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
삼촌에게 골프 이야기를 꺼낸 죄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필드에 나가다 보니 금방 봄 학기가 끝났다.
여름 계절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잠깐 여유가 있었고, 핸리포터 출간회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 잠시 들렀다.
“복귀 축하드려요. 인사하러 온다는 게 학교 다니다 보니 이제야 올 수 있었네요.”
“고맙구나. 나도 정신이 없어서 네가 돌아 왔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구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애풀 본사에 올해 초 복귀한 스티븐 잡서를 만나러 왔다.
잡서와 로비에서 인사를 하고 그의 사무실로 이동하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한 직원에게 잡서가 말을 걸었다.
“자네는 어느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가?”
“프린트 개발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유아 퐈이어.”
동민과 잡서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충격을 받아 멍하게 있던 직원이 고소하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고소하겠다는데 괜찮아요?”
“회사 법무팀 변호사들 실력이 좋더라고. 아무런 문제없어.”
작년 말 잡서의 고성능 컴퓨터 디비전인 NeXt가 애풀에 인수되면서, 스티브 잡서는 특별 고문직으로 애풀에 복귀하게 되었다.
스티브 잡서의 복귀 소식을 들은 윌 게이츠 당장 애풀의 CEO인 아멜리오에게 연락해 잡서를 불러들이는 것은 큰 실수이며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했다.
윌 게이츠가 질투에 눈이 멀어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니고, 이미 쫓겨난 전 경영자를 다시 회사로 불러들이는 모습은 좋지 않은 결정으로 보여 말을 했다.
어찌 되었든, 윌 게이츠의 걱정대로 스티븐 잡서는 애풀로 복귀하자마자 이사회를 설득해 CEO인 아멜리오를 축출할 것을 종용했고, 그의 대체자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내가 애풀에 돌아왔을 때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 줄 알아?”
“사업부가 비대하게 커 보이긴 하더라고요.”
“매킨토스 데스크탑 라인과 렙탑군을 개발하고, 서버 변종 모델도 판매하고 있더군. 적자를 보고 있는 프린터와 디지털 카메라, PDA, 마우스까지 안 만들고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었어.”
“스티븐이 나오고 회사가 잘될 줄 알았는데 산으로 가고 있었네요. 그래서 집중과 선택을 하기로 한 거예요?”
잡서는 완전히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고, 매킨토시를 4조각으로 나눠 일반 소비자를 위한 데스크탑과 랩탑, 전문가를 위한 데스크탑과 랩탑만 생산할 거라고 말했다.
그 외의 모든 부서는 정리를 하기로 했고, 직원 3,000명을 해고하면서 애풀의 경영권을 잡은 지 1년 만에 적자에서 3억 달러 흑자로 돌아서는 기적을 연출해 낸다.
“쓸모없는 아멜리오와 측근을 내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지. 공석이 생긴 이사회에 미라클의 CEO인 래리 엘리선이랑 예전에 부사장을 했던 윌 캠벨이 자리를 대신했는데 아직도 내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야. 다니엘 자네는 애풀의 이사장을 할 생각은 없는가? 네 자본이라면 충분히 지분을 인수해 이사회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야.”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제가 컴퓨터공학과는 거리가 멀어 서요.”
“나도 전혀 관련 없는 전공인데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거기다 퓍사 쪽 일을 겸하는 이사라면 충분할 것 같은데?”
애풀의 이사를 시켜 주겠다는 잡서의 제안에 살짝 튕겨 주긴 했지만, 동민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지금은 애풀에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 외부의 자금이 급한 상황이었고, 몇 년만 지나면 복귀한 스티븐 잡서와 함께 에풀 제국이 부활하기에 한 발 걸치기에는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잡서를 믿기는 하지만, 회사 상황이 너무 나쁘지 않나요? 퓍사야 언젠가는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2D를 대체할 거라는 확신이 있긴 했지만, 애풀에서 믿을 거라고는 잡서밖에 없는 걸요.”
