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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김치 재벌-168화 (153/265)

< 168 >

한보그룹의 정 회장은 철강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한보철강을 설립하지만, 당진에 제철소를 지을 돈이 없어 현 대통령의 차남과 정계 유력 인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약 5조 원의 불법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정 회장은 5조 원의 돈 대부분을 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등의 행위를 계속하다가 결국 덜미를 잡히게 되고, 5조 원의 빚을 떠안고 당진제철소가 부도 처리 되면서 한보철강과 한보그룹이 줄줄이 부도 처리 된다.

한보그룹의 파산으로 금융권은 비상 체제에 들어가게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여름 태국부터 시작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부터 번진 외환 위기는 가을부터 대한민국을 연쇄적으로 강타한다.

대기업의 부도로 체력이 약해져 있는 대한민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되고, 외화 보유고가 바닥나면서 IMF로부터 차관을 빌려온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가정이 어려움을 겪게 되고, 한국의 경제 시스템도 크게 변하게 된다.

영화광인 동민은 경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다행히 대한민국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가 몇 편 나오고, 영화를 분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IMF 사태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되는구나. 나라가 망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정작 투자를 하려니까 언제 어디에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환율이 2천 원까지 올라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닐에게 지시했던 재산 내역서가 도착해 있었고, 올해 만들어지는 영화에 투자한 2억 달러를 제외하고 약 10억 달러의 현금이 남아 있었다.

생각 보다는 적은 금액이었지만, 그동안 자금이 생기는 족족 투자를 해 왔기에 동민이 군대에 있는 동안 그나마 현금이 쌓인 것이었다.

차 극장 수입 이외에도 로열티를 가지고 있기에 2차 시장에서 꾸준히 수익이 발생했고, 워낙 많은 영화의 지분을 유지하고 있기에 이제는 이 금액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되었다.

“달러는 가능한 많이 준비하는 거로 하고, 한국에 있는 재산도 빨리 정리해야겠다.”

아빠가 운영하고 있는 영화 수입사에는 딱히 손을 댈 일이 없지만, 10년 전 샀던 분당의 땅을 정리해서 현금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부모님께 물어보니 분당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보상금을 받고 대부분의 땅을 정리했고, 그때 동민의 의견대로 구입했던 강남의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알려 주셨다.

“계속 오를 것 같은데 꼭 지금 팔아야겠니? 돈이라면 미국에 많이 있는 거로 알고 있다만.”

“그렇긴 한데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지금은 환율도 800원대로 저렴한 편이니 빨리 팔고 환전해 주세요.”

강남의 땅과 빌딩을 정리한다니 부모님이 아쉬워하셨지만, 자금을 불려 더 좋은 지역으로 구입하겠다고 약속하자 적당한 가격에 판매해 주셨다.

분당의 땅값이 뻥튀기 되면서 강남으로 갈아탔고, 강남 역시 꾸준히 상승하면서 재산이 급격히 늘어나 400억이 되어 있었다.

지금 한국에서 400억의 현금이면 엄청난 금액이지만, 달러로 환전하니 5천만 달러 정도 되었고, 동민이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에 투자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큰돈 같은데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도 않네. 그냥 놔둘 걸 그랬나?”

동민의 기준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도 환치기만 해도 400억이 1천억으로 불어나고, 하락한 부동산을 다시 매입하면 자산을 몇 배로 불릴 수 있었다.

“그냥 영화에 투자하는 게 더 수익률이 좋은 것 같지만, 그래도 IMF를 그냥 넘어가면 분명 후회할 거야.”

그동안 결정을 미루어 왔는데 한보사태가 터지자 외환 위기 때 어느 정도 개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말년인 동민은 넘쳐나는 시간동안, 어떻게 IMF를 활용할지 계획을 세웠고, 말년 휴가를 나와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지인들을 만나며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누군가 제대를 하는 게 이렇게 아쉽기는 처음이군. 바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건가?”

“복학해야 해서요. 개학하고 일주일 정도 늦을 것 같긴 한데 학장님이 편의를 봐 주시기로 했어요.”

엔터테인먼트 대표실에서 이수남과 커피를 마시며 제대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H.O.P. 사탕 반응이 엄청 나던데요? 10대 소녀팬의 마음을 아주 휘어잡으셨어요.”

“동민 군의 도움이 컸지. 여름에 자네 친구들과 마이크 잭선이 다녀간 이후로 실력이 많이 늘었다네. 안 그래도 이제 슬슬 활동을 마칠 계획인데 4월에 행사 참여로 로스앤젤레스에 갈 거니 거기서 봤으면 좋겠네.”

사탕으로 후속곡 활동을 시작한 H.O.P.는 노래와 귀여운 패션 아이템으로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일약 국민 아이돌로 등극하게 되었다.

음악방송에서 1위만 18번을 기록하고, 1996년 연말 가요 시상식 신인상을 모두 휩쓴 H.O.P.는 고등학생이 주를 이루고 있어 겨울방학이 끝나면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학업에 열중하고 앞으로 나올 새 앨범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수남의 마지막 도박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SN 엔터테인먼트는 십 대들의 팬덤을 업고 급성장을 하고 있었고, 이에 이수남은 시장 확장을 위해 걸그룹을 준비하고 있었다.

“온 김에 연습생을 보고 가겠나? 수백 명의 오디션을 거쳐 뽑은 아이들이라네.”

“걸그룹 말씀하시는 거죠? 데뷔 준비는 잘되고 있으세요?”

