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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563화 (1,564/1,567)

1563화. 그때와는 달라. (3)

“어디로 가고 있다고요?”

“……수로채다.”

당소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대체 무슨 멍청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제 아버지의 원수다. 그럴 만도 하지. 미리 살폈어야 했는데.”

“이미 죽은 사람이잖아요! 죽은 사람을 위해서 산 사람을 죽이는 게 할 짓이냐고요!”

날카로운 당소소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이가 난감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소소도 그제야 애먼 데 화를 내고 말았음을 깨닫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잠깐! 화산은요? 백천 사숙은요?”

“조금 전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일단 남궁세가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구나.”

당소소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듣고 싶지 않은 답이기도 했다. 확인까지 하고 나니 더욱 참담했다.

‘전쟁.’

완벽한 전력은 아니라고는 하나, 남궁과 화산이 수로채와 충돌하는 것이다. 그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 당소소는 다급해졌다.

“그럼 지금 있는 의료반만으로는 안 돼요! 충원해야 해요! 예비대를 모조리 투입하세요!”

“알겠다.”

“당가! 당가의 조들은요?”

“……아직 그쪽을 지원하라는 명이 들어오지 않아서 임무를 지속하는 중이다.”

당소소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물론 아주 명쾌하고 정확한 판단이다. 그런데 왜 머리와는 달리 이렇게 야속하다는 기분이 드는 걸까?

“……각 조에 전달해 주세요. 조에 있는 의료 인원을 그쪽으로 지원하라고요.”

“으음. 알겠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지시를 내렸음에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런 걸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더 많은 의료대를 양성해야 했다. 왜 조금 더 빨리…….’

후회하던 그녀는 입술을 콱 짓깨물었다. 그리고 소매 안에 든 침통을 움켜잡았다.

“안 되겠어요. 저도 갈게요.”

“안 된다!”

그러자 별안간 벼락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와 그녀를 붙들었다.

“잊었느냐? 너는 지금 모든 조의 의료대를 총괄하는 위치다!”

“알아요. 하지만…….”

“시끄럽다! 그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가 아니지 않으냐. 책임자라는 이가 멋대로 자리를 비우고 제대로 지시를 하달하지 않는다면 누가 상부를 신뢰하겠느냐? 네 행동 하나가 천우맹에 큰 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소소의 숙부. 당곡(當鵠)이 굳은 목소리로 일갈했다.

“이건 네가 공들여 쌓은 모든 걸 스스로 무너뜨리는 짓이다. 네가 주장한 게 고작 몇 사람의 안위를 위해서만이 아니었음을, 천우맹과 강호를 위한 것이었음을 네가 증명해 보여야 한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당소소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어깨가 지독하게 무겁다. 지금까지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무게는 늘 다른 이가 짊어져 오곤 했으니까.

“……알겠어요. 여기 있을게요.”

“잘 생각했다.”

당소소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대신 지원을 서둘러 주세요! 어서!”

“알겠다!”

당곡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를 일별한 당소소는 먼 남쪽을 향해 눈길을 던졌다. 이 높은 산채에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저 먼 곳을 향해.

‘사고……. 사숙, 사형들.’

제발. 제발 무사하길.

* * *

추일개(追日丐)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상황이야 간명하다. 이 이상으로 깔끔할 수 없다.

수로채가 강북에 상륙했고, 남궁세가가 복수를 위해 그곳을 향해 돌진했으며, 추일개 일행은 일단 상황을 보기 위해 장강 인근으로 간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문제는…….

“이보게, 추일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

“아니, 왜 여기 화산이 모조리 몰려 있냐고! 왜 일이 이렇게 커지는 건가?”

자꾸 질문이 쏟아진다. 추일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는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흐읍!’

심장이 덜컥거린다. 그의 뒤쪽에선 검은 무복 차림의 화산 검수 수십이 땅을 박차며 달리고 있었다.

“상부에서 남궁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나, 화산에게?”

“저, 저는 그런 말은 못 들었습니다만…….”

