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그 시각.
일제 박춘식이 밭일을 하며 귀를 후벼 팠다.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러울꼬.”
그러다 저 멀리서 호미를 들고 땅을 벅벅 파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았다.
“다 큰 자식. 그것도 한 가문의 책임자인 가주를 밭일에 부려 먹는 사람은 우리 아버님밖에 없을 거야.”
불만 어린 말을 아주 작게.
누구도 들리지 않게.
암호를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다.
불만과는 다르게 손에 들린 호미로 열심히 흙을 파고 있는 박영섭.
검왕의 나이도 이젠 쉰 살이 다 됐다.
한 가문을 책임지는 가주라 대접을 받을 때도 됐지만 일제에게는 그저 귀여운 아들일 뿐이었다.
딱-
“억!”
검왕의 머리가 숙여지며 땅에 파묻혔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AA급 각성자가 방어도 못 하고 땅에 처박혔다.
그가 단번에 상체를 일으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이를 노려봤다.
“어떤 씨부랄 놈이 감… 히. 아, 아버지?!”
검왕이 험한 말을 내뱉다가 말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너구나?”
“예?”
“너였어.”
“그… 무슨 말씀인지… 소자는 도통 모르겠습니다만?”
딱!
“악! 왜 그러십니까.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검왕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 귀가 간지러운 이유가 네놈 때문이렷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비가 일을 도와 달라고 했으면 군말 없이 할 것이지. 여기서 호박씨를 까고 있으니 내 귀가 간지러운 것 아니냐!”
일제의 호통에 검왕의 목이 자라가 되었다.
“그, 그게 아니오라.”
“오냐. 오랜만에 아들놈 교육을 해야겠구나.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부르셨습니까.”
“당장 가서 내 월령검을 가져오너라! 이놈과 한 판 해야겠다!”
일제가 으름장을 놓자, 검왕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언제나 위엄 가득한 아버지.
하나 거처에서는 달랐다.
위엄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버지와 아들.
아아주 평범한 집안의 그런 모습만 있었다.
정말 평범한 집안 말이다.
“어서 월령검을 가져오지 못할까!!”
“아, 아버지. 저 밭일 잘하고 있어요! 보세요. 빠르죠?! 벌써 여기까지 팠어요!”
검왕은 호미에 내공을 집어넣으면서까지 땅을 팠다.
그만큼 아버지와의 대련은 피하고 싶었다.
하고 나면 이틀 정도는 드러누울 피로가 쌓였으니까.
“내 귀에 불평이 하나라도 들리면 각오해야 할 줄 알아.”
“넵!”
검왕이 쉬지 않고 밭일에 전념했다.
그런 아들을 본 일제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잘하고 있을꼬.’
그는 물가에 내놓은 자신의 손자와 손녀를 떠올렸다.
* * *
“신기하다.”
박정연은 자신의 발밑을 보고 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물.
투명한 유리 위에 서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된 거예요?”
창궁검단주가 박정연에게 물었다.
박정연이 이준을 가리키려고 하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얼버무려 줘. 일제께서 가르쳐줬다든지. 그런 걸로.]
이준과 박정연의 사이는 굉장히 멀었다.
그녀가 이준에게 전음을 못 보낼 정도의 거리.
그런데도 이준은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음을 보냈다.
귀로 전해지는 소리가 아닌, 머리에서 울리는 소리.
아버지인 검왕이나 쓰는 심어였다.
‘준이가 심어까지 써? 우리 귀염둥이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란 말이야.’
한편 이준은 곧바로 돌계단을 건널 준비를 하는 패왕도가를 보고 있었다.
‘철혈검가의 인원은 딱 200명. 일정 수의 사람이 넘어가면 패턴이 다음 단계로 상승해. 그걸 모르고 넘어가려는 저들에게는 지옥이 될 거야.’
패턴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말로만 들었을 땐, 그냥 좀 센 물기둥 정도로 생각했는데.
