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3 >
동민이 한국에 도착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낸 후 전화를 한 사람은 88 서울 올림픽 당시 만났던 대한민국 음악계의 가왕 조영필이었다.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이 있는 가왕은 그의 입지와는 다르게 성격마저 좋았고,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미국에서 엄청난 가수를 만났는데 이번 여름에 발매되는 음반을 가지고 왔거든요.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 연락 드렸어요.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나도 미국 가수라면 유명한 분들 말고, 신인 앨범도 자주 찾아 듣고 있는데 엄청난 가수라고 하니 궁금하긴 하구나. 그래 연습실 알려 줄 테니 찾아 오거라.”
동민은 가왕 조영필의 연습실 겸 작업실로 찾아갔고, 그의 밴드로 유명한 거대한 탄생도 만날 수 있었다.
“열반이라는 밴드인데 시애틀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얼터너티브 록 그룹이에요.”
조영필과 거대한 탄생은 정통 록을 더 선호 했지만, 음악이라면 딱히 장르를 가지리 않았고, 열반의 테이스트 라이크 틴 스피릿 이라는 곡을 듣고는 다들 감탄했다.
아직 발매 되지 않았기에 음반을 주지는 못 했고, 대신 마이클 젝선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앨범을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잘 나가고 미국 한인 사회에서도 유명한 조영필 이지만, 미국 현지 음악 시장에는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동민이 티파니아의 콘서트에 다녀온 이야기와 토미 페이저, 뉴키즈온더타운을 만났던 것을 말해 주자 그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앞으로 10대 팬을 겨냥한 가수가 나타날 거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사나위 밴드 소개 시켜 주세요. 만나보고 싶은데 이쪽으로는 아는 사람이 선생님 밖에 없어서 부탁드리러 왔어요.”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바로 이야기 해 두마. 다음에도 미국에서 눈에 띠는 가수가 있으면 알려 주렴.”
동민은 머라이어 캐리언과 휘트니아 휴스턴을 알려 주었고, 이들은 두 가수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마이클 잭선의 네버랜드 이야기를 해 주다 조영필과 거대한 탄생 밴드와 해어졌고, 다음날 사나위 밴드를 찾아갔다.
“네가 조영필 선배님이 말씀 하신 동민이구나. 너무 잘생겼는걸? 혹시 노래는 잘 부르니?”
미국에서는 워낙 잘생긴 남자들과 지내다 보니 강제 오징어행을 당했지만, 한창 성장기에 세계적인 미남들과 어울리다 보니 동민의 얼굴도 이목구비가 선명해지면서 매력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노래는 불러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음악 보다는 영상을 좋아해서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시험 삼아 한 번 불러 볼래?”
할리우드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한국에서는 시선을 사로잡는 미남으로 성장 중인 동민의 얼굴을 보고 시나위 그룹의 리더가 욕심을 냈다.
하지만, 동민의 음정과 박자를 무시하고, 고음도 아니고 저음도 아닌 밋밋한 노래 실력을 듣고는 빠른 손절을 시전했다.
“우리 메인 보컬이 그룹을 나가서 새로 뽑아야 하는데 노래 잘하는 친구 없니?”
“있긴 한데 미국인이고 한국어 할 줄 모르는데 괜찮아요?”
결국 동민에게 기대를 접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이제서야 물어 보았다.
동민은 지금 사나위에서 보컬으로 활동하며 가을눈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종수에게도 관심이 있었지만, 그가 탈퇴 하면서 독립하도록 부추기는 사나위의 베이시스트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다.
“현철이? 종수랑 같이 그만 뒀어. 둘이 같이 킨인가 하는 기획사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그 녀석은 왜 찾는 거야?”
동민이 찾아온 사람은 이미 밴드를 그만 둔 상태 였고, 다시 수소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굴 그렇게 찾아다니는 거야?”
“그런 사람이 있어요. 쿠안틴이 찾던 영화는 용산에 있었어요?”
“청계천 세운상가라는데 있더라고, 홍콩 영화 말고 동양 성인 영화도 몰래 파는 게 아주 재미있었어. 역시 불법적인 영상만의 매력이 있어.”
