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6 >
“어깨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나무에 끈을 묶어 당기는 훈련을 했었지. 이후 고무 밴드를 활용하기도 했고. 작년 우리 공주 고등학교가 청룡기 준우승을 하는데 내가 큰 일조를 했는데, 투수로 나서긴 했지만, 종종 우익수로도 등판을 했고 19타수 6안타 3타점으로 0.316의 성적을 기록했지. 그리고 그때 나를 지켜본 대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이미 대학 입학은 확정되었단다.”
그의 야구 인생 이야기를 듣다 중간에 몇 번 말을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동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야구 이야기가 이어졌다.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들은 동민이 마지막에 그에게 할리우드 세탁소 쿠폰을 건네며 미국에 오면 도와줄 테니 연락 달라고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제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거든요. 혹시 미국에 올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이것도 인연인데 안내해 드릴게요.”
할리우드 유명 배우와 감독은 많이 알고 있지만, 운동선수는 아는 사람이 없기에 도시 투어를 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동민에게 세탁소 쿠폰을 건네받은 박호찬이 다시 눈빛을 빛내며 연설을 시작했다.
“올해인 91년 가을에 미국에서 한미일 청소년 야구대회가 열리지. 내가 공주 고등학교에서 4번 타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 나도 국가 대표로 미국에 가기로 했지. 조성만, 임선둥, 손경주 Top 3가 있긴 한데 나도 그 녀석들에게 밀리지 않으니 미국 가면 연락하마. 너도 내가 나가는 시합 꼭 보러 와야 한다.”
동민을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과정은 모르고 있었는데 호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올가을에 청소년 국가대표로 미국에 야구를 하러 온다고 했다.
그가 정식으로 미국 구단의 눈에 든 것은 93년 미국 버팔로 유니버사이드 대회에 나가서 은메달을 획득하면서부터이지만, 올해 미국에 방문하면서 MLB의 꿈을 키우게 된다.
동민은 코리안특급으로 성장해 대한민국에 큰 힘이 되어주는 그와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투머치토킹으로 지쳐 버려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동민은 박호찬의 집요함을 알지 못했고, 오늘 건네준 쿠폰 한 장으로 그와 아주 단단하게 묶여 버리게 된다.
“그럼 저는 서울로 돌아가야 해서 이만 가 봐야겠어요. 오늘 재미있었고, 기회가 되면 또 놀러 올게요.”
“피자 잘 먹었어. 조심히 가.”
야구부 감독과 선수들을 갑자기 나타나 처음 먹어 보는 피자를 20판 쏘고 간 동민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배가 든든해지니 그저 잘생기고 좋은 동생으로만 보였다.
떠나는 그에게 꼭 다시 오라며 다음에는 치킨도 괜찮다고 소리치는 선수들을 뒤로하고 대전으로 돌아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공주에 다녀온 며칠 뒤 동민은 드디어 현철을 아빠가 만든 기획사와 계약시킬 수 있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국에 돌아갔다.
“다니엘! 이쪽이야.”
평소에는 닐이 동민을 공항으로 마중 나와 주었지만, 오늘은 쿠안틴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동민의 집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쿠안틴은 계속 털미네이터 2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카메룬 감독님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이보그 액션 영화에 그런 인간관계를 넣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전편과의 인물 흐름을 너무나도 매끄럽게 연결시키면서 대서사시가 완성 되었더라.”
시나리오와 인물간의 갈등과 소년의 성장, 특수효과까지 쿠안틴은 침을 튀어 가며 이야기를 했다.
그에게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중간중간 해 주자 더욱 흥분했고, 집에 도착해서도 그와 한참을 털미네이터 2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이제 막 도착했으니 피곤할 테니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는 내가 만드는 영화 이야기를 하자고, 여기 시나리오 있으니 전부 읽어보고 이만 난 가련다. 알비봭!”
쿠안틴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털미네이터 흉내를 내고 떠났고, 동민은 그런 그에게 ‘아스따라 비스타 베이비’라고 답해 주었다.
다음 날 집으로 찾아온 쿠안틴과 영화 제작 일정을 짜면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출연료랑 기기 대여비가 꽤 비싸네요. 필름 가격도 만만치 않고요.”
“그나마 인맥으로 저렴하게 배우를 섭외하긴 했는데 카메라 임대료랑 필름 값이 가장 부담스럽네. 한 장면을 여러 번 촬영하긴 힘들겠어. 배우들이 최대한 실수를 안 하길 빌어야지.”
의외로 쿠안틴의 인맥은 상당했고, 비디오 매장에서 영화 모임을 가지며 알게 된 지인들이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촬영과 편집을 도와주기로 했다.
거기다 자신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면서 출연료를 아끼겠다고 했지만, 동민이 보기에는 그냥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로케도 이미 내가 다 알아보았고, 넌 촬영할 때 보조 스태프로 도와주면 될 것 같아. 대부분은 내가 해야겠지만, 한 사람의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니 부탁할게.”
“나도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스필버그 감독님과, 카메룬 감독님께 배운 것도 알려 줄게요.”
“두 감독님 이야기를 하니 내가 너한테 배워야 할 것 같네.”
동민은 드디어 자신이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한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고, 쿠안틴도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건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들떠 있었다.
동민의 합류로 원래 쿠안틴이 만들었던 개들이 저수지보다 완성도가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쿠안틴 작품 특유의 색은 그대로였다.
쿠인틴 옆에서 함께 독립 영화를 만들면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 때와는 다르게 모든 사항을 직접 준비해야 했기에 힘이 들었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았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여름방학이 금방 지나갔고, 세탁소와 가까우면서 중학교에 붙어 있는 할리우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다니엘. 이번에도 한국 갔다 왔지?”
