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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116화 (1,117/1,567)

1116화. 그건 다 준비해 놨죠! (1)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은 대체로 일정하기 마련이다.

장성한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라든가,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 혹은 대견한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눈빛은 대부분 상황에서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이 청명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야말로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왜요?”

그리고 청명은 이들이 이런 눈빛을 보내는 이유를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왜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세요?”

끝내 현종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기는 아무 잘못 없다는 듯 무구하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봐 오는 청명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천불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현종은 도인이다. 그러니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청명아.”

“네?”

“아무래도 지금 맹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보이는구나.”

“네? 문제요?”

“…….”

“여기에요?”

청명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청명의 표정을 또다시 봐 버린 현종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뭐 하러 저 얼굴을 봐서 이미 뒤집힌 속을 한 번 더 뒤집는단 말인가?

“끄으응…….”

현종이 울화통이 터져 말을 이어 가지 못하자 현상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때 할 말을 대신 해 주는 것도 장로의 역할이지 않겠는가?

“장문인께서는 지금 천우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우려하시는 것이다.”

“아아, 그거요?”

청명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우려될 만하죠. 장문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어요.”

“알겠다고?”

현종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이놈이 이리 빨리 말이 통하는 놈이 아닌데…….

그리고 청명은 역시나 이번에도 현종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실전만 겪느라 기초 수련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시죠. 안 그래도 저 역시 그 부분을 고민하던 차였어요.”

“…….”

“하. 이게 참 쉽지 않네요. 원래는 둘 다 병행해야 하잖아요. 한쪽에 너무 치우치면 안 되는 건데……. 잠을 좀 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는 다 죽어…….”

“에이, 뭐 그 정도로 사람이 죽어요? 안 죽어요, 안 죽어.”

어림도 없다는 듯 손을 내젓는 청명이 놈을 보며 현종이 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야, 이놈아! 요즘 맹도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나 있느냐?”

“네?”

“연무장에서만 싸우면 다행이지! 사흘 사이에 식당에서 칼부림이 난 게 세 번이고! 자다 말고 옆 전각과 패싸움이 붙은 게 두 번이다!”

“…….”

“그리고! 싸우려면 곱게라도 싸울 것이지! 빌린 장원에서 벽을 부수고! 지붕을 쳐 날려 대고! 심지어는 불까지 질러?”

“와, 불은 좀 심했다.”

안 그래도 화산 제자들은 마교가 쳐들어왔을 때 그 망할 놈들이 지른 불 때문에 전각을 홀랑 날려 먹은 경험이 있어서 불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벌떡 일어나는데.

아, 그래서 지른 건가?

임소병이겠지. 이건 분명 임소병이다. 과연 얕볼 수 없는…….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냐! 이게! 장원을 빌리는 돈보다 물어 주는 돈이 더 많게 생겼다!”

“에이, 돈도 많이 버시면서.”

“이게 돈이 문제냐! 돈이?”

“그래!”

그 순간 현영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현종을 돕고 나선다.

깜짝 놀란 현종이 고개를 획 돌려 현영을 바라보았다. 이놈이 이렇게 내 편을 들 놈이 아닌데?

“야, 이 녀석아!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리 펑펑 써 대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하는 거야! 있을수록 아낄 줄도 알아야지! 그래야 노후가 편안할 게 아니냐!”

……그쪽이었나?

현종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청명아.”

“네?”

“나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구나.”

현종의 얼굴이 진지해졌지만, 청명의 얼굴은 여전히 한없이 해맑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벌어진다.”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죠.”

“부상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애들이 싸우다 보면 다치기도 하는 거죠.”

“……서로 감정도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원래 애들은 속이 좁아서 잘 삐지고, 다음 날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화해하고 그러는…….”

“진지하게 좀 들어어어어!”

귀를 후벼 대며 대답하는 청명을 보며 끝내 현종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뻣뻣해져 오는 목 뒤를 턱 움켜잡았다.

“어억!”

“아이고, 장문인!”

“거, 나이도 있으신데 흥분하지 마시라니까 왜 자꾸!”

“끄으응…….”

현종이 가쁜 숨을 훅훅 내쉬고는 청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종이 그러거나 말거나 청명은 여전히 ‘제가 혹시 뭘 잘못했나요?’ 하고 묻는 듯, 세상에서 제일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저 가증스러운…….’

이럴 때는 진짜 걷어차고 싶다. 현종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그에게 홍복을 안겨다 주는 존재와 화병을 안겨다 주는 존재가 동일하다는 점일 것이다.

“야, 이놈아!”

“네?”

“천우맹이 어떤 곳이더냐!”

현종이 반쯤은 타이르듯, 그리고 반쯤은 역정을 내듯 말했다.

“모두가 한뜻으로 친구가 되는 곳이라고 분명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더냐!”

“그랬……었나?”

“야!”

“아, 기억납니다. 기억나요.”

“끄으으응.”

울화통이 터진 듯 심호흡을 한 현종이 작정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가 막상 모두를 모아 놓고 한 일이라고는 서로 싸움을 붙이고! 편을 갈라 주먹질을 하게 한 것밖에 더 있느냐! 이래서야 맹이 분열되기만 하는 것 아니냐!”

“분열이요?”

그 말을 들은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분열되지 않느냐!”

“아니, 장문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명이 그런 황당한 말은 난생처음 듣는다는 듯 물었다.

