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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136화 (1,137/1,567)

1136화. 그래도 뭘 어쩌겠어. (1)

“이런, 썅!”

조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를 악문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손목의 근육이 뒤틀린다. 비명은 어찌어찌 억눌렀지만, 충격에 몸이 뒤로 튕겨 나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큭!’

포탄처럼 뒤로 쏘아지던 그의 등을 누군가 받치며 막아 주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다. 등 뒤에 선 윤종의 존재를 느낀 조걸이 무의식적으로 발을 당겼다. 이윽고 그가 윤종의 무릎을 밟자, 동시에 윤종은 가볍게 무릎을 튕겨 그를 위로 띄워 올렸다.

“으랴아아아아앗!”

솟아오른 조걸이 아래로 떨어지고, 윤종은 정면으로 치고 달렸다.

앞으로 돌진하며, 윤종은 앞에 있는 이를 주시했다. 무섭도록 서늘하게 가라앉은 청명의 두 눈을 보는 순간, 한 줄기 섬뜩함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읏!”

그 압박감을 어떻게든 버텨 낸 윤종의 검이 더없이 섬세하게 휘둘러졌다. 타오르는 듯한 가슴과는 다르게 더없이 정석적인 검이었다.

그의 검 위로 낙하하는 조걸의 검이 겹쳐졌다. 윤종의 검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빠르고 날카로운 검!

하지만.

쾅!

일순 섬전처럼 움직인 청명의 검이 두 사람의 검을 동시에 쳐 날렸다. 조걸의 검보다 배는 빠르고, 윤종의 검보다 배는 더 섬세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힘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다.

“큭!”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 정도야 이미 예상했다. 애초에 저 망할 놈을 상대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뒤로 튕겨 나가는 두 사람의 검에서 동시에 매화가 피었다. 승기를 잡은 이상 저놈은 반드시 공격을 해 올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발을 한 번 묶…….

‘엇?’

그 순간 윤종의 눈이 커졌다.

뒤로 튕겨 나면서 펼친 검로 안으로 남궁세가의 검수들이 들어와 버렸다. 이대로 검을 펼치면 저들이 그의 검에 휩쓸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윤종이 기겁하며 검을 옆으로 튼 순간. 청명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윤종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아, 아니!”

쿠우우웅!

옆구리를 걷어차인 윤종이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어처구니없이 홀로 남겨진 조걸은 놀란 와중에도 어떻게든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당황해서 갑자기 틀어 버린 검에 무슨 힘이 실리겠는가.

“꿰에에에에에엑!”

얼굴을 걷어차인 조걸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엇!”

제 실책을 알아차린 남궁도위가 두 눈을 부릅떴다. 순식간에 조걸과 윤종을 정리해 버린 청명은 무심하다 못해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어느새 그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이익!”

순간 무릎이 떨렸지만, 남궁도위는 필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강맹하게 검을 휘둘렀다.

남궁의 검은 화산의 검과 그 결이 완전히 다르다. 강하고, 무겁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앙!

남궁도위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검끼리 맞닿는 순간, 그의 검이 맥없이 뒤로 튕겨 나간 것이다. 그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검이 청명이 가볍게 떨친 검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저 장난처럼 휘두른 검이 그의 검보다 몇 배는 더 묵직한 진기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곧이어 청명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남궁도위의 턱에 제 주먹을 날렸다.

퍼어어억!

남궁도위가 걷어차인 공처럼 튕겨 나갔다.

파아아앗!

때리기 무섭게 바닥을 박찬 청명은 그대로 튕겨 나가는 남궁도위를 따라잡았다.

덥석.

남궁도위의 어깨를 움켜잡은 청명이 반쯤 의식을 잃은 그 몸을 제 앞으로 끌어당긴 채 당패를 향해 돌진했다.

“마, 망할!”

청명이 달려들면 언제든 발출하기 위해서 양손에 비도를 들고 있던 당패는 순간 당황하여 굳어 버렸다.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청명이 남궁도위를 마치 방패처럼 앞세운 채 그에게 달려들고 있다. 이래서야 비도를 던질 수조차 없잖은가?

당패가 조금만 더 침착했다면 우선은 거리를 벌리거나, 그게 아니면 남궁도위를 피해 청명의 등을 노릴 수 있는 회선비를 던졌을 것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일단 독분을 뿌렸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린 당패는 방법을 찾지 못해 한순간 주저하고 말았다. 청명 같은 이를 상대할 때에는 한순간의 주저도 치명적이다.

파아아앗!

남궁도위의 겨드랑이 사이로 뻗어 나온 검이 섬전처럼 당패를 향해 쇄도했다. 기겁한 당패는 비도고 나발이고 일단 몸을 옆으로 굴렸다. 하지만 그 순간 청명이 잡고 있던 남궁도위의 몸을 그대로 당패에게 집어 던졌다.

당패는 순간 고민하다 눈을 질끈 감고 날아드는 남궁도위를 피해 몸을 날렸다. 저걸 받아 주면 뒷일이야 너무 뻔하지 않은가.

‘에이, 씨발.’

하지만 당패는 그 선택을 순식간에 후회했다.

그가 남궁도위를 피해 몸을 날린 곳에 이미 청명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차라리 저걸 받아 주고 당했으면 명분이라도 챙겼…….