“아직 갈 길이 멀긴 한데, 올해 안에는 데뷔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

대한민국 음악 시장에서 꽤나 정확한 선구안을 가진 이수남은 H.O.P.가 성공적으로 데뷔하자마자 걸그룹을 준비했고, 최초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자 최초의 K-POP 걸그룹인 S.A.S.를 만들고 있었다.

별다른 수식어 없이 ‘대한민국 걸그룹의 역사는 S.A.S.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정의가 가능한 그룹으로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K-POP 걸그룹의 시초가 되는 그룹이었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주게 되고, 신드롬을 넘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가요계의 흐름을 바꾼다.

걸그룹의 등장으로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소비층이 음악 시장에 등장하고, 한국 대중음악의 상업성이 확장되는 계기가 된다.

최초의 걸그룹을 보고 동경하며 자라난 아이들이 10년 뒤, 20년 뒤 데뷔를 하면서 한국의 걸그룹들은 전 세계를 장악한다.

“안녕하세요. S.A.S.입니다. 선배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수남을 따라 연습실로 가자 가요계의 요정이라고 불리게 되는 세 명의 소녀들이 안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여름에 SN 엔터테인먼트를 뒤집었던 동민의 소문을 들어 본 소녀들이 이미 동민을 알고 있었다.

말년이 되면서 햇빛을 덜 보게 되어 밝아진 피부와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몸, 세계급 미남들과 어울리며 보정을 받은 동민의 외모를 보고 아직 고등학생인 연습생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연습하느라 많이 힘들겠지만, 고생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힘내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대표님을 괴롭히렴.”

대한민국 걸그룹의 역사에 있어 정말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해야 할 소녀들에게 덕담을 건넸고, 이수남에게도 청순, 청량, 순수, 청정 컨셉을 꼭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자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동민은 이수남이 H.O.P.의 성공으로 각을 잡고 준비 중인 다른 보이그룹 연습생을 보여 주었다.

“이 아이들은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에서 왔는데 잘하면 동민 군을 아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겠군.”

장수가 거의 불가능한 아이돌 그룹 중 최장수로 살아남아 끝까지 함께 활동하게 되는 그룹을 소개받았고, H.O.P. 멤버들에게 동민의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동민을 잘 알고 있었다.

“할리우드 하이스쿨의 다니엘이라면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 유명했었죠.”

“갑자기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군대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내가 그렇게 유명했었나?”

“할리우드 스타들이 고등학교에 찾아오면 누구라도 유명해졌을걸요? 드라마랑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당연히 유명하죠.”

가능한 미디어에 얼굴을 보이지 않고, 얌전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동민은 이미 한인 사회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주변에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비교적 덜 알려졌을 뿐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대표 인물이 되어 있었다.

“한인 사회가 워낙 작아서 건너 건너 아는 사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멤버들이랑 싸우지 말고, 활동 잘하고 대표님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다들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미국에 오면 연락해 밥 사줄게.”

이수남이 키우고 있는 남자 아이돌 연습생들과도 인사를 나누었고, SN 엔터테인먼트를 나와, 다른 기획사에도 놀러 가 작별 인사를 했다.

화곡동에 있는 비디오 매장에도 들러 박찬옥과 영화 이야기를 했고, 방송국에 찾아가 그동안 도움을 주었던 방송국 피디들도 만났다.

“군대 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네. 인사하러 다니는 것도 힘들다.”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젊어서 그런지 무리 없이 모두 만날 수 있었고, 제대하기 바로 전 마지막으로 우정의 부대에서 진행을 맡았던 뽀빠이 이상룡을 찾아갔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동민 군. 나는 억울하네. 검찰에서도 무죄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나를 죄인 취급 하고 있어.”

“억울하신 건 알고 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알아봤는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작정하고 찍었더라고요.”

정치 세력에게 미움을 산 이상룡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고, 아직 대한민국의 개인의 억울함을 밝히기엔 정권과 언론의 힘이 너무 강력한 사회였다.

성실하게 살아오며 사회에 봉사한 이상룡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었지만, 사실을 밝히기 위해 언론과 싸우기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싸움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방송국에서도 아무런 일을 주려하지 않는다네.”

“아마 한국 어딜 가시든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계속 괴롭힘을 당하실 거예요. 당분간 해외에서 지내시면서 비를 피하는 게 가장 현명할 것 같네요. 제가 제대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미국에서 자리 잡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말은 고맙지만, 그래도 한국에 남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네.”

바닥에서 시작해 힘겹게 자리를 잡은 그는 선뜻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으로 도피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동민은 설득하기보다는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고, 마음이 바뀌면 연락 달라며 할리우드 세탁소 쿠폰을 건네주었다.

만약 미국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연락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자신을 믿어 줘서 고맙다며 이상룡은 다시 힘든 싸움을 하러 떠났다.

뽀빠이가 하차한 우정의 부대는 마지막 회 촬영이 확정되어 있었고, 동민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영상부대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동민도 후임들의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제대하는 마당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김동민 병장님 제대 축하드립니다.”

“너희들도 조금만 더 고생하고, 우정의 부대가 없어져도 다른 행사랑 프로그램들이 있으니까 보직 변경 걱정하지 마.”

아주 알차게 보낸 2년간의 국방의 의무를 무사히 마쳤고, 부모님과 잠시 시간을 보낸 동민은 본격적인 영화 활동을 위해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 168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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