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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과제에 주제곡까지 만드는 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그럴 돈은 있어?”
“엔리코 마리오네나 한스 짐머에게 부탁하면 제작비 전부를 줘도 안 되겠지만, 무명 가수에게 부탁하면 저렴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음악은 영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거야. 그런 걸 무명 가수에게 만들어 달라는 건 너무 큰 도박 이라고.”
봄 학기가 끝나기 전 쿠안틴과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영화 삽입곡을 두고 설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기존에 있는 곡도 사용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저렴한 상업 음악을 몇 가지만 배경으로 쓰자고 했고, 동민은 완성도가 조금 부족해도 괜찮으니 곡을 만들어 쓰고 싶어 했다.
“아는 가수라도 있는 거야?”
“배경은 한국에서 온 유명한 가수한테 만들어 달라고 할 거예요. 대진이 형이라면 무료로 만들어 주거니까 몇 곡만 받으려고요. 주제곡은 가사가 있는 곡을 쓰고 싶어서 작년에 로스앤젤레스 지역방송에서 주최한 랩 올림픽에서 2위를 했던 사람을 알아 놨어요.”
“주제곡을 힙합으로 하겠다고? 너무 도박적인 거 아니야?”
“제 영화 자체가 혼돈의 카오스 자체이니 힙합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릴 거예요.”
동민의 고집에 쿠안틴이 두 손을 들었고, 곡을 맡기기 위해 힙합 가수를 찾아갔다.
“야! 힙합 가수라면서? 랩을 해야 하는데 왜 백인이 나오는 건데?”
“백인이라고 랩을 못할 거라는 편견은 버려야 해요. 동양인이 할리우드에서 활동 하는 것 자체가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건데 이 정도는 되어야 주제곡을 알맞죠.”
“반갑습니다. 마샬 브루스 매더스라고 합니다.”
쿠안틴은 이름이 너무 백인 같다며 구시렁거렸지만, 그가 보여주는 스웩은 진짜 같은지 얌전히 있었다.
“제가 영화 곡은 만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 합니다.”
“에메넴 씨의 곡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앨범인 인피니트도 가지고 있죠.”
“디트로이트에서 겨우 1천장을 팔았던 앨범인데 알고 계시다니 정말로 저에게 관심이 있으셨군요. 제 활동명도 알고 계시고요.”
동민이 찾아낸 무명 가수는 아직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닥터 드류와 계약하기 전의 에메넴이었다.
에메넴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힙합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유명해 지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써가는 가수였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는 2000년대에 전 세계에서 앨범을 가장 많이 판매한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리고, 힙합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하기도 한다.
힙합 앨범 최초로 다이아몬드 앨범을 두 장 달성하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기록을 갱신하게 된다.
올해 천재 프로듀서로 유명한 닥터 드류와 계약을 하고, 슬림 쉐이디라는 앨범을 발매 하면서 에메넴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데 다행히 아직은 계약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아직은 조금 어눌해 보이는 모습에 살도 조금 쪄 있었다.
“이런 컨셉으로 곡을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드레프트가 완성되면 샘플을 보내 주세요.”
“내용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 욕설이 들어가도 괜찮지요?”
“아예 쓰지 말라고 하지 않겠지만, 적정선에서 조율을 해 주시면 좋겠네요.”
에메넴이 동민의 보여준 시나리오와 곡이 들어간 장면을 읽고,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찌푸렸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지금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없이 받아 들여야만 했다.
“난 모르겠다.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데, 덥석 초짜한테 곡을 써달라고 하다니 이상한 곡이 나오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이상하면 안 쓰면 되죠. 곡 만드는데 비용도 별로 안 들었잖아요.”
“확실히 저렴하긴 하더라.”
엑션 장면에 쓰일 곡이라 에메넴에게 박진감 넘치는 비트와 훅이 들어간 곡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고, 다행히 동민의 개떡같은 요청에도 그는 찰떡같은 곡을 완성해 온다.
곡 준비가 끝나자 큰 역할을 맡을 크리스토퍼 놀람과 웨즈 엔더슨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고, 세탁소 내부를 보고 좋아했다.
“할리우드라 그런지 동네 세탁소에도 유명 스타와 감독의 사인이 많이 있군요.”
“하하. 다 그런 건 아니고, 이곳이 특별한 겁니다. 반갑습니다. 쿠안틴 티란타노 입니다.”
“정말로 쿠안틴 감독님이시군요.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사칭이 아닐지 걱정 했습니다.”
쿠안틴의 설득으로 두 사람이 동민의 단편 영화에 합류하긴 했지만, 학교 과제에 참여하기에는 조금 과한 느낌이 없진 않았다.
“이 친구가 이번에 감독을 맡은 다니엘 이군요. 제 예상보다 훨씬 잘 생겼습니다.”
“그러게요. 감독이라기보다는 배우에 더 적합한 외모를 하고 있군요.”
아직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상업 영화 제작을 만들지 않은 크리스토퍼 놀람과 웨즈 엔더슨은 동민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고, 그냥 쿠안틴과 친분이 있는 대학생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들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세탁소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시나리오를 읽어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저도 학교를 다니며 영화를 만들어 보아 잘 알고 있는데, 대학생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디테일이 너무 훌륭했습니다.”
“시나리오를 훌륭하게 만들어 카메라 앵글을 어떻게 잡으면 될지 자동적으로 떠오르더군요.”
“좋게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만,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 해 주세요. 그러려고 여러분을 모신 거니까요.”
엔더슨과 놀람이 동민을 칭찬 하면서 분위기를 잡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질문했다.
