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화. 나도 미친놈이었군. (9)
콰아아아아아아!
검은 마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거친 땅거죽이 강풍에 뜯겨 솟아오르고, 나무가 뿌리째 뽑혀 폭풍에 휘말렸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매캐한 흙먼지를 집어삼킨 폭풍은 더욱 몸집을 부풀리며 사방을 휩쓸었다.
그 기경(奇驚)할 광경을 마주하니 백천의 두 눈에도 어찌할 수 없는 공포가 깃들었다.
‘이, 이게…….’
말 그대로 폭풍이었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니, 사람이 만들어 내서는 안 되는!
콰아아아아아아아!
불길한 검은 기류가 모든 것을 휩쓸고 으스러뜨리며 세상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었다.
마기가 온몸을 짓누르고 숨통을 옥죄었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 압도적인 힘 앞에, 백천의 존재는 너무도 미약했다.
‘이게 진짜 주교…….’
이해하게 된다. 이해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강호가 아직도 주교라는 이름을 경원시하는지, 언급조차 금기시하는지. 어째서 선인들이 이 저주받을 마교라는 이름을 깊이깊이 묻어 두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는지.
그리고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어째서 청명이 그 북해의 주교를 두고 반편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는지.
진짜 주교는 마기로 대지를 찢고 하늘을 울린다. 상상해 온 어떤 무학의 경지와도 다른, 그저 파괴적이라는 말로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이였다.
……마음이 꺾여 버릴 것 같았다.
청명과 함께 수많은 위기를 그 검으로 극복해 온 백천조차도, 주교라는 존재를 직면하는 순간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떤 상황에 직면한다 해도, 적어도 마음만은 꺾이지 않을 거라 자신해 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세상을 통째로 덮쳐 오는 듯한 저 가공할 힘 앞에서 인간의 의지란 얼마나 무력한가?
“으…….”
“어……. 어으…….”
홍견조차도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장일소의 명이라면 제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조차 웃으며 받아들인다는 사냥개들이 주인을 앞에 두고 뒤로 물러나고 있다. 아니, 물러난다기보다는 달아난다는 말이 조금 더 적확할 것이다. 차마 주교의 앞에서 등을 돌릴 용기가 없을 뿐.
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도 분명 존재하지 않는가?
홍견의 악명이 무색해질 정도로 나약한 모습이었지만, 백천은 그들을 비웃지 못했다. 아니, 비웃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지금 자꾸만 떨어지려는 발을 제자리에 묶어 두기 위해서 가진 심력을 모조리 다 소모하는 중이었으니까.
으드득.
질끈 깨문 아랫입술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그 피를 허공에 점점이 흩뿌렸다.
“으…….”
그럼에도 백천은 버텨 냈다.
이미 한차례 겪어 봤으니까. 주교라는 이들이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괴물들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교의 존재를 접한 이들에겐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더 충격적이었다. 절망이라는 한 단어로는 모두 형용할 수도 없는 어떤 재해 같은 것이었다.
“아…….”
남궁도위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두 눈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갈 곳을 모르고 떨렸다.
‘어떻게…….’
세상에 어떻게 저런 것이 존재할 수가 있는가?
그는 남궁가의 장자이며, 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몸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강자들의 존재는 이미 더없이 익숙했다. 하지만 저 주교라는 자는 지금까지 그가 알던 강자들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어떻게…….”
다르다. 천하를 호령하는 오대세가의 가주들과도. 세상을 오시하는 구대문파의 장문인들과도.
심지어는 그들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닌 후 세상을 등졌던 전대의 절대자들에게서도 이런 거대한 힘은 느껴 보지 못했다. 그만큼 절망적인 힘이었다.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저건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저건…….
“으…….”
저도 모르게 차츰 물러나던 남궁도위의 어깨를 누군가가 좌우에서 움켜잡았다. 화들짝 놀라 돌아본 그가 중얼거렸다.
“유, 윤종 도장……. 조걸 도장…….”
조걸과 윤종이 그의 양어깨를 아프도록 움켜잡고 있었다. 그가 더는 물러서지 못하도록.
“……물러나지 마십시오, 소가주.”
윤종이 피가 비치도록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버티십시오.”
그 굳건한 말에 남궁도위의 두 눈이 흔들렸다.
버티라고? 어떻게? 저자를 보고도 어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이들이 정녕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있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있는가?
‘두렵지 않은가?’
저걸 보고도? 지금도 남궁도위는 육체 이전에 정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혼백이 제 의지를 벗어나 비명을 질러 대고 있는데,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버텨 내란 말인가?
아니면, 이곳에 묵묵히 버티고 선 채로 다가올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난 못 해!’
핏발 선 눈으로 고함을 치려던 남궁도위는 그 순간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를 진정시킨 건…… 어깨를 움켜잡은 윤종의 손에서 느껴지는 작은 떨림이었다.
남궁도위가 흠칫하며 윤종을 바라보았다.
