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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김치 재벌-111화 (96/265)

< 111 >

남녀가 위기의 순간을 함께 겪으면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성인 남녀도 그런 상황에선 눈이 맞게 되는데 사춘기 여자 아이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거기다 뱀파이어 분장을 하고 엘레강스한 복장을 입고 있는 동민의 모습은 말 그대로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왕자님과 같았다.

“괜찮니? 나도 정신이 없어서 다쳤는지 확인하지도 못했구나.”

“저는 괜찮아요. 다치지 않으셨어요?”

“놀라긴 했는데 다행히 멀쩡해. 그러고 보니 이름을 제대로 못 물어봤구나. 난 다니엘이야.”

“저는 제시카예요. 구해줘서 고마워요.”

제시카는 얼굴을 붉히며 동민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생각보다 빨리 그녀의 부모님이 세탁소로 찾아왔다.

“제시카! 괜찮니?”

“아무렇지도 않아요. 여기 있는 다니엘이 저를 구해 줬어요.”

그녀의 부모는 딸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 동민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여기 세탁소는 상당히 특이하네요.”

“할리우드에 있다 보니 유명 배우와 감독이 많이 찾아오거든요.”

“저희 딸도 연기를 시작했는데 언젠가 여기에 사인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네요.”

“분명 그렇게 되실 겁니다.”

동민은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기에 스타가 될 거라고 말해 주었다.

제시카의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 삼촌과 이번 지진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부모님이 한눈을 판 순간 제시카가 다가와 고맙다며 뺨에 키스를 해 주고는 후다닥 도망갔다.

갑작스러운 기습 뽀뽀에 동민이 굳어 버렸고, 제시카는 부끄러워하며 부모님의 차에 들어가 숨었다.

제시카가 돌아가자 동민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무리 연애를 하지 않은 동민이라도 제시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기에 그 마음을 받아 주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동민 역시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다 보니 심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고, 그 순간 옆에 있던 제시카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가 예쁘기도 하고 앞으로도 아주 훌륭하게 자라나는 걸 알고 있기에 더욱 고민이 되는 것이었다.

“내 스타일이긴 한데 중학생이랑 사귀어도 괜찮은 건가? 4살 차이 나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아직 고등학생이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

너무 오랜 기간을 솔로로 지내온 동민은 밤새 고민을 했고, 이 나이대 남자아이들처럼 벌써 2세 계획까지 만들었다.

밤새 김칫국을 양동이 채 들이킨 동민은 다음 날 아침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실의에 빠졌다.

“아니야. 캠프 노웨어에 출연한다고 했으니 거기 찾아가면 볼 수 있겠지?”

동민은 빨리 뱀파이어랑 인터뷰 촬영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지진 피해로 인해 스케줄이 연기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세탁소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여기가 맞으려나? 어? 동민아 정말 여기 있구나.”

“호찬이 형? 혼자 여기까지 찾아온 거예요?”

“한인 타운에서 가깝던데? 그나저나 미국 도착하자마자 환영식이 너무 화끈한 거 아니야? 어제 깜짝 놀랐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LA 다져스에 입단한 박호찬이 세탁소로 찾아왔다.

그는 대학교 2학년의 나이에 대한민국 최초 메이저리거로 미국에 진출했고, 100만 달러라는 큰 이적료를 받으며 입단했다.

거기다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바로 진출한 몇 안 되는 선수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시차 적응은 했어요? 어제 놀라서 잠 못 잔 거 아니에요?”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조금 잠을 설치기는 했지.”

박호찬은 아직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모든 것이 신기하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동민의 눈에 박호찬은 한국에서 갓 건너와 미국 문화에 먼저 적응해야 하는 것이 보였다.

그가 큰 연봉을 받고 바로 메이저리그에 입단했지만, 문화 차이와 리그에 바로 적응하지 못해 올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2년간 적응 기간을 거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어 공부는 했어요? 내가 교재랑 과외 선생님 보내 줬잖아요.”

“그게, 운동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못 했네. 아무래도 야구 선수는 영어 실력보다 야구 실력이 더 중요하잖아.”

시간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뭐 영어를 못하면 고생하는 건 호찬이 형 본인이니 앞으로는 열심히 공부해요. 여기는 과외 선생님이 넘쳐나니까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김치는 제가 주는 거로 먹어요. 형이 먹는 김치는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다른 선수가 마늘 냄새 난다고 할 거예요. 운동하다 보면 땀이 많이 흘려서 마늘 향이 날 수밖에 없는데 제가 주는 김치는 마늘 향을 줄여서 그나마 괜찮을 거예요.”

토종 한국인 박호찬은 미국에서도 김치를 꼭 챙겨 먹어야 했고, 실재로 다른 선수들이 마늘 냄새가 난다며 코치에게 컴플레인을 한다.

외국인에게서는 치즈 냄새가 나는 반면 실제로 한국 사람에게서는 마늘 냄새가 난다.

한국에서만 살던 사람은 익숙해져 느끼지 못하지만,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마늘 향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박호찬은 초반에 마늘 냄새로 동료들에게 몇 번 항의를 받기에 예방할 수 있도록 특별한 김치를 먹으라고 했다.

“김치는 마늘이 많이 들어가야 맛있는데 꼭 그거 먹어야 하냐?”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마늘 향이 강하긴 해요. 못 믿겠으면 다른 선수들이 형한테 갈릭 스멜이라고 하는지 안 하는지 직접 경험해 봐요.”

박호찬과 음식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하다가 뒤늦게 세탁소에 걸려 있는 사인들을 보고 물어보았다.

