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2 >
누가 뭐라고 해도 1993년의 최대 흥행작은 주라식랜드였다.
깔끔한 컴퓨터 그래픽과 실재 공룡 로보트 모형이 더해져 살아있는 듯한 영상을 완성하고, 스필버그 감독 특유의 모험 스토리가 더해져 명작이자 흥행작이 완성된다.
시대를 앞선 작품이자 털미네이터 2를 이어 영화에 컴퓨터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미래를 연 작품이기에 겨울 방학에 동민이 현장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은 자체적으로 제작사를 가지고는 있지만 외부 자금을 받아들이긴 해야 했고, 이번에도 당연히 동민이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
그렇게 93년의 최고 흥행작에 이미 투자를 완료했기에 내년 투자는 큰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주라식랜드가 있으니 든든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영화를 놓칠 순 없겠죠?”
“당연하죠. 인센티브는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어떤 영화에 지분을 확보할까요?”
닐은 일 년 중 이때가 가장 긴장되고 재미있다며 귀를 기울였다.
“일단 여기 먼저 투자하는 거로 해요.”
“로빈스 윌리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가족 영화로군요. 이것도 적당히 성공할 것 같네요.”
“적당히는 아니고 아마 대박 날 거예요.”
“거기다 감독님은 나혼자 집에를 만드신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님이신데 미리 이야기하셨나 봐요.”
동민과 상당히 친분이 있는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로빈스 윌리암과 함께 만드는 영화였는데 배경은 샌프란시스코이지만 주로 할리우드에서 촬영하기에 자주 보러 갈 예정이었다.
“나혼자 집에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약간 물이 오르셨더라고요. 이번에도 느낌이 좋아요.”
“스토리도 상당히 특이하네요. 이혼당한 남자가 자신의 아이들을 보기 위해 여장을 해서 가정부로 취업한다니. 로빈스 윌리엄이라면 잘 소화할 것 같네요.”
불조심 여사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동민은 전생에 마스크 분장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장면을 보고 상당히 놀랐었다.
분명히 가면을 썼는데 실제 인물 같아 보여 무섭기도 하면서 신기하고, 로빈스 윌리엄의 아슬아슬한 연기에 가슴을 졸이며 보다가도 웃었던 기억이 났다.
서서 소변을 보다 아이들에게 정체를 들키는 장면과 전 부인의 데이트 상대를 괴롭히려고 후추를 먹였다가 하임리히법으로 그를 살리려고 분장이 벗겨지는 장면도 떠올랐다.
불조심 여사는 당연히 흥행 성적도 상당히 좋았는데 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북미에서만 2억 2천만 달러를 벌고 해외에서도 2억 2천만 달러를 벌면서 총 4억 4천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한다.
로빈스 윌리엄은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고, 크리스 감독은 작품상을 받는다.
아카데미에서는 분장상을 받고, 작품성도 나름 인정받게 된다.
“크리스 감독님. 나혼자 집에 2편 반응이 좋던데요?”
“전편보다는 못하지만,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 같구나. 이번에는 네가 도와줘서 훨씬 편하게 영화를 만들었구나.”
“다음 작품에도 제가 투자 했으니 그때도 찾아 갈게요.”
“불조심 여사 말하는 거구나. 그래 로빈스 윌리엄도 네 이야기를 하던데 다음에 같이 세탁소로 놀러 가마.”
잠시 크리스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로빈스 윌리엄은 죽은 시인의 소사이어티 이후로 보지 못했는데 드디어 세탁소로 초대하게 되었다.
그와 통화를 마치고 투자 서류에 사인을 마쳤다.
작년에 이어 연속으로 크리스 감독에게 투자를 했고, 다음으로 투자할 영화를 확인했다.
“이 영화는 탐 크루스가 주인공인 법정 영화로군요. 얼마 전에도 해군 법정 영화에 나왔었는데 이런 쪽을 좋아하나 봐요.”
“법정 영화가 심리적 긴장감을 올리기엔 좋거든요. 탐은 액션이랑 스릴러나 드라마 영화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네요.”
동민이 다음으로 선택한 영화는 로펌이라는 법정 스릴러 영화로 존 그리샴의 소설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함정에 빠진 젊은 변호사 탐 크루스가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 이였는데 미국에서만 1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꽤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
법정 영화라서 그런지 제작비도 얼마 들지 않았기에 쉽게 투자를 진행했다.
사인을 마치고 다음 영화를 보여주자 닐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또 법정 영화인가요?”
“이건 시나리오가 워낙 좋아서 상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거기다 톰 행스크라면 분명 역을 잘 소화할 거예요.”
“그래도 동성애를 다루고 에이즈 환자가 주인공이라면 분명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더 훌륭한 작품인 거죠.”
필리라는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한 법정 영화를 찍기 위해 톰 행스크는 20kg이나 감량하며 열연한 끝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결국 수상을 하게 된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이유로 로펌에서 버림받은 톰 행스크를 도와주는 개인 변호사로 던젤 워싱턴이 출연하고, 엑스트라로 아직 무명인 안토니 반데라스도 출연했다.
영화에는 흥미로운 펙트가 하나 있는데 톰 행스크를 해고하는 로펌의 중역으로 출연하는 배우가 실제 동성연애자에 에이즈 환자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영화 개봉 후 1994년 사망한다.
필리의 미국 흥행은 탐 크루스가 나오는 로펌에 밀려 7천 7백만 달러밖에 달성하지 못하지만, 해외에서 두 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면서 2억 달러를 넘는 흥행을 기록하게 된다.
