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877화 (873/1,567)

877화. 그렇게 벌레처럼 죽어 가라. (2)

“이익!”

소장계(昭長繼)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대체 뭐냐, 이놈들은!’

검은 무복을 입은 젊은 검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물론 그런 상황 자체에 당황한 것은 아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산전수전을 겪어 왔다. 이만한 수준의 전투야 저 강남에선 심심하면 벌어지던 일이다.

그런 그를 진정으로 당황케 한 것은, 이놈들이 휘두르는 검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날카롭다는 점이다.

게다가.

카각! 카가각!

맞부딪힌 검이 도의 날을 타고 흘러 그의 손등을 찔러 왔다.

“익!”

소장계는 앓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다급히 팔을 뒤로 뺐다. 하지만 도가 뒤로 빠지는 순간, 손등을 노려오던 검은 삽시간에 빙글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수십 개의 검영을 만들어 내며 그의 상반신을 노리고 들었다.

소장계는 정신없이 도를 휘저어 대며 뒤로 또 뒤로 물러났다.

‘말도 안 돼!’

강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화산이 아무리 구파일방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파라고는 하나, 그들이 한때 천하제일검문 자리를 두고 다퉜던 사실이야 이제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단순히 강함을 논할 일이 아니다.

‘능수능란해.’

어처구니없게도 이들의 검은 마치 전장에서 수십 년은 굴러먹은 것처럼 능수능란하다. 팔을 노린다 싶으면 어느새 목 바로 앞에 검이 와 있고, 목을 막으려 들면 무릎이 베인다.

강하게 후려치려는 듯하다가 슬쩍 물러나 빠르게 찔러 대고, 섬전처럼 얼굴로 날아들던 검이 빙글 방향을 바꿔 가슴으로 떨어진다.

“크악!”

결국 길게 베이고 만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고통의 비명을 지른 소장계가 이를 갈아붙였다.

“이, 이…… 이 개 같은!”

이해할 수가 없다.

검술 자체도 기겁할 노릇이다. 마치 손바닥 위에 놓여 농락당하는 느낌이다. 저놈들이 보여 주는 건 정파의 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파의 환검에 가깝다.

하지만 그보다도 경악스러운 건, 그 검을 쓰는 놈들의 눈빛이다.

전장은 괴물과도 같아 사람을 잡아먹는다.

아무리 침착한 이라도, 눈앞에서 피가 솟구치고 사람이 쉴 새 없이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는 평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게 정상이다. 당연히 팔에는 힘이 들어가고 검술은 점점 더 강격 일변도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이놈들은 마치 백전(百戰)을 겪은 노장처럼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흥분은커녕, 자신의 검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

‘대체 무슨 수련을 해 오면 이런…….’

하지만 더는 생각할 틈이 없었다. 상대의 검이 그의 눈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큭!”

고개를 뒤틀어 날아드는 검을 가까스로 피해 낸 소장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개 같은 애송이 놈이!”

우우우우웅!

그의 도가 시뻘건 도기를 뿜었다. 상대가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난적(難賊)이라고 한들, 아직 그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 어설프게 맞상대하는 것보다는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장에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은 이답게, 짧은 순간 내린 그의 판단은 분명 정확했다.

카가강!

도와 검이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맞닥뜨렸다.

‘이놈!’

소장계는 이를 악물며 도를 내리눌렀다. 두 눈에 순간 득의양양한 눈빛이 피어났다.

아무리 검을 영활하게 휘두른다고 해도, 그 검술이 그가 생전 본 적 없는 신묘한 수준에 올라 있다고 해도, 그 검을 휘두르는 본인은 아직 어린 애송이 검수에 불과하다. 내력의 양과 힘에서는 경험 많은 그를 이길 리 없으니, 이대로 힘으로 짓눌러 버리면 감당하지 못할 터!

“두 동강을 내 주…….”

그리고 그 순간, 검을 맞대고 있던 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뭣?’

소장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상황에 웃는다고?

“이 멍청한 놈이!”

소장계는 순간 소름이 돋는 느낌에 있는 힘을 다해 도를 내리눌렀다. 두 동강을 낼 수는 없다고 해도 도를 막은 검째로 상대의 몸을 짓눌러 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가가각! 가가가가각!

