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1화. 이렇게 하는 거지? (1)
콰아아아아아아앙!
휘몰아치는 폭발의 여파에 화산의 제자들이 주춤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저거…….”
단자강이 한 번씩 경력(勁力)을 날릴 때마다, 대지가 터져 나가고 지형이 뒤틀린다. 하지만 그 가공할 마기의 폭발 속에서도 장일소는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단자강에게 맞서고 있었다.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은 공격 앞에서도 장일소는 악착같이 단자강에게 따라붙는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아니, 그런 말로도 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험천만한 묘기다.
장일소에게 좋은 감정은커녕 악의밖에 없는 화산의 제자들조차 시커먼 마기가 장일소의 몸에 닿을 듯 스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눈 한 번 깜빡하는 순간에도 수십 차례의 공방이 오고 간다. 그 속에서 딱 한 순간만 실수를 저지르면 그 즉시 저 지독한 마기가 지근한 거리에서 직격할 것이고, 그 순간 장일소고 나발이고 몸뚱이가 절반은 날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화산의 제자들보다 당사자인 장일소가 훨씬 더 확실히 알고 있을 터. 하지만 그는 마치 공포를 못 느끼는 사람처럼 연이어 단자강을 몰아붙이고 있다.
마치…….
“저, 저거…… 청명이가…….”
조걸이 신음처럼 내뱉은 말에, 백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장일소가 보여 주고 있는 전투 방식은 그들이 익히 아는 이의 모습을 빼다 박은 것처럼 닮아 있었다.
‘저 짓을 해 댈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또 있을 줄이야.’
끊임없이 청명을 보고 배운 백천조차도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 애초에 백천이 저런 방식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건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공격이 오가는 상황에서 저 정도로 가까이 붙어 상대의 공격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고 흘려내는 것은 무학 이전에 감각의 문제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은 제아무리 갈고닦는다고 해도 선천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무학을 정론에 맞추어 담대하게 펼쳐 내는 데 있어서 백천은 오히려 청명보다 나은 면이 있다. 하지만 백천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청명이 가진 동물적인 감각을 흉내 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장일소가 그 청명처럼 주교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넋을 놓고 보던 윤종이 앓는 듯 입을 떼었다.
“너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저건……?”
보는 이들의 심장마저 옥죄는 그 사선 위의 곡예는, 끝내 화산 제자들의 입에서 장일소를 걱정하는 말이 나오게 했다.
알고 있다.
똑같은 것을 해낼 수 있다면, 지금은 청명보다 장일소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광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금방이라도 장일소의 머리가 터져 나가 뇌수를 뿌려 댈 것만 같았다.
‘정말 가능한가, 저게?’
식은땀이 나며 온몸이 끈끈해졌다.
“저러다 장일소가 당하기라도 하면…….”
바로 그때, 귓가에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오는 대로 지껄여 대는구나. 멍청한 정파의 애송이 놈들이.”
백천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연 이를 바라보았다.
사패련의 군사, 호가명. 그가 장일소와 단자강의 격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모르면 입 닥치고 지켜봐라. 너희가 그 알량한 주둥아리로 평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백천은 순간적으로 울컥했지만 그 마음은 이내 싹 가셨다. 호가명의 존재감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짓고 있는 표정 때문이었다.
백천이 알기로 호가명은 장일소의 수족과도 같은 존재다.
분명 사패련 이전 만인방에서도……. 아니, 만인방이라는 이름이 채 생겨나기도 전에 장일소의 이름과 호가명의 이름이 함께 퍼져 나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저 호가명에게 있어서도 장일소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일 터. 그런데 그런 주군이 저렇게 목숨을 건 외줄타기를 하는 와중에 어찌 이리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 호가명이 슬쩍 시선을 옮겨 화산의 제자들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굳이 이들과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너희는 화산검협이 좀 더 믿음직한가 보군?”
백천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호가명은 대답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그건 너희가 그동안 화산검협이 만들어 낸 기적과 같은 승리를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겠지.”
백천은 뭔가 반박하려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꾹 닫고 말았다.
그들이 청명이 놈을 신뢰하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청명이 그들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를 연이어 이겨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면, 분명 지금처럼 청명을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걸 몇 해나 지켜봤지? 오 년? 십 년?”
“…….”
“똑바로 알아 둬라, 정파의 애송이 놈들아.”
호가명이 씹어뱉듯 말했다.
“패군 장일소는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언제나 자신보다 강한 이들을 짓밟아 왔다. 그중 단 한 번의 패배라도 존재했다면, 장일소라는 이름은 흔하디흔한 낭인의 이름으로 잊혔을 터.”
“…….”
“패하지 않았기에 살아남았고, 패하지 않기에 쟁취했다. 상대가 강하든 강하지 않든,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순간 백천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물론 그들 역시 청명이라는 이를 과하다 싶게 신뢰한다. 하지만 장일소의 대한 호가명의 신뢰는 그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저건 오히려 마교에 가깝지 않은가.’
신뢰라기보다는 신앙에 가깝다. 이유와 상황을 물어 따지지 않고, 그저 믿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들 역시 청명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승리를 거듭하는 걸 앞으로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지켜보게 된다면, 결국 승부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청명을 광신하게 되지 않을까?