“이게 다 미국 배우들이 사인해 준 거야? 누가 누군지 모르겠네.”

“형은 훈련하느라 영화도 잘 안 보죠? 아는 배우 있어요?”

“람보랑 코만도는 알지. 작년에 그 공룡 나오는 영화는 나도 봤어.”

동민의 예상대로 박호찬은 조니 데브나 리버 피닉서는 모르고 있었고, 아놀드는 그래도 알았다.

의외인지 당연한 건지 원초적인 본능에 나왔던 샤론 스톤스는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집이랑 세탁소가 가깝네. 경기장이랑 세탁소 가운데 집이 있으니 자주 놀러 올게.”

“이렇게 미국에서 보니 신기하긴 하네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탁해요.”

박호찬은 미국에 동민이 있어 든든하다며 좋아했다.

다행히 LA 다져스 홈구장은 다운타운 바로 위에 있었고, 한인 타운은 다운타운 서쪽에 있었다.

구장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할리우드가 있어 박호찬의 활동 반경과 아주 가까웠다.

동민이 지내는 세탁소를 확인한 박호찬은 자주 방문하겠다며 돌아갔다.

촬영 스케줄을 계속 미룰 수 없기에 스튜디오는 빠르게 시설을 복구했고, 일주일도 안 되어 동민은 뱀파이어랑 인터뷰 촬영을 하러 갔다.

혹시나 하고 캠프 노웨어 배우 대기실을 기웃거리자 누군가를 찾고 있는 제시카와 눈이 마주쳤다.

“다니엘 오빠!”

그녀가 후다닥 달려오더니 동민의 품에 쏙 안겨 버렸다.

기습 포옹에 동민이 당황했지만, 헤벌쭉한 표정으로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날 생각만 하면 무서웠는데 오빠를 보니 안심이 되네요.”

“나도 제시카가 괜찮은지 걱정 되더라. 이렇게 보니 다행이네.”

이전에는 길게만 느껴졌던 엑스트라 대기 시간이 제시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할리우드 고등학교에 김치 미남이 있다더니 그게 오빠였네요.”

“응? 내가 다른 학교에서도 유명해?”

“로스앤젤레스에서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거의 다 오빠 이야기 들어 봤을 걸요? 유명 배우들이 직접 찾아오고, 특별한 사람에게 김치를 직접 준다는 전설을 들어 봤어요.”

제시카의 말처럼 동민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상당히 유명한 학생이었다.

그동안 기행을 많이 하기도 한데다 공부도 잘하고, 미소년으로 성장하다 보니 신비한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인기가 많았는데 여자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는 소문에 여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오빠는 여자 친구 안 사겼어요?”

“너무 바쁘기도 했고, 운명의 상대를 기다렸지. 아무나 사귀고 싶지 않았거든. 제시카는 남자 친구 있어?”

“저도 아직 남자 친구를 만들어 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운명의 상대는 만난 것 같아요?”

“응. 운명적으로 만난 것 같아.”

결국 동민은 제시카와 꽁냥꽁냥한 관계가 되었다.

처음에는 중학생과 사귈 수 없을 거라 생각 했는데 귀여운 제시카가 끼를 부리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시카도 이렇게 적극적인 아이가 아니 였는데 지진을 함께 겪으면서 눈에 콩깍지가 심하게 씌여 있어 동민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춤을 좋아하는 제시카는 동민이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에 나왔다는 것도 너무 멋있어 보였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따끈따끈한 새내기 커플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두 사람을 갈라놓을 시련이 금방 찾아왔다.

“끝나고 시간 맞으면 또 봐요.”

“혹시 못 만나면 세탁소로 전화해.”

제시카가 연기를 할 시간이 되어 촬영하러 떠났고, 동민도 뱀파이어랑 인터뷰로 돌아가야 했다.

“컷! 좋았어. 다음 장면 준비해.”

“다니엘. 생각 보다 연기를 훨씬 잘하는데? 배우 해도 되겠어.”

“연기를 잘하는 현역 배우들에게 배워서 그런가 봐요.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동양인이 배우로 살아남기 힘든 거 알면서 그래요. 저는 딱히 배우 할 생각은 없어요.”

토미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가 동민의 연기를 칭찬했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 짧은 준비 시간에 브래들리가 동민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 보았다.

“아까 그 꼬마애는 누구야? 분위기가 아주 달달하던걸?”

“오! 다니엘이 드디어 여자를 사귀는 건가? 이건 아주 큰 사건이군.”

화장실에 다녀오던 브래들리가 동민이 제시카와 있는 것을 우연히 보았고,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두 사람의 관계를 바로 알아보았다.

다들 동민이 연애를 시작했다는 소리에 큰 관심을 보였고, 난처한 상황에 빠진 동민은 촬영이 다시 시작되면서 잠시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자마자 리버 피닉서까지 합류하면서 어떻게 제시카를 만났는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정말이지 영화 같은 만남인걸?”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생겼어?”

“귀엽긴 하던데 혼혈 같아 보이더라.”

이성 경험이 아주 많은 뱀파이어들에게 이성 교제 조언을 한참 동안 들어야 했다.

“우리한테 연애 상담 받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줄 알고 있어?”

“형들은 그냥 얼굴로 다 했을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지만, 진도를 나가는 데 더 중요한 게 있지.”

“제시카는 아직 중학생이라고요.”

“너도 아직 고등학생이니 상관없지 않아?”

워낙 여자를 많이 만나본 톰 크루스와 브래들리 피트의 도움이 되는 듯 안 되는 참견을 듣다 겨우 빠져 나왔고 제시카가 촬영 중인 현장을 찾아갔다.

“컷!”

< 111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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