“하하. 나만 믿으면 돼. 내가 쓰러져 가는 애풀을 다시 일으켜 세울 테니 바로 옆에서 지켜보라고.”
잡서가 조나단 아이브라는 뛰어난 제품 디자이너가 있다며 아름다운 컴퓨터를 만들어 매출을 증가시키겠다고 설득했지만, 동민은 2001년에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만들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년에 퓍사에서 두 번째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인 버그 라이프도 흥행에 성공하면서 잡서에게 힘을 실어 준다.
이제는 계약에 꽤 능숙해진 동민이 잡서에게 넘어갈 듯 말듯 밀당을 펼치다가 상당히 좋은 조건에 애풀의 지분 일부를 인수해 이사회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애풀의 구성원이 된 것을 축하하네. 이제 이사회가 열리면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네.”
“어차피 스티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시작했으니 정말 이상한 거 아니면 잡서의 의견에 따르도록 할게요.”
동민은 애풀의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는 조건으로 애풀 직원식당에 김치를 납품하기로 했고, 특히 스티븐 잡서의 식단을 관리한다는 특별 조항을 삽입했다.
“안 그래도 잘 먹고 있는데 살이 찌게 생겼군.”
“잡서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애풀이 계속 성장하죠. 편식하지 말고, 단백질도 잘 먹어야 하니까 두부도 꼭 챙겨 먹어요.”
사실 애풀의 주가는 혁신의 스티븐 잡서가 사망하고, 경영의 천재 팀 콕이 CEO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래도 잡서가 살아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을 보고 싶기에 꾸준히 잡서에게 몸에 좋은 김치와 나물 반찬을 보내주었고, 이제는 이사회 임원도 되었으니 더욱 본격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이사회 소집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니까 꼭 참석해야 해.”
“이제 대학생이라 시간 만들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버그 라이프 제작은 잘 하고 있죠?”
“장난감 이야기를 만들어 봐서 그런지 이번에는 훨씬 수월하게 만들고 있단다.”
“그런데 왜 제작비는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거예요?”
장난감 이야기의 제작비는 3천만 달러로 집계되었는데, 퓍사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버그 라이프는 1억 2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장난감 이야기는 오랜 기간 준비하는 바람에 초반 개발비가 제외된 예산인 거 알고 있잖아. 버그 라이프는 장비와 인력을 늘리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 대신 다음 작품 제작비는 줄어들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건 두고 봐야 알겠죠. 일단은 그냥 넘어가도록 할게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드림워커에서 비슷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하던데 혹시 아는 거 있니?”
“투자서를 보긴 했는데 급히 만드는 거 치고는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버그 라이프 완성도가 더 높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영화감독 스티브 스필버그와 전 월트 디주니 스튜디오 회장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 제작업자 데이비드 게펜이 1994년에 공동으로 드림워커라는 독립 영화사를 설립했다.
스필버그가 동민에게도 투자를 권하긴 했는데, 드림워커가 성공과 파산을 반복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중하게 거절했었다.
문제는 퓍사의 수장인 존 라세터와 드림워크의 수장인 제프리 카젠버그가 친한 사이라 종종 만나곤 했는데, 어느 날 라세터가 개미와 배짱이를 각색한 영화를 추수감사절에 개봉할 거라고 말했다.
이에 안 좋게 회사에서 나온 전 디주니 CEO 제프리가 디주니와 퓍사가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벼락치기로 엔트라는 개미가 주인공인 3D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전 회사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빅엿을 날리는 행위였는데 부랴부랴 만들어 버그 라이프보다 조금 더 일찍 개봉을 하게 되고 꽤 좋은 평가까지 받게 된다.
그래도 퓍사의 버그 라이프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개봉 날짜가 엔트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역으로 표절이라는 오해를 받기는 한다.