톰 행스크도 이 영화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배우 반열에 오르고 다음 해에 연이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한 번 더 받으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확실히 다니엘의 말대로 작품성은 뛰어난 것 같네요. 어차피 제작비도 2,600만 달러밖에 들지 않으니 투자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민도 어느새 3천만 달러 아래는 저예산 영화라고 생각할 만큼 투자를 여러 번 해 왔고, 이번에도 가뿐하게 톰 행스크가 나오는 필리라는 영화에 투자를 하기로 했다.
아직 젊은 던젤 워싱턴과 안토니 반데라스를 직접 보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가 보고 싶었지만, 스케줄상 어려울 것 같았다.
아쉽지만 투자 결정을 내리는 사인을 했고, 다음 영화로 넘어갔다.
“설마 이번에도 법정 영화는 아니겠죠?”
“전혀요. 이번에는 로맨스 영화니까 안심해도 괜찮아요.”
동민이 다음으로 투자할 영화를 선택하자 닐이 살짝 긴장했다가 제목을 보고는 반색했다.
“시애틀의 잠 못 자는 밤이라니 로맨틱하네요. 어? 그런데 또 톰 행스크가 주인공이네요?”
“그러게요. 톰 행스크가 작품 고르는 눈이 좋은가 보네요.”
재작년에 세탁소에 상담을 받으러 찾아왔던 탐 행스크는 이후로도 몇 번 놀러와 동민과 식사를 함께 했었다.
그는 로멘틱이나 드라마 이외에도 다양한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그에게 동민은 한국 음식을 계속 먹이며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설마 톰 행스크에게 투자하겠다고 미리 말 한 건가요?”
“이건 순순히 작품이 괜찮아서 그런 거예요. 작년에 야구 영화에는 투자 안 했었잖아요.”
동민의 설득에 넘어간 닐이 다시 영화 포트폴리오를 확인했다.
“여배우로는 메그 라이언이 캐스팅되었네요.”
“두 사람이라면 좋은 연기를 보여 줄 거예요. 시나리오도 상당히 가슴이 따뜻해지는 내용이더라고요.”
다행히 두 배우의 몸값이 아직 초고가에 다다르지는 않아서 제작비가 2,100만 달러로 측정되어 있었다.
미래에는 배우 출연료만 2천만 달러를 넘어서니 앞으로 물가 상승률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때 되면 매출도 그만큼 늘어나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시애틀의 잠 못 자는 밤은 2,100달러의 제작비로 10배인 2억 1천만 달러의 수익을 남기게 된다.
거기다 이 영화는 로맨틱 영화의 클래식으로 남아 오랫동안 재방영되기에 투자 가치가 확실했다.
“톰 이번에 나온 영화는 잘 봤어요. 살찌우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다니엘이구나. 네가 준 라면을 자기 전에 매일 먹었더니 금방 살이 찌더라고.”
“건강에 안 좋을 건데 걱정이네요.”
“다음 영화에서는 살을 빼야 해서 이제 안 먹으니 괜찮을 거야.”
동민은 톰 행스크에서 전화를 걸어 내년에 나오는 영화 두 편에 모두 투자했으니 열심히 연기하라며 격려 겸 협박을 했다.
“하하. 다니엘이 투자했다니 흥행은 확실하겠네. 그럼 더 열심히 연기 해야겠어.”
그에게 시애틀에서 촬영하면 잠시 들리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고, 투자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이번 영화는 수익도 수익 이였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동민은 시애틀 영화에 참교육을 해야 할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당연히 동민은 이번에도 촬영장에 찾아가 메그 라이언에게 김치를 열심히 먹일 계획이었다.
톰 행스크는 이미 동민에 의해 주기적으로 김치를 먹고 있기에 그를 만나는 척하면서 메그 라이언에게도 김치를 주입하고, 한국 교육을 실시해 한국에서 광고를 찍으며 망발을 못 하게 할 생각이었다.
메그 라이언이 한국에서 광고를 찍는 건 1997년이기에 아직은 시간 여유가 남아 있었고,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에 앞으로도 몇 번 더 투자해야 했기에 이번에는 확실히 얼굴 도장을 찍어 주어야 했다.
그러게 메그 라이언을 상대할 생각을 하다가 다음 영화로 넘어갔다.
“이 영화는 친구 분들이 출연해서 투자하시는 건 아니죠?”
“그런 게 없지는 않지만, 흥행도 꽤 괜찮을 거예요. 거기다 제작비가 엄청 저렴하잖아요.”
다음으로 동민이 선택한 영화는 조니 데브와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가 함께 출연하는 길버트 그레이트였다.
미국의 아이오와주 엔도라라는 한적한 외딴 시골에 사는 그레이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길버트 그레이트 역에는 조니 데브가 출연했고,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 어니 그레이트는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가 캐스팅되었다.
가족 드라마 이지만 꽤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높은 작품성을 가진 영화가 완성된다.
동민과 친한 두 사람이 출연하긴 하지만, 미국에서만 1억 달러가 넘는 티켓을 판매하며 좋은 성적을 기록하기에 투자하기로 했다.
거기다 제작비는 고작 1,100만 달러밖에 들지 않았다.
해외 수익까지 합한다면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하는 영화였고, 당연히 투자를 해야 했다.
조니 데브에게는 이미 투자 사실을 말해 두었고, 리오에게는 말을 해 주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가 내년에 출연하는 이 남자아이의 삶이라는 영화에는 투자하지 않을 거라 더욱 고민이 되었다.
로버트 드니러와 함께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긴 하지만, 흥행에서는 참패를 하기에 투자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 한 영화에만 투자하면 자신 때문이 아니고 작품이 괜찮아서 그랬다고 이해하겠지?’
조만간 디케프리오를 세탁소로 불러 밥을 먹으며 설명해 주기로 마음먹고, 길버트 그레이트 영화 투자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 092 > 끝
ⓒ 아마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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