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9화. 나도 미친놈이었군. (4)
처음 느낀 건 확연한 차이였다.
지금껏 그들이 상대해 왔던 마교도는, 말하자면 짐승. 그것도 지옥에서 갓 세상에 뛰쳐나온 것 같은 끔찍한 짐승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평범한 마교도들이 무거운 둔기라면, 저들은 제련한 칼날 같다. 섬뜩하리만큼 잘 벼려진 예기가 벌써 전신을 찔러 왔다.
“스님!”
“알고 있소, 시주!”
백천이 고함을 내지르기 무섭게 혜연이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허공에서 몸을 뒤튼 그는 벼락처럼 주먹을 내질렀다. 가공할 권력이 전방에 쏟아졌다.
‘백보신권(百步神拳)!’
그 모습을 본 조걸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소림이 천하에 자랑하는 칠십이종절예 중 하나이자,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권공! 특히나 저 혜연의 손에서 펼쳐진 백보신권의 위력은 말로 해서 무엇 하겠는가?
말 그대로 벼락같은 권력이 집법사자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아아앗!
집법사자가 허공에 손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어둠보다도 더 짙은 검은 한 줄기 선이 피어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들던 혜연의 권력이 순간 두 쪽으로 쪼개졌다.
‘……뭐?’
그 광경을 본 이들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불가의 내력은 파사(破邪)의 기운. 도가의 선기(仙氣)처럼 세상의 사특한 것을 멸하는 성질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그런 혜연의 권력을 너무도 간단하게 베어 낸 것이다.
이 광경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도 컸다.
‘강하다!’
느껴지는 감각 이상으로!
설상가상으로, 집법사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힘을 잃어 가던 마교도들이 미친 듯이 기세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마기가 운무처럼 그들을 덮쳐 왔다.
“흡!”
“이, 이게!”
오검이 당황해 짧게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장일소가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손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가 스스로 맹렬하게 회전하더니 전진했다.
“어딜.”
그렇게 장일소의 얼굴 앞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회전하던 팔찌는, 이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집법사자들을 향해 쏘아졌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는 황금빛. 장일소는 결국 적이 될 사이라는 걸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화산의 제자들마저도 순간적으로 경탄할 수밖에 없는, 대단한 일격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위력을 품은 팔찌가 선두에서 달려드는 집법사자의 상체를 정확히 노렸다. 자신을 꿰뚫을 듯 날아드는 팔찌를 보며 적일이 두 눈을 일그러뜨렸다. 잔혹성이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파아아앗!
세검을 쥔 적일이 팔을 앞으로 뻗었다. 검 끝과 장일소의 팔찌가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앙!
폭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황금빛 기운과 검은 마기가 사방으로 폭죽처럼 터졌다.
그 순간 백천은 보았다. 얇디얇은 적일의 세검의 끝에 걸린 장일소의 팔찌를.
‘저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고 만다. 저 위력으로 날아드는 팔찌를 후려쳐 날리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나 애병(愛兵)이 저토록 얇은 세검이라면 저 정도 충격에서 검이 부러지지 않게 보호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저 집법사자는 단순히 장일소의 팔찌를 쳐 낸 것도 아니고 무력화한 뒤 낚아채기까지 했다.
‘수준이 달라.’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몇은 이미 북해에서 집법사자를 겪어 보았다. 하지만 그때 만났던 집법사자와 저곳에서 다가오는 집법사자는 그 직위만 같을 뿐, 실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비교를 불허했다.
‘이런 이들이 열이나.’
백천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 와중에도 거리를 좁혀 온 집법사자들이 마교도들의 앞에 내려섰다.
턱!
발을 멈춘 그들은 고개를 들어 청명과 장일소 일행을 응시했다. 그 수는 정확히 열.
오만한 시선을 보내오는 그들의 뒤로 마교도들이 숨죽이며 집결했다.
그 모습만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제부터 저들을 상대해야 할 화산의 제자들보다, 침입자를 발견한 맹견처럼 집법사자들을 노려보는 홍견보다, 저 마교도들이 집법사자를 더욱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군을 두려워한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일이었지만, 마교에서는 이게 당연한 상식이었다.
집법사자들은 평신도, 그러니까 중원인들이 흔히 마졸(魔卒)이라 부르는 이들을 관리하고 지휘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임무가 있는데, 바로 교내의 배교자를 색출하고 교리에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러니 마교도들에게는 당연히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집법사자가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마교의 교리는 위대하신 천마의 말씀. 그 복음을 어긴 이들이 받을 대가라고는 오직 하나밖에는 없으니까.
하지만 또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아무리 저들이 교도들을 징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는 하나, 마교도 역시 힘을 숭상하는 무인이라는 것. 저들이 보이는 두려움이 저 집법사자들이 가진 힘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카가각.
선두에 선 적일이 손에 든 세검으로 바닥을 짧게 긁었다.
“인정하지.”
선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범하다 할 만한 목소리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지독한 이질감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에 온 후 마교도들에게서 들었던 소리라고는 위협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다였다. 이렇게 담담한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적일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의 앞에 선 정사의 연합군을 노려본다.
“저열한 중원인들 중에서도 쓸 만한 놈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건 인정을 가장한 조롱, 찬사를 가장한 무시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적일이 제 얼굴을 반쯤 가린 복면을 천천히 끌어 내렸다. 거친 피부와 거무튀튀한 입술이 드러났다. 두 눈은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주제도 모르고 교에 대항한 네놈들의 말로는 오직 하나뿐이다. 죽음.”
