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1 >
동민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자 그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동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살짝 오한을 느낀 동민이 몸을 움츠리자 그가 동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 저희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에는 대부분이 백인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히스패닉과 흑인 친구들도 있지요.”
“그러게요. 오디션도 꽤 많이 보러 오던데요?”
“저희 프로그램은 수많은 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교육적인 목적도 있고, 영아의 인격 형성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책임 심사위원은 프로그램 책임자였고, 그가 무슨 이유에선지 밑밥을 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었기에 동민이 그의 말에 동의를 했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 물어보았다.
“저희는 프로그램을 일본에도 방영하고 있고, 조만간 중국에도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멤버 중에 아시아인이 없네요.”
“아시아 어린이 친구가 필요하신 거였네요. 그거라면 제가 아시아 커뮤니티에 홍보를 해서 잘 찾아보겠습니다.”
“아직 학생이신데 그런 부탁을 하면 안 되겠죠.”
그러면서 동민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냈고,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든 동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아… 저는 노래도 춤도 잘 못하는데요? 거기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 나이도 너무 많고요.”
“노래와 춤은 배우면 되지요. 거기다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에는 고등학생 멤버도 여러 명 있습니다. 다니엘 군은 동양인에다 어려 보여서 의상만 신경 쓰면 중학생이라고 믿을 외모 이니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겠군요.”
그의 말대로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멤버가 몇 명 존재했고, 동양인 특유의 동안을 가진 동민은 그들보다 확실히 어려 보였다.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외모 때문이었는데 그동안 세계 최강 미남들을 항상 보며 자라다 보니 알게 모르게 그들의 제스쳐를 습득하게 되었고, 성장기에 묘하게 영향을 받아 특유의 매력을 지닌 외모로 성장하고 있었다.
수많은 아이들을 보아온 담당자는 동민의 가능성을 바로 알아보았고, 마침 아시안 멤버가 필요했던 시점에 동민을 낙점한 것 이였다.
“한번 생각해 볼게요.”
지금 상황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동민이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어깨를 더 강하게 움켜쥐더니 그가 말했다.
“아시아인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에 출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영악한 프로그램 담당자는 동민을 어린 학생으로 보지 않고, 투자자의 입장에 놓고 설득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할리우드에 돌고 있는 동민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고, 동민이 계속 빠져나갈 궁리를 하자 비장의 한 수를 던졌다.
“디주니 클럽에 새로운 멤버가 되면 자기소개를 하는 짧은 클립이 있습니다.”
“으… 상상만 해도 싫은데요?”
얼굴을 공개하기 싫었던 동민이 몸서리를 치자 그가 당근을 제시했다.
“디주니 클럽에 나온다고 전부 유명해지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00명 중에 스타가 되는 건 1명 정도 이니까요. 나머지 멤버는 성인이 되어서도 평범하게 살아간답니다.”
그가 동민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개인 소개하는 장면에 김치를 보일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하겠습니다. PD님!”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을 보는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김치를 선보일 수 있다는 말에 동민이 그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출연하겠다고 했다.
‘그래! 이번 기수 멤버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셀럽으로 성장하니 지금부터 김치를 먹인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브리트니와 팀벌랙이 한식당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김치를 먹는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찍히는 상상을 하며 동민은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에 합류하기로 했다.
“아이고.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
“자~ 한 시간만 더 연습하면 끝이니 다시 일어나요. 앙 듀 투와~”
디주니에서는 내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기초를 익혀야 한다며 동민에게 보컬 코치와 안무 선생을 붙여 주었다.
보컬이야 한국인인 동민은 노래방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기본 이상은 했고, 이론을 배우니 금방 실력이 늘어났다.
하지만, 춤은 다른 이야기였고, 여자 아이돌 안무만 즐겨 보던 동민은 기초가 필요하다며 발레 동작을 배워야만 했다.
“노래를 잘하는 법을 알려 달라고?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담아 내뱉으면 되는 거야. 진심으로 고통을 호소해야 해.”
동민은 노래와 춤을 배우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요령이나 팁을 물어보았다.
잘 지내고 있는지 겸사겸사 확인도 할 겸 전화한 커트니 코베인은 진심을 담으라는 이상한 말만 했다.
“뭐? 디주니 미미 하우스 클럽에 나간다고? 대중 미디어에 몸을 팔다니 정말 부끄럽군.”
인디밴드 출신에 반골 정신으로 뭉친 홍대병 말기 환자 커트니가 동민이 디주니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하자 배신자라며 말하다가 웃으며 놀렸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고요. 요즘 술이랑 나쁜 거는 줄이고 있죠?”
“이 테라피스트인가 하는 사람 좀 돌려 보내줘. 매일 따라다녀서 죽을 맛이야.”
“그분도 확신이 생기면 알아서 돌아가실 거예요. 관리 잘해요.”
내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를 막기 위해 동민이 약물 치료사를 고용해 같이 다니도록 했더니 효과는 있는 것 같은데 그가 엄청나게 싫어했다.
동민도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기에 심리 상담사도 자주 보내서 그를 관리하게 했고, 바쁜 스케줄 중에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 보여 다행이었다.
“디주니 방송에 나간다고? 드디어 적성을 찾았군. 너 같은 꼬맹이는 그런 방송이 잘 어울리지.”
