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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846화 (843/1,567)

846화. 너희가 없는 화산은 화산이 아니다. (1)

“네?”

“예?”

“엥?”

“어?”

“뭐라굽쇼?”

각기 다른 반응이었지만, 그 반응에 담겨 있는 감정만은 모두 같았다.

현종을 중심으로 모인 화산의 제자들이 연신 두 눈을 끔뻑였다. 마치 조금 전에 들은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다 못해 멍청한 얼굴로 현종을 바라보던 이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이 멍청한 걸로 보아 현종의 말을 잘못 들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 장문인?”

백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며 고개를 슬쩍 갸웃했다.

“제가…… 그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

어렵사리 말을 꺼냈지만 눈은 연신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지만, 눈이 마주친 사형제들은 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이다.

“그…… 혹시 방금 그…… 봉…문이라고……?”

백상은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다.

봉문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렇다.”

“에엑?”

“예?”

“뭐라고요?”

“저희가요?”

확인이 떨어지니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발작을 일으켰다. 물론 가장 격렬하게 솟구쳐 오른 건 조걸이었다.

“아니, 장문인!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봉문을 합니까! 혹시 저희 모르는 사이에 어디서 사기라도 치셨……. 우갸아아악!”

“조동아리, 이 새끼야! 이놈의 조동아리!”

벼락같이 조걸의 멱살을 잡은 윤종이 턱주가리를 연이어 갈겨 기절시켜 버렸다.

“크흠.”

한 손에 축 늘어진 조걸을 쥔 채, 윤종은 다른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점잖게 헛기침했다. 좌와 우가 완벽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거기에 신경 쓸 정신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황스럽긴 합니다, 장문인. 물론 뜻하시는 바가 있으니 하신 말씀이겠으나, 이렇게 갑작스레 봉문이라니요.”

모두가 격렬하게 끄덕였다.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이 가득 쏟아지자 현종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동작 끝에 그의 시선이 놓인 곳은 당연히 청명의 자리였다.

이 와중에 생글생글 웃고 있는 청명이.

그 순간 거의 반쯤 기절했던 조걸이 괴악한 비명을 지르며 윤종을 뿌리치고 백천에게 달려들어 단숨에 멱살을 움켜잡았다.

“뭔 짓을 한 겁니까! 야, 이 인간아! 대체 뭔 짓을 한 거냐고!”

사질이 사숙의 멱살을 잡는 천인공노할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백천은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내지 못했다고 표현해야 옳다. 그는 그저 그저 어색한 얼굴로 격렬하게 타오르는 조걸의 시선을 애써 외면할 뿐이었다.

“아니…… 저 새끼가 한 짓인데 왜 나한테 그러느냐?”

“불이 나면 불 잘못입니까? 불 지른 놈 잘못이지? 저 새끼가 무슨 잘못입니까! 저 또라이 새끼 흥분시킨 사숙이 잘못한 거지!”

말이 되는 듯 안 되는 소리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화산의 제자들은 조걸의 말에 격렬하게 동의했다.

심지어는 백천 역시 내심으로는 자신의 죄를 통감하고 있었다.

“나라고 이렇게까지 할 줄 알았나…….”

일반인이 미친놈의 생각을 어찌 가늠하겠는가.

봉문이 뭔 동네 개 이름도 아니고, 정말이지 마른하늘에 날벼락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장문인. 아니, 대체 무슨 말을 들으셨기에 이렇게 갑자기…….”

윤종은 멍하니 청명과 현종을 번갈아 보다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장문인께서 그리 명하신다면 제자 된 도리로 당연히 따라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 연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그게 말이다…….”

“예, 장문인.”

“그게…….”

현종의 눈가가 점점 촉촉해졌다.

그 모습을 보니 윤종은 차마 따져 물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윤종이 사납게 고개를 획 돌렸다.

“네가 설명해 봐라, 이 망둥이 놈아! 대체 왜 갑자기 봉문을 하겠다는 거냐! 우리가 뭔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거 말이 이상하네.”

청명이 검지로 귀를 후비적대더니 입으로 손가락 끝을 훅 불었다.

“봉문이 뭐 내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힘없는 삼대제자일 뿐인데?”

“힘없는 삼대제자? 힘없느은?”

저 가증스러운 새끼.

“그리고 뭐, 봉문이 꼭 잘못을 해야 하는 건가? 저 구파 새끼들이 죄 지으면 욕 처먹기 싫다고 문 걸어 잠그고 숨어 버리는 걸 밥 먹듯이 해서 그렇지. 원래 봉문은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걸 왜 지금 하냐고!”

백상이 재빨리 윤종을 지원하고 나섰다.

“그래, 인마! 지금이 어떤 때냐! 세상이 전부 화산을 칭송하고! 사업은 날개 돋친 듯 뻗어 나가고! 저 구파보다 화산이 더 많이 회자되는 시기다!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저어야지! 물길 따라가기 싫다고 배를 뒤집어엎어? 이…… 이 미친놈아!”

백상이 속이 탄다는 듯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가만 계시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 주십시오, 각주님!”

그리고 현영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자 현영은 더없이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청명이가 생각이 있겠지.”

“에라!”

때와 장소를 안 가리네, 진짜!

그때 백천의 멱살을 놓은 조걸이 눈을 까뒤집으며 이번엔 청명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미친 새……! 꺄울!”

그리고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튕겨나가 데굴데굴 나뒹굴었다. 슬픈 것은 그 누구도 그런 조걸을 잡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쯧.”

청명은 쭉 뻗은 다리를 천천히 접더니 혀를 차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다들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응?”

“이건 내 의견이 아니야.”

“응? 그럼 누구?”