아직 청계천 복구 사업이 시작되기 전이었고,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빨간 비디오와 성인잡지가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B급 문화를 좋아하는 쿠안틴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보물섬 같은 곳이었고, 동민이 사람을 찾는 동안 그곳을 방문하며 비디오 테이프를 수집했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방안에서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의외로 언어에 소질이 있어 더듬더듬 한국어를 하면서 혼자 잘 돌아 다녔고, 동민은 현철이라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수소문을 한 끝에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했지만, 아직 중학생인 동민이 클럽에 들어가기는 힘 들었고, 결국 다시 조영필에게 부탁해 김종수를 만났다.
“현철이? 나랑 같이 기획사 들어가려다 나만 계약 되는 바람에 다시 밴드 만들려고 돌아다니던데 지금은 뭐 하는지 모르겠네. 전화번호는 있으니까 집으로 찾아 가봐.”
드디어 찾던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보한 동민을 이번에는 아빠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동민아. 이번에 개봉 할 영화 포스터 말인데, 이렇게 새로 만드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이제 한자는 좀 빼시라니까요. 저번에 영혼과 사랑 포스터에도 한자를 절반 이상 집어넣으시더니 이번에도 그러셨네요. 이 영화는 특히 아이들이 많이 보는 거라서 한자가 들어가면 안 돼요.”
아직도 신문과 책, 포스터에는 한자를 많이 쓰고 있었고, 아빠도 방송국 출신이라 그런지 한자를 쓰는 것이 몸에 배여 있었다.
미국 포스터를 보여주면서 똑 같은 바탕에 한글로 글자만 바꿔 최대한 깔끔하게 포스터를 만들라고 했고, 다행히 아빠는 아들의 말을 믿고 따라 주었다.
“일은 할 만 하세요? 개봉 전에는 조금 바쁘긴 한데 이제 직원도 뽑았고, 두 번째 하는 거라 그런지 저번 보다는 덜 힘들구나.”
“그럼 연예 기획사 하나 만들어 주시면 안 돼요?”
동민이 갑자기 연예 기획사를 만들라는 말에 아빠가 방송국 출신이긴 하지만, 관리직 출신이라 배우나 가수와 접점도 없고 그쪽 일은 경험이 없다며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다.
“괜찮아요. 밴드 하나만 키울 건데 자신들이 알아서 활동 할 거니까 원하는 데로 지원만 해 주시면 돼요. 음악 방송에 나갈 수 있게는 해 주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럼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할 거예요. 신경 덜 쓰는 데신 정산만 더 챙겨주면 되고요.”
동민의 설득에 결국 아빠는 영화 수입으로 현금이 너무 많아 져서 자금을 돌릴 곳이 필요하기도 했으니 아들이 원하는 데로 해 주겠다고 하셨다.
결국 아무런 소속 가수 없이 먼저 기획사를 만드셨고, 동민은 가수를 영입하기 위해 김종수에게 받은 주소로 찾아갔다.
“현철아. 너 찾는 손님이 왔다! 우리 아들이 요즘 방에서 안 나오고 컴퓨터로 음악 만드는 일만 하던데 손님이 오니 방에서 나오는구나.”
“손님이요? 응? 넌 누구니?”
동민은 드디어 찾던 사람을 만났고, 동안에 착해 보이는 얼굴은 기억하던 그대로였지만, 긴 록커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은 조금 어색했다.
“안녕하세요. 사나위 밴드때 팬이었는데 다음 밴드 준비 하고 있으시다고 해서 찾아 왔어요.”
“너도 음악 하니? 잘 생긴 걸 보니 보컬?”
동민이 무작정 찾아오긴 했는데 아직 별다른 활동 없이 준비만 하고 있는 그를 어떻게 설득할지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고민 하다 일단 만나서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제가 미국에서 가수를 몇 명 만나봤는데 앞으로 새로운 음악 시장이 열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흑인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을까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니 현철이 형 이야기가 나왔어요.”
동민은 요즘 미국 음악 시장의 트랜드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 대로 대충 썰을 풀어냈고, 미국에서 유명 가수를 직접 만나 보았다는 이야기에 그가 관심을 보였다.
