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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동민은 95년도와 96년도에는 특별히 관심이 가는 영화가 적은 편이기도 했고, 빨리 군대를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활동도 하고, 2년이면 제시카도 많이 성장할 거라 생각하여 한국에 왔었다.
하지만, 95년은 그야말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해였는데 작년 말 성수대교 붕괴를 시작으로 연초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히고, 얼마 전에는 사이비 종교 지하철 테러까지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가 일어났고, 두 달 뒤에는 상품 백화점 붕괴로 부실 공화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500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군대에 있긴 하지만, 내가 미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 와 있는데 이런 사고가 발생하게 둘 수 없지. 일단 부모님은 거기 못 가게 해야겠다.”
한국에 특별히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파릇파릇한 이등병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가장 든든한 현금이라는 친구가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것이 무궁무진했다.
“일단은 아빠를 설득해야겠네.”
아빠가 동민보다 한국에서의 인맥은 월등하게 많았기에 아빠를 통해 소문을 낼 생각이었고, 거기다 방송국 출신이니 기사를 내거나 뉴스에 공론화를 시켜버릴 계획을 세웠다.
“그게 정말이냐? 그런 정보는 어디서 받은 거야?”
“얼마 전에 대구에서 끔찍한 사고가 있었잖아요. 작년에 성수대교도 무너졌고요. 그래서 정부랑 군대에서 안전 진단을 몇 군데 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쁜가 봐요. 그중에 상품 백화점은 지금 당장 무너질 정도로 위험하다니 절대 가시면 안 돼요. 그런데 경영진에서는 어떻게든 사실을 숨기고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던데 아빠가 좀 알아봐 주세요.”
“그래. 잘 알고 있는 기자들이 있으니 취재를 해 보라고 하마.”
동민은 아빠에게 상황의 심각함을 강조했고, 활동비가 들더라도 꼭 취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서대진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품 백화점의 심각함을 알려 주었다.
“나야 원래 백화점 안 가니까 상관없는 것 같은데 주변에 조심하라고 말은 해 줘야겠다.”
“잘 알고 지내는 기자는 없어요?”
“있긴 한데 전부 연예부 기자라서 사회부랑은 관련이 없을걸?”
“그래도 기자들끼리는 친분이 있을 거니까 상황이 심각하다고 알아보고 기사를 써 달라고 해주세요.”
“알겠어. 대신 이번 백투홈 뮤직비디오는 휴가 때 찍어 주는 거지?”
“예전보다 실력이 더 늘었으니 기대해도 좋은데 기사만 잘 내 준다면 제대로 만들어 드릴게요.”
아빠와 서대진의 위력은 동민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처음에는 신문 기사에 상품 백화점 내부 식당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의 진술이 올라오더니 상황의 심각함을 알고는 뉴스에도 부실공사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대구 참사와 성수대교 사건으로 예민한 국민들이 관심을 보이자 아빠는 아예 방송국장을 통해 그것은 알고 싶다 다큐멘터리 방송까지 편성을 해 버렸다.
“동민아. 결국 정부에서 나서기로 했더라. 그리고 네가 말해 준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 같던데?”
“그런데 아직 영업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영업 중인 백화점을 닫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확실히 조사를 하기로 했나 봐.”
여기까지 진행되는데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백화점이 무너지는데 보름가량만 남았기에 동민은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품 백화점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 것 같네. 정부에서 정밀 조사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원래 역사처럼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겠지.”
동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 죄책감을 어느 정도 덜었다는데 만족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상품 백화점에 영업정지 처분이 떨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은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백화점이 무너질 수도 있다니.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
“그래도 미리 파악해서 다행이지 말입니다.”
“사람들 있는데 무너졌으면 정말 끔찍하긴 하겠다.”
부대 선임들도 상품 백화점 뉴스를 보고 말세라느니 이러다 군대에서 다치는 거 아니나며 수다를 떨었다.
“동민아. 이번에 UDT 홍보 영상 촬영 간다던데 정말 괜찮겠어? 그냥 못 간다고 하고, 거기서 자체적으로 촬영해도 괜찮은데 가면 쉽지 않을걸?”
“이병. 김동민. 괜찮습니다. 직접 현장을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 한번 가 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을 거야.”
동민이 상품 백화점에 더 신경을 쓸 수가 없는 이유 중에 올해 진행되는 대한민국 해군 특수전 전당에서 시행되는 해군 특수전 부대의 훈련 영상 촬영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로 일정이 잡혔는데 촬영하는 김에 국방부 홍보용 영상을 만들자라는 의견이 나왔고, 동민이 차출 겸 자원을 하게 되었다.
이번 훈련은 수중파괴대 훈련으로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의 수료 과정을 촬영하는 것으로 장기 프로젝트였다.
주 교육 내용은 적 해안정찰, 첩보 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 폭파, 암살, 해안 장애물 제거, 기뢰 제거, 요인 구출 및 납치 등이 있었고, 거기에 추가로 육상, 해상 및 공중 특수작전, 직접 타격, 해상, 대테러, 경호 등이 더해졌다.
“막내가 고생하러 간다니 미안하긴 하지만, 갔다 오면 포상 휴가 받을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걱정되겠지만, 동민이라면 믿고 보낼 수 있겠네.”
동민의 영상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선임들은 자신이 가는 것보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임이 더 뛰어난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거기다 방송국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라 잘못하면 방송국과 주도권을 가지고 눈치 싸움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야외 촬영에다 숙영을 해야 하기에 다들 가기 싫어했다.
