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어억,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쩍 쩌어억-
괴상한 소리와 함께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 염화의 몸.
수분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머리에서도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염화의 마기였다.
이준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파랑이를 재빨리 품에 안았다.
“위험했잖아. 형이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뀨우.”
자존심이 무척 상한 듯 파랑이가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겠지.
레드 급 몬스터가 블루 급 몬스터에게 차였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성장한 상태에서 싸웠다면 염화는 파랑이에게 한입 거리였다.
이준이 파랑이를 쓰다듬으며 뒤로 물러났다.
우드득, 우드드득.
“어어억….”
염화의 몸이 기형적으로 꺾이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이렇게, 컥! 죽을 수… 없다.”
조금 전까지 위압감을 뿜어대던 염화는 온데간데없었다.
허무한 죽음.
이준은 염화와 격전을 각오했는데, 싸울 필요조차 없어졌다.
“네가 한 짓이야?”
“뀨우!”
파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를 쫑긋, 풀 죽어 있던 표정이 다시금 자신 있게 돌아왔다.
“사부님. 흡기 맞죠?”
[내부의 기를 빨아들이는 걸 보면 흡혈마공과 똑같구나.]
이준이 다시 포식 스킬을 열었다.
[포식]
등급: SS
설명: 그 어떠한 질 나쁜 마기라도 파랑이의 식욕 앞에선 장사 없습니다.
효과: 마기 흡수
설명과는 차원이 다른 효과였다.
대놓고 무시했던 스킬이 블루 급 보스 몬스터를 한방에 죽였다.
“포식이 몬스터에게도 해당되는지 몰랐네요.”
[네가 파랑이를 너무 얕봤구나.]
“사부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난 진작부터 파랑이가 대단하다는 걸 예상했느니라.]
“거짓말.”
[가아아알! 이 사부는 거짓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느니라.]
무극자 사부의 격한 반응을 본 이준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과 같이 모르고 있었던 모양.
사부의 체면을 생각해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
“파랑아 마기 더 먹을래?”
“뀨웃!”
힘을 써서 다시 배가 고파졌는지 미친 듯 마기를 빨아들였다.
이준은 녀석을 냅두고, 메시지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블루급 보스 몬스터인 염화를 해치웠습니다.]
[격상됐던 게이트 등급이 그린존으로 변경됩니다.]
[고등급의 보스 몬스터를 혼자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0p가 지급됩니다.]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5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메인 퀘스트2 - 은거자의 수련이 완료됐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6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이 미쳤어.”
이거 말고도 더 있었다.
염화가 죽은 자리에는 유독 반짝이는 무공서가 하나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허리를 굽혀 책을 주웠다.
[수미천왕신공(S)을 획득하셨습니다.]
“이게 수미천왕신공이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가문의 심법을 계승하지 못해서 얼마나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가.
자신의 손에 가문의 심법 중, 최상위에 드는 무공서가 들려 있었다.
신력권가의 가주인 권왕이 그토록 원하는 무공.
이 무공서가 저주스러웠다.
자신을 평생 고통 속에 살게 한 가문의 무공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불태워 버리고 싶지만.”
이성이 앞섰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공서였다.
그냥 불태우기란 쉽지 않았다.
“이걸로 가문을 옭아맬 거야.”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미끼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것만 있으면 가문에서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터.
앞으로 어떻게 가문을 옭아맬지 계획만 설립하면 된다.
불의 돌을 보관했던 것처럼 게이트를 열어 무공서를 안에 넣어 놨다.
메시지 창을 끄고 몸을 들리려는데.
“어?”
[호, 이건 뜻밖의 행운이구나.]
마지막 메시지에 눈이 사로잡혔다.
[‘염화의 은신처’의 주인이 없어졌습니다. 영역을 확대하시겠습니까? (Y/N)]
“끊임없이 보상이 터지네.”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화의 은신처’가 파랑이의 영역이 됐습니다.]
“영역을 더 늘릴 수 있나?”
그가 파랑이의 상태창을 열었다.
[기본정보]
이름: 파랑이 - 성장도 5%
종: 청호(?)
희귀도: ??
속성: 불
호감도: 75
영역(2/2): 청호 보금자리(그린 존), 염화의 은신처(그린 존)
[능력치]
공격력: F 방어력: F 속도: ???
특수 공격력: F 특수 방어력: F
패시브 기술 - 마기(C)
액티브 기술 - 포식(SS)
2/2로 끝.
현재는 더 늘릴 수 없나 보다.
성장하면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준이 파랑이의 상태창을 껐다.
“파랑아 저 마정석도 가져와.”
바닥에 널려 있는 전리품들.
빠르게 줍기 위해 파랑이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파랑이에게 시켜선 안 될 짓을 해 버렸다.
녀석이 염화의 시체 안에 있는 마정석을 찾았다.
자기 입보다 더 커 보이는 돌.
어금니로 마정석을 물자 그 안에 있던 기운이 빨려 들어갔다.
[파랑이가 포식을 사용합니다.]
“파, 파랑아. 아니야. 지지. 그거 못써.”
이준이 다급하게 말렸다.
그럼에도 녀석은 마정석의 기운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안 돼애애애애-----!”