하지만, 개미가 등장한다는 것만 같을 뿐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해프닝으로 끝나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년 하반기에 개봉을 예상하고 있어서 아직 초기 단계에 있어. 그래도 장난감 이야기를 만들어 봤으니 제작 기간은 많이 단축될 거야.”
“그쪽은 제가 확인할 테니 당분간은 애풀에 집중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 영국으로 볼일을 보러 가야겠어요.”
갑작스럽게 애풀 이사회에 들어가는 바람에 생각보다 오래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르게 되었고, 이제는 스코틀랜드로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떠나기 전에 잡서에게 선물로 J.K. 롤린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핸리포터 마법사의 돌을 주었고, 아주 귀한 거니 버리지 말고 잘 보관해 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출발했다.
“영국 오랜만이네. 그때 엘레펀트 카페에 찾아간 이후로는 처음 왔나? 대신 닐이 자주 왔으니 괜찮겠지?”
핸리포터를 쓰고 있는 J.K. 롤린은 자주 만나 보고 싶었지만, 군대에 있었던 관계로 닐이 자주 출장을 와서 그녀를 도와주었다.
이번에도 출판 기념회 준비를 위해 미리 영국에 와서 일하고 있었다.
“다니엘. 여기에요. 잘 찾아왔네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갑작스럽게 일이 생겼다더니 잘 해결되었어요?”
“아. 그게 어쩌다 보니 애풀의 사외이사가 되었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자 안 그래도 바쁜데 일을 더 늘리면 어떻게 하냐며 닐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작가님은 잘 지내고 있어요? 인사나 시켜 줘요.”
“어휴. 그래도 애풀 일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네요. 작가님은 아직 도착 안 하셨고, 조금 이따 오실 거예요.”
아직 출간을 해 본 적 없는 신인 작가라 에던버러의 작은 동네 서점에서 출간 기념행사를 하려고 하는 걸 런던에서 가장 큰 서점인 워터스톤 피카딜리점에 공간을 빌리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영국의 대형 프렌차이즈 서점인 워터스톤에서 거절했지만,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제시하자 워터스톤 피카딜리점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와 날짜를 받을 수 있었다.
“다니엘. 너무 오랜만이에요. 군대에 갔다더니 정말 달라졌어요.”
“작가님도 얼굴이 좋아지셨네요. 집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다니엘이 후원을 많이 해 줘서 살림이 좋아져서 힘들지는 않았어요. 닐도 자주 안부를 물으러 와 줘서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신인 작가인 J.K. 롤린은 동민이 섭외한 장소를 보고 자신이 이런 곳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져도 되는 것인지 걱정하면서도 들뜬 모습을 보였다.
“이런 장소라면 비용이 많이 들었을 건데, 아직 판매도 시작 안 했는데 괜찮은 거예요? 나야 고맙지만, 책이 많이 안 팔리면 어떻게 해요.”
“작가님 자녀가 책을 읽어 보고 좋아했죠?”
“벌써부터 다음 편을 써 달라고 하긴 하는데, 엄마니까 그러는 거겠죠.”
“아마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저도 읽어 봤는데 작가님을 가둬 놓고 다음 편을 쓰게 만들게 하고 싶었거든요.”
핸리포터 마법사의 돌 홍보를 위해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긴 했지만, 책이 벌어다 줄 수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돈을 쏟아부은 만큼 서점에 찾아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책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출판 기념회가 끝날 때쯤에는 이미 준비한 부수가 모두 판매되었고, 출간 첫날부터 넉넉하게 인쇄한 5천 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다니엘. 이거 예상보다 반응이 너무 뜨거운데요? 2쇄를 찍어 내는 데 1주일 정도 걸린다는데 어떡하죠?”
“거기에는 예정대로 책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빨리 다른 인쇄소도 알아봐요. 앞으로 계속해서 책을 찍어야 할 것 같네요.”
< 173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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