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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964화 (965/1,567)

964화. 실망시키지 않는다니까. (4)

“모조리 쳐 죽여라!”

흑룡왕이 내공을 가득 실어 사자후를 토했다. 그새 전의를 회복한 모양으로 싸우는 남궁세가의 검수들을 보며 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지칠 대로 지친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할 것이다.

그러나 눈빛만은 완전히 달라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완전히 잡아 먹혔던 그때와는 다르게, 저들의 눈은 지금 독기로 가득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몰살시키기 어려울 리 없지만, 아무래도 피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죽음을 각오한 이들은 그만큼 지독하기 마련이니까.

“멍청한…….”

흑룡왕이 이를 뿌득 갈아붙였다.

어차피 결국은 이리될 것을 뭐 하러 시간을 끌어 댔단 말인가? 잘난 듯이 나서서 떠들더니, 결과적으로는 손해만 보지 않았는가?

흑룡왕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장강 위를 쏘아보았다.

그의 눈에 느릿하게 장강의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작은 조각배가 보였다.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절한 살육의 현장과는 무관하다는 듯, 너무도 여유로워 보이는 배가.

“……빌어먹을!”

그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일을 있는 대로 꼬아 놓은 장일소가 아니었다. 장일소가 저지른 일들 때문에 수로채의 피해가 커졌음에도 감히 이 일을 따져 묻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으드득.

분명 그가 이 장강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들의 관계가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뒤틀렸다는 말인가?

흑룡왕의 눈에 흉폭한 노기가 어렸다.

치솟아 오른 노기는 어떻게든 풀어내야 하는 법.

“모조리 찢어 죽여라! 모조리! 쉽게 죽이지 마라! 감히 수로채에 대항한 대가를 처절하게 느끼며 죽게 해 줘라!”

그의 노기가 애꿎은 남궁세가를 향해 광포하게 쏟아졌다.

콰득!

날카롭게 날이 벼려진 데다 내력까지 실은 작살은 단련된 인간의 육체를 너무 쉽게 뚫어 버렸다.

“끅…….”

이미 피에 흠뻑 젖어 검붉게 변한 의복이 또 새로운 피로 젖는 모습을 확인한 수적의 두 눈에 저열한 쾌감이 들어찼다.

수적은 찔러 넣은 작살을 아예 뒤틀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놈이라 해도 배에 박힌 작살이 내장을 헤집는 순간만큼은 하나같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하나.

“흐…….”

작살에 꿰뚫린 남궁세가의 검수가 돌연 히죽 웃었다. 피에 젖은 이가 드러나는 순간, 그의 손에 잡힌 철검이 빛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파아아앗!

콰각!

검이 뼈를 끊어 내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리며, 목에서 떨어져 나간 수적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쓰러질 듯 앞으로 휘청이던 검수는 피 묻은 검으로 땅을 짚고 덜덜 떨리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렸다.

“쿨럭!”

작살을 찔러 넣었던 이는 이제 목 없는 시체가 되었지만, 그의 몸에는 여전히 작살이 박혀 있다. 남궁의 검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러 작살의 대를 잘라 냈다.

카강!

짧게 대를 잘라내는 건 양날의 검과 같은 행위다.

당장 몸을 움직이는 데는 낫지만, 남은 작살 촉은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더욱 깊이 파고들 것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인데, 시체에 그깟 촉 몇 개 박혀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는가?

배에는 이미 두 개의 작살이 박혔다. 좌수의 손가락은 모조리 잘려 나갔고, 깊이 베인 어깨에서는 이제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깊은 상처는 허벅지다. 잘려 나간 혈관에서 피가 개울처럼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상관없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의 눈에 독기가 넘실거렸다.

‘가주께서는 훨씬 더 처참하게 돌아가셨다!’

적어도 이 몸에 열 개의 작살을 박아 넣기 전에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죽음밖에 남지 않은 목숨이라면, 그의 옆에 선 이, 뒤에 선 이에게 향할 공격을 그가 하나라도 더 받아 내야 한다.

쇄애애액!

흐릿해진 시야로 날아드는 작살이 얼핏 보였다. 하나가 아니라 둘……. 아니, 다섯인가?

알아도 소용은 없을 것이다. 작살이 몇 개든 어차피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남궁표(南宮彪)란 이름을 가진 이 남궁의 검수는 다만 진각을 밟으며 검을 휘둘렀다.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몇 개의 작살이 몸을 꿰뚫든 그 작살을 찔러 대는 수적들만큼은 반드시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는 각오가 어린 공격이다.

콰드득! 콰득! 서걱!

작살이 몸을 꿰뚫는 소리와 검이 육신을 가르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

제 목에 파고든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느낀 남궁표의 몸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죽음이 다가온다.

순간 그는 목이 꿰뚫려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털썩.

바닥이 땅과 닿는 감각이 먹먹하고 희미했다. 점점 세상이 어둠에 뒤덮여 가는 걸 느끼며 그는 몸을 늘어뜨렸다.