거무튀튀한 입술이 꿈틀댔다.
“하지만 안타까워할 건 없다. 너희의 죽음이 아주 가치 없지는 않을 테니까. 너희의 죽음이 세상에 전할 것이다. 교의 두려움을. 그분의 위대함을. 그리고 너희의 나약함…….”
“거, 진짜 혓바닥 더럽게 기네.”
청명이 적일의 말을 뚝 잘라 버렸다.
입을 다문 적일이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청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수다 떨고 싶으면 묻는 말에나 대답해 봐.”
적일의 입가가 뒤틀렸다.
“불신자와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폐부가 뒤틀리는 기분이지만…… 교는 본디 자비롭지. 말해 봐라, 어리석은 이여. 무엇이 궁금한가?”
“왜 중원에 들어왔지?”
“……뭐?”
“주교 하나에 이 정도 마교도라……. 교구 하나가 단독으로 움직인 모양이로군. 너희에게 그런 권한은 없을 텐데?”
적일의 두 눈이 일순 크게 흔들렸다.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중원인이 아닌가?
“넌…… 대체?”
어떻게 중원인이 저런 것들을 알고 있는가?
청명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혹시 너희…… 배교자(背敎子)냐?”
그 순간 마교도들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집법사자뿐만 아니라 그 뒤를 지키던 마교도들까지 마기와 살기를 있는 대로 뿜었다.
기세가 얼마나 살벌한지 홍견마저도 움찔할 정도였다.
“감히……. 감히!”
내도록 침착을 유지하던 적일이 단번에 이성이 날아간 듯 눈을 희게 까뒤집었다.
“그딴 말을 지껄이다니! 감히! 이 벌레만도 못한 놈이! 감히!”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청명의 주위에 있는 그 누구도 갑작스레 터져 나온 이 격렬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교에게 있어서 배교가 어떤 의미인지 아는 이가 없으니까.
“아니지, 아니지.”
청명은 여전히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태연히 말을 이었다.
“너희 같은 조무래기는 배교할 능력도 없지? 배교를 한 놈이 있다면 대가리겠지.”
청명이 삐죽이 솟아 있는 주루를 흘끗 보더니 물었다.
“어때? 놈이 배교했나?”
“닥쳐라, 이 개 같은 놈아!”
적일이 이성을 잃고 포효했다.
“네깟 놈이 감히 주교의 깊은 생각을 어찌 이해할 수 있단 말이냐! 그분이 어떤 심정으로 이 더러운 땅을 밟았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는 불신자 주제에!”
“호오…….”
청명의 눈이 순간 어둡게 빛났다.
‘맞군.’
이걸로 확실해졌다. 진짜 마교가 움직인 거라면 겨우 주교 하나가 자신을 따르는 교구만을 이끌고 중원 땅을 밟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이건 저 주교 놈의 단독행동이라는 의미다.
이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이놈들만 어떻게든 처리하면 마교의 침공은 일단 멈춘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우습네.”
청명이 잔혹한 미소를 보였다.
“천하의 마교도 분열하는 모양이야. 뭐, 잘 생각했어. 현명한 선택이야. 천마 놈 모가지 잘린 지가 백 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그 발바닥이나 핥고 있는 놈들이 천하의 등신이지.”
“끄으으…….”
적일의 목과 얼굴에 시퍼런 핏줄이 툭툭 불거지기 시작했다. 분노로 이성을 완전히 놓아 버린 그는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죽일 듯한 눈으로 청명을 노려보았다.
그가 당장 달려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분노를 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큰 분노가 그의 발마저도 묶어 버린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만일의 사태가 벌어져도 내가 도와줄 테니까.”
청명이 웃으며 검을 까딱였다.
“혹시나 천마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한 번 잘렸던 모가지가 두 번 안 잘린단 보장도 없잖아? 안 그래?”
“노오오오오오옴!”
분기탱천한 적일이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짓쳐 달려들었다.
그의 원래 계획은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마교도들을 정비하여 저들을 에워싸는 것이었다. 강한 소수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이 이상의 전법은 없으니까.
마공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이성을 앗아 가는 무학. 짐승처럼 달려들 때와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일 때는 극단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가 침착하게 뒤따르는 이들을 운용했다면, 한 줌에 지나지 않는 이들을 상대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명의 도발에 넘어간 지금, 그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모든 계획은 분노로 타 버려 흰 재만 남았다.
“그 아가리를 찢어 버리겠다!”
적일 본인이 가장 이성을 잃었으니까.
역린을 찔린 용이 발악하듯, 천마라는 불가침영역을 침범당한 적일은 스스로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청명에게 달려들었다.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마교도들 역시 모조리 눈을 까뒤집고 태풍에 밀려오는 검은 해일처럼 돌진했다.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광기의 향연이었다.
누구라도 겁을 집어먹을 광경이지만, 청명은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그의 검에 어린 새빨간 검기가 넘실거렸다.
“이래서 마교가 좋다니까.”
콰앙.
땅을 세게 박찬 청명이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적일을 맞이했다.
적과 싸우는 것은 전쟁이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짐승을 상대하는 건 사냥일 뿐이다. 마교를 수없이 사냥해 온 청명의 검이 어둠 속에서 더없이 선명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