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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 감독은 타이탄익의 스케일을 크게 만들었고, 여러 장소에서 영화가 촬영되었다.
주요 촬영은 1996년 7월 말에 시작해 1997년 3월 말에 끝나 반년 이상 촬영이 이어지는 작업이었다.
주로 대서양과 멕시코, 미국, 캐나다에서 촬영되었는데 영화 초반에 타이탄익 난파선의 촬영은 실제로 침몰한 북대서양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그랜드 뱅크 남쪽에서 잠수함을 이용해 촬영했다.
대부분의 시퀀스는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의 로사리토 리조트 커뮤니티 근처에 위치한 최첨단 제작 시설일 바하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고, 동민의 명의로 만든 실제 타이탄익 호가 있는 곳이었다.
스튜디오의 크기가 너무 커서 스태프들이 종종 길을 잃기도 했고, 컴퓨터 그래픽이 필요한 작업과 배가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장면도 멕시코에서 촬영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로스앤젤레스의 공공 수영장인 벨몬트 올림픽 풀에서 촬영되었고, 지금도 그곳에서 작업 중이라 동민은 멕시코까지 가지 않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금방 현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타이탄익의 승객과 승무원이 침몰한 배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고,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가 차가운 바다에서 저체온증에 걸려 사망하는 신도 준비하고 있었다.
“감독님 오랜만이에요. 촬영이 힘드셨는지 살이 빠지셨네요.”
“오! 투자자님이 오셨군. 군대에 갔다 오더니 다른 사람이 되었는걸? 털미네이터 3편을 촬영하게 되면 출연시켜도 되겠어.”
“일단 촬영 중인 타이탄익이나 잘 마무리해 주세요. 제작비가 계속 늘어나는 바람에 올해 투자금의 대부분이 여기 들어갔단 말이에요.”
동민이 2년 만에 만난 카메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영화의 주인공인 리오와 케이티 렌슬렛이 다가왔다.
“와우! 다니엘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몸이 완전히 달라졌는걸?”
“리오도 더 멋있어졌네. 카메룬 감독님이랑 같이 작업하는 게 쉽지 않을 건데 고생이 많아.”
“대작을 만드시는 감독님이시라서 많이 배우고 있어. 안 그래도 감독님이 너 이야기를 자주 해서 그나마 친해질 수 있었네. 이쪽은 케이티야 인사해.”
“반가워요. 제가 타이탄익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투입해서 기대가 크니 좋은 작품 만들어 주세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있으시네요.”
처음 만나는 케이티 윈슬렛과 인사를 나누었고, 오랜만에 만난 리오도 동민을 반겨 주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은데 지금은 일하고 있으니 나중에 세탁소로 놀러 갈게. 영화 촬영이 거의 끝나고 있어서 다음 달에는 갈 수 있을 거야.”
“괜찮아. 감독님이 남은 촬영은 로스앤젤레스에서 할 거라고 하셨으니까 종종 놀러 올게.”
리오와 인사를 마치자 안면이 익은 스태프들이 보였고, 그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함께 완벽주의자에다 독불장군으로 악명 높은 카메룬 감독 뒷담화를 까 주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구석에서 갑자기 카메룬 감독이 튀어나왔고, 스태프들이 후다닥 자리를 비웠다.
“다니엘. 너 혹시 수영할 줄 아니? 수중 촬영한 경험은 있고?”
“제가 한국의 네이비 실 훈련을 직접 촬영한 사람이에요. 수중 촬영의 스페셜리스트죠.”
입대하고 가장 먼저 촬영했던 게 UDT 훈령 영상이었고, 수중 훈련을 찍기 위해 대부분의 훈련을 함께 받았었다.
“잘되었구나. 카메라 감독이 수중 촬영을 오래 하다가 감기 몸살에 걸렸는데 네가 대신 촬영을 해 줘야겠다.”
“갑자기요? 저 학교 가야 하는데요?”
“주말에만 부탁하마. 수중 촬영 전문가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래.”
