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할리우드 김치 재벌-79화 (64/265)

< 079 >

“점점 여기서 만드는 영화에 직접 투자하기가 힘들어지는데 다니엘이 미리 회사 지분을 확보해 두어서 겨우 가능하게 되었네요.”

“그동안 디주니의 침체기였는데 슬슬 회사가 살아나는 것 같아요. 주가가 더 비싸지기 전에 무리하길 잘한 것 같아요.”

“특이하게 로빈스 윌리엄이 성우로 나선다면서요?”

“아마도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성우로 활약하는 일이 많아질 것 같네요.”

동민이 마지막으로 들고 있는 영화는 디주니에서 31번째로 만드는 장편 애니메이션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였다.

디주니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치고는 아주 드물게 유색인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아랍 쪽이라서 할라딘이 중동 사람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원작 소설인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는 주인공이 중국 쪽에서 왔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고 완전 중국인이라고도 하기 힘든 것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있기에 아마도 위구르족이 아니까 하는 추측이 나오지만, 정확한 설명은 적혀 있지 않았다.

소설과 차이점도 꽤 있었는데 애니메이션에는 원작에 나오는 반지의 요정의 존재가 없어져 버리고 하늘을 나는 마법의 양탄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얼마까지 투자가 가능한가요?”

“다행히 다니엘이 디주니 주식 지분을 꽤 가지고 있어서 최대 절반까지는 가능할 것 같아요.”

총 2천 8백만 달러의 저렴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는 전 세계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고 총 5억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벌어들인다.

특히 해외 애니메이션이 힘을 못 쓰는 일본에서도 40억 엔이 넘는 대박을 기록하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다.

동민이 그동안 돈을 버는 족족 디주니 주식을 사 모았고, 부활을 시작한 디주니의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전에 유의미한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영화에 투자하고 나면 남는 여유 자금이 거의 없었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동민은 영화에 투자하는 것 말고는 딱히 돈 쓸 일이 없었다.

“그럼 디주니 애니메이션에는 1천 4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거로 할게요. 작년에 투자한 털미네이터 2에 비교하면 다들 제작비가 저렴해 보여서 이 정도 금액은 부담 없게 느껴지네요.”

“털미네이터 2 흥행은 잘 이어지고 있어요?”

“벌써 개봉한 지 3개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상영관에 남아 있으니 왠지 흥행 기록을 달성할 것 같아요. 조만간 해외 홍보도 떠난다고 하더라고요.”

“카메룬 감독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네요.”

혹시 한국에 가면 동민도 같이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며 92년 영화투자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완성된 계약서를 가지고 올게요.”

이제는 업무 진행이 익숙해진 닐이 매끄럽게 일을 마무리 지으러 갔고 동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학교와 세탁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는 쿠안틴의 작업실로 가 편집과 음향작업을 도와주는 등 실무 경험을 쌓고 있었다.

“여긴 하나도 안 변했구나. 다니엘도 여전히 카운터를 지키고 있고.”

“카메룬 감독님? 이제 여유가 조금 생기셨나 봐요. 세탁소는 작년 여름 이후로 처음 오셨네요.”

동민이 지키고 있는 세탁소에 오랜만에 털미네이터 2로 바빴던 카메룬 감독이 찾아왔다.

“에드워드도 같이 왔다. 요즘 이 녀석 인기가 너무 높아져서 나보다 바쁘더구나.”

“몇 달 안 되었는데 오랜만에 다니엘을 보는 것 같네. 영화 개봉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애드워드 필통은 털미네이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자리 잡았고, 그는 단숨에 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나마 할리우드 세탁소는 감독과 배우들에게 비밀리에 알려진 특별한 장소라 기자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고, 마음 편히 식사를 하고 대화하기에 이곳보다 좋은 장소는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그들의 성공을 축하하며 동민은 특별히 삼겹살과, 목살, 가브리살에 항정살까지 돼지고기 모둠 코스를 준비해 주었다.

“아놀드도 왔으면 좋았을 건데 유부남이라 그런지 바쁘더군.”

“아놀드는 부부 동반으로 방문하겠다고 이미 예약까지 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럼 오늘은 맘 편히 먹을 수 있겠네.”

외국인을 위한 순한 맛 된장찌개까지 곁들여 먹으며 함께 돼지고기를 쌈 싸먹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카메룬이 홍보 활동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주에 일본으로 홍보를 갔다가 올 예정이란다. 한국은 일정상 이번에는 홍보가 힘들 것 같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한국 영화 시장이 성장하고는 있지만, 아직 일본이랑 비교하기는 힘들죠. 아쉽지만, 다음에 한국 시장이 성장하면 그때는 가는 거로 약속해요.”

에드워드는 일본에 간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고, 동민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지만, 학교에 가야한다며 거절했다.

털미네이터 2는 외화가 약한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미소년인 애드워드는 더욱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광고에도 여러 편 출연하고, 애드워드가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시장이 일본이 될 정도였다.

“감독님 다음 작품은 생각하고 있으세요?”

“글쎄다. 아직은 계획이 없구나. 당분간은 털미네이터 2로 계속 바쁠 것 같으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생각해 봐야지.”

카메룬 감독은 지금까지는 연출과 각본에만 참여하고 있었는데 동민과 스필버그 감독의 영향을 받아 이번 작품부터는 제작에도 참여했다.

털미네이터 2편 말고도 올해 카이누 리부스가 출연한 폭풍우 속으로에도 제작자로 참여를 했다.

“일본은 잘 다녀오시고 이제 여유 생기면 자주 놀러 오세요.”

“그러마. 안 그래도 작품 구상하기엔 여기가 이상하게 집중이 잘되더구나.”

