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2 >
세탁소에 찾아온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생각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인상도 더러웠다.
마지막 황제 같이 영상과 음악이 아름다운 영화를 찍었다기엔 너무 마피아 두목 같아 보였다.
“오~ 여기가 그 유명한 할리우드 세탁소로군.”
“설마 여기가 이탈리아에서도 유명한 건가요?”
“이탈리아에서 유명하지는 않지만, 미국 영화판에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알고 있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과 간단하게 인사하고, 어떤 일로 로스앤젤레스까지 동민을 보러 왔는지 물어 보았다.
“최대 투자자이신데 개봉 전에 얼굴은 봐야 하니 찾아 왔다네. 이탈리아 시사회 때 부르고 싶었지만, 학교에 가야한다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와서 자네가 궁금해지기고 했고 말이야.”
무서운 외모와 달리 베르나르도 감독은 상냥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말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 말이지··· 엑스트라를 모집했는데 아니 만 명이 지원을 했다니까.”
한참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할리우드 최근 이야기도 해 주었고, 금방 시간이 흘렀다.
“영상이랑 음악이 아주 잘 만들어졌다고 들었어요. 잘하면 내년 아카데미를 노려볼 수도 있겠네요.”
“하하. 설마 자존심 높은 미국 놈들이 외국인 감독 영화에 상을 줄까? 만약에라도 그랬으면 좋겠군.”
너무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했다는 비평을 받긴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음악효과상, 미술상, 의상상 까지 총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해당 상을 휩쓸게 된다.
비슷한 오리엔탈리즘을 내세운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과 경쟁하지만, 흥행이다 수상 모든 면에서 압승을 거두어들인다.
“반응이 괜찮으면 저도 부탁드릴 게 한 가지 있어요.”
“우리 투자자님께서 부탁하신다면 당연히 들어 드려야지. 무엇을 원하시는가?”
“내년 여름 방학에 이탈리아에 들러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보고 싶어요.”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지. 그럼 시사회 때 보자고.”
이탈리아 영화계는 1980년을 정점으로 쇠락기에 접어 들지만, 이탈리아 특유의 감성이 남아 있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돌아가고 며칠 뒤 탐 크루스가 삼겹살과 소주가 먹고 싶다며 놀러 왔다.
“다니엘. 얼마 전에 네가 투자했다는 위험한 정사라는 영화를 봤어. 엄청 재미있던데?”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 저는 못 봤는데 재미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래도 시나리오는 읽어 봤을 거잖아. 확인해 보니 박스 오피스 1위하고 있던데 돈 많이 들어오겠던데?”
위험한 정사는 심리 묘사를 다룬 사이코 스릴러 영화라 예산이 많이 들어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1,400만 달러나 들여 만드는 영화였다.
동민은 3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이 영화는 최종적으로 3억 2천만 달러의 티켓 판매를 기록하게 된다.
탐 크루스는 위험한 정사에 출연한 마이클 더글라스와 글렌 클로즈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다며 감탄하며 삼겹살을 먹었다.
“그런데 소주병을 왜 그렇게 돌리고 던지는 거예요?”
“이거? 다음 영화 때문에 훈련 받고 있는데 습관이 들었네. 소주병은 작아서 돌리기 훨씬 편해서 좋아.”
탐 크루스는 다음 영화인 칵테일에 바텐더로 출연하기 위해 벌써 3개월째 훈련을 받고 있다고 했다.
“네 말대로 나하고 잘 어울리는 영화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작품성이 떨어지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
“잘 하셨어요. 둘 다 장단점이 있는데 두 영화 전부 찍으면 누가 머라고 못 할 거예요.”
영화 칵테일은 제작비 1,100만 달러를 들여 북미 8천만 달러, 해외 9천만 달러 매출을 기록하여 나름 큰 성공을 이룬다.
영화보다 OST가 더 유명해 지긴 하는데 비치 보이스의 코코모도 유명하지만, 바비 맥퍼린의 돈워리 비해피는 빌보드 차트 팜 1위를 차지하고 그래미에서 음반상까지 받게 된다.
반면 뻔한 스토리로 최악의 영화상이라고 하는 골든 라즈베리에 여러 부문 후보가 될 만큼 작품성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영화는 어때요?”
“그 영화는 최고지. 시나리오만 읽었는데 이건 나를 위할 역이라고 감이 딱 오더라고.”
“내용도 좋지 않아요?”
“스토리가 너무 좋긴 한데 레이몬드 역을 맡은 더스틴 호프만이 많이 힘들 것 같아. 자폐성 장애인 연기를 하는 건 정말이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고 어려워. 어설프게 하면 배우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는다고.”
하지만 더스틴 호프만은 완벽하게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자폐성 장애인 역을 소화하고, 오스카 남우주연상까지 차지하게 된다.
영화 내용은 고급 자동차 사업을 하다 자금 문제에 빠진 탐 크루스가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유산 변호사로 부터 자신은 장미가 있는 정원과 자동차 몇 대만 상속 받게 되고, 300만 달러의 재산은 다른 누군가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이 모르고 지냈던 자신의 친형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 형을 납치해 상속금을 받아내려 하다 두 사람의 사이가 회복되는 내용이었다.
카지노에 들러 형의 천재성을 이용해 돈을 따는 장면이 기억에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천재 검투사 우명우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지금은 미국이 세계 문화의 중심이지만, 미래에는 한국도 세계적인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어 낸다고!’
레인맨 생각을 하다 순간적으로 동민이 국뽕에 불타올랐다.
아직은 시기상조 이지만 언젠가는 대한민국을 문화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탐 크루스의 잔에 소주를 따라 주었다.
