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어휴 죽는 줄 알았어.”
이준이 귀를 후벼 파며 게이트에 입장했다.
[경고! 당신은 타 게이트의 주인입니다. 강제로 문을 열어 쌍둥이 늪지대의 주인이 적으로 간주합니다.]
[쌍둥이 늪지대의 주인이 침입자를 막기 위해 특권을 발동했습니다.]
[쌍둥이 늪지대의 주인이 스킬 ‘분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쌍둥이 늪지대의 주인이 스킬 ‘폭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분화는 리자드 킹의 스킬이고, 폭갈은 리자드 퀸의 스킬인데? 두 놈이 같이 나왔어?”
대체로 리자드 킹이 게이트에 침입한 각성자를 공격한다.
리자드 퀸은 정착지에서 성체가 되지 못한 자식을 보호하고.
“리자드 퀸은 리자드 킹이 각성자에게 죽는다 해도 정착지에서 안 나올 텐데. 뭐지?”
무슨 일인지 가서 직접 확인해 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준이 군림보를 썼다.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가는 신형.
안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리자드 킹과 리자드 퀸의 정착지는 달랐다.
인간들에게 퀸과 새끼들을 지키기 위한 페이크.
리자드 퀸의 정착지는 입구 뒤쪽.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다만 결계가 쳐져 소리가 안 났을 뿐이다.
이준은 얼마 가지 않고 멈췄다.
아니, 군림보가 너무 빨라 금방 도착한 것이다.
그의 앞을 가리는 암막.
염화의 은신처와 같은 결계였다.
그때는 파랑이가 결계를 먹어치웠지만, 지금 파랑이는 청호의 은신처에 있었다.
대신 이준에겐 다른 게 있었다.
힘.
염화의 은신처를 깰 때의 이준과 현재는 아주 많이 달랐다.
혈전창에 내공을 집어넣어 그대로 찔렀다.
부우욱.
소리와 함께 창을 내리 그었다.
결계가 무너졌다.
“다시 생각해도 미래를 아는 건 참 좋아.”
암막이 걷히고 안의 모습이 다 드러났다.
순간 이준이 당황했다.
“새끼들이 죽었어?”
리자드맨 새끼로 보이는 시체가 목이 잘려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여러 마리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전생에도 새끼들이 다 죽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니었다.
쌍둥이 늪지대의 주인인 퀸은 새끼가 성체가 된 후 밖으로 나왔다.
그때는 이미 리자드 킹은 죽고 없었다.
이신 네 조가 녀석을 힘겹게 해치우고 중간고사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새끼들이 죽어서 퀸이 분노한 거구나. 이러면 정연 누나가 위험해.”
새끼가 죽은 리자드 퀸.
아이를 잃은 어미가 분노를 풀 방법은 영역을 침범한 인간을 죽이는 것뿐이다.
이준이 몸을 돌렸다.
군림보를 이용해 다시 입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입구를 지나쳐 쭉 안으로 들어간 이준.
찰박-
늪지대의 물이 발에 닿았다.
발이 늪지대에 빠질 법도 한데 이준은 제약을 받지 않았다.
평지를 걷듯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갔다.
군림보를 이용해 달릴 무렵.
앞쪽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도합 다섯.
이신네 조가 확실했다.
조금 앞으로 이동하자 형체만 보였던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 두 명.
한 명은 원수 같은 이신.
다른 한 명은 박혁진의 누나 박정연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떠 있었다.
체력과 내공에 한계가 온 듯하다.
‘살아있는 것도 용해. 그런데 저 둘은 괜찮아 보이네?’
박정연을 포함한 세 명을 빼고, 이신과 최태민만 호흡이 정상이었다.
헐떡이는 모습은 거짓된 행동.
이 조의 지휘관은 최태민인 듯.
그가 리자드 퀸을 향해 외치자, 조원들이 앞으로 뛰어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 * *
박정연이 배운 무공은 창궁무애검법이다.
무거움을 바탕으로 펼치는 무공이다.
그녀의 검에 중검의 묘리가 가득 담겨 있는지.
검에 맞은 리자드맨이 몽둥이에 맞은 듯 살기 움푹 패이며 몸이 터져나갔다.
한 명을 죽이고 곧바로 다음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박정연.
그녀는 내공을 최대한 아꼈다.
