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0화. 네 목소리 같은 건 닿지 않아. (5)
두 눈에서 쏟아지는 검붉은 혈광이 오싹하다. 거기에 악귀처럼 전신을 휘감고 도는 시커먼 마기까지.
반쯤 이성이 날아간 얼굴로 달려드는 주교의 모습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공포를 여지없이 후벼파는 것 같았다.
찢어질 듯 벌어진 입에서 짐승 같은, 아니 짐승보다 더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고막을 파고드는 그 절규를 들으며 장일소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참으로 신기한 작자들이다.
소위 강자라 불리는 이들은 싫든 좋든 자신이 가지는 입지를 의식하게 된다. 좋게 말하면 품위를 갖추게 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표리부동한 위선자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 마교라는 것들에게는 그런 ‘격’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저 주교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건 그저 날것 그대로의 야성이다. 인간 역시 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저게 광신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신도는 신 아래에 모두가 평등하다. 그러니 스스로 격을 내세울 것도 없을 테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흰 얼굴 탓에 더 붉어 보이는 입술이 섬뜩하게 호선을 그렸다.
“이건 너무 꼴사납지 않니?”
소름 돋는 살기를 뿜으며, 장일소는 더욱 가속하며 앞으로 쇄도했다. 찢긴 그의 장포 자락이 불어오는 광풍에 미친 듯이 휘날렸다.
“카아아아아아아!”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모조리 날려 버린 듯한 주교의 양손에 마기가 모여들었다. 저 연기처럼 모여드는 마기의 한 올 한 올이 절대고수가 뽑아내는 강기보다 더욱 강하고 파괴적일 터. 스치기만 해도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터져 나갈 것이다.
단자강이 가공할 속도로 달려들며 장일소의 머리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초식도 뭣도 아닌 막무가내식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둘러진 저 지독한 마기가 그 광인의 발악을 천하절세의 초식으로 탈바꿈시킨다.
그 순간, 장일소의 손이 벼락처럼 뻗어졌다.
‘이미 볼 만큼 보았으니 이를 어쩌니!’
크게 치켜올린 단자강의 손이 채 머리에 닿기도 전에, 장일소의 손바닥이 단자강의 팔꿈치를 먼저 후려쳐 꺾어 버렸다. 휘몰아치던 마기는 장일소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땅에 처박혔다.
장일소는 찰나 생긴 실낱같은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앞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단자강은 미리 예상한 듯 당연하게 다른 한 손을 휘둘러 파고드는 장일소를 공격했다.
‘그렇지!’
장일소가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몸을 뒤틀었다.
날아드는 손을 향해 장일소의 장포가 펄럭였다. 장일소는 흡사 주교의 팔이 빙판이라도 되는 듯, 미끄러지는 것처럼 회전했다. 장포 자락을 휘날리며 나아간 곳은 주교의 품이 아닌 옆구리였다.
‘남아 있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분명 주교의 머리에는 잔상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검이라는 중거리 병기를 들고 지독할 정도로 상대의 품 안으로 파고드는 청명이라는 검수의 모습이!
인간은 한번 위기를 겪으면 본능적으로 그런 상황을 피하려 한다. 그러니 주교는 장일소가 앞으로 달려들 때 당연히 제 품을 막으려 들 터!
애초에 장일소가 노린 것은 이 반응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땅에 처박힌 마기가 폭발하며 뒤늦은 충격이 장일소의 등을 가격했다. 순간적으로 피가 역류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지만, 장일소는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받아들였다.
그리고 완전히 비어 버린 주교의 옆구리로 순식간에 파고든다.
“이렇게 하는 거군.”
푸르게 물든 장일소의 손이 지체없이 주교의 옆구리를 때렸다.
콰앙!
그 충격에 주교의 몸이 채 밀려나기도 전에, 장일소의 주먹이 벼락처럼 같은 자리를 연이어 강타했다.
옆구리에 십여 권을 단숨에 박아 넣은 장일소는 다시금 손을 뻗으려다 멈칫하고는 땅을 박찼다. 그리고 튕겨 나가는 주교에게 따라붙었다.
‘아니! 아니야!’
때려 넣는 게 다가 아니다. 중요한 건, 적에게 숨돌릴 틈조차 내어 주지 않는 것!
콰아아아아아!
튕겨 나가던 주교가 허공에서 팔을 휘둘렀다. 거칠고 시커먼 마기가 장일소를 향해 횡으로 날아들었다. 흡사 허공에 거대한 붓으로 먹물을 흩뿌린 듯했다.
장일소는 땅에 붙을 듯 자세를 낮추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머리 바로 위로 스쳐 지나가는 음산한 기운에,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장일소의 얼굴은 오히려 더욱더 섬뜩한 환희에 물들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잖아? 으하하하하핫!”
장일소가 광소를 터뜨리며 주교에게 지근한 거리까지 박차고 나아갔다.
직접 겪어 보니 알겠다. 저 미친 도사 놈이 왜 그렇게 싸우는지.
장일소는 이미 한차례 흑룡채에서 청명과 싸운 적이 있다. 그때 목숨을 내다 버린 것처럼 싸우는 청명의 전투 방식에 학을 떼지 않았던가.
그때는 그저 정파에서 보기 드문 미친놈이 나왔단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교를 상대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그 방식으로 직접 싸워 보니 알 것 같다.
‘그렇게 싸우는 게 아니야!’
촤아아악!
너른 장포의 소매가 순간적으로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내력이 실리며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소맷자락은 순간적으로 주교의 손을 무자비하게 난자했다.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는 거지!’
이놈은 강하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다.