“응. 홍콩도 잠시 다녀왔어. 리오도 잘 지냈어?”
“난 영화에 출연했지. 이번에는 비중이 꽤 많았다고. 조만간 개봉하니까 꼭 봐.”
리오나르도 디케프리오는 여름방학동안 크리처스3라는 그랩린과 비슷한 영화에 출연했다.
동민의 기억으로는 이 영화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내년에 출연하는 성장통이라는 하이틴 드라마에서 드디어 얼굴을 알리게 되고 늦게 얼굴이 피어나면서 금방 유명해진다.
아직은 어린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끔 장난치다가 웃을 때마다 여학생들의 눈에서 하트가 나오는 걸 보니 몇 년 뒤가 심히 걱정 되었다.
‘리오 전성기가 오면 세탁소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따로 만나야지 사람들 많은 데서 만나면 안 되겠다.’
리오와 간단히 안부 이야기를 마치고 토미 맥과이어를 찾자 그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 가고 있다고 했다.
토미가 스파이더가이로 월드스타가 되긴 하지만, 그 전에도 연기 활동을 계속하면서 좋은 평판과 실력을 쌓아 간다.
착한 얼굴만큼 인성도 좋은 토미 생각을 하다 문득 연기 학교로 전학 간 앤젤리나가 떠 올랐다.
그녀 역시 무명의 시기를 보내긴 하지만, 자신만의 매력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지인들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조니 데브가 떠 올랐다.
가위손가락으로 한창 인지도를 올리고 있었지만, 93년 리오나르도 디캐프리오와 함께 출연하는 영화에 출연하기 전까지 3년이나 공백 기간을 가지게 된다.
동민이 들려준 열반의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은 조니 데브는 라이브 클럽을 차리더니 열심히 기타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위노 라이더와 동거하면서 잘 살고 있었다.
“그나저나 리버 피닉서가 걱정이네.”
천성이 히피로 태어난 그는 아주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만큼 멘탈이 약하고, 유혹에 잘 빠져드는 타입이었다.
조니 데브에게 그를 신경 써 달라고 이야기 해 두었기에 종종 연락하며 관리하는 것 같긴 했는데 역시나 안심이 되지 않았다.
“카이누 리부스가 서핑 영화 촬영하고 있으니까 가서 친구 관리를 잘하라고 잔소리해야겠네.”
그동안 벌여 놓은 일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기에 정리하는 데만 시간이 꽤 많이 소유되었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쿠안틴의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쿠안틴이 촬영 중인 현장으로 달려가 그를 도와주었고, 저예산의 독립영화라서 그런지 한달만에 모든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났지만, 편집 작업이 남아 있었고, 쿠안틴과 익숙하지 않은 편집기를 가지고 용을 쓰고 있었다.
“프리미어 프로그램 안 나오나? 손으로 일일이 작업하려니 너무 힘든데.”
“프리미어 뭐라고? 편집 작업을 컴퓨터로 한다고?”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한 거예요.”
쿠안틴과 올드패션 방식으로 필름을 오려 붙여가며 작업하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편집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하다간 일만 늘어나고 제대로 하기 힘든데. 내가 조금 도와주마.”
“크리스 감독님! 고마워요.”
나혼자 집에를 만들었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동민에게 찾아와 편집하는 방법과 요령을 알려 주었고, 그의 도움으로 작업 속도와 정확도가 향상되었다.
“드디어 너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구나. 그런데 고등학생이 만들기엔 피가 너무 많아 보이는데?”
“제 영화는 아니고 쿠안틴 영화 만드는 거 도와준 거예요. 피와 쿠안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그러려니 하세요.”
쿠안틴도 크리스 콜럼버스의 도움을 고맙게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작품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었다.
“나도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님 아래서 시나리오 작가를 하며 조감독으로 일하던 때가 생각나는구나. 그때는 하루라도 빨리 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정작 감독이 되고 나니 그때가 편하긴 했다는 생각이 드네.”
쿠안틴이 만들고 있는 개들의 저수지 영화와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하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동민을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 했다.
“이제 시나리오 작업이 다 끝났고, 촬영을 시작하면 된단다. 배우는 전작과 거의 비슷하게 할 건데 장소에 따른 새로운 인물 몇 명만 추가되니 제작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구나.”
“약속대로 이번에도 제가 100% 지분 투자하는 거로 가셔야 해요.”
“그야 후속편을 만들 시 우선 투자 자격이 너에게 있는 것으로 계약하지 않았었니? 난 변호사를 만나고 싶지 않구나.”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은 동민에게 완성된 나혼자 집에 2편 시나리오와 제작 계획서를 보여 주었다.
쿠안틴도 궁금해하기에 대외비지만, 크리스 감독의 허락을 받고 함께 읽어 보았다.
“플라자 호텔이 배경이네요. 여기 주인이 그 사람 아닌가요?”
“너도 그를 알고 있구나. 직접 만나 보았는데 원하는 비용을 다 지불했는데도 자신을 출연시켜 주지 않으면 촬영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우겨서 그도 카메오로 나오기로 했단다.”
“왠지 관종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아마 앞으로 텔레비전에 자주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에요.”
크리스 감독이 플라자 호텔의 주인이자 성공한 비지니스맨인 맥도날드 트럼프와 만나서 협상했던 이야기를 했고, 특이한 인물이라고 말해 주었다.
“맥도 잘 지내고 있죠?”
“올해 작품 하나를 찍었고, 마이클 잭선과 자주 만나는 것 같더구나.”
< 07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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