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돌아가면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앞에 뭐가 있을지 존나 궁금하다. 그치?”
“응. 심장이 막 두근거려.”
게이트의 미개척지는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숨겨진 보물이나, 게이트 안에 또 다른 게이트가 있지 않을까.
여태껏 보지 못한 몬스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환상을 가졌다.
실제로도 미개척지를 클리어하고 엄청난 아티팩트를 얻었다는 각성자도 있었다.
학생들은 염화의 동굴도 그러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판이 깔렸어. 이준과 한지유만 떨어트려 놓으면 끝이야.’
강민재가 속으로 흐뭇하며 김태형을 향해 제안했다.
“시간도 아낄 겸 조를 나눌까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이왕 미개척 지역을 보기로 한 거 다양한 곳을 보면 더 좋으니 그렇게 하십시오.”
김태형의 동의로 일일 착착 진행되는 그때, 방해꾼이 나타났다.
“잠깐만요. 그냥 보던 곳만 보고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뒤에서 가만히 있던 한지유가 나섰다.
그녀는 변수가 일어날 상황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미개척지는 말 그대로 아직 개척하지 않는 미지의 땅이다.
그런 곳을 들어간다는 건 자살 행위였다.
“우리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담임의 권한 아닌가?”
“학생도 의견은 낼 수 있어요.”
“저 아이들이 미개척 지역을 보고 싶다고 낸 의견이기도 하다.”
아무 일 없다고 자신만만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게 게이트였다.
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강민재가 하는 말도 일리는 있었으니까.
아이들도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한지유가 체념하며 말했다.
“무슨 일 있어도 전 몰라요.”
“걱정 마라. 너에게 책임지라고 하지 않을 테니.”
분위기가 딱딱해지기 전에 김태형이 나서서 조를 나누었다.
한 조에 열 명씩, 세 조가 되었다.
이준은 3조, 한지윤은 1조.
마침내 둘이 떨어지게 됐다.
한지유가 이준을 향해 경고했다.
“다른 곳으로 새지 마.”
“걱정하는 거냐?”
“아니. 네가 딴 짓할까 봐.”
“지켜보는 사람이 몇 명인데 딴 짓을 해. 그리고 여기 그린 존이야.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이준의 말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기홍하고 날… 이겼으면서 내숭 떨지 마. 내가 네 정체를 꼭 밝히고 말테야.”
“그러시던지.”
이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3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위치 수신기 잘 챙겼지?”
“네.”
“만에 하나라도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꼭 연락부터 해야 한다.”
“걱정 마세요. 쌤.”
“너희가 제일 걱정된다.”
김태형과 학생들이 장난쳤다.
친한 사제지간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친근해보였다.
‘쇼하고 있네.’
이준은 김태형의 실제 모습을 안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 만약 게이트가 위험하면 학생들을 놔두고 혼자 도망갈 위인이다.
지금은 본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어디 가서 몬스터 밥이나 돼버려라.’
이준이 혀를 차며 목표한 구역으로 움직였다.
* * *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시야.
강민재가 품에서 하나의 돌을 꺼냈다.
주변을 밝히는 아티팩트로, 이렇게 어두운 공간에서 필수로 챙겨야할 물건이었다.
“허억!”
“까, 깜짝이야.”
학생들이 화들짝 놀랐다.
동굴 벽면 가득히 초등학생 키만 한 녹색 괴물이 곡괭이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고블린이야.”
학생들의 표정이 잔뜩 굳었다.
고블린은 E급도 잡을 수 있는 몬스터. 그런데도 학생들이 바짝 긴장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십 마리나 있어….”
“이, 인솔자님 괜찮을까요?”
“이깟 고블린이 100마리나 있다고 한들 문제 될 건 없다.”
그들과는 달리 허수란 1학년은 의외로 담담했다.
고블린은 안중에도 없는지, 이준의 옆에 딱 붙어서 아부를 떨었다.
“선배님과 같은 조가 되어 영광입니다.”