조금 전 겪은 물기둥은 재해와 같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이번 차례는 앞보다 더 어려울 거다.
‘아마도 이 구간에서만 절반은 잃겠어.’
이준은 2구간이 아닌 3구간에서 저들의 수가 절반으로 줄을 걸 예상했다.
‘그래도 내가 천중호수를 클리어하는 건 다름없지만.’
“다음은 우리가 먼저 가겠소.”
패턴을 외웠는지 최대웅이 자진해서 나섰다.
“먼저 가십시오.”
“뒤따라 조심히 오시게나.”
이민욱과 최대웅은 유대관계가 꽤 깊었다.
1, 2차 공략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두 사람.
전우애가 상당했다.
최대웅이 이민욱의 어깨를 툭툭 치고 나서 돌계단을 나아갔다.
1/3지점까지 패턴은 똑같았다.
뾰족한 돌 위에 있으니, 물기둥이 위로 분수처럼 솟았다.
다른 점은 딱 하나.
물기둥의 위력이었다.
조금 더 굵어지고 높았다.
‘두 번째 패턴은 뭐였지?’
이준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두 번째 패턴은 좀 위험한 느낌이 들었는데.
예감이 딱 맞아떨어졌다.
쓔우웅!
광선이 쏘아져 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퍽 소리와 함께 흑사자단 중 한 명이 창에 갑옷이 관통당했다.
거기서 멈췄다면 다행.
콰앙!
돌계단 여러 개를 박살 내고서야 천중수 물에 잠겼다.
‘아, 맞네. 폭창이었지.’
일반적인 창이 아닌 폭발하는 창이었다. 마력이 가득 담겨 있는 포탄과 같았다.
이게 어디서 날아오는지 이준도 모른다.
그저 짐작만 했다.
최대웅의 표정이 이준의 눈에 들어왔다.
‘패턴이 다르니까 당황했겠지.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어쩌냐.’
“안 되겠다. 전열을 가다듬으며 뒤로 후퇴하라.”
최대웅이 후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걸 예상이라도 한 듯.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창이 뒤에 있는 돌계단을 모두 부셔 버렸다.
“이, 이럴 수가.”
최대웅이 망연자실했다.
이제 후퇴할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앞으로 가는 것만이 살길.
그래도 AA급 각성자답게 빠르게 이성을 찾았다.
“내가 보내준 신호대로 따르면 괜찮을 것이다.”
폭창이 한, 두 발씩 날아와서 흑사자단을 죽였다.
계속된 피해에 최대웅이 이를 악물었다.
천만다행인 건 다시 원래의 패턴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가 안심하고 빠른 속도로 돌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지막 패턴에 도달했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창이 쏟아지는 장관.
먼저 도착했던 철혈검가의 사람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천중호수 생방송 채팅창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누구 하나 먼저 채팅을 치지 않았다.
정적.
방송에선 풍사도 최대웅이 패왕도가를 향해 소리쳤다.
- 저항하지 말고 몸에 맡겨라. 그러면 물기둥이 우릴 구해 줄 것이다.
그의 지시에 채팅창에 의문 기호가 떠올랐다.
-??
-???
-미쳤나???
-저래도 됨?
-공략이 아니라 뒤지려고 간 건가;;;
몇몇 시청자가 채팅을 치는 사이.
화면에선 창의 화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 정점에 도달했다.
- 철혈 패턴 고대로 따라 하려는 듯….
- 와… 개쫄린다.
창이 공중에서 1초간 멈추더니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제 물기둥이 올라올 차례였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생겼다.
물기둥이 올라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창의 비는 하강하는 속도를 더 붙였다.
- 저걸 그냥 처맞으라고?
- 공략이 아니라 뒤지러 간 게 ㄹㅇ 이었냐고
- ㅅㅂ 난 더 못 보겠다.
최대웅의 표정도 당황으로 물들었다.
대응할까 고민하려는 얼굴.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쌔액-
소리와 함께 창의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지며 흑사자단을 폭격했다.