“옥수수로 세계 경제와 식문화를 파괴하는 악의 근원과 맞서 싸운다는 주제는 잘 이해했습니다만, 이 히어로의 컨셉은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베이츄 히어로? 주인공의 컨셉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베이츄가 아니고 배추에요.”
“또 다른 주인공인 총칵 히어로는 더욱 감을 못 잡겠습니다. 주인공의 존재가 가장 중요한 히어로 무비인데, 글로는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정확한 발음은 총각이고요. 둘 다 한국의 전통 음식 이름인데 일단 실제 배추 김치와 총각 김치를 먹어보고,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동민과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한국음식에 전문가가 되어 뉴욕 맨해튼에 한식당을 준비 중인 쿠안틴이야 동민의 히어로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아직 김치라는 음식을 접해보지 못한, 웨즈 엔더슨과 크리스토퍼 놀람은 가장 먼저 김치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배이추와 총곽은 여러 김치 중 대표적인 종류라는 것이군요.”
“식감이 아삭하면서 시원하고 살짝 염도가 있는데 매콤하네요. 강렬하면서 자극적인 음식 같습니다.”
두 사람이 김치를 세세하게 분석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의견을 나누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쿠안틴의 입꼬리가 씰룩 거렸다.
“하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녀석이 김치라는 음식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김치로 히어로를 만들어 버렸네요. 부담 가지지 마시고, 다니엘이 하자는 데로 영화를 만들면 될 겁니다.”
동민이 연출을 맡은 첫 영화의 정체는 김치 히어로가 나오는 액션 어드밴처물 이었다.
쿠안틴의 말 데로 동민이 가장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김치 히어로가 등장하는 액션 장르였다.
동민도 양심이 있기에 상업 영화로 김치 히어로물을 만들었다가는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욕을 먹을 수 있기에 극장에 상영하지 않을 대학교 과제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욕망으로 만드는 작품이니 이상하게 들리더라도 잘 협조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각본감독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지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뭍어버리기에는 완성도가 너무 훌륭한 게 흠일 뿐이네요.”
“그러면 제목인 Kim Chi Nam에서 Nam은 무슨 뜻인가요?”
“영어로 맨이라고 적기엔 너무 뻔한 것 같아서 스팰링을 뒤집었고, Nam은 한국어로 맨이라는 뜻도 있어 그렇게 정했습니다.”
김치에 진심인 남자 김동민의 첫 번째 영화 제목은 바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김치남’ 이었다.
“대충 이해가 되는 군요. 그렇다면 배추 워리어의 기술인 김치 슬랩을 어떤 공격 인가요?”
동민이 두 사람에게 배추김치 포기로 냅다 싸다구를 날리는 모습을 설명해 주었다.
“엄청난 비주얼이 나오겠군요. 멘탈적으로도 데미지가 엄청 나겠는데요?”
“흰 셔츠를 입고 있을 때 공격당하면 데미지가 중첩 되지요. 냄새를 빼는 것도 어려운데 영상에는 냄새가 담기지 않으니 아쉽긴 하네요.”
“그렇다면 총각 워리어는 이 알톼리 무 쌍절곤을 휘두르는 거로군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면 액션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데 배우들이 이런 동작을 소화 할 수 있을까요? 거기다 빌런의 리액션도 중요한데,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주연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신체적 능력이 상당하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홍콩의 유명 스턴트 그룹이 출연해 주기로 했으니 리액션도 괜찮습니다.”
무술 감독도 이미 홍콩에서 섭외를 했다고 하자 다들 놀라워했고, 홍콩 느와르의 광팬인 쿠안틴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아 착지하고 바로 발차기를 하면서 상대를 박차고 담을 넘어가는 장면이 가능하다고요?”
“안정장치 없이 3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면서 싸우던 사람들이라 이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조금 더 난이도 높은 장면도 가능하니 상상력을 발휘해 주세요.”
“피는 김치 국물로 대체 할 거지? 촬영장에 샤워 시설도 준비 해야겠네.”
피와 액션을 사랑하는 쿠안틴이 신나했고, 할리우드에서 구하기 힘든 홍콩 출신의 스턴트맨이 대거 출연한 것에 들떠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세계적인 옥수수 기업은 아무리 봐도 미국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까도 괜찮겠어?”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도 아니고, 상업영화가 아니니 영화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든 괜찮을 거예요. 거기다 틀린 말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옥수수로 석유를 만든다는 사실은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닌가요?”
“이미 바이오에탄올은 개발 되었어요. 계속해서 옥수수 생산량이 늘어나면 언젠가 주유소에서 옥수수로 만든 에탄올을 차에 주유해야할 거예요.”
김치남의 주요 스토리는 옥수수를 재배해 나온 부산물로 세계를 지배하는 악덕 기업을 상대로 김치 히어로 둘이 악의 제국을 무너트린다는 것 이었다.
옥수수 기업의 총수로는 살짝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장을 한 호아킨 피닉서가 맡기로 했고, 김치 워리어 둘은 휴이 잭맨과 라이온이 캐스팅 되었다.
조금 이라도 인지도가 있었다면 듣도 보도 못 한 김치 워리어라는 히어로 역을 맡지 않았겠지만, 아직 할리우드에 자리를 잡지 못한 단역을 하고 있었고, 예상보다 훨씬 쉽게 두 사람에게 김치 워리어 슈트를 입힐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이렇게 옥수수를 많이 만들었나? 대통령 선거 할 때 옥수수 농장이 많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가장 먼저 경선을 시작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는걸?”
대중은 미국 옥수수 산업의 무서움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고, 동민은 세 사람에게 옥수수 산업에 관한 배경 지식을 알려 주었다.
< 195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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