‘떨고 있다고?’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윤종의 다리가 금방이라도 꺾일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남궁도위의 입에서 참지 못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두렵지 않은 게 아니다. 오기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떨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도 사람일진대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이들 역시 남궁도위처럼. 아니, 어쩌면 남궁도위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주교라는 존재를 버텨 내고 있었다.
“물러났다는…….”
으득.
말을 하던 윤종이 입술을 콱 물었다.
“……달아났다는 기억을 남기지 마십시오, 소가주……. 당신을 위해서라도!”
남궁도위의 턱이 덜덜 경련을 일으켰다.
억지로 시선을 돌리니 선두에 선 청명의 등이 보였다.
뒤쪽에 서 있는 남궁도위조차 의지가 뒤틀려 버릴 것 같다. 그렇다면 정면에서 주교를 마주하는 청명은 대체 얼마나 거대한 것을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도장…….’
주먹을 힘껏 쥐니 남궁도위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뿌드득.
부러질 듯 이를 갈아붙인 그는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못 박았다.
맞서 싸울 용기? 여전히 없다. 저 마귀가 그를 향해 달려든다면 남궁도위의 의지 따위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앞에서 저리 버텨 주는 이가 있는데, 대체 무슨 수로 발을 돌려 달아나란 말인가?
두 눈에 핏발을 세운 그는 제 손에 잡힌 검을 부러질 듯 움켜잡았다.
“도움은…… 못 되더라도.”
남궁도위의 목에서 피맺힌 음성이 새어 나왔다.
“……적어도 같이 죽겠습니다.”
그제야 그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그 사실을 느끼지도 못한 채, 청명의 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도장, 부디!’
그 시선에 더없는 간절함이 실렸다. 먼 과거의 누군가가 그 등에 보내던 시선과도 닮아 있었다. 그 눈빛이 청명의 등을 떠밀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닿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뜯겨 나가고 내부가 진탕되고 말 지독한 마기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사방을 휩쓸었다.
그 폭발적으로 번져 나가는 마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청명이 이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괜히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내가 저런 걸 상대하고 다녔단 말이지?’
손끝이 으스러질 듯 아려 올 때마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거야 원…….”
비웃듯 삐딱해진 청명의 입술을 뚫고 큭큭거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도 미친놈이었군.”
이미 수도 없이 겪어 본 마기다. 하지만 사람은 서는 곳에 따라 보는 것도 달라진다고 하던가? 과거, 고고했던 위치에서 내려다보던 주교의 존재와 그때와는 비할 바 없이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는 주교의 존재는 천양지차였다.
절망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청명의 두 눈엔 투지가 들끓기 시작했다.
‘힘의 차이라…….’
그는 맹수가 으르렁대듯 이를 드러냈다.
“한낱 주교 새끼가 건방진 소리 지껄여 대기는.”
짙은 살기가 청명의 기세를 예리하게 벼리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싹하군.”
불어오는 바람에 장일소의 장포가 미친 듯이 펄럭였다. 하지만 장일소는 미동조차 없이 밀려오는 마기를 정면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그가 가만히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었다.
“역시나 세상은 넓어. 저런 놈들이 뻔히 존재하고 있었을 줄이야.”
청명이 피식 웃었다.
“왜? 겁이라도 먹었나?”
“겁?”
장일소가 옆에 선 청명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기다란 두 눈이 재미있다는 듯 호선을 그렸다.
“못된 아이로구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버릇은 고쳐야지.”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미친놈.”
“큭큭큭큭.”
장일소가 유쾌하게 웃어젖혔다. 그 와중에도 두 눈은 새파란 빛으로 번뜩였다. 절대의 대적을 바로 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의 요사스러움은 조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확실히 내 계산에서 어긋난 일이야. 그리고 나는 변수라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엔 귀기가 넘실거렸다.
“활용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기면 치워 내야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딱히 네 말에 동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검을 돌려 역수로 잡은 청명이 피식 웃었다.
“그 의견에는 나도 동의해.”
요사스레 빛나는 장일소의 눈빛과 차갑게 끓어오르는 청명의 눈빛이 허공에서 서로 교차했다.
“그럼 확인해 보지.”
장일소가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그리고 양손을 펼쳐 내며, 끔찍하게 휘몰아치는 마기를 향해 태연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준비한 잘나신 칼이 얼마나 날카로울지 말이야.”
“걸리적대지나 마라,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검을 늘어뜨린 청명 역시 발을 내디뎠다.
서로 거리를 둔, 검고 붉은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검은 폭풍을 향해서 말이다.
결코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없는 상극인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 같은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카가가각!
까라라락!
청명의 검이 바닥을 긁는 소리와 장일소의 반지들이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콰아아아앙!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땅을 박차며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 속으로 단숨에 몸을 던졌다.
자하신공을 극성으로 뿜어낸 청명의 검이 붉은 노을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창염살강(蒼炎殺剛)을 있는 대로 끌어 올린 장일소의 양손은 푸르게 불타올랐다.
붉고 푸른 두 줄기의 빛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