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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53화 (1,254/1,567)

1253화. 그리고 살기 위해서다!(3)

밀려오는 파도에 작은 고깃배가 크게 들썩였다.

"어이쿠!"

"조심해. 그러다 떨어지면 휩쓸린다고!"

"별걱정을 다 하네. 내가 이 짓을 한두 해 한 줄 알아?"

"그렇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간 놈들도 다들 그렇게 말하다 갔지."

"이 작자가 불길하게……"

그물을 끌어당기던 이가 인상을 구기더니 끌어 올린 그물을 바라보았다. 그물은 비어 있었다. 당긴 이가 혀를 쯧쯧 찼다.

"오늘 수확이 영……"

"태풍 지나간 다음 날이 다 그렇지 뭐. 군소리하지 말고 일이나 해."

"어차피 오늘은 공칠 것 같은데, 적당히 접고 한잔하러 가는 건 어떤가?"

"미쳤어? 태풍 부는 내내 쫄쫄 굶었구만, 오늗로 빈손으로 들어가면 마누라가 내 머리를 벗겨 버리려고 할 걸세."

"어차피 별로 남지도 않았구먼."

"뭐야?"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의 사내들이 옥신각신하며 너나 할 것 없이 그물을 당겨 댄다.

굵은 땀방울이 쉼 없이 흘러내렸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힘겨움보다 즐거움이 가득했다. 아무리 뱃일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바다에 나오지 못하고 육지에서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해 지기 전에 뭐라도 좀 건져야 할 텐데."

"내 말이!"

그들이 무심한 바다에 간절한 시선을 보내는 그때였다.

"어?"

그물을 당기던 이 중 하나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 저기, 저거 뭐야?"

"뭐 말인가?"

"저기…… 저기 배 안 보이나?"

"여기 배가 천진데, 새삼스레 뭘?"

"아, 아니. 저기! 저기 저 배들 말이야! 저기 몰려오는 것들!"

"응?"

일을 하던 이들이 굽힌 등을 펴고 고개를 빼 들었다. 과연 저 멀리서 섬을 향해 몰려오는 수십 척의 거대한 배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저……"

"저거? 저?"

순간적으로 저 배에탄 게 누구인지 알아챈 이들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배, 배 돌려!"

"빨리! 빨리 옆으로 비켜! 마주치면 안 돼!"

"하지만 그물이……"

"그물이고 나발이고! 빨리!"

고깃배들이 일제히 끌어 올리던 그물을 내팽개치고 다급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 후, 그들이 열어 낸 바닷길로 커다란 함선들이 가로질렀다.

어부들은 두려움에 떨며 지나쳐 가는 배를 주시했다. 배에 걸린 거대한 깃발이 보였다. 거대한 깃발에 붉게 수 놓인 건 패(覇)라는 글자였다.

"사, 사패련……"

"기어코 저놈들이……"

그들이 사패련의 배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삼 년 전부터 사패련의 배는 바다를 돌며 해남을 감시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감시하는 배였을 뿐, 이만한 선단이 사패련의 기를 내걸고 해남으로 온 건 처음이었다.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이들은 절망 어린 눈으로 멀어져 가는 배들을 바라보았다.

"……제발."

벌써 피 냄새가 진득하게 코를 찔러 오는 것만 같았다.

(주*님*이-시*여)

"보고는?"

"예, 군사! 섬을 감시하는 이들의 말에 다르면 섬을 빠져나간 이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호가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딱히 수가 없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치고 앉아 있어 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하기야, 평범한 이는 사방이 막힌 길에 도달해 버리면, 길을 열려 하기보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법이니까.

"여전히 움직임은 없나?"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호가명의 두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

"영 써먹을 사람이 못 되는군. 해남의 장문인도."

해남파의 입장에서 배를 타고 섬을 떠나는 선택지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어디로 향하건, 호가명이 펼쳐 놓은 그물을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맞이하는 것은 더 비참한 죽음일 뿐이다.

다만……

"해전을 걸었으면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했을 텐데."