“그럼 왜 다들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 장강으로 가는 건가? 일단은 지시를 기다리는 게 맞지 않나?”

여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이야 너무도 뻔했다.

‘그야 화산이니까.’

애초에 ‘그’ 화산파가 얌전히 상부의 명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이들이 언제 남의 판단을 기다린 적 있었던가?

“지금이라도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뭘 어떻게 막습니까……. 화산 장문대리가 결정한 일을, 저희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요.”

“그…….”

의문을 표한 거지도 할 말이 궁해졌는지 입을 다물었다.

화산의 네 개 조가 모였다고는 하지만, 한 조는 개방도와 의료를 위해 따라붙은 당가 사람 하나를 포함하여 고작 열 명뿐이다.

다시 말해, 여기에 있는 화산파 사람은 기껏해야 서른 정도란 소리다.

그런 전력으로,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 상륙한 수로채와 맞서러 간다고? 남궁세가를 돕기 위해?

“미치지 않고서야…….”

넋을 놓은 듯 중얼거리던 추일개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 멀리서 화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미친놈들’ 하며 껄껄 웃곤 했다.

그런데 막상 그 미친 짓거리에 직접 휘말린 입장이 되니 도무지 웃을 일이 아니다.

검은 무복 차림의 검수들 사이에 유달리 돋보이는 한 사내가 있다. 흰 무복 차림의 사내. 화산의 장문대리 백천.

그가 처음 보고 감탄했던 윤종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분명 윤종을 뛰어넘는 면이 있었다.

‘빌어먹을……. 믿어야지 어쩌겠어!’

저만한 이들이 생각 없이 미친 짓을 할 리 없다.

그게 추일개가 믿을 수 있는……. 아니, 믿어야만 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거지들이 자꾸 힐끔거리자 그 시선을 느낀 백천이 입을 뗐다.

“거리는 아직도 많이 남았나?”

“……사형. 이미 목표로 삼았던 곳은 지났습니다.”

“그 거리 말고.”

백상의 얼굴이 조금 더 굳어졌다.

“남궁세가와 흑룡왕이 충돌할 만한 곳까지의 거리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겁니다.”

“알았다.”

“정말 계속 가실 겁니까, 사형?”

“가야지.”

“아니, 그건…….”

백상은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닫는다.

이 말을 뱉어 버리면 윤종의 편을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이 상황에 한해서는 백상 역시 윤종의 말이 옳다고 여긴단 방증이다.

“……이건 남궁의 독단입니다.”

“안다.”

백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껏 그 독단을 가장 많이 저지른 게 우리 화산이라는 것도 알지.”

“…….”

“그때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이니,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하는 실수를 우리가 수습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건 내가 한 선택이니까. 하지만…….”

백천이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누구 하나라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나를 이해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었음을 증명하지 않아도 말이다.”

“내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사형.”

“그래. 그랬지.”

백천이 그저 말실수라는 듯 얼버무렸다.

“……우리였지.”

조금 떨어져 달리고 있던 윤종이 슬쩍 시선만 돌려 백천의 옆얼굴을 살핀다.

이내 다시 앞을 주시하는 윤종의 눈빛이 복잡했다.

“이거 곧 수로채 놈들 나오는 거 아닙니까?”

“응.”

“그럼 우리 그놈들이랑 싸우는 거 아니냐고요! 남궁세가 그 멍청한 새끼들한테 휘말려선!”

“아마도.”

“그런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계속 가는 겁니까? 고작 서른 명 대동하고?”

“응.”

“끄윽!”

조걸은 답답하다 못해 아파 오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지금 미치도록 답답한 이유가 이 상황 때문인지, 유이설의 화법 때문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저 멀리 앞서가고 있을 윤종이 한없이 그리워졌다. 요새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적어도 말은 통하는 사람 아닌가?

“아니, 진짜 이래도 된다고요? 이대로 가면 조를 꾸려 나온 화산 전부가 수로채랑 싸우게 생겼는데?”

“글쎄.”

“아, 아니, 사고!”