“애초에 제대로 합쳐진 적도 없는데, 분열이라니요? 아니, 애를 낳아야 키워서 시집을 보내든 장가를 보내든 하지.”

“……뭔 도사란 녀석이 비유가 그러냐.”

“사실이 그렇잖아요.”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이 천우맹이지. 우리가 언제 녹림이나 남궁이랑 친해 본 적이나 있습니까? 사천당가랑도 친해 본 적이 없는 판인데.”

“……친하잖느냐.”

“장문인이랑 가주님은 친하시겠죠.”

“아니, 아이들도…….”

“아?”

청명이 히죽 웃으면서 현종을 바라본다.

“아이고. 그렇게 친한 애들이 툭 찔렀다고 저렇게 멱살 잡고 죽일 듯이 싸워 대는 모양이네요. 히야! 중원의 도의가 바닥에 떨어졌구나. 사파 새끼들 욕할 게 없네.”

할 말이 없어진 현종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청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저 말이 딱히 틀리지 않다. 천우맹이 진짜 서로 사이가 좋았다면 이런 상황까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천우맹은 태생적으로 서로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곳이다.

아무리 문파의 일은 문주가 정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마음마저 따라가는 건 아니다. 각 문파의 문주들이 서로 친교를 나누기로 했다 해서 문도들마저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건 아니잖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청명의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더욱 이런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

“왜요?”

“친하지 않다면 친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런데 허구한 날 싸움박질이나 하고 있으니 사이가 더 나빠지기만 하지 않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응?”

청명이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 친해지는 데 싸움박질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어?”

“보통은 주먹질 좀 나누고 나면 굉장히 친해지던데.”

멍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던 현종이 문득 뭔가 알 것 같다는 듯 물었다.

“그 혹시…… 청명아?”

“네.”

“그…… 네가 말한 친해진다는 게…… 혹시 상대가 반박하지 않게 된다거나 갑자기 친근하게 군다거나…….”

“그렇죠. 술도 주고.”

“…….”

“밥도 주고.”

“…….”

현종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눈꼬리에 촉촉한 이슬이 맺혔다.

이놈은 대체 화산에 들어오기 이전에 어떤 삶을 산 것인가? 대체 어떤 무간지옥에서 굴렀으면 사람이 저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단 말인가.

“그건 친해지는 게 아니라 굴복하는 것 아니더냐?”

“그게 그 말이죠, 뭐.”

“그게 어떻게 같은 말이더냐!”

그 순간 청명이 피식 웃었다.

“장문인. 지금 저놈들이 싸우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네가 이간질해서.”

“…….”

“아니냐?”

“그…… 일정 부분, 아주 작은 부분은 맞는 말인데 그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죠.”

청명이 딱 잘라 말했다.

“장문인. 우리는 도인이지만, 그 이전에 무인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무인은 어쩔 수 없이 누가 더 강한지를 겨뤄 보고 싶은 호승심 하나로 사는 족속이죠.”

현종이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을 본 청명이 히죽 웃었다.

“혈기 왕성한 애들을 모아 놓고, 그냥 서로서로 존중하고 살라 한다고 그게 되겠습니까? 언젠가 터질 문제라면 차라리 빨러 터뜨려 버리고 정리해 버리는 게 낫죠.”

현종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저들이 서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더냐?”

“말하자면 그렇죠.”

“아니, 뭔 동네 개들도 아니고 무슨 서열을…….”

“에이. 그게 아니라 거꾸로죠.”

청명이 손을 휘휘 저었다.

“동네 개들도 하는 걸 어떻게 사람이 안 할 수가 있겠어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거죠.”

“…….”

“원래 ‘우리 편이 더 세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 말이에요. 그걸 억지로 눌러 놓느니 그냥 붙어 싸우게 두는 게 나아요.”

현종이 입을 쩌억 벌렸다.

“아, 아니 이게.”

듣자 하면 이게 도가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도가는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을 억지로 거스르려 들지 않는다. 그게 세상의 흐름이든, 그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든 마찬가지다. 억지로 막는 것이 오히려 화를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훌륭하다 칭찬했을 터인데…….’

문제는 이 말코 놈은 신성한 도가의 사상을 제 궤변을 강화하는 발싸개쯤으로 여기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말은…… 그래, 말은 맞는데. 크흠!”

하지만 도문의 장문인 현종은 이 말에 반박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 그렇다 한들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더냐? 이왕이면 순천(順天)이지 않느냐?”

“아?”

청명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겉으로는 친한 척 하하호호 하자, 뭐 이런 말씀이신 거죠?”

“그, 그렇게까지는.”

“좋지요.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엥?”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현종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놈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아니나 다를까, 청명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그…… 체면이니 뭐니 다 챙기고, 자기들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 자화자찬하면서 겉으로 하하호호 가식을 떨어 대고 사이좋은 척하는 곳.”

“…….”

“그런 곳을 제가 아주 잘 아는데요. 그…… 구파일방이라고 들어 보셨나 모르겠네.”

현종은 순간 터지는 속을 어찌하지 못하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이고, 장문인께서 그리도 구파일방처럼 하길 원하신다면 제자 된 도리로 뭐 어쩌겠습니까! 눈물을 머금고 그 위선과 가식의 세계에 발을 담글 수밖…….”

“작작 해라, 이놈아!”

“낄낄낄낄.”

현종의 속을 한껏 뒤집어 놓은 청명이 슬쩍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장문인께서 정말 그런 걸 바라시지는 않으시겠지요.”

현종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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