검과 도가 마찰하는 소리가 귀를 긁어 댔다.

카가각!

그리고 그때 소장계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왜?’

저놈의 검이 밀려나질 않는다.

전력을 다해, 모든 내력을 다해 짓누르고 있지만 그의 도를 막아선 저 얇은 검은 단 한 치도 뒤로 밀리질 않았다.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굳건하게 그의 도를 버텼다.

미동조차 없는 검.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무감정한 눈빛.

내리누르고 있는 것은 분명 그이건만, 압박을 느끼는 것 역시 그였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소장계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검을 내리눌렀다.

카가가가가각!

검과 도가 마찰하며 불똥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살짝 밀려나는 느낌이 있었지만, 검은 여전히 그의 도를 굳건히 막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망할 화산 애송이 놈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감과 동시에 그의 도와 마주하던 검이 뒤로 훅 하고 물러났다.

팽팽하게 대치하던 균형이 깨진 순간, 전력을 다해 검을 내리누르던 소장계는 앞으로 빨려 들어가듯 휘청였다.

쾅!

그리고 그때, 뒤쪽으로 검을 뺐던 화산의 검수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담아 단번에 소장계의 도를 후려쳤다.

“컥!”

앞으로 쏠리던 소장계는 정신없이 뒤로 밀리며 물러났다.

도를 통해 전해진 힘이 팔목은 물론이고 어깨까지 뒤틀어 놓았다. 마치 뇌격이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온 팔이 저려 왔다.

‘미, 미친!’

그가 밀렸다고? 힘에?

아니, 이건 힘이라기보다는 기술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가 밀렸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머릿속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저놈에게서 느껴진 섬뜩함이 끓던 분노와 피를 식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던 소장계의 귓가에 아주 작은 소리가 스쳤다.

흡사 눈이 쌓이는 소리처럼 희미하고도 간질거리는 그 소리가 혼란한 전장 속에서도 귀를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사라락.

소장계가 눈을 부릅떴다.

화산 검수의 검이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린다 싶더니, 그 끝에서 마치 환상과도 같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안…….’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도에서 전해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일단 몸을 뒤로 물린 그에게 다시 앞으로 달려들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사라라락!

허공에서 소담히 피어난 꽃들이 일순 바람이라도 맞은 것처럼 흔들리더니 이내 사방으로 꽃잎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게…….’

들어 본 적 있다.

꽃을 피우는 검.

한때는 천하를 호령했지만, 이제는 잊혀 전설이 되어 버린 검.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세상에 그 이름을 천하에 떨치기 시작한 화산의 독문 검법.

“매, 매화검…….”

화아아아악!

피어오른 꽃잎들이 일순 그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망할.”

몸에 얇디얇은 매화잎이 파고드는 감각을 느끼며, 소장계의 입에선 어찌할 수 없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뭉쳐! 빌어먹을, 이 새끼들 장난이 아니다!”

“혼자서 맞서지 마라! 뭉치라고!”

사파로 이름을 날린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악명을 날릴수록 다툼은 잦아지고,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도 많아진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이런 전투를 못해도 십여 번씩은 겪고 살아남았다. 전장을 대국적으로 보는 눈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 생존본능만큼은 확실했다.

순식간에 앞 열이 무너지는 것을 본 이들의 판단은 빨랐다. 적을 애송이라 무시하고 단독으로 맞선 이들은 지금 하나같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다.

그들이 떨쳤던 명성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참혹하게.

‘일대일은 필패다!’

이런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노릇이지만, 두 눈으로 본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 어느 때라도 중요한 것은 생존이지, 자존심이 아니니까.

“두셋씩 뭉쳐서 상대해라!”

그러니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저놈들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이런 전장의 난전을 경험해 본 적은 없을 터. 일단 무리를 지어 상대를 얽고 압박하다 보면 전장이 뒤엉키고, 그때는 등 뒤로 칼을 날릴 수 있는 그들이 훨씬 유리해진다는 판단이었다.

짧은 순간 내어 놓은 결론치고는 굉장히 훌륭한 판단이었다.

그저 실수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상대하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잘 몰랐다는 것 하나뿐.

카앙! 카아앙!