그 모든 것을 지켜봐 온 호가명이 저토록 맹목적으로 장일소를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호가명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적어도 나는 패군께서 패하는 모습 따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굳건하고 맹목적 믿음에 몸을 떤 백천은 저도 모르게 장일소를 돌아보았다.
그 두 손으로 사파의 정점에 오른 거인을 말이다.
끊어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산발이 된 장일소가 피를 뿜으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의 양쪽 어깨는 이미 마기가 뿜어내는 압력으로 시커멓게 변색된 지 오래였다.
누가 보아도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몸뚱어리.
하지만 엉망으로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눈빛은, 전투 시작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형형했다.
콰드득!
단자강의 손이 장일소의 팔목을 할퀴며 한 움큼의 살을 말 그대로 뜯어 냈다. 그저 스치기만 했는데도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남았다.
맨몸에서 살을 뜯어 내니 고통이 없을 리 없지만, 장일소는 여전히 일말의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단자강의 머리를 집요하게 노렸다.
‘미친놈.’
그런 장일소의 뒤를 받치던 청명의 입에서 문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전장에서 도발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이렇게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 웃는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지금 장일소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뒤에서 지켜볼 때 저런 모습인가?’
스스로 할 때는 모른다. 사람은 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으니까.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경험.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보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하게 된 청명의 감상은 오직 하나였다.
‘……잘도 끝까지 살아남았네.’
저런 짓거리를 하면서 말이다. 왜 그가 싸우는 모습을 본 이들이 하나같이 그에게 거리감을 느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을 상대하는 적들이 느꼈을 심정도 확실하게 알 것 같다.
물론 장일소로는 완벽하지 않다.
그는 검수지만, 장일소는 권사다. 아무리 같아지려 해도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가 순간순간 장일소를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 뒤를 받치는 것이 청명이니까.
청명이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받쳐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지 않다. 알 수 있으니까. 늘 뒤에 서 있던 이가 어떻게 청명을 지켜 왔는지, 눈이 아닌 감각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지금 그가 보는 광경은…….
백 년 전에 당보가 보고 있던 광경이다.
호흡하고 동화한다. 숨결 하나, 동작 하나,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마저 손에 만져질 듯 느껴야 한다. 앞에 있는 이와 자신을 완벽하게 일체화시키고,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예측하고 있어야 한다.
‘이 지독한 짓거리를 잘도 해냈네, 빌어먹을 놈!’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 내야 하는 게 저 망할 장일소 놈이라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어쩐지 생각만큼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다.
덕분에 혼자서는 결코 알 수 없었을 광경을 두 눈에 새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파아아아앗!
청명의 검이 뻗어 나갔다. 그 직후 단자강과 장일소가 서로를 향해 맹렬히 손을 뻗었다. 아주 찰나 먼저 나아간 청명의 검이 단자강의 공격 방향을 미리 선점하며 막았고, 예기 어린 공격으로 살을 저며 냈다.
단 일 검에 모든 것을 걸어 쏘아 내는 극단적인 찌르기. 이건 검술이라기보다 비도술에 가까웠다.
- 다른 암기? 뭐 그거야 필요하면 쓰면 그만이고. 나는 그냥 이게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겁니다. 왜? 불만이라도 있으신가?
‘멍청한 새끼!’
뒤에 서고서야 알겠다.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미세한 암기가 훨씬 유용하다. 당가의 독과 조합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상대의 몸에 암기를 맞히는 것이 우선이니까.
하지만 그걸로는 앞에 선 이를 지킬 수 없다. 적을 막아 내기 위해서는 힘이 실려야 하고, 적을 위협하기 위해서는 적의 눈에 보여야 한다.
그 어떤 무기보다 은밀하고 쾌속하게 발출되어야 할 비도를 외려 적의 눈에 보이게 던져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역설. 그 역설 안에서 완성된 게 열두 개의 칼, 십이비도다.
으득.
청명이 제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깨물었다.
‘도대체 왜 전부 뒤늦게 깨닫는 거야, 이 머저리 같은…….’
사무치게 외로웠던, 때때로 고독하기까지 했던 전장에서도 그의 뒤에는 수많은 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청명은 천마의 목을 베기는커녕 진즉에 전장에 널브러진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 순간, 단자강이 끔찍한 소리를 내지르며 팔을 들어 올렸다. 그 커다란 동작을 장일소가 그저 두고 볼 리 없었다. 단번에 안으로 파고든 장일소가 눈 한 번 깜짝할 새에 단자강의 상체에 십이 권을 틀어박았다.
“끄륵…….”
단자강의 입에서 다시금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입으로 꾸역꾸역 피를 뿜어내면서도 단자강의 눈빛은 더욱더 짙어진 혈광으로 번들거렸다.
“천…… 천마재림.”
순간 장일소의 시선이 급격히 위로 향했다.
검수의 공격과 달리 권사의 공격은 호신강기로 그 충격을 버텨 낼 수 있다. 그 차이가 이 순간 장일소를 지옥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만—마—앙—복!”
단자강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집채만 한 마기가 장일소와 청명의 머리 위로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 도사 형님!
‘그래!’
청명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앞으로 박차고 나갔다.
‘이렇게 하는 거지?’
섬광처럼 쏘아져 나간 청명의 검이 한 자루의 비도로 화해 단자강의 목을 향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