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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487화 (1,488/1,567)

1487화. 널 찾아온 게 아닌데? (2)



“에엑? 방주?”



“저 양반이?”



오검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천상루주를 멍하니 보았다. 심지어 대체로 침착한 혜연과, 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이송백마저 입을 쩍 벌릴 정도였다.



분명 개방의 방주는 호호백발 노인으로, 지금은 노환으로 인해 와병 중이라 들었다. 그 소문은 워낙에 퍼질 만큼 퍼져 거의 강호의 상식처럼 통했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 선 이는 병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건장한 장년인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백천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물었다.



“그, 그쪽이 개방의 방주시라고요?”



“그렇소.”



“그…….”



모두가 백천을 슬쩍 곁눈질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다기엔 돈이 많아 보이시는데.”



모두의 고개가 아래로 푹 꺾였다.



어, 그래. 확실히 그게 좀 이상하긴 하다. 거지 왕초라는 양반이 질 좋은 비단옷을 입고, 이런 화려한 주루의 최상층에 산다는 건 확실히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니 틀린 말이 아니기는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사숙.”



“이상하긴 하잖아!”



“그건 그런데…….”



윤종은 지적하기도 애매하고 난감하여 고개를 내저어 버렸다.



그때, 천상루주가 아닌 청명의 입에서 의문에 대한 대답이 나왔다.



“내가 말했잖아. 거지새끼들 돈 더럽게 많다고.”



“……그랬지.”



“그리고. 오히려 거지새끼들이니까 믿으면 안 되는 거지.”



“응? 그건 무슨 소리냐?”



“평생 정보만 다루고 사는 놈들이 제 재산인 정보를 쉽게 내어 줄 리가 없잖아. 내 눈으로 본 것도 의심해야 할 판에 소문만 듣고 믿는다고?”



“……그러네.”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



“……왜 곧이곧대로 믿었을까요?”



“개방이 우릴 속일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같은 정파인데?”



“뭐가 이상한 게 있으면 다른 문파에서 알아차릴 줄 알았죠.”



오검의 말에 천상루주가 가볍게 웃었다.



“중원은 넓고, 사람을 속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그대가 진금룡 행세를 하는 걸 눈치챈 이가 거의 없었던 것처럼.”



“크흠. 그러……네요.”



입장상, 백천은 이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걸은 여전히 의혹이 풀리지 않은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그럼 홍대광 아저씨가 왕거지라고 한 사람은 또 누구야? 이분을 두고 그렇게 말할 것 같지는 않은데. 설마 같은 개방 사람도 속이는 거야?”



천상루주는 명쾌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만 흘렸을 뿐.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조걸은 믿었던 이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아이 같은 시선으로 천상루주를 보았다. 그 눈빛을 접한 천상루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때, 여전히 올곧게 이성을 지키고 있던 이 하나가 지금 해야 할 온당한 행동을 취했다.



“종남의 이송백이 개방의 방주님을 뵙습니다.”



이송백이 정중하게 포권 했다. 그제야 정신이 든 오검도 화들짝 놀라 우르르 예를 보였다.



“바, 방주님을 뵙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천상루주는 어째 골치가 아프다는 듯 구겨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과례는 필요 없네. 여기서는 그저…….”



그의 시선이 백천이 걸친 옷의 종남파 문양으로 향했다.


“종남을 흉내 내는 사람과, 술집 주인을 흉내 내는 사람 간에 대화하도록 하지.”



“……예.”



어쨌든 그들도 여러모로 예의를 제대로 갖출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천상루주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청명에게 말했다.



“원하는 대답은 해 준 것 같군. 이번에는 내가 물을 차례지? 나를 찾아내 어쩌려고 했나?”



대화는 오검과 했지만, 그 질문은 당연히 청명에게로 향했다.



다른 이들은 이 모든 상황에 꽤 충격받은 모양이었지만, 청명은 그리 놀랍지도 않은 듯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의도는 없었어요. 그냥 일단 찾아본 거죠.”



“……음?”



“엉덩이를 뒤로 빼고 숨어 있는 사람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일단은 밖으로 끄집어내야겠다 싶었거든요.”



천상루주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다들 그렇게 하려 했었지. 실제로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하지만 설마 이런 방법으로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네.”



“그 사람들이 안일했던 거죠.”



“아니.”



천상루주가 고개를 내저었다.



“설사 다른 이들이 자네와 똑같은 방법을 떠올렸다 해도 여기까진 도달할 수 없었을 걸세. 사람은 새를 쫓을 수 없는 게 정상이니까. 더구나 이 청령금작(聽領金雀)은 험준한 산과 너른 강 위로만 날도록 훈련되어 있는데…….”



“청령…… 뭐요?”



“청령금작. 이 새 말일세.”



“아아, 그 만리금구?”



“청령금작일세.”



“네. 만리금구.”



……천상루주의 얼굴 근육이 실룩했다. 이 모습을 본 윤종이 백천에게 속삭였다.



“방주님이 밀리는데요? 진짜 방주 맞아요?”



“방주가 아니라, 옥황상제도 저놈은 못 이겨…….”



“동감.”



오검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 할 말 다 하는 놈을 보고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청명은 지저귀는 새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아직도 으르렁대기 바쁜 백아를 턱 잡아 들었다.



“뭐 수단은 나쁘지 않았지만, 영물이 그쪽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야수궁의 백전. 확실히 그건 고려하지 못했군.”



“백천이요?”



“백천이 아니라 백……. 아니, 아닐세. 그만하지.”



천상루주는 상대하기 진 빠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청명의 주변에 청령금작을 배치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 감시당하는 이가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역으로 이용할 줄이야.



‘아니. 이용할 생각은 하겠지.’