“치근대지마. 나 남자 싫어해.”
“죄송합니다.”
“그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말고.”
“시정하겠습니다.”
이준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도통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한지유가 가니 이젠 남자 놈이 따라다닌다.
뭐, 한지유보단 차라리 났지만.
이준은 녀석을 철저히 무시했다.
구부러진 통로를 한참이나 걸으니 드디어 끝이 보였다.
작은 공동이 나오고 또 여러 갈래로 나뉜 굴.
강민재가 몸을 돌려 학생들을 보았다.
“이제 돌아갈까?”
“이게 끝이에요?”
“다른 걸 기대했나?”
“전 염드나 리자도는 나올 줄 알았어요.”
“아이템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허무할 정도로 싱겁게 끝난 미개척 지역 탐사. 학생들은 긴장했던 끈이 확 풀려 버렸다.
“이해한다. 불속성 게이트니 놈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을 테지만, 여긴 스케먼이랑 고블린밖에 존재하지 않아. 그래서 위험이 없다고 판단한 신력권가에서 폐쇄해 놓은 것이다.”
학생들은 김이 빠진 얼굴로 몸을 돌려 공동을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그러던 그때.
그르르릉-
동굴이 격하게 흔들렸다.
“지진?”
강민재가 위를 보았다.
무언가 내려오는 느낌을 받자 학생들에게 다급히 외쳤다.
“석판이다. 모두 전력으로 달려!”
그래도 어리지만 각성자라 그런가.
강민재의 말을 듣고 재빨리 경공을 펼친 학생들이었다.
‘너희들이 생각한 게 이거냐?’
석판은 염화의 동굴에 숨겨진 기관 장치였다.
이준도 이곳에 기관진식이 있다는 걸 애초에 알았다. 이 안으로 끌고 온 것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애들과 떨어지게 해 줘서 고맙다.’
이준에겐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그는 일부로 몸이 굼뜬 척했다.
정확히 한 발 늦게.
자신의 앞에 석판이 내려와 아이들과 갈라놓았다.
* * *
뒤를 돌아본 허수가 석판을 치면서 이준을 불렀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안 죽었어. 그만 불러.
석판 너머에선 이준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허수가 안심했다.
“인솔자님, 이준 선배님이 갇혔습니다.”
“여긴 우리들이 잘 아는 곳이니 너희들은 개척지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저도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강민재가 고개를 저었다.
“이준을 구하기 싫은 거냐. 네가 있으면 방해만 된다.”
계획대로 이준을 떼어 놓았다.
이제 그를 찾는 시늉을 하면 된다.
그리고 석판 너머로 가서 제거하면 끝. 일이 생각보다 쉬웠다.
“개척지까지 데려다 줄 테니 담임과 함께 얌전히 그곳에 있어.”
허수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인솔자님께서 구해 주신답니다. 조금만 참고 계십시오.”
-알았으니까 돌아가.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구해 주마.”
-기대할게.
강민재가 학생들을 이끌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한편 이준은 속 시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
한지유의 의심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우선 파랑이부터.”
품에서 파랑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답답했지?”
“뀨.”
파랑이가 나지막하게 울었다. 그러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낯선 게이트.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 긴장한 듯싶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를 한참.
마침내 파랑이가 앙증맞은 주둥이를 활짝 벌렸다.
녀석이 숨을 들이켰다.
공기 중에 떠도는 마기가 녀석의 입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몇 달간 굶기라도 한 듯.
허겁지겁 마기를 먹어치우는 파랑이.
30분이 지났을까. 파랑이의 푸석푸석한 털에 윤기가 돋았다.
“됐다!”
그걸 보고 드디어 파랑이가 아픈 이유를 찾았다.
환경이 달랐던 것.
마기가 넘쳐났던 청호 보금자리를 정화해 버려서 파랑이에게 맞지 않았던 거다.
“내가 왜 마기를 생각하지 못했지?”