콰앙!

“아악!”

턱을 걷어차인 당패가 포탄처럼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데굴데굴 굴러간 그는 이미 널브러져 있던 남궁도위의 곁에 사이좋게 엎어졌다.

탁.

바닥에 내려선 청명이 무심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끄으…….”

“아이고 죽는다…….”

상황은 그저 처참했다. 제대로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린 이들이 하나같이 어딘가를 부여잡은 채 끙끙대고 있었다.

그 한심한 몰골을 가만히 지켜보던 청명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 청명아…….”

조걸이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재빨리 다물었다. 청명의 표정이 평소답지 않게 굳어 있어서였다.

서늘한 눈으로 조걸을 일별한 청명은 쓰러진 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사흘째다.”

그 말을 들은 조걸이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사흘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 아니 오히려 처음보다 못해.”

그 말을 들은 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사흘 내내 얻어맞기만 했는데 당연히 더 지치고 힘이 없을 수밖에.

하지만 그들의 그런 생각은 다음 청명의 말이 나온 순간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게 실전이었으면 너희에게 다음 기회가 있을 것 같아?”

그 말이 대단한 의미를 품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너무 무거워서 심장이 내려앉고 어깨가 떨린 것이었다.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어?”

“…….”

“그냥 되는 대로 하면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 누군가가 사패련을 정리해 줄 거고, 누군가가 마교를 처리해 줄 거라고?”

주변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러다가 운 나쁘게 강적을 만났을 땐 뒈지면 그만이고?”

목소리가 너무 어둡고 무겁다.

속으로 불만을 끓이던 이들도 이 순간만큼은 차마 청명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 평소에는 노발대발 욕을 하고 화를 내던 이가, 감정의 요동 없이 담담히 건네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무겁고 짙었다.

“그래, 그렇게 해 봐. 그럼 알게 될 테니까. 정말 무서운 건 죽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거라는 걸.”

“…….”

“살아남아서, 어제까지 같이 싸우고 욕하던 놈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게 됐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라는 걸 말이야.”

서늘한 눈으로 모두를 응시하던 청명이 몸을 돌렸다.

“너희 같은 머저리 새끼들이 말귀를 알아 처먹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검을 검집에 밀어 넣고는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당군악과 맹소, 그리고 장로들도 굳은 얼굴로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모두 모습을 감춘 뒤에도 연무장에는 침묵이 꽤 오래도록 이어졌다.

잠시 후.

“저…….”

“잘나셨네. 빌어먹을.”

남궁도위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임소병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졌다.

“빌어먹을, 얼마나 잘 나셨는지 반박할 말이 없네. 이래서 정론만 늘어놓는 인간들이 제일 먼저 뒈졌던 거지. 등 뒤에서 칼 맞으니까.”

남궁도위가 황당한 눈으로 임소병을 바라보았다. 옳은 말을 했다는 소리를 저리 비꼬아서 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 아닌가?

“에이, 빌어먹을!”

그 순간 조걸이 큰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이해를 못 하겠네! 우리끼리 싸울 때는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발리지는 않았다고! 그런데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조걸의 분노는 일견 타당했다.

화산은 청명과 몇 년을 넘게 검을 섞어 왔다. 물론 청명의 전력을 끌어냈다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렇다 한들 이리 손쉽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전력이 더해졌으니, 상식적으로는 더 우월한 싸움이 되어야 하는데 어째 상황은 갈수록 안 좋아지니 답답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건 조걸의 입장이고, 다른 문파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가 뭘 잘못하기라도 했다는 거냐?”

당잔이 이를 갈아붙이자 조걸이 살기 등등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럼 뭘 잘하기라도…….”

“그만해라.”

“아니, 사숙! 제가 틀린 말을 한 건…….”

“다물라고 했다.”

조걸이 어깨를 움츠렸다.

윤종은 조걸이 아닌 누구에게도 화난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가 있으니, 다름 아닌 백천이다.

그런 백천이 지금 차갑게 조걸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저는…….”

조걸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던 백천이 윤종에게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등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느냐?”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검을 펼쳤느냐?”

백천이 서늘하게 일갈했다.

“알아서 피할 줄 알았으니까?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실력이 모자라면 제 주제를 알고 멀찍이 물러나야 하니까?”

“그, 그건…….”

“언제부터 네 안에 그런 오만이 들어찼느냐?”

“……죄송합니다.”

윤종이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윤종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을 싸늘하게 보던 백천은 다른 문파들을 훑어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들이 저도 모르게 슬쩍 고개를 숙였다.

백천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다들 새삼스레 화산의 대제자인 백천의 무게감을 실감했다.

이 중에서 임소병을 제외한다면, 백천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이는 없다.

아니, 어쩌면 백천이 가진 영향력은 녹림왕인 임소병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화산의 차기 장문인이라는 직위는, 적어도 이 천우맹 안에서는 막대하단 말로도 부족하니까.

그런 이가 작정하고 화를 내니 다들 군소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천당가의 소가주인 당패도, 남궁의 실질적인 가주인 남궁도위도, 야수궁과 빙궁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임소병마저도 군말 없이 백천을 보았다.

“모두…….”

백천의 입이 열렸다. 모두가 찔끔했다. 보나 마나 따끔한 질책이 쏟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백천이 모두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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