하지만 그 많은 거지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대상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어떠한 행동을 유도해 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금작이 낙양에 있는 건 어찌 알았나?”



“어, 그건…….”



“낙양에 있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했는가?”



“아뇨. 그냥 뭐…… 가까워서?”



……천상루주의 얼굴이 다시 한번 와그작 뒤틀렸다. 윤종이 다시 백천에게 속삭였다.



“사숙. 저 사람 완전 빡쳤는데요? 진짜 방주 맞습니까?”



“……저런 놈 앞에 서면 염라대왕도 화낸다.”



“동감.”



그들의 감상을 뒤로하고 청명이 태연하게 말했다.



“뭐. 낙양에서 별일 없으면 근처 어디 다른 데도 쑤셔 보려고 했죠. 그러다 보면 하나쯤은 걸리겠다 싶었고요.”



“…….”



“다행히 처음부터 걸려 주더라고요? 방주님이 합리적인 사람이라 참 다행이에요. 요새 영 미친놈들만 상대하다 보니 나까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는데.”



“……아까는 날더러 미치광이라더니.”



“그렇기는 한데, 행동 방식은 정상이시니까.”



천상루주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남 앞에서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자 앞에서는 그 행동 강령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 먼 곳에서부터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이에게 뭘 숨길 수 있겠는가?



“결국 내 계획의 맹점을 찔러 여기까지 왔다는 거로군.”


“예. 뭐, 잘 보완하시면 다음부턴 괜찮겠죠.”



“그럼 자네는 또 다른 맹점을 찾아내겠지. 화산검협이라. 보통 사람이 아니라더니, 확실히…….”



천상루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청명을 마주 봤다.



“내 의문은 풀렸네. 그리고 자네가 왜 왔는지도 이해했네. 그래서 자네는 나를 만나서 뭘 하고 싶은 건가?”



“그냥 묻고 싶었어요.”



“뭘 말인가?”



“대체 당신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불현듯 천상루주의 눈빛이 차게 가라앉았다. 묘한 살기까지 느껴지는 눈빛이었지만, 청명은 태연자약하게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뭐 나쁘지 않은 곳이네요. 신선놀음하기에 딱 좋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저도 꿈이 안빈낙도인 사람이라서 공감 못 하는 건 아닌데요. 그래도 시기는 가려야 하지 않을까요? 산불이 밀려오는데 한가롭게 낚시나 즐기고 있으면, 그건 신선놀음이 아니라 정신 놓은 짓이죠.”



“이보게, 그…….”



“왜 개방을 방치했죠?”



청명이 천상루주의 말허리를 뚝 끊으며 본론을 찔러 넣었다. 천상루주가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되레 청명이 차가운 눈으로 천상루주를 쏘아보고 있었다.



“세상이 반쯤 무너지고 있는데 개방은 여전히 제 역할을 못 하고 사분오열되어 있어요. 물론 처음에는 이해했어요. 머리를 다치면 아무리 힘센 소라도 쟁기를 끌 수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 다친 머리를 치료할 생각도 하지 않더라고요. 이건 이상하잖아요.”



“…….”



“아무리 늦어도 장강에서 분열이 벌어졌을 때부터는 총단 차원의 움직임이 있어야 했어요. 그렇죠?”



“……인정하지.”



천상루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의 힘은 많은 수에서 나온다. 이는 다시 말해, 머릿수가 줄어든 개방은 제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방이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다름 아닌 분열이다.



분열을 좌시한 순간, 개방은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모두에게……. 아니, 최소한 청명에게만큼은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와병 중이라 머리가 맑지 못했다는 건 변명이 안 돼요. 그런 지경까지 가기 전에 자리를 넘기도록 하는 게 문파니까. 나만 해도 사숙이 맛이 가서 종남이랑 잘 지내 보겠다고 하면 참회동에 처박고 물만 줬을 거니까.”



“청명아. 그건 교체가 아니라 감금 아니냐…….”



“아닙니다, 사숙. 그런 건 고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천상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개방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아 반드시 무언가 일이 있을 거라 여겼단 거로군. 그래서 그 원인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거고. 맞는가?”



“아뇨.”



“음? 아니라고?”



“말은 정확하게 해야죠. 나는 그 원인을 확인하러 온 게 아니에요.”



“……그럼?”



천상루주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청명의 입에서 뜬금없는 네 글자가 흘러나왔다.



“의혈개방.”



맥락을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상루주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동요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왜?’



백천의 두 눈이 의문으로 물들었다.



의혈개방은 개방의 의기를 칭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말에 왜 동요한단 말인가?



“개방은 확실히 이전 같지 않아요. 뭐 그럴 수 있다고 여겼어요. 모든 문파가 항상 전성기일 수는 없으니까. 번쩍이던 재기도, 빛나던 실력도 어느 순간 빛이 바랠 수 있고.”



“…….”



“하지만 개방도들을 만나 보니 생각이 바뀌었죠. 그들은 무능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개방은 무능해요.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유는 하나. 누군가가 개방을 무능하게 만든 거죠.”



백천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청명이 늘어놓고 있는 이야기는 실로 무겁다.



“그래서 알고 싶었어요. 내가 알던 개방을 누가 이렇게까지 추락시켰는지. 개방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막아 온 이가 과연 누군지.”



“……자네.”



“그러니까, 나는 그 원인을 확인하러 온 게 아니에요.”


청명이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제거하러 온 거지.”



그의 손이 천천히 허리춤의 검으로 움직였다.



순간 천상루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손가락만 까딱해도 목이 달아날 것 같은 압박감과 팽팽한 긴장이 그를 엄습했다.



“대답해 봐.”



“…….”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넌 죽어. 장담하지.”



천상루주의 손끝이 짧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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