“에드워드도 잘 갔다 오고 거기 팬들이 조금 극성일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가.”

“같이 가면 좋은데 아쉽네.”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가자.”

돼지고기를 다 먹고 동민의 강요로 김치를 포장해 간 두 사람이 영화 홍보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고, 이번에는 한동안 조용했던 조니 데브가 세탁소로 놀러왔다.

“여긴 마음의 안식처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아. 너도 처음 봤을 때는 꼬마였는데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었네.”

“조니는 요즘 뭐 하고 지냈어요? 가위 손가락 촬영이 끝난 지 1년이 넘었는데 다른 작품은 안 해요?”

“아직은 딱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서. 대신 개인 사업을 준비하느라 조금 바쁘네.”

조니 데브는 가위 손가락을 찍으면서 정식으로 연인이 된 위노 라이더와 동거하고 있었는데 그가 쉬고 있는 반면 위노 라이더는 열심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슨 사업을 하려고요?”

“할리우드에 라이브 클럽을 하나 만들려고 준비 중이야.”

“음악을 좋아하더니 결국 라이브 클럽을 직접 차리네요. 조니가 사장이라면 매출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조니 데브는 바이퍼룸이라는 라이브 클럽을 차리게 되고 리버 피닉서도 자주 놀러와 공연을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리버 피닉서가 여기서 사고를 당하기에 동민이 지켜보면서 관리할 생각이었다.

동민이 리버 피닉서 생각을 하다 문득 떠오른 음반이 있어 조니 데브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열반의 4번 마인드 앨범이구나. 최근 들어 봤는데 정말 신선하면서 충격적이었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들어 봤어요? 모를 거라고 생각 했는데 대단하네요.”

동민이 열반의 앨범에 투자를 했고, 그들을 잘 안다고 말해 주었다.

“라이브 클럽이 완성되면 이들에게 공연을 해 달라고 부탁해 볼게요.”

“그래 다음 달에 개장하니까 스케줄 미리 알려줄게 나도 직접 만나보고 싶네.”

조니 데브는 전통 록 음악을 더 좋아했지만, 열반의 얼터너티브 록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리버 피닉서에 관해서도 말이 나왔고, 그와는 성향이 비슷해 종종 만나고 있다고 조니가 알려주었다.

“다음에는 같이 세탁소에 놀러 와요.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요.”

“그래. 다음 주에 보기로 했는데 여기서 만나면 되겠네.”

조니 데브의 말대로 일주일 뒤 리버 피닉서와 함께 다시 나타났고, 이들과 비교해 요즘 가장 바쁜 카이누 리부스도 시간을 내어 방문했다.

“일 년 만에 오는 것 같은데 여긴 역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다니엘은 잘 지냈니? 또 자란 것 같은데?”

“이제 고등학생이니까요. 형들은 얼마 전에 영화 개봉했던데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 영화관에서는 못 봤어요.”

영화관에서는 못 봤지만, 따로 필름을 구해 개인적으로 관람했기에 두 사람이 동성 연인으로 출연한 나의 개인적인 아이다호 이야기를 했다.

“영화는 정말 아름답게 잘 나왔는데 촬영할 때도 그랬고, 다시 영화를 보니 이상하게 기분이 쓸쓸해지더라.”

“일부러 그렇게 만든 영화라서 그래요.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긴 한데 거기 너무 몰입하면 안 좋으니까 빨리 털어내요.”

어린 동민이 조언을 하자 리버 피닉서와 카이누 리부스가 동생의 잔소리라 생각하고 웃으며 흘려 넘기려 했다.

하지만, 동민을 잘 알고 있는 조니 데브가 다시 강조하며 말했다.

“다니엘이 하는 말은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어. 이 녀석이 조심하라고 하면 조심해야 하는 거니까 두 사람 모두 신경 쓰는 게 좋을거야.”

두 사람이 반응을 보이자 조니 데브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겠다며 지금껏 동민이 해 왔던 일을 말해 주었다.

“다니엘이 정말로 그렇게 많은 영화에 투자를 했다고요?”

“카이누 형이 나올 드라큘라백작 영화에도 투자했으니 열심히 연기 해야 해요. 위노 라이더 누나한테도 안부 전해 주고요.”

세 사람 모두 연기에만 집중하였지 감독과 제작사, 투자자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동민이 그동안 경험했던 감독들과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과 뒷이야기를 해주자 다들 흥미롭게 들었다.

“스필버그 감독님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거구나.”

“후계자까지는 아니고 제자 5호 정도는 될 것 같네요.”

채식주의자인 리버 피닉서를 위해 비빔밥과 된장찌개, 야채김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최근 가장 핫한 털미네이터 2 촬영 이야기에 가장 관심을 가지며 여러 질문을 했다.

“난 T-1000이 쇠창살을 지나올 때 깜짝 놀라서 영화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니까.”

“나는 마지막에 아놀드가 용광로 안으로 들어가 사라질 때 눈물이 났어요.”

“나도 카메룬 감독님이 제작비로 1억 달러를 넘게 쓸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촬영장에 매일 찾아가서 옥의 티를 찾으며 괴롭혔죠.”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리버 피닉서의 상태를 지켜보았는데 아직은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워낙 멘탈이 약한 그이기에 자주 이런 자리를 마련해 꾸준히 지켜보기로 했다.

다들 오랜만에 모여 아늑한 세탁소 휴게실에서 보낸 시간에 만족하며 돌아갔고, 열반의 앨범이 역주행을 하면서 91년의 마지막이 가까워졌다.

< 079 > 끝

ⓒ 아마기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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