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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110화 (1,111/1,567)

1110화. 한 번씩은 소름 돋는다니까. (5)

쏴아아아아!

얇디얇은 비침(飛針)이 확연한 내력을 머금고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들었다. 백천의 동공이 절로 지진을 일으켰다.

“마, 막아!”

화산의 제자들이 기겁하여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으라차아아아!”

검기를 뿜어내며 물 샐 틈 없는 방어막을 쳤다.

카가가강!

이윽고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검에 부딪힌 비침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내리는 비마저도 모조리 막아 낼 만큼 물 샐 틈 없는 검기! 하지만 당가가 쏘아 낸 비침은 한낱 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카롭고 매서웠다.

“어억!”

“앗, 따거!”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미리 방비라도 했다면 조금은 더 조밀한 검막(劍膜)을 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급히 전개한 검기다 보니 미세한 빈틈이 존재했고, 당가의 비침은 여지없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검에 두른 경기를 뚫어 내느라 힘을 잃은 비침은 살을 파고들지 못하여 피부를 긁어 대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새끼들이 비겁하게 기습을 해?”

조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당장 어제를 생각해 보면 차마 그 입에 담아서는 안 될, 후안무치한 개소리였지만, 너무도 당연하게도 조걸이 그런 사실을 생각할 리 없었다.

“죽여!”

“처발라 버려!”

산적들의 강함이란 얼마나 크고 높은 산을 차지했는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중원 오악 중 하나인, 험준한 화산을 차지한 화산채의 산적들이 두 눈을 까뒤집으며 당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다 박살……. 꾸, 꾸르륵…….”

“어억!”

“꿱!”

“뭐, 뭐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백천이 격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사질들이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뒤로 획획 넘어가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해 가는 그 얼굴들을 보며 백천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 독?!”

아니, 이게 뭐야. 미친, 비무에 독을 쓴다고?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백천의 입에서 다급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내, 내력을 끌어 올려 독기에 저항해라! 저놈들이 독을 쓴다!”

고함을 친 백천이 다시 고개를 획 돌려 당가 쪽을 보았다. 눈에 핏발을 세운 그는 언성을 높여 항의했다. 아니, 항의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악다구니를 써 대는 이가 있었다.

“비무에 독을 쓰냐, 이 비겁한 새끼들아! 어디 추잡하게 독질이야, 독질이! 이 더럽고 비열한 새끼들!”

허……. 허허…….

아, 맞지. 그건 맞는 말이지.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지.

그런데 말이다……. 그 말을 네가 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소소야?

네가 이제 완전한 화산의 제자가 된 것 같아서 이 사숙은 한없이 기쁘구나. 그런데…… 저기 네 오빠도 있는 것 같은데…… 소속감이 너무 과한 건 아닐까?

“그렇소! 비무에 독을 쓰다니!”

“비겁하다!”

“당가가 언제 이렇게 명예도 모르는 곳이었나!”

쏟아지는 찬사(?)를 들은 당가는 당연히 최선을 다해 화답해 주었다.

“엎드려어어어어어!”

기겁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 화산파의 머리 위로 내력을 품은 표창들이 우수수 스쳐 지나갔다. 딱 봐도 반질반질한 것이, 독을 발라도 아주 꼼꼼히 발라 댄 물건들이다.

“형님.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요?”

“개가 짖는 모양이지.”

그 목소리를 들은 화산 제자들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근데 저 새끼들이?”

그들이 발작하자 당가인들이 낄낄거리며 웃어 댔다.

“아이고. 화가 많이 나셨네.”

“비무는 실전처럼 해야 한다고 입 털어 대던 양반들이 독 조금 썼다고 입에 아주 거품을 무시네.”

“그래, 우리가 비겁한 걸로 합시다.”

“이왕 비겁한 김에 어디 한번 제대로 비겁해 보자고. 뿌려!”

선두에 선 당가인들이 양 소매를 떨쳐 내는 순간, 매캐한 회백색 연무가 자욱하게 뿜어져 나왔다. 연무가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화산파를 덮쳐 왔다.

“뭐야?”

“사, 산공독(散功毒)이다!”

“숨 쉬지 마! 내력이 흩어진다!”

조금만 들이마셔도 내력 운용에 문제를 일으키는 산공독이 구름처럼 일어나 화산을 뒤덮어 왔다.