특히 내력은 천하의 장일소조차 난생처음 겪어 볼 정도로 방대하다. 이놈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사람이 이 정도의 내력을 다룰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력으로는 천하에서 따를 곳이 없다는 소림의 법정도 이자의 옆에 세우면 평범한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막대한 내력에 비해 이들이 보여 주는 초식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저 방대한 내력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것이 이들의 무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한 내력을 갖추지 못한 이는 대체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그 모든 답이 청명에게 있었다.
단전에 있는 내력을 끌어 올려 기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끌어 올려야 할 내력의 양이 방대하면 방대할수록 그 시간은 길어진다.
관건은 그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서로 장력을 날려 댈 수 있는 거리에서 맞붙으면 필패다. 이들이 지닌 무학의 파괴력은 초식의 정순함 따위는 무시할 정도로 거대하니까.
그러니 내력을 끌어모을 틈을 주지 않고, 지근한 거리에서 연이은 공격을 퍼부어 지독한 난전으로 끌어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아!
장일소가 허리를 뒤로 휙 젖혔다. 어느새 날아든 주교의 시커먼 손이 그의 코 바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말이 쉽지!’
이건 그저 방법론에 불과하다.
적의 내력은 장대하다. 시간을 들여 충분히 끌어모으지 못하고 다급하게 끌어 올린 내력조차도 인간의 육체를 한 줌 혈수로 만들어 버리고도 남을 만큼.
그러니 그 방법이라는 게, 불길이 번지는 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길이 번져 오는 방향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이건 제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광인이나 취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있다. 분명히 존재한다. 그 미친 짓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이가.
그러니!
콰아아아아아!
두 눈으로 섬뜩한 광망을 쏟으며, 장일소는 그를 노리고 드는 단자강의 팔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안으로! 안으로! 더욱 빠르게!
‘내가 못 해내면!’
장일소의 팔꿈치가 단자강의 팔뚝에 꽂혔다.
우드드득!
하지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는 단자강의 팔이 아닌 장일소의 어깨에서 울렸다.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마기가 너무도 손쉽게 어깨를 으스러뜨린 것이다.
고통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장일소는 이를 악문 채 다시 몸을 움직였다. 단자강과 아주 가까운 곳을 향해서.
‘창피하지 않겠니!’
단자강의 코앞에서 빠르게 팽이처럼 회전한 장일소는 대번에 어깨로 가슴을 들이받아 버렸다. 회전력까지 실은 어깨치기가 단자강의 가슴에 작렬했다.
콰아앙!
이어 그 반동을 이용해 살짝 몸을 띄운 그는 무릎으로 단자강의 턱을 올려 쳤다.
쾅!
허공에서 몸을 휘돌리는 즉시 단자강의 머리를 향해 수십 차례 연환퇴를 날렸다. 그의 발에서 나온 푸른 기운이 마치 폭포수처럼 단자강을 향해 쏘아졌다.
“크윽!”
연환격은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그야말로 폭우처럼 쏟아졌고, 기어이 이성을 잃은 단자강의 입에서 신음을 뽑아냈다.
쾅!
청명처럼 연이어 허공을 박차 가속한 장일소는 귀기 잔뜩 머금은 얼굴로 단자강을 향해 다시 돌진했다.
“카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괴성을 내지른 단자강이 벼락같이 주먹을 날려 왔다. 지금까지 단자강이 날려 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일 수.
마기에 몸을 맡겨 스스로 짐승이길 자처했다고는 하나, 아직 한 줄기 이성만은 남은 모양이었다. 내력을 줄이고 속도를 높인, 이 순간에 날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일격이었다. 허공에서 가속하는 장일소로서는 피할 수도 없고, 막아 낼 수도 없는 일격.
‘그래도 머리는 있는 모양이지!’
하지만 장일소는 금방이라도 얼굴을 꿰뚫을 듯 날아오는 단자강의 주먹을 보면서도 전혀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틀지 않았다.
자살행위. 그 말 외에는 형용할 길이 없는 미친 짓거리였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돌진한 장일소가 단자강의 주먹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양손에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장일소의 머리 위로 빛살처럼 뛰어든 청명이 검을 펼쳤다. 검날이 아닌 검면, 베어 내는 게 아니라 후려치는 일격!
장일소의 얼굴을 꿰뚫으려던 단자강의 주먹이 튕겨 나갔다. 주먹의 궤도가 뒤틀리며 장일소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드득!
순간적으로 피부가 찢겨 나가고 뼈가 으스러졌다.
하지만 장일소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곧장 단자강을 향해 양손을 벼락처럼 내뻗었다. 그 손을 타고 흐른 기운이 허공에 불규칙한 푸른 궤적을 만들어 냈다. 가장 격렬한 곳에 아로새기듯 그어진 푸른 선은 이 지독한 전투에 어울리지 않게 기묘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콰아아아아앙!
장일소의 쌍장이 단자강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푸른 불꽃으로 둘러싸인 그의 손은 단자강의 의복을 으스러뜨리듯 뚫어 버리고, 그의 복부에 새파란 두 개의 장인(掌印)을 심어 넣었다.
단자강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장일소의 얼굴을 뒤덮었다. 스스로 흘린 피와 적의 피로 시뻘겋게 물든 장일소가 씨익 웃으며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결국 짐승을 잡아 죽이는 건 사람이란다.”
쾅!
장일소의 장심이 단자강의 턱을 올려 쳤다. 반쯤 몸이 떠오른 채 튕겨 나가는 단자강을 향해 장일소가 장포 자락을 미친 듯이 휘날리며 따라붙었다.
살기와 쾌감, 그리고 공포까지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이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독한 표정을 그려 냈다.
‘이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모조리 관통하는 듯한 강렬한 감각에 그의 두 눈은 쉴 새 없이 번뜩였다.
‘끝내주는 기분인데?’
지금 그는 칼날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