현장에서 악명 높은 카메룬 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지 않기 위해 발뺌을 해 보려 했지만, 타이탄익에 쏟아부은 금액이 워낙 크기에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잠수복을 입고 능숙하게 물속에서 장비를 다루자 카메룬 감독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고, 본격적으로 동민을 공짜로 부려 먹기 시작했다.
“거기서 홀드하고 전체적인 구도를 잡았다가 오른쪽으로 포커스를 이동시켜.”
원래라면 시나리오를 먼저 확인하고, 콘티를 학습한 다음 감독과 배우와 함께 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촬영을 해야 했지만, 시간 관계상 카메룬 감독이 직접 동민에게 지시를 내렸고, 개떡 같은 설명에 찰떡같이 촬영을 하자 빠르게 작업이 진행되었다.
동민이 완성된 타이탄익을 여러 번 보았고, 어떻게 장면이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었기에 카메룬 감독의 많이 생략된 지시에도 적절하게 따를 수 있었다.
이에 카메룬 감독이 화를 내지 않고 빠르게 촬영이 이어졌다.
“컷! 좋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오랜만에 수중 촬영을 했더니 힘이 드네요. 카메라가 좋은 것 같은데 그만큼 무겁기도 하고요.”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하던데? 이제 합류한 게 안타까울 정도더군.”
“군대에서 여러 상황에서 촬영해 본 게 도움이 되네요.”
인사차 놀러 왔다가 일을 하게 되었지만, 카메룬 감독의 현장에서 타이탄익 작업을 함께 하는 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카메룬 감독은 타이탄익을 연출하고, 12년이나 공백기를 가지기에 이번 영화 작업이 끝나면 한동안 그와 함께 작업할 기회가 없을 것이었다.
‘영화 제작을 쉬는 동안 다큐멘터리 만들고 텔레비전 드라마 찍는데, 주인공으로 제시카가 뽑히니 미리 현장 경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카메룬은 엔젤다크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찍게 되는데 천여 명이 넘는 배우의 오디션을 거쳐 마지막에 제시카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된다.
아직 카메룬이 제시카를 만난 적이 없기에 동민은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말해주지 않을 생각이었고, 촬영 도중에 몰래 방문해서 놀래켜 줄 생각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카메룬 감독이 다음 주말에도 현장에 나오라고 했지만, 스필버그 감독을 만나기 위해 하와이에 가야 한다고 말하자 아무리 카메룬이라도 스필버그를 깔 수 없기에 아쉬워하며 동민을 보내 주었다.
“오빠랑 둘이 비행기 타니까 좋다.”
“나도 제시카랑 같이 가니까 좋네.”
카메룬 제임스와 리오를 만나러 갔다 오고 일주일이 금방 흘렀고, 주말이 되어 스티브 스필버그를 만나러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를 제시카와 함께 탔다.
좌석이 붙어 있는 일등석으로 표를 끊었고, 그녀와 함께 꽁냥꽁냥 하다 보니 금방 하와이에 도착했다.
“한국보다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도착했네.”
“오빠. 난 하와이는 처음인데 공항도 아기자기한 게 예쁘네.”
호노룰루 공항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하와이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주라식랜드 잃어버린 세계를 촬영 중인 곳으로 찾아갔다.
“오~ 다니엘 무사히 군대를 다녀와서 다행이구나. 다친 곳은 없는 거지?”
“다치지는 않았고, 대신 몸이 많이 좋아졌네요.”
“그렇게 보이는구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스필버그 감독은 잃어버린 세계 촬영장 구경을 시켜 주었고, 동민은 전작에 비해 몇 배로 많아진 공룡 로봇들을 보고 감탄했다.
“공룡들이 많이 늘었는데 제작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네요?”
“초기 개발 비용이 많이 드는데 전작을 찍으면서 데이터를 확보해 두었고, 쓰고 남은 공룡들을 재활용했더니 비용이 많이 절감되더구나. 이 정도 로봇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단다.”
외부 투자를 가능한 받지 않고 비용을 대부분 스스로 조달하는 스필버그 감독은 제작비가 비교적 적게 드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잃어버린 세계도 7,300만 달러라는 예산으로 촬영했다.