더럽고 치사하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절로 치밀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내뱉을 상황이 아니었다.

쇄애애애애액!

뭉게뭉게 피어난 독연을 꿰뚫으며 비도가 빽빽이 날아들었다. 그 환장할 조합의 공격을 바닥을 구르며 피해 낸 화산 제자들이 눈을 까뒤집었다.

“으아! 이 개자식들아!”

“죽여 버려!”

악을 쓰며 선두로 튀어 나간 오검이 검을 떨쳤다. 그들이 전개한 매화검기가 날아드는 비도들을 재빠르게 쳐 댔다.

물론 지금 당가가 사용하는 독이 사람을 죽이는 극독인 것은 아니다.

게다가 화산파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내력이 높고, 자소단으로 바꾼 체질 덕에 독에 대한 내성이 높은 편이라 방비만 하고 있었다면 비침 한두 개 맞았다고 거품을 물 일은 없었다.

쓰러진 이들은 독에 대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내력을 한꺼번에 끌어 올렸던 이들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 새끼들 비무 더럽게 하네!”

“한번 해보자는 거지?”

“저 썩을 독쟁이 새끼들, 옛날부터 명문이니 어쩌니 하며 사람 내려다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사천 촌놈들이!”

그 소리를 들은 당가 역시 두 눈을 까뒤집었다.

“근데 저 새끼들이 뚫린 입이라고?”

“애초에 독 쓰는 문파한테, 독 빼고 비무 하자는 게 더러운 거지! 그게 차 포 떼고 장기 두자는 말과 뭐가 달라.”

“그럼 너희들은 검 쓰지 말아야지! 어디다 대고 비겁 운운이야!”

“너희들이 언제부터 잘나가는 문파였다고!”

악감정은 충분히 확인했다. 쌓인 것도 충분히 확인했다.

그럼 남은 건 하나밖에 없다.

“패 죽여!”

“쳐 죽여!”

두 눈에 독기를 담은 화산이 당가를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본 당가는 비처럼 암기를 뿌리는 동시에 매캐한 독연을 사방으로 뿜어 댔다.

“멧돼지 새끼들이 온다!”

“다 짓밟아 버려!”

“으아아아아아아!”

끝없이 퍼지는 고함과 구슬픈 비명,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연무장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죽어라아아아아!”

조걸의 검이 뒤로 물러나는 당가 무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우득!

당연히 검날이 아닌 검면으로 후려쳤지만, 애초에 내공이 실려 버리는 순간, 얇디얇은 검도 쇠몽둥이보다 더 단단해지는 게 당연지사가 아니던가?

옆구리를 직격당한 이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붙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들이!”

깔끔하게 한 사람을 처리한 조걸이 재빨리 다음 표적을 찾아 나섰다.

“으라차아아아아!”

두 눈에 들어온 상대를 향해 다짜고짜 돌진하는 순간, 표적이 된 당가인이 지체 없이 몸을 뒤로 날리며 비도를 뿌렸다.

“소용없어, 인마!”

조걸의 검은 독사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비도를 쳐 냈다. 아무리 당가의 비도가 영활하게 움직인다지만, 미쳐 날뛰는 청명의 검에 비하면 이런 것쯤은…….

쇄애애액!

하지만 그 순간 독 묻은 표창이 조걸의 전신을 뒤덮어 왔다.

“소용없다니까!”

그 뒤에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우모침(牛毛針)이.

“소용 없…….”

그걸 막아 내고 나니 독모래와 독분(毒粉)이.

“소, 소용…….”

그걸 기껏 피해 내고 나니 이번에는 독질려가 바닥에 뿌려지고, 시커먼 쇠구슬들이 비처럼 날아들었다.

“으아아아아! 이 개자식아!”

조걸의 눈이 돌아갔다.

이 새끼들 진짜 더럽게 싸운다. 같은 편일 때는 몰랐는데, 적이 되어 보니 이보다 더 더러운 새끼들이 없다.

독과 암기의 조종이니, 독사보다 더 차가운 피를 지닌 사신이니 하며 떠받들어지던 새끼들이 막상 싸움이 시작되니 다짜고짜 뒤로 도망 다니면서 침이나 던져 대고, 독이나 뿌려 대고!

“제대로 맞붙으라고! 제대로!”

