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7화. 괜찮을 거야. (2)
이른 새벽, 화산이 통째로 대관하여 식당으로 쓰고 있는 객잔.
한창 사람이 몰려들어 왁자지껄해야 할 식당에는 짙은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수십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이니 조용히 하려 해도 어려운 게 당연할진대, 숟가락이 죽 그릇을 건드리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울렸다. 그마저도 너무 크게 느껴져 움찔 놀랄 정도다.
숨넘어갈 것 같은 정적 속에서, 이대제자들의 얼굴은 점점 퍼렇게 질려 갔다.
‘미치겠네.’
이건 체한다. 분명히 체한다.
아무리 그들이 돌도 씹어 먹고 강철도 소화하고 마는 화산의 제자들이라지만, 이 분위기에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은 음식이 제대로 소화될 리 없다.
‘사형.’
‘뭐?’
‘그 이야기는?’
‘미쳤냐? 이 분위기에서 무슨 말을 해?’
이대제자들이 거의 입 모양으로만 벙긋거리며 필사적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원래 그들은 오늘 아침 기회를 잘 살펴서 지금의 수련이 과하단 말을 할 셈이었다.
그냥 투정이 아니다. 전쟁을 앞둔 판에 수련이 워낙 고되다 보니, 전쟁 전에 우리가 먼저 나가떨어지겠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이런 말을 곧잘 들어 주고 전해 주는 조걸은 요즘 명성이 너무 높아져 조금 어려워진 참이었다. 무려 일검분광이 아닌가.
그러니 오늘은 조걸을 건너뛰고 그나마 성격 좋은 윤종에게 슬그머니 말을 건네 볼 참이었는데…….
달그락. 달그락.
바로 그 윤종이 앉아 있는 탁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윤종을 포함한 오검. 정확하게는 그중 청자 배들이 앉아 있는 식탁에서는 숟가락이 죽그릇을 간간이 긁는 소리 말고는 한마디 대화조차 오고 가지 않는다.
굳이 따져 보자면 흔한 일이긴 하다.
제자들끼리 싸우거나, 대립하는 정도는 말이다. 애초에 혈기왕성한 이들을 한곳에 모아 두고 굴려 대는데 마찰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지금 눈치를 살피고 있는 진태만 해도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사형제들과 싸웠다.
격할 때는 주먹다짐도 오갔고, 심지어 검을 뽑기 직전까지 간 일도 몇 번이고 있었다.
그러니 이 현상 자체는 새삼스러울 게 없다지만…… 이 냉랭할 만큼 극심한 대립의 중심에 오검과 청명이 있는 건 처음이다.
‘저런 적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없다.
물론 오검도 많이 싸웠다.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이름 석 자 들이밀어 볼 엄두도 안 날 만큼 살벌하게 많이 싸웠다.
이대제자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로 화산의 발전상은 오검의 긴 투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말해 무엇 하겠나.
그러나 뒤끝은 없었다. 불만이 있으면 즉각 욕을 하고 주먹질을 했지, 이리 냉랭하게 침묵할 인간들이 아니다.
‘숨 넘어가겠네. 진짜.’
그래도 진태를 비롯한 주위의 다른 이들은 나은 편이다.
눈치도 없이 오검의 자리에 같이 앉은 놈들은 당장이라도 졸도할 것 같은 얼굴로 애꿎은 그릇 바닥만 긁어 대고 있다.
진태는 자신이 저곳에 끼지 않았다는 걸 천지신명께 감사했다. 저 자리에서 식사했다면 그는 분명 눈을 까뒤집은 채 쓰러졌을 것이다.
탁.
그때, 청명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다 먹었어.”
그런 그를 흘끗 본 윤종이 담담하게 말했다.
“좀 더 먹지 그래. 수련도 해야 하는데.”
“괜찮아. 아침부터 뭐.”
“그래.”
청명이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나 식당에서 나갔다.
지극히 평범한 대화였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아침부터 입맛이 없는 사제와 그런 사제를 걱정하는 사형의 따뜻한 대화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그리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탁.
그 순간 윤종도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먼저 간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식당 여기저기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연이어 새어 나왔다.
조금 전의 그 숨 막히는 분위기를 자아낸 근원이 다름 아닌 청명과 윤종임을 방증하는 것과도 같았다.
“……야, 네 얼굴 파랗게 질렸다.”
“사형 얼굴은 시커멓게 죽었습니다.”
“진짜?”
“숨을 안 쉬니 그럴 수밖에.”
모두가 죽겠단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당소소가 조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짓했다.
“뭐 해요?”
“……뭘?”
“빨리 가 봐요.”
조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알아서 하겠지. 왜 나더러…….”
“가 보라고.”
“끄응…….”
조걸이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얼굴을 구기며 미적미적 일어났다.
사실 당소소가 시켜서만은 아니다. 그도 뭔가 대화를 해 보긴 해야겠다고 여기던 참이었으니까.
“사형. 뭡니까?”
“뭐가?”
잽싸게 윤종을 따라잡은 조걸이 뒷머리에 깍지를 끼며 물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쇠였다. 조걸이 눈살을 찌푸렸다.
“애들도 아니고 왜 그럽니까?”
“그러니까 뭐가?”
“괜히 의뭉스럽게 피하지 마십쇼. 싸웠으면 풀면 그만이지. 청명이 놈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 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
“그놈도 지금 상황이 상황이라 일이 많아서 신경이 날카롭잖습니까? 사형이 이해 좀 해 주시면 되지, 뭘 이렇게까지 합니까.”
그 말에 윤종의 걸음이 멈추었다.