“조니도 디주니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 부러워서 그런 거죠?”
백수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조니 데브도 동민이 디주니 방송에 출연한다는 이야기에 그를 놀렸다.
자신도 미래에 디주니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걸 아직 모르는 그였지만, 워낙 특이한 캐릭터를 자주 하는 조니 데브라 디주니에 은근히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노래는 내 전문이 아니고, 차라리 리버 피닉서가 더 잘 알려 줄 수도 있을 거야.”
“아! 내년에 리오랑 같이 영화 찍는다면서요?”
“다른 사람 캐스팅은 몰랐는데 그 녀석이 동생 역으로 나오나 보구나. 어려운 연기인데 잘하겠지?”
“리오가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서 엄청 잘할 거예요. 형도 긴장해야 할 걸요?”
내년에 조니 데브와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는 길버트 그레이트라는 영화에 형제로 출연하게 되었다.
여기서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가 지적장애인 연기를 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
지금 리오는 성장판이라는 하이틴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었다.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에 나간다고? 너도 배우 하려고?”
“아니 배우는 생각 없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대단하네. 거기 나오면 배우가 되기 쉽다던데.”
“동양인이 할리우드에서 배우하기 어려운 건 알잖아. 난 배우 말고 감독이 될 거야.”
오랜만에 세탁소에 놀러온 토미 맥과이어와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가 동민의 디주니 출연 소식을 듣고 배우를 하라고 설득했지만, 이소룡이나 성용처럼 액션 스타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운 걸 알기에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감독이 된다면 네 영화에 내가 특별히 출연해 줄게.”
“나도 출연할게.”
“누구 마음대로 나온다는 거야? 오디션 볼 거니까 합격하면 생각해 볼게.”
그들과 연기 이야기를 나누었고,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팁을 여러 가지 알려 주었다.
연기자를 준비 중인 앤젤리나는 동민을 부러워했고, 르네는 열심히 놀리면서 생방송을 보겠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마이클 잭선이 아주 부러워했다.
“디주니 미미 마우스 클럽은 내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야. 나도 나가 보고 싶었는데 구경하러 가도 괜찮지?”
“어. 아마 괜찮겠죠? 노래 잘하는 애들이 많아서 마이클을 보면 좋아하긴 할 거예요.”
“그래. 꼭 가고 싶어.”
마이클이 호들갑을 떨자 내년에 발생할 사건이 떠올랐고, 잘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CCTV는 보안상 설치하긴 했는데 사생활이 유출되지 않을까?”
“잘 관리해야죠. 마이클은 워낙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 어쩔 수 없어요. 자기 방어 차원에서 평소에도 신경 써야 해요.”
동민의 말을 듣고 마이클이 조심하겠다고 했고, 연말에 동민에게 춤과 노래 레슨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디주니에서 레슨을 받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고, 추수감사절이 다가와 투자한 영화들이 개봉했다.
“다니엘이 말한 대로 모든 영화 성적이 잘 나오고 있어요. 전반기 수익을 일주일 만에 벌써 넘겼어요.”
“올해 영화는 하반기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혹시나 하고 걱정했는데 결과가 잘 나오니 안심이에요. 이제 편한 마음으로 내년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겠네요.”
가장 먼저 요술 램프의 요정 지니와 나혼자 집에 2편이 인기를 끌었고, 위트니 유스턴의 경호원도 입소문이 돌면서 관객 수가 폭발하고 있었다.
닐이 현제 극장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었고, 내년에 제작될 새로운 영화의 시나리오도 동민에게 전달했다.
“이번 겨울은 주로 하와이에서 보낼 거니까 그 전에 다 결정해야겠네요.”
“스필버그 감독님의 주라식랜드 현장에 가는 거죠? 공룡이라니 기대되네요.”
로보트 제작이 완료되면서 주라식랜드 촬영이 얼마 전 시작되었고, 동민은 학기가 끝나는 대로 합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닐과 하반기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세탁소 전화기가 울렸다.
“할리우드 세탁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다니엘이니? 목소리가 조금 변한 것 같구나.”
“어드리 햅번 선생님이세요?”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원래 역사에서는 내년 초에 어드리 햅번이 암으로 새상을 떠났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는 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아직 못 가고 있었는데 어드리가 먼저 연락을 했다.
“요즘 몸이 조금씩 안 좋아지는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보려고 연락했단다. 겨울에 괜찮으면 우리 집으로 놀러 오지 않겠니?”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방학하자마자 바로 갈게요.”
어드리 햅번은 은퇴를 하고 스위스로 이사해 살고 있었다.
아들들과 살다가 아들도 장성하여 주변에 가정을 이루었고, 그녀는 검소하고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다.
동민이 그녀의 건강이 걱정하자 의사가 아직 괜찮다고 말했고, 늦기 전에 동민을 초대하고 싶어 연락했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네. 그럼 연말에 스위스로 갈게요. 그때 뵈어요.”
“그래. 건강하고 조만간 보자구나.”
하와이로 가기 전에 스케줄이 생긴 동민은 빠르게 내년 영화 투자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
“이미 주라식랜드 투자를 했으니 내년에는 투자할 영화가 줄어들겠네요.”
< 09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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