‘후욱… 이대로 지치면 큰일나.’
창궁무애검법은 강맹한 대신 체력 소모가 컸다.
내공 또한 만만치 않게 드는 무공.
몬스터를 쓸어버리기 전에 먼저 지칠지도 몰랐다.
그녀는 오로지 초식만을 이용해 리자드맨을 베어냈다.
녀석들의 팔을 자르고, 허벅지를 검으로 찔렀다.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창을 집어서 반대편으로 던지기도 하고.
차근차근 리자드맨을 격살해가던 중.
까강-
녀석들 속에도 유난히 강한 리자드맨이 있었다.
검이 창에 막혀 드디어 멈췄다.
그때를 노렸는지.
다른 리자드맨이 박정연의 옆구리를 향해 창을 찔러왔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녀는 놀고 있는 손으로 검을 막은 창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검을 역수로 돌려 찔러오는 창을 튕겨냈다.
깡!
창이 하늘로 치솟자 무방비가 된 리자드맨.
그녀가 앞에 있는 리자드맨의 머리를 치고, 주위를 향해 검기를 날렸다.
콰과과광!
수 가닥의 육중한 검기가 주변으로 폭사했다.
검기에 맞은 리자드맨의 몸통이 터지고, 잘려 나갔다.
그렇게 죽였는데도 리자드맨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후욱, 후욱. 이러다 우리가 먼저 지치겠어.”
박정연의 검을 세우고 호흡을 골랐다.
“치료제… 허억! 남은 거 없어?”
“없어. 아까 먹은 게 다야….”
다친 독화가 치료제를 찾았으나, 철룡이 각법을 사용해 리자드맨을 날려버리고 대답했다.
“X발. 끝도 없잖아.”
이신이 짜증을 낼 때, 최태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테… 후욱, 생각이 있어.”
“뭔데?”
“다 같이 리자드 퀸을 향해 가장 강한 무공을 펼치자.”
“무슨 말이야?”
“싸우면서 지켜봤는데, 모든 리자드맨들이 퀸을 보호하고 있어.”
최태민의 말에 일행 모두 리자드 퀸으로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곁에 유독 많은 리자드맨이 몰려 있었다.
“그다음은?”
푸욱!
최태민이 도로 리자드맨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이신과 눈빛을 교환한 후 입을 열었다.
“시선이 돌려졌을 때를 틈타 중간 거점으로 숨는 거야.”
각성자는 하나의 룰이 있었다.
게이트에 들어오면 위험할 때를 대비해서 숨을 공간을 찾았다.
그곳이 바로 중간 거점이다.
중간 거점으로 피신한 후에 어그로가 끝나길 기다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쁘지 않아.”
일행 모두가 동의했다.
최태민이 내공을 줄기차게 뿜어내며 이신에게 전음을 날렸다.
‘신아. 공격하는 척하며 뒤로 빠져야 해.’
‘정말 쟤들을 미끼로 던지고 우리끼리만 도망쳐도 되냐? 네 말대로 리자드 퀸을 같이 공격하는 게 낫지 않아?’
최태민이 일행들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경공으로 입구까지 도착하려면 몇 시간이나 걸려. 그때까지 몬스터에게 안 따라잡힐 자신 있어? 우린 지금 내공도 동난 상태야. 살아남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
이신은 잠깐 흔들렸다.
박정연과 철룡, 독화를 버리고 최태민과 함께 도망친다.
이게 살 확률은 높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이 버린 세 사람이 살아서 도망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다신 학교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순 없었다.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음에도.
‘그래. 내 목숨이 중요하지 쟤들을 걱정할 때는 아니야.’
이신이 마음을 굳혔다.
그도 내공을 줄기차게 뿜어댔다.
그러면서 경공을 펼치기 위해 발쪽으로 기운을 집중시켰다.
“지금이야!”
최태민의 구호와 함께 박정연과 독화, 철룡이 온 힘을 다해 리자드 퀸을 공격했다.
그러나 최태민과 이신은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너흰…!”
“미안하다. 우리라도 살아야지.”
“나중에 대신 복수해줄게.”
“개새끼들.”
박정연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커다란 무공을 펼칠 때는 공격을 거둘 수 없었다.
기혈이 꼬여 내상을 당하기 때문.