콰아아앙!
“아, 안 돼!”
“컥.”
“사, 살려….”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흑사자단의 신형에 박힌 폭창은 그대로 터졌다.
사람의 육편이 후두둑 날렸다.
거의 절반.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천중수 물에 수장되었다.
최대웅은 커다랗게 뜬 눈만 껌뻑였다.
분노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심장 부근에서 멈춰진 창.
물의 기둥이 뿜어져 나와 창을 집어삼켰는데도, 힘이 남아돌아 여기까지 뚫었다.
멈춰선 창이 부르르 떨다 물기둥에 휩쓸려 사라졌다.
“…….”
최대웅이 흠칫 떨었다.
그의 뇌를 지배하는 건 공포.
이번 공략에서는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두려움 중에도 자신의 손자를 찾았다.
“괘, 괜찮으냐.”
뒤에서 따라오던 최태민.
그의 바짓단이 축축해져 있었다.
두려움에 실례를 한 것이다.
“칫.”
물기둥은 여전히 치솟고 있었다.
전과 달라진 패턴에 고민했으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모두 나를 따라라.”
최대웅이 최태민을 안고 물기둥으로 뛰어들었다.
흑사자단이 머뭇거리다가 뒤늦게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물을 뚫고 나온 최대웅이 최태민을 저 멀리 던졌다.
힘이 다 빠져 저절로 무릎을 꿇었다.
“허억… 허억….”
AA급 각성자가 얼굴이 허옇게 뜬 채 가쁜 숨을 몰아쉰다.
“괜찮으십니까?”
창궁검단의 인원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으나.
탁-
최대웅이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
뒤이어 흑사자단도 창궁검단이 서 있는 물의 계단에 도착했다.
“허억!”
“주, 죽는 줄 알았어.”
물기둥에서 나온 흑사자단들은 체력을 전부 소모했는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패왕도가에서 살아남은 인원은 고작 50명이 다였다.
저 멀리서 보고 있던 이준도 눈이 동그래졌다.
‘와 씨. 생각보다 난이도가 더하잖아?’
절반의 죽음을 예상했건만, 그보다 더 많이 죽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폭창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만약 최대웅의 앞에 물기둥이 뒤늦게라도 나오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천중수에 모두 수장됐으리라.
“다, 다음은… 누, 누구 차례요?”
이민욱이 말을 더듬었다.
A급 각성자라지만 AA급보단 한참이나 못 미치는 그.
공략대의 최고 어른이자 지휘관이 저런 꼴을 당하자 겁이 났다.
혹시 죽는 게 아닌가 하고.
이민욱의 말에 신기지가에서도 대답이 없었다.
물의 저항력도 올렸는데, 천중수에 빠져 올라온 사람은 전무했다.
저걸 보고 누가 먼저 건넌다고 할까.
솔직히 여기서 공략을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이준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먼저 갈게요.”
“무, 무슨! 우린 아직 준비가 안 됐….”
이민욱이 당황하여 버럭 소리쳤다.
이준은 신력권가의 인원.
그가 나선다면 신력권가도 같이 가야 했다.
“누가 신력이 나서래요? 전 신기지가랑 같이 갈 겁니다.”
“안 된다! 넌 우리와 같이 가야 해!”
이민욱이 완강히 반대했다.
지금은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준이 단독행동을 하는데, 신력권가가 따라가지 않으면 꼴이 우스워진다.
이민욱은 이걸 걱정했다.
‘한 번 해본 소린데 아주 발작을 하시네.’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시선을 한지유에게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서로 전음을 주고받은 듯.
한지유도 마주 끄덕였다.
“그러면 저희가 먼저 나갈게요. 이준, 너는 가문과 같이 와.”
“그래야겠다.”
이준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민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럴래? 우리가 뒤를 봐주마.”
뒤를 봐주긴, 무서워서 꼬랑지를 말고 있는 거겠지.
저 사람이 자신과 같은 핏줄이라는 게 한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