호가명이 유일하게 우려했던 건 저들이 배를 몰고 항전해 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 해도 서로 배에 타고 있다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만인방의 방도들은 수공에 익숙하지 않으니 승산이 올라가긴 했을 터.

'수로채 놈들을 데려올 수 있었으면 이마저도 걱정할 일이 없었을 것을……'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저 정파 놈들과의 대치에 수로채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수로채의 병력이 줄어드는 건 어떤 식으로 눈에 띄고 타격이 클 테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저들이 해전을 걸어와 봐야 조금 귀찮아지는 정도다.

완벽히 대비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때로는 완벽보다 속도가 훨씬 중요할 때가 있다. 호가명이 판단하기에, 이번 일에 중요한 것은 완벽함보다는 신속함이었다.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반 시진 내에 도착합니다."

"해안으로부터 오지산까지의 거리는?"

"전속으로 진격할 경우 한 시진 내에 도달 가능합니다."

"한 시진 반이라…… 넉넉 잡아 두 시진이로군."

바다를 응시하는 호가명의 눈에 나른함이 서렸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이 순간에도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장일소가 그에게 맡긴 일이다. 단 한 치의 소홀함도 허락되지 않는다.

"해남 장문인의 성향을 봤을 땐, 본산에 진을 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군. 산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로 말이야."

"……설마 그렇게까지 안일하겠습니까?"

"안일한 게 아니라,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정파 놈들으 ㅣ생각은 때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괴이하지. 우리로서는 이해가 어려울 만큼 말이야."

실력대로 정면에서 싸워 죽는 것이 멋이라 생각하는 이들. 특히나 위기가 고조될수록 그런 경향이 심해지는 게 중원 정파의 특성이다.

최근에야 화산 같은 별종이 생겨나서 저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지. 얼마 전만 해도 중원 정파 대부분이 저런 모습이었다.

그러니 사파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사파는 상대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독을 쓰든, 함정을 파든 ,심지어는 인질을 잡아서라도 승리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니까.

"군사."

옆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호가명이 시선을 돌렸다.

"련주께서 하신 명이 저 섬을 지우라는 것이었나?"

질문을 들은 호가명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몇 번을 말해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겠나? 지워야 하는 것은 해남파뿐이다."

"물론 알고 있지. 내가 묻는 건 해남파가 아닌, 다른 저 향하는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다."

서늘한 음성이었다. 호가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혈검단주(血劍團主)."

"그건 봐야 아는 일이지."

호가명의 눈이 못마땅하게 가늘어졌다.

대주(臺主)급은 그가 통제하는 데별문제 없지만, 단주(團主)급은 힘으로든 권력으로든 완전히 찍어누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특히나 그가 이렇게 장일소 없이 단독으로 움직일 때는 말이다.

그건 방 내에서의 권력에 비해, 호가명이 강한 무력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위는 그가 높지만, 무력은 저들이 높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호가명이 과히 찍어누르려고만 들지 않으면, 저들 역시 장일소의 비호를 받는 그를 어찌하려 들지는 못하지만……

"먼 길을 오며 아이들도 지쳤다. 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면 육지에서 난동을 부릴지도 모르지."

"혈검단이 아니라 네가 그런 건 아니고?"

"딱히 부정은 하지 않자."

호가명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적당히 해 둬라. 련주께서 노하시지 않게."

"노력하지."

말을 끝낸 혈검단주 괴양(蒯壤)이 냉정하게 몸을 돌려 멀어졌다. 호가명과 한시도 더 붙어 있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 괴양의 등을 보며 호가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같이……'

아무리 그가 애를 써도 장일소에게서 조금만 멀어지는 순간, 저들은 흉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피를 탐하는 사파에서도 감당하지 못해 공적(公敵)으로 몰릴 만한 미치광이들. 그들이 만인방의 가장 큰 전력이라는 점이 만인방의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었다.

저들의 힘이 장일소를 만나며 만인방을 단기간에 광동의 패자로 만들어 주었지만, 방면 저들의 통제 불가능한 포악함이 만인방의 전력을 나누는 걸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니까.