조걸이 입술을 깨물었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누군가는 이 독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누구의 독단인가? 백천의 독단인가? 아니면 윤종의 독단인가?

이럴 때…….

조걸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고저 없는 무감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없어.”

“……예?”

“오곤 있겠지. 하지만.”

유이설이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담담히 말한다.

“이곳에서 한참 멀리 있었어,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 아무리 사질이라고 해도 우리보다 빨리는 못 와.”

“…….”

“그리고 그 녀석은 네 사제야.”

조걸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유이설의 말이, 일이 생길 때마다 청명에게 어린애처럼 의지하지 말라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냥 궁금했던 것뿐입니다. 그 망할 놈이 우리보다 먼저 흑룡왕 목 따겠다고 날뛰고 있을까 봐서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 아닙니까?”

조걸도 알고 있다. 제 말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마 내심을 들킨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각오가 필요해.”

“……무슨 각오 말씀이십니까?”

유이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어떤 각오가 필요한지 말이다. 대신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을 뿐이다.

“준비해.”

“예?”

그제야 조걸의 눈에도 들어왔다.

사방에 나뒹구는 시체들이 말이다. 누군가의 강검에 처참하게 박살이 난 꼴이었다.

“수로채……!”

이미 남궁도위는 수로채와 충돌한 모양이다.

그 말인즉, 이 앞에선 이미 목숨을 내던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남궁 소가주!’

조걸의 전신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그 순간, 유이설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사고?”

동요 없는 호수처럼 그 끝을 헤아리기 힘든 그녀의 눈이 앞을 응시했다.

* * *

“흑룡왕이시여! 뚜, 뚫립니다!”

다급히 들려오는 보고에, 흑룡왕 적세광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깔끔하던 백색 무복을 어느새 붉은빛으로 물들인 남궁의 검수들이 이쪽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두 눈에 어린 원독과 지독한 살기가 느껴진다.

“사파도 고사하고, 마교라고 불러야 할 판인걸.”

흑룡왕의 입술 새로 아주 낮은 목소리로 흘리는 웃음이 큭큭 새어 나왔다.

멍청한 남궁 놈들치고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어차피 수로채는 흑룡왕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문파니까. 그의 목이 달아나는 순간 힘을 잃고 와해될 것이다.

그러니 장일소도 굳이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둔 것이 아닌가?

“흑룡왕이시여! 일단 몸을 피하십…….”

콰앙!

옆에서 말하던 이가 흑룡왕의 주먹에 얻어맞아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멍청한 놈이! 이 내가 저런 애송이들을 피해 달아나기라도 하란 말이냐?”

광포한 기가 넘실거렸다.

“팔을 잃었어도 나는 적세광이다! 개 따위에게 물려 죽지 않는다!”

흑룡왕이 애병을 콱 움켜잡았다.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어 오는 하룻강아지들에게도, 그리고 다소 의혹 어린 시선으로 그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하들에게도.

사파는 그저 강자존. 그가 흑룡왕이기 위해서는 여전히 강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남궁세가 애송이의 목은 그리 나쁘지 않은 수단이 되어 줄 터.

“길을 열어라. 내가 직접 놈들을…….”

흑룡왕이 소리치려는 찰나였다.

“적세과아아아아아아앙!”

그보다 한발 앞선 사자후가 쩌렁쩌렁하게 터져 나온다.

적세광이 반사적으로 시선을 획 위로 올리자, 푸른 하늘을 등지고 무섭게 강하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준수하던 얼굴을 피로 물들이고 악귀처럼 일그러트린 이.

이제는 애송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검수가, 흑룡왕 적세광의 목을 노리며 매처럼 날아들었다.

“하핫!”

흑룡왕의 언월도가 위로 솟구치고, 남궁도위의 검이 아래로 내려꽂힌다.

흑색의 도기와 백색의 검기.

패도를 추구한다는 결만큼은 지독하리만치 흡사한 두 기운이 서로에 대한 증오를 실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터져 나온 거대한 폭음이, 결착이란 두 글자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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