이준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저게 얼마짜리 마정석인데.
게이트 변동으로 인해 해치운 보상은 일반 게이트보다 더 좋았다.
청호를 해치울 때 보단 가격이 덜 나가겠지만.
저 마정석 또한 5천만 원의 값어치는 할 터.
파랑이의 한 끼 식사로 거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파랗게 빛나던 마정석이 순식간에 까맣게 변했다.
허탈함에 헛웃음을 지었다.
“하, 하하.”
파랑이는 맛있게 먹었는지 트림까지 했다.
굳이 마정석을 먹어야 했을까.
게이트 안에 차고 넘치는 게 마기인데 말이다.
녀석은 제 할 일을 끝냈는지 달려와 주머니에 쏙 들어갔다.
“파랑이 너!”
이준이 눈을 부라리며 파랑이를 노려봤다.
녀석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다음부터 멋대로 행동하면 가만 안 둘 거야. 알았어?”
이준이 눈물을 머금고 용서해 주었다.
“뀨웃!”
파랑이가 반항하듯 주머니 속으로 고개를 넣었다.
“기강을 단단히 잡으려면 너튜브에 강 선생 훈련사 동영상이라도 봐야겠다.”
이준이 몸을 돌렸다.
여기서 할 건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투신단뿐이다.
염화가 보스 방의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투신단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 * *
강민재가 학생들과 헤어진 후 느긋하게 안쪽으로 들어왔다.
투신단이 남겨 둔 표식을 찾아 불의 돌이 있는 장소까지 왔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이준이 시크릿 던전에 들어갔다니.”
“지도에 표시된 장소가 이곳이 맞다면 불의 돌은 이준이 먼저 가져간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그 자식이 어떻게 살아서 여기까지 온 거지?”
강민재가 땅을 발로 찼다.
이준을 없애는 것도.
불의 돌을 회수하는 것도.
뭐 하나 임무를 완료한 게 없었다.
심지어 놈이 시크릿 던전으로 들어간 덕에 손가락만 빨았다.
놈이 시크릿 던전 안에서 죽기 전엔 문이 열리지 않았으니까.
그때였다.
[격상됐던 게이트 등급이 그린 존으로 변경됩니다.]
“안쪽에서 들리는 소음도 잦아 든 걸 보니 끝난 것 같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강민재가 투신단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이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
“투신단 절반이 여기에 모여 있었네. 무슨 일로 여기에 있을까?”
이준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네가 살아 있다는 건 보스 몬스터를 클리어 했단 소린데… 불의 돌을 먹은 거냐?”
양강의 기운을 가진 영약.
단전을 단번에 고칠 만큼 힘이 있는 물건이다.
D급 각성자가 먹는다면 B급으로 올라 설 수 있다고 여겼다.
그만큼 불의 돌은 진귀했다.
“내가 먹었으면?”
이준이 강민재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어떤 물건인줄 알고!”
“잘 알지. E급 각성자도 이걸 먹으면 단숨에 B급이 된다는 사실을. 운 좋으면 A급이 될지도?”
“정말 먹었나 보군.”
강민재의 표정이 굳어졌다.
상관인 이민욱이 꼭 찾아오라고 시킨 영약.
이준을 죽이는 것보다 1순위에 둬야할 물건인데, 녀석이 먹었단다.
이 사실을 상관인 이민욱이 안다면 난리가 날 터.
어떻게든 불의 돌을 회수해야 했다.
‘이준이 불의 돌을 먹었다 해도 그 엄청난 걸 내력으로 녹이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테니, 죽여서 피라도 가져가야 해.’
그래야지만 이민욱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강민재가 수하들에게 눈짓을 하려는데.
‘응? 뭐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불의 돌을 먹었다면 적어도 B급 각성자의 기운을 풍겨야 했다.
허나 이준은 전과 똑같았다.
정확히 D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짧은 사이에 기운을 갈무리하지는 못할 텐데.’
A급 각성자의 특권.
자신의 기운을 상대로부터 감출 수 있었다.
강민재 자신도 아직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허세를 부리는 건가?’
강민재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리자, 이준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멍청한 머리 좀 그만 굴려. 속 뻔히 보이니까. 이걸 보고 싶은 거 아니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준의 몸에서 폭발적인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쿠우우웅-
동굴 전체를 덮고도 남은 패기에 땅이 갈라지고 대기가 아우성쳤다.
“큭!”
“이,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투신단이 내공을 끌어 올려 이준의 흉포한 기세에 대항했다.
“커어억….”
그럼에도 내공이 약한 사람은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이준의 기운을 몸소 체험한 강민재는 경악스러웠다.
“퇴각한다.”
강민재가 목소리에 내공을 주입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압박받은 기세를 떨치기 위해.
투신단의 정신을 깨우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준은 투신단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했다.
“내가 왜 너희들한테 힘을 드러냈다고 생각해?”
[‘염화의 은신처’ 주인이 게이트를 봉쇄합니다.]
그들의 메시지 창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문구가 나열되었다.
“큭… 보스 몬스터가 죽지 않았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투신단의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그러는 사이 이준은 그들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너희들은 이 게이트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 특히 넌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이준이 강민재를 콕 찝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