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화. 아귀다툼이 따로 없구나. (3)
수로채가 매화도를 점령하고 마침내 강북에 발을 들였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천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중점이 되어 퍼져 나간 말은 매화도가 아니라 ‘강북’이라는 단어였다.
장강을 살아가는 이와 중원의 상단들에게 있어서는 매화도라는 이름이 더없이 중하지만, 평생 사는 곳을 떠날 일이 딱히 없는 강북인들에게 매화도가 여전히 생소했기 때문이다.
“수로채 놈들이 강북에 발을 들였다는 말인가?”
“그렇다지 않은가! 지금 장강에 있는 도시를 점령하고 제가 주인인 양 행세하고 있다네!”
“어,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삼 년간은 서로 강을 넘지 않기로 했잖은가? 아직 삼 년이 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을 텐데?”
“쯧쯧쯧.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그게 어디 상호불침이던가? 강남불침이지! 강북의 정파는 장강을 넘을 수 없지만, 강남의 사패련은 강을 넘어도 상관이 없단 말일세.”
“허어…….”
그리고 그 사태는 과거 무당이 중심이 되어 사패련과 맺은 조약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 세인들에게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걸 보고만 있다던가?”
“그럴 리야 있겠나? 그 조약은 강남으로 쳐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였지, 강북으로 넘어온 이들을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니잖은가?”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구파가 아무리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구파일방이고, 오대세가일세!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들이 장강에서 싸우지 않고 애초에 피해 버렸다면 그 사파의 악적들에게 패할 일이야 있었겠는가?”
“그래! 게다가 패한 것도 아니지! 그냥 협의한 것뿐 아닌가?”
그 협의의 과정이나 내용이 패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은 나오지 못하고 목 안으로 사라졌다.
사실을 지적하기에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여기는 강북일세, 아무리 구파일방이 요즘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 아닌가? 제 영역에 들어온 이리 새끼를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어떻게든 물어 죽이려 들 걸세.”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어딜 감히 사패련 놈들이 강북 땅을 밟는단 말인가?”
장강에서 정파의 자존심을 집어던져 버린 구파일방을 한목소리로 비난하던 이들도 이 순간만큼은 구파일방을 옹호하고 나섰다.
수로채, 즉 사패련의 강북 진출은 그들에게 그만큼이나 두려운 소식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명예롭지 못한 일을 했다고 해도, 저 사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원래 짐승도 상처 입었을 때가 더 무서운 법일세. 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나 지난 삼 년간 사패련에 복수를 할 기회만 노리고 있지 않았겠는가?”
“아암. 그렇고말고. 그 강남불침조약 때문에 지금껏 발이 묶여 있었던 게지. 그것만 아니었다면 벌써 강남으로 쳐들어가 저 장일소 놈의 목을 쳐 버렸을 걸세!”
“쯧쯧. 이해가 안 되는군. 조약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그냥 무시하고 사패련을 공격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예끼, 이 사람아! 제 입으로 뱉은 말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게 어디 정파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게 저 무도한 사파 놈들과 뭐가 다르다고?”
“말이 그렇다는 것 아닌가, 말이.”
“어쨌든 구파와 오대세가가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걸세. 절대로!”
모두가 믿었다. 사패련에게 치욕을 당하고 자존심을 구겼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이번엔 당연히 그 앙갚음을 할 것이라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한때는 모두의 자부심이나 다름없던 명문거파들의 대한 기대가 아직까진 살아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 명문거파들이 사패련을 막아 내지 못한다면 삶이 송두리째 지옥으로 화할지 모른단 두려움이 불러온 반응이기도 했다.
그렇게 장강 이북의 모든 이들은 구파일방과 오대 세가가 다시금 전면에 나서서 이 혼란을 정리해 주길 바랐지만…….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 * *
법정의 얼굴에 서늘한 한기가 어렸다.
“……뭐라 했느냐?”
