철혈검가와 신기지가의 인원은 아쉬운 얼굴을 했다.
돈 덩어리를 놔두고 가는 게 영 찜찜한 기분.
그래도 어쩌랴.
마정석을 캐러 온 게 아니라 게이트를 공략하러 왔다.
그들에겐 보스 몬스터가 우선이었다.
선두에 선 이준을 따라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는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모두가 이준을 신기하게 보았다.
‘불가사의야.’
‘혈족 계승을 못 받았다는 거 전부 거짓말인 것 같아.’
‘아까 풍사도를 대하는 게 예사롭지 않더니, 게이트에서 나가면 정보를 더 알아봐야겠어.’
소문은 부풀어지기 마련.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직접 겪고 보니 오히려 소문이 축소된 느낌이랄까.
역시 사람은 제 눈으로 확인을 해야 믿을 수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머리에 이준이 각인된 순간.
“다 왔다.”
이준의 음성이 동굴에 울렸다.
그들의 앞에 있는 거대한 동공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투명한 천장.
온통 빙벽으로 둘러싸인 곳 중앙에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작은 호수였다.
“여기가 보스가 있어?”
“응.”
이준이 물을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