반면 동민은 미래에 전쟁영화를 촬영하려면 군사 관련 영상 경험과 지식이 많을수록 유리하기에 UDT 훈련 촬영은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
선임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진해 해군기지로 이동한 동민은 해군 특수전 훈련 12주 코스를 처음부터 함께 경험하게 되었다.
“반갑네 이번 다큐멘터리를 책임지는 최PD라고 하네. 군에서도 촬영을 한다더니 자네가 담당인가 보군.”
“안녕하세요. 국방홍보원에서 온 김동민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혹시 구면인가?”
“사실 입대하기 전에 드라마에 잠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방송국 사람들 중에는 샌드 시계에 출연한 동민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고, 뱀파이어랑 인터뷰에도 나왔다는 걸 알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연기자인 줄 알았더니 감독을 준비 중이었군. 미국에서 활동하는 친구는 처음 만나 보는데 앞으로 12주간 잘 부탁하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비가 많이 부족해서 도움을 부탁드릴 일이 많겠네요.”
아무래도 군대 특성상 촬영 장비가 좋을 수 없기에 방송국 장비를 함께 써야 했고, 영상 자료도 방송국 측 테이프를 활용해 편집을 해야 했다.
보통이라면 군대에서 파견된 이등병에게 협조를 잘해 주지 않았겠지만, 동민이 할리우드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하자 큰 관심을 가졌고, 군 생활이 힘들지 않냐면서 오히려 더 잘 챙겨 주기 시작했다.
“훈련 과정을 주차별로 촬영해 편집할 계획입니다. 군에서도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협조해 주겠다고 하네요.”
“안전과 보안 관계상 촬영이 불가능한 훈련을 제외하고는 모든 촬영을 허가받긴 했지만, 촬영이 어려운 훈련을 따라가기는 힘들 것 같네요.”
아무래도 특수전 훈련이다 보니 사격과 폭파, 공작 등의 훈련도 포함되어 있었고, 보안에 민감한 훈련은 접근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기본 체력 훈련이나 수영, 잠입, 해상 훈련 등 볼거리가 화려한 훈련을 촬영할 기회가 있었고, 수중 촬영을 위한 특수 카메라도 준비해 두었기에 다양한 상황에서도 영상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촬영팀이 고생하겠네. 촬영감독이 그나마 해군 출신이라 다행이야. 자네는 어떻게 촬영을 할 계획인가?”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위주로 만들어 보려고요. 몇몇 개성 있는 훈련병을 밀착 촬영해서 스토리도 담아볼 생각입니다.”
동민은 심심한 다큐멘터리에 서바이벌 요소를 더해 흥미를 추가할 계획이었다.
미래에는 군 관련 스트리밍 방송이 활성화되는 데다가 상당한 관심과 인기도 얻기에 확실히 성공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구성할 수 있었다.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인걸? 어리숙한 훈련병이 정예병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에이스로 주목받는 친구가 중도 탈락하는 것도 넣으면 확실히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도와줄 수 있겠네. 자네 시나리오를 우리도 참고해도 괜찮겠나?”
“저야 그렇게 해 주시면 더 좋죠. 괜찮으시면 같이 제작 회의를 하시는 건 어떨까요?”
아직 어린 동민의 계획을 수정해 줄 생각으로 물어보았다가 예상보다 뛰어난 구성에 오히려 최PD가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 것 같은 구성에 보통 시청률이 낮은 다큐멘터리에 특정 인원만 보는 군 관련 영상을 동민의 아이디어로 만들면 전 국민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대박 느낌이 나는걸? 자네는 이등병이 어떻게 이런 걸 아는 거지?”
“전쟁 영화 만들었던 감독님들이 군대 썰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강제 주입이 되어버렸네요.”
적당히 핑계를 대긴 했지만, 실제로도 동민이 군대에 간다고 하자 전쟁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세탁소로 찾아와 군대 썰을 엄청나게 풀고 갔다.
거기다 군대에서 꼭 경험해야 할 것들과 군 영상을 촬영할 때 참고할 수 있는 테크닉도 가르쳐 주는 바람에 군대 관련 지식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동민이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수상을 한 감독들이 직접 알려주었다고 말하자 방송국 사람들은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에 동민을 핵심 인물로 받아들였고, 나이와 상관없이 동민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게 되었다.
“그럼 처음에는 훈련소에 입소하는 훈련병의 개인 인터뷰와 교관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하죠. 훈련 촬영이긴 하지만, 교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냉철하고 무섭지만, 병사를 걱정하고 챙겨 주는 장면을 꼭 담아야 할 거예요.”
동민의 의견대로 방송국 사람들은 훈련병 중 지원자를 받아 개인 인터뷰를 촬영했고, 그중에는 미래에 개인 스트리머로 활동하게 되는 인물도 몇 있었다.
거기다 UDT는 합동 훈련이기 때문에 여러 병과에서 다른 이유로 지원했고, 은근 경쟁 구도도 형성되었다.
특히 방글라데시에서 온 훈련병들은 대한민국 훈련을 해외 군대가 와서 받는다는 신선함도 더해 주었다.
“훈련 수료율이 30% 내외라고 하는데 마지막까지 버틸 자신이 있나요?”
“저는 UDT 수료를 하기 위해 1년간 체력 단련과 수영을 하며 준비해 왔습니다! 기필코 마지막까지 남겠습니다!”
“여러 훈련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 훈련이 가장 기대되고 걱정되나요?”
“지옥주에서 많이 낙오된다고 들었습니다. 힘들겠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도록 하겠습니다!”
< 139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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