법계는 차마 그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딱히 그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괜히 죄스럽고 민망스러웠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낸 법계가 힘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답신이 왔습니다만…… 소림으로 오겠다는 문파가 몇 되지 않습니다.”
“몇 되지 않는다?”
“……예.”
법정은 잠시간 침묵했다. 그의 손안에서 염주가 구르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어느 문파가 거부했느냐?”
“그, 그것이…….”
법계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우선, 개방은 참가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
“그리고…… 공동파도 지금 소림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곤륜 역시 소림으로 오겠다고 했으나…….”
“곤륜이야 워낙에 머니 제시간에 당도할 수 없겠지.”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곤륜이 자리한 곤륜산은 청해와 신강의 경계에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남에서의 거리만 해도 무려 칠천 리에 달한다. 이건 새외사궁이라 불리는 문파들보다 더 먼 거리다.
때문에 곤륜은 과거부터 구파일방의 일원인 동시에 미묘하게 소외당하는 입장이었다.
“해남파는 아시다시피…….”
“알고 있다. 올 수 없겠지.”
법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패련이 강남을 지배하면서 가장 위험해진 곳이 바로 해남파다. 남해의 섬인 해남도를 근거지로 한 그들은 지금 내륙으로는 단 한 발짝도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
우물쭈물 이어지는 법계의 말을 듣던 법정이 결국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어디 그곳뿐이더냐! 말을 끌지 말고 똑바로 대답하거라!”
그의 역정에 법계가 화들짝 놀라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방장! 점창과 아미, 청성은 하남으로 오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내왔습니다.”
“……이유는?”
“그…… 사패련이 강북 진출을 위해 몰려온다면 사천이 무주공산이 된다고…….”
까각.
규칙적으로 톡톡 소리만 내던 염주가 순간적으로 꽉 쥐이며 거친 소리를 토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법정이 요청했던 것은 그 문파들의 북상이 아니다. 문파의 장문들과의 대화였다. 아직 논의조차 하지 않은 일을 근거로 들어 대화를 거부하는 건 대체 어느 곳의 법도란 말인가?
“그리고?”
“……봉문 한 문파들에게서는 답이 없었습니다.”
“무당조차 말이냐?”
“……예.”
법정이 아무런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티 없이 푸른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가 한숨과 함께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구파일방이란 본디 열 개의 문파를 논하는 것일진대.”
“…….”
“이 위급한 상황에 논의를 하겠다고 나서는 문파가 겨우 셋이란 소리구나. 겨우…….”
“방장…….”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를 보며 법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종남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봉문에 들었고, 그 입장을 유지해 오고 있으니까. 냉정히 말해 그들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해남 역시 이해할 수 있다. 그들 역시 위치상 도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다른 문파들은 아니다.
봉문 한 무당은 물론이거니와, 사천의 세 문파 역시 이 일에 책임이 있다. 특히 장강의 전쟁에 참여했던 무당과 청성은 이리 그들의 말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남은 것은 공동파와 개방, 그리고 너무도 멀리 있어 전력이 되지 않는 곤륜파뿐이었다.
“오대세가는?”
“……하북팽가는 소림으로 오겠다는 전언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여전히 답이 없고…….”
“…….”
“제갈세가는 상황을 봐서 소림으로 오겠다는 나름 긍정적인 답변을 해 주긴 했습니다만…… 모용세가는 역시 답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법정이 고개를 내젓는다.
오대세가 중 당가가 빠졌으니 남은 것은 넷. 그중 제대로 참가 의사를 밝힌 곳은 하북팽가뿐이다. 상황을 봐서 참가하겠다는 제갈세가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그들은 천하에서 가장 신중한 문파니까.
“법계.”
“……예, 방장.”
“내게 잘못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바, 방장.”