검과 검. 검과 도. 그리고 검과 창.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사파인들은 일단 상대의 검을 막아 내는 것에 주력하려 들었다. 사람의 눈을 홀리는 저 검을 상대로 어설프게 공격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달아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으니까.

‘어떠냐!’

하지만 그 순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카각!

검과 도가 서로 맞닿는 순간, 검에서 가공할 내력이 뿜어지며 그들의 병기를 비틀어 냈다.

단순히 쳐내는 것이 아니다. 마치 아교라도 바른 듯 그들의 도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검이 순간적으로 그들의 병기를 옆으로 쭉 잡아당겼다.

‘뭘?’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막 의문이 들려는 찰나.

파아아아앗!

도를 비틀어 낸 검수의 팔 바로 아래에서 어마어마한 속도의 검기가 날아든다.

“헉!”

기겁을 한 이들이 몸을 빼내려 했지만, 병기에 달라붙은 화산의 검은 도무지 붙들고 놓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악!”

“아아아악!”

사마호(司馬湖)의 얼굴에 순간 핏기가 가셨다.

“이, 이 미친놈들…….”

저건 연계라고 부르기에도 어이없는 짓이었다.

앞에 선 놈들이 팔을 비틀자마자 뒤에서 검기가 날아들었다는 것은 검을 비튼 이들보다 뒤에서 검을 찔러 낸 이들이 먼저 움직였다는 뜻이다.

뒤쪽에 있던 놈들은 앞의 놈들이 당연히 팔을 비틀 것이라고 생각하고 검을 날린 것이다.

한 치라도 어긋났다면 저들의 검기가 베어 낸 것은 그들이 아니라 동료의 팔이었을 텐데도!

‘미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날리는 놈들이나,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제 팔을 향해 검기를 날리라고 종용하는 놈들이나.

이놈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 효과만은 어마어마했다. 우선 버티고 상황을 바꿔 보려던 이들이 피를 뿌리며 한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뒤쪽에 있던 검수들이 단번에 앞선 이들의 머리를 뛰어넘으며 허공에서 수십 개의 검기를 흩뿌렸다.

“마, 막아!”

“빌어먹을! 이 개 같은!”

곳곳에 상처를 입은 이들은 상처를 돌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급하게 병기를 휘둘렀다. 저 검기를 막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하지만 연계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아아악!”

“내 발!”

앞쪽에 있던 이들이 낮게 몸을 날리며 다리를 그어 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는 머리 위, 또 하나는 땅에 가깝도록 낮은 곳.

두 곳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검기를 모두 막아 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좌와 우가 아니라 상과 하의 연계는 저들이 가진 검술의 힘을 단숨에 배가시켰다.

‘어, 어떻게?’

서로 눈빛 한번 마주하지 않았다. 짧은 대화 하나 오가지 않았고, 신호를 위한 기합조차 없었다.

하지만 저 미친놈들은 마치 이미 서로 맞춰 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정확하게 연계를 펼쳐 내고 있었다. 마치 모두가 한 몸인 것처럼.

“이,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아아아!”

폭발하듯 고함을 터뜨린 사마호의 눈에 괴이한 광경이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단숨에 그들을 몰아치던 이들이 갑자기 방향을 전환해 좌우로 물러섰다.

‘뭐?’

기껏 잡은 승기를 되레 내어 주는 듯한 비상식적인 행위.

사마호는 멍하니 그 광경을 응시했다.

사라라라락!

그리고 그는 보았다.

검수들의 검 끝에서,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문양과도 같은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말이다.

기세에 밀려 물러날 수밖에 없던 이들은 피어나고 또 피어나는 매화를 그저 망연히 바라보았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섭게 불어나는 저 꽃이 그 무엇보다 치명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화산.”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점하며 날아드는 생생한 꽃잎들. 그 잎 하나하나가 검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사마호의 입에서 공허한 헛웃음이 터졌다.

‘화산 정도는 언제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갈천립 이 미친 새끼가…….’

이런 미친 검술을 쓰는 놈들이 백 명이나 있다면 그곳은 용담호혈을 넘어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 지옥 안에 스스로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피어오른 꽃잎들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아름답군.’

하늘을 가득 메우며 쏟아지기 시작한 매화의 비(梅花雨)가 무도한 이들의 육신을 가차 없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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