윤종은 조걸을 돌아보지 않고 앞을 주시한 채 입을 열었다.
“싸웠다라…….”
“아니, 그러니까 정확히는 사형이 그놈이랑 드잡이하며 싸웠다는 게 아니라 보나 마나 놈이 억지를 부렸…….”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구나.”
“……예?”
“신경 쓸 것 없다. 나도 놈도 서로 감정이 상한 건 아니니까.”
조걸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싸우지 않고도 그렇게 멀어졌단 말인가.
“대체…….”
조걸이 우물쭈물하자 윤종은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그저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걸 알았을 뿐이다. 잘못된 건 없어.”
“사형.”
“먼저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어안이 벙벙해진 조걸만이 남겨졌다.
그는 윤종이 까마득하게 멀어질 때까지 굳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꽉 다물리던 사형의 입매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이 일은 그냥 소소한 다툼 정도가 아니다. 심각한 일이다.
“이게 뭔…….”
다른 때도 아니고, 전쟁을 앞둔 마당에 윤종과 청명이 대립각을 세우다니. 큰일이다.
“미치겠네.”
조걸이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중재는 조걸이 해 오던 역할이 아니다. 그건 언제나 윤종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중재를 도맡아 해 오던 사람이 저렇게 날을 세워 버리니 해결책이 묘연해졌다.
오래 함께해 온 조걸은 안다. 사람 좋기로 알려진 윤종이지만, 사실은 그가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말이다.
만일 누가 화산 내에서 가장 고집 센 사람을 둘만 고르라고 한다면, 조걸은 서슴없이 청명과 윤종을 꼽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서로를 소 닭 보듯 하고 있으니 사태가 심각하다. 얼마나 오래갈지 짐작도 안 되었다.
“하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조걸이 몸을 돌렸다.
백천을 만나 볼 생각이었다. 이 상황에서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백천뿐일 테니까.
“그래서?”
“예?”
그러나 상황을 전해 들은 백천의 반응은 조걸의 예상과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그러니까 나더러 다툰 두 놈을 쫓아가 중재하라는 거냐?”
백천이 무심한 눈으로 조걸을 응시했다. 조걸이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그런 뜻이…….”
생각해 보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고작 이대제자 두 사람이 서로 싸운 일이다. 그 앞에 붙일 말이라고는 정말 ‘고작’밖에는 없다.
그런데 그걸 두고 크게는 화산의 장문대리이자, 작게는 사숙 되는 이에게 중재해 달라니.
조걸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압니다. 그…… 이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라는 건요. 특히나 이런 때에.”
백천이 말없이 조걸을 바라본다. 계속해 보라는 듯이.
“하지만 사숙. 그게…….”
조걸이 연신 곱슬곱슬한 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냥 단순한 감정싸움 같질 않습니다. 청명이는 몰라도 윤종 사형이 그럴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윤종은 화산 모두가 인정하는 호인이다. 그가 그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청명과 냉전을 벌일 리는 없다.
“그래서…… 이게 길어지기라도 하면 그……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처하면서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사숙이 어떻게든…….”
“정정하자.”
“예?”
“첫 번째로.”
백천이 단호한 얼굴로 조걸을 보며 물었다.
“왜 청명이가 잘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예? 저는 그런 말은…….”
“네가 말했지. 윤종이는 사소한 일로 감정싸움을 벌일 이가 아니라고. 그럼 청명이는 그런 녀석이더냐?”
조걸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다. 물론 속 넓은 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별것 아닌 일을 크게 키울 놈은 또 아니었다.
대범함에 대해 논하자면야 오히려 화산의 그 누구보다 넓을 수 있는 놈이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둘 다 그럴 이들이 아니지. 그런데도 그리 군다는 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거다. 그건 간단한 중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지.”
조걸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알기에 백천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백천이 내어놓는 해답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예, 사숙.”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더냐?”
“예?”
조금 당황한 조걸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획 들었다. 뜻밖의 말도 놀라웠지만, 차게 굳어 있는 백천의 저 얼굴은 더 놀라웠다.
“대답해 봐라. 이게 내가 할 일이더냐?”
“……사숙?”
“이대제자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 일에 내가 일일이 나서서 화해까지 시켜야 하느냐?”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이건 단순히 이대제자의 일이라고만 볼 수 없잖습니까. 일단 청명이의 일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화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 않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오검 사이의 갈등인 것을.
하지만 그렇게 말하려던 조걸은 순간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깨달은 것이다.
그리 말해 버리는 순간, 화산은 배분이고 뭐고 오검의 이름하에 들어선 이들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건 화산의 제자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내심 품고 있던 생각을 들킨 게 당황스러운지, 조걸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백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못 하면 어찌할 셈이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장문인께 찾아갈 셈이냐?”
조걸이 움찔했다. 당황하여 연신 입만 벙긋거렸다.
“그래도 안 되면? 태상장문인께 가서 둘을 혼내 달라고 말할 셈이냐?”
어린아이처럼 일러바치지 말라는 의미인 건 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백천은 어째서 이렇게 차가운가?
마치 그가 알던 백천이 아닌 것 같았다.
“말씀을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저의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숙, 이게 그렇게나…….”
“조걸.”
“예?”
백천이 차갑게……. 아니, 차갑다기보다는 무거운 얼굴로 조걸을 보며 말했다.
“내가 없으면.”
“……예?”
꼭 그만큼 무거운 공기가 두 사람의 사이를 내리눌렀다.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할 셈이냐?”
그 길지 않은 말이, 순간적으로 조걸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그간 꾹꾹 눌러 놓았던 무언가가 그 틈을 비집고 흘러내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