편안하다.

너무도 편안해 이대로 쉬고만 싶다. 이대로…….

하지만 그 순간 남궁표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반쯤 놓친 검을 다시 움켜잡았다. 이미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수적들은 그를 짓밟으며 나아간 상태였다.

남궁표는 엎어진 채로 피에 젖은 이를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

“아아아아아아악!”

“이 개자식!”

땅에서부터 날아든 예상치도 못한 공격에, 수적들이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꼴을 보며 남궁표는 낄낄 웃었다. 아니, 웃으려 했다.

콰득! 콰득! 콰득!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수십 개의 작살에 꿰뚫려 고슴도치가 되었으니 더는 웃을 길도 없었다.

‘소가주……. 보디 보중…….’

털썩.

또 하나의 생명이 장강에 스며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남궁세가의 검수들은 마치 귀신 같았다.

무위는 의욕만으로 달라질 만큼 형편 좋은 것이 아니다. 무학을 진전시키는 것은 의욕이 아니라 노력이다.

하지만 지금 남궁세가의 검수들은 그런 강호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작살이 눈을 뚫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검을 휘두른다. 작살이 배를 꿰뚫고 등으로 삐죽이 튀어나와도 비명 한 번 내지르질 않는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오직 악에 찬 고함뿐이었다.

“죽어라! 사파의 개들아!”

“남궁의 검수가 어떻게 죽는지 보여 주마!”

수적들 역시 독기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다. 그들은 분명 지난 전투에서 겁먹은 개를 몰아붙이듯 남궁을 몰아붙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은 분명 상대적으로 소수에 불과한 남궁의 검수들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든다는 말이 이토록 걸맞은 광경이 또 있을까?

배에서 흘러내리는 내장을 한 손으로 받쳐 든 채 검을 휘두르는 이, 부러진 검을 맨손으로 부여잡고 미친 듯이 휘둘러 대는 이, 쓰러져서도 상대의 발목을 베는 이들까지.

지옥도라는 말은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말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지옥도의 한중간에서 남궁명은 흡사 광인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콰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어깨에 작살이 박혔다. 하지만 남궁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철검으로 앞에 선 수적의 심장을 베어 냈다.

“와라!”

혈기 넘치는 그 외침과는 다르게 그의 가슴속에는 비애가 가득했다.

목숨을 바치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 그는 이미 죽어야 했던 사람이니까. 남궁황이 이 장강에서 목숨을 버릴 때, 그의 앞에서 길을 열고 가장 먼저 죽었어야 할 이가 바로 그다.

아직 이 모진 목숨을 이어 온 것은 오직 남궁황의 명령 때문이었다.

하지만…….

“끄륵!”

귀를 파고드는 억눌린 신음을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심장을 한 움큼씩 떼어 내는 것만 같았다.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제 혀를 물고 죽어 가는 이들의 신음은 비명보다 고통스럽고 울음보다 서글펐다.

“으아아아아아악!”

남궁명의 입에서 악에 받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의 검은 이제 남궁세가의 검리에서 벗어나 발작적인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무인은 칼을 잡고 죽는 법. 이곳에 선 이 중, 그 각오가 없는 자 있겠는가?

하지만…….

‘서글프구나.’

어느새 남궁명의 두 눈에선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누구 하나 손을 뻗어 주지 않는 이 외롭디외로운 곳에서 비명조차 흘리지 못하고 죽어 가는 이들이 너무도 서글프고 서러워서, 참으려 해도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세상은 이들의 슬픔을 알아줄까?

세상이 이들의 죽음을 기억할까?

“크흐…….”

신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목소리가 남궁명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끄으……윽…….”

가슴에 커다란 도가 박힌 한 남궁 검수의 입에서 새어 나온 신음이 귀를 스친다. 또 다른 이는 팔이 꿰뚫려 더 검을 들 수 없게 되자 평생 잡아 온 검을 내팽개치고 몸을 날려 앞의 수적들을 붙잡고 늘어진다.

자신의 뒤에 선 이를 한 사람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남궁명은 광인처럼 웃었다.

“흐…….”

중과부적.

이미 사방이 포위당한 상황이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도 적의 수는 줄지 않는다. 그들이 죽이는 이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흉흉하게 밀려든다.

아무리 악을 쓰고 각오를 다져도, 그들만으로는 할 수 없다.

‘지켜보고 있는가?’

남궁명이 멍하니 강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너머에서 그들의 최후를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소림과 구파를 향해.

“아직도…… 아직도 지켜보고 있느냐는 말이다! 이 개자식들아아아아아아아아!”

콰득! 콰득!

발작적으로 휘두른 검이 적의 몸을 가르는 순간, 몇 개의 작살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대주우우우우!”

그의 얼굴을 향해 작살들이 가공할 속도로 날아들었다.

“지켜라!”

“대주님을 지켜!”

창궁대원들이 몸을 날리며 그런 남궁명을 지켰다. 필사적으로 검을 날려 작살을 튕겨 내고, 다급히 뻗은 팔로 남궁명 대신 상처를 입어 가며.