결국 세 사람은 그대로 리자드퀸을 향해 최후 무공 스킬을 펼쳤다.
그들과는 달리 최태민과 이신의 앞이 좌우로 갈렸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말이다.
리자드맨들이 리자드 퀸을 보호하려고 두 사람을 무시했다.
퇴로가 뚫렸다.
“좋아. 빨리 게이트를 나… 아악!”
하지만 최태민의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다.
뒤에서 날아온 창이 그의 허벅지에 박혔기 때문.
“태민아! 컥.”
이신도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의 발에 치여 바닥을 굴러야만했다.
“이거 아주 개새끼들이네.”
최태민의 허벅지에 창을 날리고, 이신을 걷어찬 사람.
그는 바로 이준이었다.
* * *
“쓰레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까 더 구역질나네.”
검화와 독화, 철룡은 내공을 쥐어짜내며 싸웠다.
하지만 이신과 최태민은 멀쩡했다.
기회가 되면 도망치기 위해 내공을 최대한 아껴뒀던 것.
지들 목숨만 소중히 여기는 쓰레기였다.
“그윽, 누구냐!”
이신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초점을 맞췄다.
그의 눈에 익숙한 인형이 잡혔다.
“이, 준!?”
“내 이름 한 번만 더 정답게 부르면 뒤진다.”
이준이 역겨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딴 게 이복형이라고.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같은 핏줄인 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네가 여긴 어떻게?”
“알 필요 없어.”
이준이 최태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허벅지에 박힌 창을 거칠게 뽑았다.
“아아악!”
“네가 제일 개새끼야. 이신 저놈은 띨띨하다 쳐도, 넌 처음부터 조원을 미끼로 도망치려 했지?”
이준이 벌레를 보듯 최태민을 쳐다봤다.
그는 원래부터 속이 음흉한 사람.
겉으로는 리더십 있는 척 희생정신이 투철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위기의 상황이 오면 리더십을 이용해 사람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전생에도 최태민의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이뿐이면 다행.
최태민은 이 기회에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려 했을 터.
이신은 자신이 휘둘리기 좋은 머저리였고, 머리도 실력도 딸렸다.
허나 저 셋은 달랐다.
만독의 독화와 진운의 철룡.
조금만 게으름을 피웠다간 따라잡힐 수도 있는 경쟁자였다.
심지어 박정연은 비공식 랭킹 1위.
검룡 박혁진이 1위에 랭킹되어 있지만, 모두가 검화를 교내 최고의 실력자라 했다.
그만큼 박정연의 실력은 독보적이었다.
리자드 킹과 퀸이 나온 참에 사고로 위장해 제거하려 했던 심산.
전생의 최태민이었으면 이 짧은 순간에 계획을 설립했을 것이다.
“하여간.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 봤다.”
이준이 그들을 지나쳐 박정연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가려했다.
“네가 여길 어떻게 들어 온지는 모르지만 마침 잘됐다. 우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줘. 난 단전이 비어 네 경공이 더 빠를 거야.”
이신은 위기의 순간에 이준이라도 나타나 반가웠는지 도움을 청했다.
조금 전 자기를 발로 찬 건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아휴. 이 머저리를 어떻게 하지?”
“지금 나보고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거냐!”
이준이 그의 말을 무시하려는 찰나.
콰아앙-
“악.”
“큭.”
“푸흡!”
리자드 퀸과 부딪친 세 사람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구르는 세 사람.
그들의 입에서 피가 울컥울컥 나왔다.
이준이 재빨리 박정연 쪽으로 갔다.
“누나 괜찮아?”
“으윽… 누…구?”
“나야. 이준.”
“준이…?”
박정연의 초점이 흐릿했다.
체력도 한계, 내공도 한계였다.
온 힘을 다한 공격이 리자드 퀸에 막힌 순간 기혈이 꼬여 커다란 내상을 입고 말았다.
“어. 여긴 나한테 맡기고 좀 쉬고 있어.”
“으음….”
이준이 그녀의 수혈을 짚었다.
박정연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박정연을 바닥에 조심히 눕혔다.
창을 지팡이 삼아 일어난 이준이 리자드 퀸과 킹을 향해 말했다.
“너흰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금역의 주인이 쌍둥이 늪지대 주인에게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쌍둥이 늪지대 주인이 당신을 경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