발악하듯 고함을 치는 순간, 한껏 벌린 그의 입을 향해 당문전(當門錢: 당가에서 사용하는 동전 형태의 암기)이 날아들었다.

조걸이 기겁하며 몸을 굴려 당문전을 피해 냈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른 그가 낄낄대는 웃음소리를 찾아 고개를 획 들어 올렸다.

당가 무인 하나가 히죽 웃고 있었다. 조걸의 혈압을 급격히 상승시키는 비웃음을 흘리며 그가 말했다.

“선불 맞은 멧돼지가 따로 없네.”

“당잔!”

조걸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검을 꽉 움켜잡았다.

“너 이 새끼……. 너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야, 누가 들으면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는 줄 알겠네. 사천에 있었으면 내 밑에서 굴렀을 놈이.”

“오, 그렇지. 당연히 그랬겠지.”

“응?”

조걸이 히죽 웃었다.

“그래서 참 다행이지. 사천에서 떠났으니까. 널 시원하게 패 줄 수도 있고 말이야. 잘난 당가 도련님이 내 검에 대가리가 깨져서 바닥을 구르고 엉엉 울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한데?”

“근데 이 새끼가!”

“뭐! 꼬나보면 뭘 어쩔 건데, 이 새끼야!”

조걸이 검을 치켜들고 당잔을 향해 돌진했다. 그 순간 당잔의 펄럭이는 소매에서 수십 개의 암기가 쏟아졌다.

카가가가강!

날아드는 암기를 쳐 낸 조걸은 뒤로 물러나는 당잔에게 죽어라 따라붙었다. 하지만 당잔은 표표히 뒤로 물러나며 암기를 뿌릴 뿐이었다.

잡힐 듯이, 잡힐 듯이 도무지 잡히지 않는 당잔을 보며 조걸이 울분에 찬 고함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아! 비무 진짜 더럽게 하네! 제대로 좀 싸우라고, 이 비겁한 새끼야!”

“칭찬 고오맙다!”

“너, 너는 내가 꼭 죽인다!”

눈을 까뒤집은 조걸이 아예 이성을 꺼 버리고 당잔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황은 다른 이들도 같았다. 사방에서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무슨 악감정이 그리 많았었는지,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양 두 집단 모두 이성을 잃고 날뛰었다.

이젠 도무지 비무나 대련이라고 할 수 없는 아비규환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던 청명은 흐뭇하게 웃었다.

‘아주 개판이네.’

날뛰는 백천과, 눈이 돌아간 채 누군가의 멱살을 부여잡고 턱주가리를 돌리는 당소소의 모습이 보였다.

얘들아……. 물론, 어…… 너희가 열심히 싸우길 바란 건 사실인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지.’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이 새끼들아…….

좀 적당히 체면도 차리고 어느 정도 사정도 봐주고, 그럴 줄 알았지. 설마 이렇게 선불 맞은 사파 새끼들처럼 쌍욕을 퍼부어 가며 싸울 줄 내가 알았겠니? 응? 얘들아?

“그…….”

청명이 슬쩍 고개를 돌려 당군악을 보았다.

“괜찮을…까요?”

“음? 뭐가 말인가?”

“좀 과열된 것 같은데…….”

당군악이 그 말을 듣고는 빙그레 웃었다.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군.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 아닌가?”

“…….”

저기요? 싸우다가 크는 게 아니라 싸우다가 뒈지겠는데요?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 건가?”

“좀 말려야…….”

“응?”

그 순간 당군악의 눈에 독기가 들어찼다.

“아, 이겨 놓고 내빼겠다는 건가?”

“…….”

“섬서에는 그런 법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천은 아니네. 알겠는가? 이겨 놓고 내빼면 자다가 모가지에 비수 박힐 각오 정도는 해야 하지.”

청명은 말을 잃고 생각했다.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니야.’

경지에 오른 무인치고 정상인이 없다는 건 청명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당군악만은 그래도 개중에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이 인간도 결국은 그 정신 나간 새끼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인 것이다.

“어…….”

무심코 고개를 돌린 청명의 눈에, 당패의 면상을 발바닥으로 걷어차고 있는 유이설의 모습이 들어왔다. 청명은 그만 환하게 웃어 버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뭐.

허허. 허허허허. 허허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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