몬스터들이 게이트 밖으로 뛰쳐나와서 하는 일은 바로 마기를 대기에 퍼트리는 것.
공기를 오염시켜 게이트화 시키는 게 몬스터의 일이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그동안 파랑이가 잘못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정말 십년감수했다.
[파랑이의 호감도가 +10 올랐습니다.]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
……
똑같은 메시지가 쭉 내려왔다.
띠링.
알림음이 울리더니 새로운 메시지가 보였다.
[파랑이가 패시브 스킬 마기를 배웠습니다.]
드디어 첫 스킬이 생성된 파랑이.
이준이 방금 배운 스킬을 열었다.
[마기]
등급: C(성장형)
설명: 대기 중에 퍼져 있는 사기를 흡수해 보다 질 높은 마기를 뽑아냅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고농도의 마기를 뿜어낼 수 있습니다.
효과: 마기 생성
마기가 없는 공간에서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 녀석에게도 신경을 써야겠구나.]
“그래야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신경을 못 써서 미안했다. 이제부터라도 파랑이를 데리고 다녀야겠다.
“다 먹었지?”
“뀨우.”
파랑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직 배고프나 보다.
이준이 녀석을 살포시 들어 어깨에 앉혔다.
“형이 불의 돌이란 영약을 찾아야 하거든? 가면서 먹자. 알았지?”
“뀨!”
녀석이 알겠다는 듯 얼굴을 볼에 비볐다.
이준이 불의 돌을 찾으러 출발했다.
비선공 몹이긴 해도 게이트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고블린이 갑작스럽게 공격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이준에게 달려 들지 않았다.
아니, 달려들지 못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혼원신공의 패시브 스킬인 공포 때문.
이준이 움직일 때마다 고블린은 몸을 움찔거렸다.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깊숙이 숙이기까지 했다.
“혼원신공이 대단한 무공이긴 하네요.”
[아무렴. 내가 말년에 집대성한 어마어마한 무공으로….]
무극자 사부는 혼원신공에 대한 칭찬만 나오면 자아도취에 빠졌다.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계속 들어 주자니 귀가 너무 아파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사부님.”
[한때는 무신이라 불렸던 노부가 그 무공보다 더 엉? 불렀느냐?]
“파랑이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거 흡혈마공 같지 않습니까?”
[비슷한 것 같구나. 그런데 너 사부가 한 말 듣고 있었느냐.]
“네. 다 들었습니다.”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파랑이가 마기를 먹는데 손가락으로 방해하며 놀고 있는 게 아닌가.
무극자가 버럭 화를 내려했지만 말았다.
[주인을 닮은 동물이라… 신수인가?]
제자와 파랑이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이준처럼 흡혈마공을 써서 마기를 흡수하는 파랑이.
그 짧은 시간에 성장도 빨리 했다.
이준을 처음 봤을 때와 같았다.
마기를 느리게 빨아들였던 파랑이.
지금은 대기의 흐름이 녀석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일 정도다.
[성격까지 닮으면 안 될 터인데….]
벌써부터 걱정된다.
제자와 성격까지 닮으면 꽤나 골치 썩힐 것만 같았다.
무극자가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이준에게 메시지가 떴다.
[파랑이가 저급한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파랑이의 호감도가 +20 올랐습니다.]
[지극한 보살핌을 받은 파랑이가 당신을 보호자로 생각합니다.]
[파랑이가 오랜만에 포식을 했습니다.]
[호감도 조건이 충족 되어 스킬 ‘포식’을 배웠습니다.]
스킬이 하나도 없던 파랑이가 졸지에 스킬이 두개나 생겨 버렸다.
“진작 데려올걸 그랬습니다. 이렇게 쉽게 스킬을 얻을 줄 몰랐네요.”
게이트가 위험하다고 파랑이를 데려오지 않은 게 실수였다.
[이미 지나간 일 마음에 두지 말거라.]
“넵. 지금이라도 잘 키우면 되죠.”
이준이 메시지 창에 뜬 포식이란 스킬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