저들에게 목줄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장일소뿐이다. 명실상부 만인방의 이인자인 호가명의 명조차 저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어르고 달래 움직이게 할 수밖에.

"후."

이는 호가명에게 다소 신경 쓰이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뿐이다. 호가명의 시선이 해남도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이 되겠지.'

피에 젖은 해남도의 모습이 벌써 보이는 것만 같았다.

"속력을 최대한 유지해라."

"예!"

호가명의 명을 받은 선단은 더욱 박차를 가해 해남으로 전속 전진했다.

⁂   ⁂   ⁂

"서둘러라!"

"예, 사형!"

해남의 제자들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해안에 정박한 배 바닥에 구멍을 뚫어 댔다. 곽환소는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시간 내로 되겠어?"

청명의 물음에 그가 배에서 시선을 떼며 답했다.

"지금 노력 중입니다."

"괜히 시간 낭비하느리 그냥 부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적들도 바보는 아닙니다. 해안에 도착했는데 배가 모조리 부서져 있으면 뭔가 노림수가 있다는 걸 짐작할 겁니다."

"흐음."

"믿어 주십시오. 저희는 배를 끼고 산 사람들입니다. 적들이 도착한 순간까지는 물 위에 떠 있다가, 막상 배에 오르려고 하면 가라앉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청명이 슬쩍 임소병을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서 태풍에 박살이 난 것처럼 보이도록 산산조각을 내려 했는데, 확실히 조금 부자연스럽긴 하겠죠. 이게 나을 겁니다."

"사파 놈들에게 그런 걸 알아차릴 머리가 있을까?"

"……뭔 사파를 개돼지쯤으로 보시는 겁니까?"

"왜 개랑 돼지를 욕하고 그래? 걔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전생에 사파랑 원수라도 졌습니까?"

"이상한 소리를 하네. 사파 새끼 욕하는 데 뭔 원수까지 져야 돼? 그냥 객관적으로 봐도 벌레만도 못한 게 사파놈들인데."

임소병이 말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때 남궁도위가 의아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럴 거면 섬의 배를 모조리 부숴 버리는 게 낫지 않습니까? 왜 이 해안 쪽의 배들만……"

숨도 못 쉬고 말로 얻어맞던 와중에 적당한 허수아비를 발견한 임소병이 과장되게 놀란 얼굴로 남궁도위를 바라보았다.

"우와, 세상에. 사파도 안 할 발상을."

"……예?"

"우리가 배를 모두 부숴 버리면 상륙한 만인방 놈들의 발이 묶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잔뜩 독 오른 사파 놈들은 해남도에 가두자고요? 그럼 그놈들이 배를 수리하는 동안 무슨 일이 벌이겠습니까?"

"어……"

……아마 지옥도가 펼쳐지겠지. 그 분풀이를 해남의 주민들에게 하려 할 테니까.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해 버린 건지 이해한 남궁도위는 재빨리 정정하려 했다. 하지만 임소병은 기회도 주지 않고 그 틈을 파고들었다.

"크으, 역시나 피와 죽음의 강호를 수백 년 동안 버텨 온 창천남궁세가. 역시! 역시! 그만한 업적을 쌓아 올리려면 사람 목숨 다위는 개미만도 못하게 여겨야……"

"다, 닥치십쇼!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사파 이밪ㅇ에서 보면 아주 훌륭한 발상입니다. 그런데 그럴 거면 이 기회에 그냥 적성에 맞는 쪽으로 이적을 한번……"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모합입니까!" 닥치지 못합니까!"

끝내 임소병과 드잡이질을 하는 남궁도위를 보며 당패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놈도 입이 참 많이도 험해졌다.

그런데 참 보고 있자면 이상했다. 둘이 사이가 엄청 나쁜데, 이럴 때 보면 묘하게 죽이 잘 맞는 것도 같고.

그때였다.

"저…… 화산검협."

"응?"

제자들을 지휘하던 곽환소가 청명을 향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뭐 하나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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