“고마워. 요즘 여러 종류의 술을 마시고 있는데 소주는 구하기가 힘들더라. 이렇게 소주만 마시면 솔직히 조금 별로인데 한국 음식 먹으면서 마시면 정말 맛있어.”
탐 크루스가 소주 품평을 하자 동민이 순간 입맛을 다셨다.
“마셔보고 싶어? 나도 주고 싶은데 요즘은 미성년자 음주 규제가 심해지고 있어서 안 돼. 너도 나도 조심 해야지.”
칼 같은 탐 크루스의 말에 동민은 어쩔 수 없이 이번에 주주가 된 코카콜라를 마셨고, 지나가면서 그 모습을 지켜 본 숙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삼겹살을 더 가져다 주셨다.
“내년에 내가 출연하는 영화에 투자 할 거지?”
“둘 다 하긴 할 건데 내년에는 투자해야할 영화가 조금 많네요.”
탐은 동민의 내년 투자 계획을 물어 보았지만,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동민아 오랜만에 슈워츠 씨가 찾아 왔구나.”
결혼 생활과 영화 촬영으로 바빴던 슈워츠 아놀드제네거가 오랜만에 동민을 만나러 왔다.
“선객이 계셨군요. 직접 뵙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슈워츠 아놀드제네거라고 합니다.”
“스크린에서 보는 것 보다 몸이 더 좋으시네요. 탐 크루스라고 합니다.”
아놀드제네거도 올해 프레데터와 런닝 맨 이라는 영화를 찍어 바빴고, 내년에도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다니엘은 그 사이 많이 자랐구나. 계속 오고 싶었는데 해외 촬영이 많아서 쉽지 않더구나.”
오지에서 액션 영화를 많이 찍는 탓에 자주 오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아놀드도 삼겹살 파티에 합석해 함께 고기와 김치를 먹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김치를 못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네.”
“이따 가실 때 챙겨 드릴게요. 여유분 많이 있어요.”
동민 때문에 숙모는 세탁소에 업소용 냉장고를 구비해 두었고, 거기에는 항상 김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탐 크루스도 아놀드를 반갑게 맞이하였고, 미래의 액션 스타답게 꽤 많은 질문을 했다.
두 사람은 한 참 대화를 나누다 양손 가득 김치를 챙겨 돌아갔다.
시간이 빠르게 흘려 겨울이 찾아왔고, 연말에 개봉한 마지막 황제가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왜. 비슷한 내용의 영화인데 베르나르도 감독 영화가 훨씬 더 인기가 많은 거지?”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감독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이제 소주 그만 드시고 술 이리 주세요.”
태양의 제국을 공들여 찍은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이 할리우드 세탁소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며 한탄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유대인이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LA 갈비를 구워 먹으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니엘 넌 이렇게 될 거 미리 알고 내 영화에 투자하지 않은 거지?”
“아니에요. 다른 두 편은 다 반응 좋잖아요.”
“그거야 흥행할 수밖에 없는 공식으로 만들었으니 그런 거고, 정작 가장 심열을 기울인 작품에는 왜 결과가 안 좋은지 모르겠네.”
스필버그 감독이 동민에게 넋두리를 했지만, 그는 할리우드에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창시한 감독으로 왕성하다 못해 심각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다.
매년 평균 3편의 영화를 찍어내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이 성적이 좋으니 전교 1등이 한번 2등 했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거기다 종종 실험적인 작품에 큰돈을 쓸 만큼 모험 정신도 투철했다.
“내년에도 다니엘이 내 영화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것 같으니 걱정이구나.”
“일부러 안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감독님 제작사에서 대부분 직접 투자 하고 있잖아요. 거기다 내년에 만드는 영화는 제작비만 7천만 달러라서 투자하기에 부담스러운 예산이에요.”
“그럼 내가 투자를 받아 주면 하겠다는 말이냐?”
“알겠어요. 저도 예산이 많지 않아서 많이는 못하는데 얼마까지 투자가 가능한가요?”
“흠. 너라면 특별히 350만 달러는 받아주도록 하마. 아니다 10%인 700만 달러는 어떠냐?”
만 달러면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만들 고도 남을 예산인데 블록버스터의 아버지답게 예산의 규모가 남달랐다.
제작인원만 800명이 넘을 정도로 커다란 프로젝트였는데 시험작 치고는 아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긴 한다.
“700만 달러면 지금은 투자할 돈이 없어요. 내년에 마지막 황제에서 정산이 들어오면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에 투자하도록 할게요.”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는 토끼 캐릭터가 나오는 실사 애니메이션이었다.
스티브 스필버그가 만들다 보니 대충 만들지 않고 애니메이터를 갈아 넣어 18,000장의 프레임을 그렸다.
예상외로 흥행도 상당했는데 북미에서만 1억 6천만 달러를 벌고, 해외 수익을 합쳐 총 3억3천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게 된다.
매출은 높지만,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들어 투자를 망설이고 있었는데 스필버그 감독이 직접 찾아와 징징거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투자하기로 결정 내렸다.
“대신 감독님도 김치 먹기로 약속해 주세요. 할리우드에 유대인이 은근 많아서 코셔 소금으로 따로 만든 김치에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먹을 수 있는데 특별히 신경 써 주었으니 챙겨 먹도록 하마. 너도 이제 중학교에 올라갈 나이인데 영화 촬영 현장에 더 자주 견학 나오도록 하렴.”
자신의 감독 사단을 가지고 있는 스필버그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는 동민을 포섭하기 위해 밑밥을 깔고 돌아갔다.
인자하게 생긴 스필버그 감독은 친해지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음흉한 지략가였다.
< 032 > 끝
ⓒ 돈많을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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