청명이 근엄한 얼굴로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냥 백천 사숙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 이 말이지. 사숙이 시키면 하는 게 사질의 본분 아니겠어?”

모두의 시선이 백천에게 내리꽂혔다.

그 시선을 받은 백천은 온화하게 웃었다.

“……그냥 나를 때려 죽여라. 이렇게 괴롭히지 말고 그냥 곱게 죽이라고.”

“내가 언제 괴롭혔다 그래? 거 말이 심하시네.”

백천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힘없이 어깨를 떨었다.

“장문인! 정말 저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으실 겁니까?”

“아무리 청명이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봉문이라니요. 우리가 왜 봉문을 합니까? 죄는 소림과 무당이 지었는데, 우리가 봉문을 하면 세상 사람들이 저희를 뭐라 보겠습니까?”

제자들이 하나같이 들고 일어나 들끓자 현종이 침중한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모두를 침묵시키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문.”

제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중앙에 앉은 채 그 시선을 받은 유이설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으로 돌아가 봉문.”

“…….”

“좋아.”

제자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아니, 사매는 왜 또 저러는 건데.’

‘쟤 속을 누가 압니까! 쟤 속을!’

‘미치고 팔짝 뛰겠네, 진짜.’

청명이 멀리서부터 눈에 보이게 밀려오는 태풍이라면 유이설은 갑자기 닥쳐 오는 지진이다. 태풍은 그래도 대비라도 할 수 있지만, 지진은 도리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다들 준비해. 화산으로 갈 거야.”

“아니, 이 새끼야!”

“대체 뭔 짓거리냐고, 이게!”

그때 잠자코 있던 백천이 입을 열었다.

“청명아.”

“응?”

그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알아듣게 설명부터 해라. 이렇게 넘어갈 만한 일은 아니잖으냐.”

“흐음.”

청명이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야 간단해.”

그의 손가락이 유이설을 가리켰다.

유이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가락은 뒤이어 백천을 가리켰고, 조걸을 가리킨 후, 윤종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내 모여든 모든 화산의 제자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마지막 제자까지 하나하나 가리킨 청명이 담담히 말했다.

“약하니까.”

“…….”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치 역린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분위기가 삽시간에 변했다.

침묵을 깬 것은 백상이었다.

“……이해는 한다.”

청명을 빤히 바라본 그는 그래도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확실히 우리는 부족하다. 이번 전투에서도 우리는 활약하지 못했다. 만인방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게 고작이었지.”

“맞아.”

“하지만 청명아. 모든 것에는 시기라는 게 있다. 무인이 수련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은 더 큰 것을 봐야 할 때가 아니냐.”

백상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급한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일 년……. 아니, 반년만 더 있으면 화산의 입지는 확연하게 단단해질 거다. 사패련이 삼 년 조약을 맺었는데 반년도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없잖느냐?”

“반년?”

“그래, 반년!”

백상이 맹렬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재경각 소속인 그는 지금까지 화산의 재정을 배웠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익혔고, 화산이 쥐고 있는 상권의 흐름을 지켜봤다.

그렇기에 안다. 이곳의 누구보다 확연하게.

지금 화산이 얼마나 큰 기회를 손에 쥐었는지 말이다.

다른 문파라면 모든 제자들이 달려들어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할 만한 기회다. 그런데 이 기회를 걷어차다 못해, 두엄 더미에 처박고 짓밟아 버리려 하지 않는가?

그는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년을 기다리면 뭐가 좋아지는데?”

“몰라서 묻는 거냐? 우선은 금력! 그리고 명성! 게다가 화산과 천우맹과 연대하려는 수많은 문파들. 거기에 명예와 입지까지!”

“…….”

“화산을 단번에 두 배! 세 배! 어쩌면 다섯 배는 더 키울 수 있는 기회다! 이건 네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잖으냐! 그런데 그만한 희생을 치르고 이제야 겨우 결실을 맺는 상황에서 봉문이라니!”

청명이 말없이 백상을 바라보았다. 괜히 애가 탄 백상이 벌컥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현재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명성이 조금만 더 무르익기를 기다리다가 문호를 열고 명자 배를 받아들이면 온갖 유력가에서 재능 넘치는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올 거다! 그게 바로 화산의 미래를 보장해 줄 거란 말이다!”

“…….”

“그런데 왜 그 모든 기회를 다 걷어차겠다는 거냐? 도대체 왜?”

모두가 백상의 말에 공감했다.

누가 보아도 지금 화산은 이제껏 없던 거대한 흐름에 올라 있다. 이 흐름을 잘 탈 수만 있다면 저 구파일방과 대등해지는 것도 꿈은 아니다.

“말해 봐라. 설마 무파는 무공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할 셈이냐? 그건 네가 할 말은 아닐 텐데?”

모두가 청명의 입만 바라보았다. 각자의 두 눈에 이번만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청명은 조금 어두운 눈으로 모두를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재력 좋지. 명성도 좋고, 명예도 좋아. 다들 알다시피 난 그런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이러는 건데?”

“알면서 왜 물어? 말했잖아. 사형들이 약하니까. 사숙들이 약하니까.”

“이…….”

결이 엇나간 대답에 이를 악문 백상이 노기를 꾹꾹 실어 말했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해라!”

“이게 대답이야. 사숙이 약하니까.”

“야, 인마!”

“이해 못 하겠어?”

청명의 차가운 물음에 백상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 목소리에 실린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청명은 정적 속에 나직이, 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여기까지야. 운으로 버티는 건.”

서늘한 눈빛이 모두를 훑었다.

“다음에는…….”

그의 시선을 마주한 이들이 몸을 떨었다.

“이곳에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죽어.”

순간, 모두의 입에 딱 다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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