법정이 얼음장처럼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림의 방장으로서, 내게도 분명 큰 잘못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상황이더냐? 수로채가 강북에 발을 들인 것이 어떤 상황으로 번질 수 있는지 모두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 정도 예상도 하지 못해서야 감히 명문이라 불리는 문파의 장문이 될 수 없다. 절대로.
“그런데 이 와중에 자신들의 잇속만 챙긴다는 것이냐! 이 와중에!”
법정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참가를 밝혀 온 문파는 강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거나, 너무 멀어 어차피 승패에 영향을 주기 어려운 곳이다.
강북에서 벌어질 전화와 가까스로 한 발 떨어져 있는 곳들은 모조리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빼고 있다.
“어찌 이러고도 정도를 입에 올린단 말인가, 어찌! 이래서야 그…….”
역정을 내던 법정이 문득 입을 닫았다. 무언가 말하려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는 듯이.
한참 동안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듯 들썩이던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법계.”
“……예. 방장.”
“말해 보아라. 저들의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다고 보느냐?”
“……방장.”
“상대는 다른 곳도 아니고 사파가 아니냐? 한데 어찌 이런 상황에 잇속을 챙길 수 있다는 말이더냐.”
법계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해야 할 대답이 스스로 꺼내기에 너무도 민망하고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방장…….”
“말해 보아라.”
“어기지 말아야 할 걸 어긴 것은…… 저희가 먼저이지 않았습니까.”
“…….”
법계는 차마 법정을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했다.
“제가…… 제가 저지른 일입니다. 제가 그곳에서…… 차라리 죽음을 각오했어야 했는데…….”
법정은 입을 닫아 버렸다.
감정에 휩싸여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 버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제가 해야 할 일보다 제자들의 안위와 소림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무슨 자격으로 저들을 탓하겠습니까?”
“그건……!”
법정은 무언가 반박을 하려다 이내 고개를 내저어 버렸다.
어떤 말로도 법계를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어떤 말로도 면피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너무 짧은 생각이 아니더냐! 강북이 불타고 나면 다음은? 그다음이 누가 될지는 뻔하디뻔한 일이거늘.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지만 격하게 쏟아지던 법정의 말끝은 이내 흐려졌다.
그가 뱉은 말이 스스로 힘을 잃어 가고 있음을 잘 알아서였다.
법계가 슬쩍 그의 눈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방장. 그 장강 사태만 있었다면, 그래도 사파부터 상대하자고 하는 문파가 분명 더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무슨 말이더냐?”
“아시잖습니까……. 화산의 일을.”
화산의 일이라는 말이 나오자 법정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법계의 입에서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무도 선두에 서고 싶지 않은 겁니다. 협의와 중원을 위해 목숨을 건 대가가 무엇인지를…… 이제는 모두가 알아 버리지 않았습니까.”
법정의 얼굴에 순간 허탈함이 어렸다.
“허허…… 허.”
결국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자조 섞인 웃음소리였다. 그렇게 잠시간 웃다 나지막이 말했다.
“……원죄로구나.”
무거운 울림을 가진 말이었다. 법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법정을 바라보았다.
“……방장.”
“그래, 네 말이 맞구나. 우리가 누굴 탓하겠느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일은 화산뿐 아니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긴 셈이다. 그리고 지금껏 이어져 모두를 신음하게 만든다.
무당도 소림도, 그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협의를 논하고 가장 앞에서 싸운 결과가 멸문과 외면이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아 버렸으니까.
어쩌면 장강참변의 진짜 원인은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천우맹에 연통을 넣어라.”
“바, 방장?”
“기대 봐야지. 염치없고 죄스럽다 해도.”
법계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말을 보태는 것은 법정을 더 괴롭게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법계가 조심스레 물러나자 법정의 얼굴에 짙은 회한이 어렸다.
‘어찌 견뎠는가…….’
눈을 감은 그의 입에서 작게 불호가 새어 나왔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어찌…….’
화산이라는 이름이 그의 가슴에 새겨진 화인처럼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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