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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김치 재벌-172화 (157/265)

< 172 >

동민이 500만 달러 투자서에 사인을 마치자 함께 따라온 공동 창업자 랜돌프가 궁금해하며 물어보았다.

“투자를 해 주셨는데 이런 질문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왜 투자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다른 투자자들과 제 아내와 심지어는 직원들까지도 영화 우편 대여 사업이 실패할 거라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우편 대여 사업으로 매장을 1만 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블록바스터와 경쟁하기는 힘들겠죠. 그래도 운영비 면에서는 유리한 상황이니 가격 경쟁력은 확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긴 해도 1위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블록바스터가 마음먹고 공격할 때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우편 서비스를 시작할 수도 있잖아요.”

해이스팅 대표도 이제 한배에 올라탄 동민의 생각이 궁금한지 블록바스터를 어떻게 상대할 생각인지 물어보았다.

“지금은 DVD나 비디오 대여 시장이 메인이지만, 빠른 미래에는 인터넷의 발달으로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결제해서 보는 날이 올 거예요.”

“유료결제 프로그램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저희도 위성 텔레비전의 페이퍼뷰 시스템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방송국을 설립해야 하고 저작권료를 내는 법도 복잡하더군요.”

“비슷하긴 한데 인터넷이 더 빨라지고, 컴퓨터 성능이 좋아지면 쉬운 방법이 생길 거예요. 일단은 DVD 대여로 고객 데이터 확보에 집중하시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전환할 때 기존 고객에게 먼저 선보이면 사업을 변환하기 쉬울 거예요.”

오프라인 매장을 1만 개나 운영하고 있는 블록바스터는 온라인으로 사업을 전환하기에는 너무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에 넷플렉스가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해 주었다.

마침 최종적으로 OTT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던 랜돌프 이사가 동민의 의견에 동의하며 자신도 결국엔 그쪽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업 초기라 많이 힘드시겠지만, 수고해 주시고 영화 저작권 합의가 힘들 때는 전문가인 닐에게 도움을 받으세요. 길게 봐야 하니까 DVD 우편 대여 시스템을 너무 확장하지는 말고 천천히 내실을 다지면서 만들어 봐요.”

군대에 다녀오기 전이나 한국에서 동민이 이런 말을 했다면 설득력이 부족했겠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남성적으로 변한 동민의 외모가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미국의 문화에다 더해져 상대방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넷플렉스의 창업자 두 사람은 할리우드의 숨은 실세인 동민의 후원을 받게 되어 든든하다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힘내시라는 뜻으로 준비한 선물입니다. 식이섬유와 유산균이 풍부해서 면역력을 높여주니 만성 피로가 줄어서 더 오래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냥 먹으면 힘들 수도 있으니 피클처럼 고기나 햄버거같이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같이 드세요.”

동민은 잊지 않고 김치를 한가득 챙겨 주었고, 다 먹고 나면 더 줄 테니 이쪽으로 연락하라며 김치공장의 연락처도 알려 주었다.

‘한류를 세계로 퍼트려 주는 고마운 분들인데 김치라도 챙겨 줘야겠다.’

그동안 수많은 미국인에게 김치를 전파해 왔기에 이번에도 능숙하게 김치를 전달했고, 따로 만들어 둔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도 함께 챙겨 주었다.

국뽕에 큰 역할을 해 주는 넷플렉스에 투자를 마치고 나니 국뽕 1호기가 보고 싶어졌고, 오랜만에 LA 다저스 경기장에 찾아갔다.

“웬일로 네가 여길 다 왔냐?”

“호찬이 형이 드디어 마이너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는데 응원하러 왔죠. 저 없는 동안 영어는 많이 늘었어요?”

“이제는 한국어를 하려면 생각을 하고 말해야 할 정도야.”

“그러게요. 한국어가 어눌해 진 것 같아요.”

메이저리그로 복귀한 박호찬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불같은 강속구와 낙차가 큰 커브로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호찬 이전에 독일 분대스리가에서 활약한 한국인 선수가 있었지만, 그때는 시합을 한국에서 볼 수가 없었던 시기이고 박호찬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는 97년과 98년은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국민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을 안겨준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폭삭 망해 가고 직장까지 잃은 상태라 사람들의 마음은 실망감과 패배감으로 물들게 되는데 이억만리 타국에서 홀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위로와 희망을 얻게 된다.

“그래도 잘 적응했다니 다행이네요. 처음 형이 미국 왔을 때는 영어도 못하고 문화적으로도 너무 한국인이라 걱정했는데 습득력이 빠른 건지 노력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다 이 몸이 뛰어나서 그런 거 아니겠니?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홀로 약물이 넘쳐나는 시기의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박호찬은 강력한 멘탈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고, 동민의 도움이 조금 더해지자 금방 해외 생활 적응을 마치고, 본 실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마이너리그로 갔을 때 말이야. 가능한 빨리 메이저리그로 복귀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악착같이 영어 공부를 하며 현지 적응을 위해 노력했지. 그리고, 거기는 일단 식당 자체가 메이저와는 너무 차이가 많이 났어. 네가 보내준 김치가 없었더라면 힘들 뻔했지. 나한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하던 녀석들이 네가 준 김치를 먹고 난 이후로는 그런 말을 안 하더라고.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으로는 상위권을 유지해서 인정받고 있었는데 그놈의 영어랑 문화차이 때문에 메이저리그로 안 보내준다고 해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영어를 했어. 이후로 한국어를 쓸 일이 없어져서 한국어로 말을 할 때면 영어랑 헷갈려서 고생했지. 그러고 보니 너는 한국어를 어색하지 않게 잘 말하는구나.”