다른 영화들은 제작비를 늘린다는 의혹을 받는데 스필버그는 반대로 축소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고, 투자를 하면서 자세한 내역서를 받아 보는 동민은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라식랜드 2편의 현장을 둘러보자 전작과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편이 약간의 서스팬스가 첨가된 어드벤처물이었다면, 2편은 서바이벌 액션 활극에 가까워 보였다.
스필버그가 이전 작과는 타이틀과 세계관만 빌린 수준으로 달라진 장르와 분위기로 만들면서 전작에 빠져든 수많은 관객들이 실망을 하게 된다.
전작이 워낙 명작이라 그렇지 2편 특유의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선호하는 관객도 많으며, 특히 호러 영화 팬들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연출과 음악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쉰들러의 방주 이후 스필버그의 영화 스타일이 어둡고 건조하게 연출하는 쪽으로 바뀌는데 이번 작품은 쉰들러 이후 처음 만드는 영화라 더욱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오빠 야외 세트장이 신기하고 멋있긴 한데 조금 무서운 것 같아.”
동민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제시카가 무섭다며 팔을 꼭 껴안자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 왔는데 바로 돌아간다니 아쉽구나.”
“저도 오래 머물고 싶지만, 감독님도 바쁘시고 학교에도 가야 해서요. 로스앤젤레스에 오시면 다시 찾아뵐게요.”
“그래. 할리우드에서 보자구나.”
주라식랜드 촬영장을 둘러보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간다고 말 했지만, 개인 해변이 딸린 하와이의 고급 리조트로 이동했다.
“오빠 여기 너무 좋은 것 같아. 바다도 투명하고, 리조트도 너무 예뻐.”
“내 눈에는 비키니를 입은 제시카가 가장 예쁘네.”
제시카의 부모님께 스필버그를 만나러 간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었기에 둘이 하와이의 고급 리조트에서 여유를 만끽했다.
여자친구와 단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싶기도 했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 정말 바쁘게 지내 왔고, 미국에 와서도 바로 학교에 복학하면서 조금은 지쳐 있었기에 하루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오빠도 누워만 있지 말고 바다에 들어 와.”
“멋진 다이빙 실력을 보여 줘야겠네.”
선글라스를 쓰고 선베드에 누워서 제시카를 몰래 보고 있다가 그녀가 부르자 바다로 뛰어 들었다.
“까!”
잠수해서 제시카에게 다가간 다음 물속에서 그녀를 들어 올리자 제시카가 놀란 척 비명을 지르면서 동민에게 안겨 들었다.
두 사람이 하와이의 맑은 바다에서 물장난을 치다 보니 석양이 졌고, 붉게 물든 노을을 배경으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다 조금씩 가까워졌다.
특급 리조트에서 만들어 주는 하와이식 저녁을 먹고 별을 보며 둘은 잠자리에 들었다.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먹는 아침은 이상하게 더 맛있는 것 같아.”
“나도 제시카랑 같이 조식을 먹으니 더 맛있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늦잠을 자다가 룸서비스로 조식을 먹고 여유를 부리다 체크아웃 시간에 딱 맞춰 공항으로 출발했다.
“짧아서 아쉽긴 해도 이렇게 둘만 놀러 오니까 좋네.”
“나도 너무 좋았어. 다음에 또 오자.”
주라식랜드 촬영장에서 스필버그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제시카의 부모님께 보여줄 증거로 챙겼고, 앞으로도 촬영 핑계로 제시카와 여행을 다닐 생각이었다.
짧지만 달콤했던 휴식을 보내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 학교를 다니며 지인을 만났고, 어느덧 4월 말이 되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이 동네는 하나도 안 변하는구나.”
오마하에 도착한 동민은 워런트 버핏을 만나기 전에 그의 단골 패스트푸드 식당에 들러 그를 위한 치즈버거와 감자튀김, 밀크셰이크를 포장해 회사로 찾아갔다.
< 170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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