남궁명이 비명을 내질렀다.

“뭐 하는 짓이냐! 이 멍청한 새끼들아!”

그들은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덧없이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다. 이런 곳에서 이리 비참하게 죽을 이들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남궁의 영웅이 될 이였고, 또 누군가는 천하의 협객이 될 이다. 적어도 누군가의 아비가 되고, 누군가의 친우가 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리 허망히 죽어 가야 한단 말인가?

“으, 으아아…….”

악을 쓰며 달려들려 했지만, 작살에 꿰뚫려 버린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 며칠간 부상자들에게 모조리 기운을 쏟아낸 그는 이곳에서 가장 지쳐 버린 이 중 하나였다.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그의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앞을 막아선 이들의 등을 수십 자루의 작살이 꿰뚫고 나오는 광경이.

“어…….”

작살에 밀려나며 뿜어진 피보라가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뜨끈한 피가 얼굴에 쏟아진 순간, 그는 화상을 입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로 뜨거운 건…….

“흐윽…….”

자조하듯 웃고, 절망하듯 흐느끼고, 이내 제 머리를 쥐어뜯어 댄 남궁명의 고개가 어느 순간 앞으로 축 늘어졌다. 마치 죄인이 참수 직전 목을 빼는 것처럼.

당당하려 했다. 마지막 그 순간까지 당당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남궁명에게는 불가능했다.

‘가주. 저는…….’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남궁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람이란 모두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너무도 간절한 것이 있을 땐 그저 바라게 된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검이 아닌 손을 마주 잡고, 그저 간절히.

‘제발 누가…….’

남궁명의 입에서 짙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누가 제발 도와줘…….”

쇠를 긁어 대는 것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제발…….”

그 어떤 절규보다 더 처절히 뇌까렸다.

하지만 그 감정이 수적들에게 전해질 리는 없었다. 죄를 빌듯 그 자리에 허물어진 남궁명을 향해 한 수적이 비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병신 같은 놈이.”

챙!

손에 들린 작살이 짧은 울음을 토했다.

“도와달라고? 남궁이라는 이름이 울겠군. 소림도 너희를 버린 마당에 이 장강에서 너희를 도울 이가 있을 것 같으냐?”

수적 중에서는 나름 직위가 있는 자인지 그가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다른 수적들도 그와 보조를 맞추었다.

“협의니 정의니 번지르르하게 지껄여 봤자, 이게 너희의 본성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남궁명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걱정할 것 없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뒈질 테니, 저승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짙은 조롱과 함께 수적이 제 손에 들린 작살을 뒤로 당겼다. 일격에 남궁명의 머리를 꿰뚫어 버리겠다는 듯.

“그만 죽어라!”

팽팽하게 당겨졌던 작살이 남궁명의 머리를 향해 쏘아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앗!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어마어마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작살을 날리던 이가 기겁을 하여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뭣?’

그가 본 것은 거대한 원반.

아니!

마치 원반처럼 맹렬하게 회전하며 그에게 날아드는…….

‘검?’

콰아아아앙!

사고가 멈추고 만다.

매화도의 모래톱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며 틀어박힌 검의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

이 황당한 광경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려는 찰나였다. 그의 머리끝부터 사타구니까지를 잇는 하나의 선이 생겨났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

몸에 생겨난 변화를 감지한 수적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얼굴을 더듬었다.

‘피?’

손바닥에 붉은 피가 점점이 묻으며 축축한 게 느껴졌다. 수적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을 적시는 피는 점점 더 많아졌다. 그리고 이내 턱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경악과 불신.

하지만 그뿐.

부릅뜬 두 눈이 서로 위아래로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둘로 쩍 갈라진 수적의 몸이 바닥으로 각각 허물어졌다.

털썩.

순간 싸늘한 침묵이 매화도에 내려앉았다.

전투의 광기로 달아올랐던 공기가 일순 싸늘하게 식어 버리고도 남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홀린 듯 한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너른 장강을 격하고 남궁명을 구해 낸 검이 날아온 곳을 향해.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푸른 장강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강변에 선 한 사내의 모습을.

남궁명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온다.

“아아…… 아…….”

어찌 모르겠는가?

저 검은 무복을.

마치 심장에서 흐른 한 줄기의 피처럼 왼쪽 가슴에 새겨진 저 붉은 문양을.

이 먼 거리에서도, 이 흐릿한 시야로도 그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똑똑히 보였다.

“화산…….”

남궁명의 입에서 마침내 그 이름이 온전히 흘러나왔다.

“화산검협…….”

청명이 어두운 눈으로 장강에 뜬 배들과 매화도를 노려보았다.

모두 이 상황에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매화도에서 조금 떨어진 커다란 배 위에서 지켜보던 한 사내가 피처럼 붉은 입술을 그믐의 달처럼 휘었다.

“역시…….”

장일소가 기쁜 듯 웃음을 흘렸다.

“실망시키지 않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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