처음에는 짧게 말을 하던 박호찬이 입이 트였는지 투머치토크를 쏟아냈고, 자신의 업보라고 받아들인 동민은 약 3시간가량 그의 수다를 들어 주었다.

체력 하나는 끝내주는 젊은 박호찬은 지치지도 않고 말을 하다가 코치가 찾는 바람에 아쉬워하며 돌아갔고, 세탁소에 찾아가 남은 이야기를 다시 해 주겠다고 했다.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와도 걱정이네. 고기나 구워 주고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국뽕 2호기도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어떻게 찾아봐야 하지? 내가 골프 쪽은 잘 모르는데.”

박호찬을 이어 두유노클럽에 가입하는 박세니는 아직 LPGA에 진출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세니는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한국에서는 무서운 10대로 불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불린 박세니는 92년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초청받은 KLPGA 대회에서 연장전 끝에 프로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리 아직은 투어 수준이 낮다고 해도 프로의 리그인데 중3의 나이에 우승을 한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이듬해 1승을 추가한 뒤, 고등학교 3학년인 1995년에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시즌 4승을 거두는 놀라운 성적을 보였다.

아직 KLPGA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시대라 일 년에 10개가 조금 넘는 대회가 열렸는데 고등학생 아마추어가 전체 투어의 1/3 이상을 우승해 버린 것이다.

올 한 해 박세니는 세계 최고의 교습가 중 하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로부터 철저한 레슨을 받으며 훈련을 하고, 10월에 열린 퀄러파잉스쿨에서 크리스티 커와 함께 공동 1위로 Q스쿨을 통과하며 화려하게 LPGA 무대에 데뷔한다.

“삼촌이 골프 쪽은 잘 아니까 혹시 알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세탁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삼촌의 유일한 취미가 골프였고, 종종 한인회 사람들과 필드에 나갔다.

골프협회 쪽 사람도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박세니에 관해 물어보면 자세한 일정을 알아올 수 있었다.

“삼촌 박세니라고 아세요?”

“누구?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한국에서 골프 신동으로 유명하다던데요?”

“아~! 그 친구 말하는구나. 안 그래도 지금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10월에 퀄리파잉을 받는다고 하더구나.”

역시나 삼촌은 박세니의 스케줄까지 알고 있었고, 훈련장에서 직접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확실히 스윙과 어프로치가 다르더구나. 미국에서도 잘하면 좋겠어.”

“프로 데뷔하면 갤러리로 한번 보러 가고 싶은데 어렵나요?”

“PGA 투어는 갤러리 티켓 구하기가 어려운데 LPGA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갑자기 왜 골프에 관심이 생긴 거니? 거기다 PGA도 아니고 LPGA에.”

동민은 군대에 있을 때 박세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적당히 핑계를 댔고, 골프 이야기에 신이 난 삼촌이 계속해서 PGA 설명을 해 주었다.

“올해 아주 특이한 녀석이 나타났단다.”

“특이한 녀석이요?”

“작년에 데뷔했는데 아직 프로 시합을 해 본 적도 없는 애송이에게 니케에서 5년간 4천만 달러짜리 스폰서를 계약했단다. 보너스로 750만 달러를 추가로 지급했고 말이지.”

삼촌은 그 애송이가 데뷔 인터뷰에서 ‘내가 왔다 세상아.’라고 말했다며 당찬 녀석이라고 했고, 올해 마스터즈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하면서 골프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 보인 신예라며 침을 튀겨 가며 설명했다.

“미국 주니어 아마추어 시절부터 3연패를 했고, 94년부터는 US 아마추어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고 작년에 PGA에 데뷔를 했단다. 재미있는 점은 혈통이 아주 복잡하다는 건데, 흑인 같아 보이지만, 아버지가 아메리칸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 중국인 혼혈인 데다 어머니 쪽은 태국인인데 중국인과 백인 혼혈이라고 하더구나.”

“혹시 그 선수 이름이 타이거 우드 아닌가요?”

“너도 알고 있구나. 하긴 최근 뉴스에 그 녀석이 많이 나오긴 했지.”

골프에 관심이 없는 동민도 알고 있을 정도로 타이어 우드는 유명 인물이었고, 초대형 슈퍼스타의 등장으로 특정 계층에만 인기가 있던 프로 골프가 대중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타이거 우드 덕분에 PGA 투어는 광고비와 갤러리 참가비 수익을 극대화시키게 되고, 투잡을 뛰며 생계를 유지했던 선수들은 계속 늘어가는 상금에 안정적이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초대형 스캔들을 터트리긴 하지만, 그만큼 극적인 효과는 있었지.’

대물 밤의 제왕으로 유명해지는 타이거 우드의 미래가 떠올랐지만, 다시 복귀하는 모습도 대단했던 거로 기억이 났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너도 이제 골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니?”

“학교 다니고 영화 일 하기 바쁜데,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삼촌이 알려 줘서 칠 줄은 알잖아요.”

“타수를 줄여야지. 에버리지 90인데 이제 싱글 진입을 해야지? 골프는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 하는 거란다. 너도 앞으로 사업을 하려면 필요할 테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하렴.”

이미 삼촌을 따라 연습장에도 여러 번 갔었고, 필드도 몇 번 가 보았지만, 영화광인 동민은 골프에서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필드에 나가야 재미있다고 하는데 동민은 삼촌이나 어른들과 필드를 나가서 습관적으로 골프를 쳤고, 기본기는 생겼지만,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갤러리로 투어에 관람을 할 정도의 수준은 가지고 있었고, 내년에 박세니가 참가해 만드는 전설의 레전드 장면은 직관하기로 했다.

< 172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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