“이건 열반이라는 인디 밴드 신곡인데 들어 보면 충격적일 거예요.”
동민이 들려 준 열반의 샘플을 들은 그가 정말로 충격을 받았고, 조금씩 동민의 이야기에 신뢰를 가지기 시작했다.
“원하시는 음반이 있으면 제가 구해다 드릴게요.”
“이렇게 까지 도와주니 고맙긴 한데 너도 같이 활동 하고 싶은 거니?”
“아니요. 저는 학교 중퇴할 생각도 없고 미국에서 지낼 거라서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하긴 무리에요. 노래를 잘 하지도 못해요.”
동민이 아빠가 이번에 기획사를 만들었는데 새로운 음악을 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며, 가수가 원하는 데로 최대한 지원해 주고, 하고 싶은 데로 밀어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귀가 솔깃 하는 게 보였지만, 아직은 동민을 완전히 믿지 못하기에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다른 멤버 없이 혼자서 작업 하는 모습을 보고 동민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안심했고, 한국에 있는 동안 몇 번 더 방문해 그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안 되면 포기하지 뭐. 기획사도 공연 기획 위주로 바꾸면 되겠지.’
설득이 안 되더라도 그를 직접 만나 조금 친해진 것에 만족했고, 집을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미끼를 던져 주었다.
“작년에 마이클 젝선의 집에 놀러 갔었는데 다음에 오면 그 이야기 해 드릴게요. 친필 사인 받은 앨범도 있는데 원하시면 드릴게요.”
전설을 쓰고 있는 마이클 젝선 이야기를 하자 그의 눈빛이 흔들렸고, 자신은 주로 집에 있으니 꼭 다시 놀러 오라고 했다.
이번 주에 다시 오겠다고 한 뒤 집으로 가자 오늘도 세운상가에 다녀온 쿠안틴이 홍콩에 언제 가냐고 물어 보았다.
“오래 있을 건 아니니까 잠깐 다녀와도 괜찮겠네요. 홍콩에 연락해서 스케줄 물어 보고 다음 주에 같이 가요.”
올해는 성룡과 주연발이 별다른 영화 촬영을 하고 있지 않았고,
작년에 도박 패러디 영화로 스타가 된 주성취는 2년간 12편의 영화를 만드는 영화 무한루프에 빠져 갈려나가고 있었다.
동민과 쿠안틴의 스승 이염걸은 그의 은인이 되는 서국 감독을 만나 황비옹 1을 만들고 있었는데 현장에 방문하기로 스케줄을 잡았다.
“내가 드디어 홍콩을 가 보다니, 거기다 현지 감독을 만날 줄이야.”
홍콩으로 출발하기 전날 기대에 부푼 쿠안틴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 같이 들떠 있었다.
이번에는 스필버그 감독의 동행과 추천이 없지만, 안면이 있는 성룡과 스승님인 이염걸의 도움으로 편하게 방문 일정을 정할 수 있었고, 바쁜 주성취도 잠깐 시간을 내어 만나기로 했다.
“여보세요?”
“동민이니? 현철이 형이야. 놀러 온다더니 안 와서 연락해 봤어.”
“태ㅈ.. 형 아니 현철이형. 제가 내일 홍콩에 잠깐 다녀와야 해서요. 갔다 와서 놀러 갈게요. 주연발은 확실하지 않은데 성룡이랑 이염걸은 만날 것 같은데 사인 받아 드릴까요? 선물 필요한 것 있어요?”
동민과 마이클 잭선의 사인 앨범을 기다리던 현철이 먼저 동민에게 연락을 했고, 동민이 유명 홍콩 스타를 만난다고 하자 농담으로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해외여행이라니 부럽네. 선물은 괜찮고,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음반 있으면 부탁할 게. 내가 형인데 부탁하니 미안하네.”
“나중에 유명해 지면 보답하셔도 되고, 아니면 우리 아빠 기획사랑 계약해줘도 되겠네요.”
홍콩에 갔다 와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동민은 쿠안틴과 함께 홍콩으로 출발 했다.
< 073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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