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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58화 (756/1,567)

758화. 죽으면 죽었지! (3)

콰득!

백천의 검이 갑판을 파고들었다.

두터운 목재를 두부처럼 꿰뚫어 버린 검은 이내 부러질 듯 낭창하게 휘었다가 튕겨 올려졌다. 그러자 갑판이 뜯기며 위로 솟구쳤다.

“엇!”

아미자를 휘두르는 이가 밟고 있던 갑판의 목재도 위로 튀어 올랐다. 발 디딘 곳이 불쑥 솟아올랐으니, 자연히 자세가 흐트러지고 내뻗던 아미자도 그 기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카가가각!

연이어 휘둘러진 검이 얇은 작살을 밀어 내고는 수적의 가슴을 일시에 갈라 버렸다.

서걱!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수적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백천의 입에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위험했어.’

평소라면 딱히 경계할 만한 적도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싸워 본 적이 없다. 순간적으로 임기응변을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큰 낭패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하(下下)! 중심을 최대한 낮춰라! 대응 못 할 수작은 아니다!”

“예, 사숙!”

백천의 외침에 화산의 제자들 역시 우렁찬 소리로 화답했다.

쿠우우웅!

방충이 다시 한번 난간을 내밟았다. 강한 내력 때문인지, 아니면 대단한 요령 때문인지 커다란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처럼 기우뚱기우뚱 좌우로 흔들렸다.

“허세다! 이런 상황에서 싸워 본 경험은 없을 것이다! 허장성세에 당하지 말고 무찔러라!”

“예!”

수적들이 다시 기세를 피워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탓!

고양이가 뛰어오르는 듯 작은 소리와 함께 유이설의 몸이 비조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이……!”

나름 굴러먹은 가락이 있어, 처음부터 유이설을 경계하고 있던 이들이 날아드는 그녀를 향해 일제히 병장기를 휘둘렀다.

차게 가라앉은 눈으로 날아들던 그녀는 검을 앞으로 불쑥 내밀더니 날아드는 삼지창의 윗부분을 가볍게 때렸다.

타앙!

작은 종을 친 것처럼 맑은 소리와 함께 유이설의 몸이 허공에서 위로 더 솟구쳤다. 상대의 병기를 때린 반동으로 몸을 띄워 올린 것이다.

“어엇?”

“뭐…….”

그 말도 안 되는 경신법에 수적들은 저마다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쩍 벌렸다.

파아아아앗!

유이설의 검에서 붉은 매화가 줄줄이 피어났다.

결코 작지 않은 배의 갑판 위가 금세 붉은 매화로 물들었다. 마치 드넓은 장강의 한가운데에 매화로 가득 찬 섬이 새로이 생겨난 것 같은 광경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괴이한 광경에 수적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사라락.

흩날리는 매화잎이 수적들의 몸을 파고들었다. 본능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수십을 넘어 기백에 달하는 꽃잎을 둔탁한 병기로 모두 막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흩날리는 매화검기가 수적들의 몸 곳곳을 베고 꿰뚫었다.

“아아아아악!”

“팔! 내 팔! 아악!”

수적들이 꿰뚫린 몸을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군다. 순식간에 십여 명에 가까운 수적들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유이설이 나비처럼 느릿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제 사형제들 들으라는 듯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발을 땅에 대지 않고 싸우면 돼.”

실로 명쾌한 해답에 조걸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다 되는 거면 이 고생을 안 하지…….”

“……그러게.”

“아무튼 바닥에 발을 최대한 대지 않으면 된다는 거잖아요?”

“그럼 절벽에서 대련할 때처럼 하면 되겠군. 요령은 알았다! 으라차!”

주거니 받거니 하던 윤종과 조걸이 동시에 앞으로 섬전처럼 달려 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수적들을 썰어 대기 시작했다.

앞쪽에서는 조걸과 윤종이 성난 범처럼 달려들고, 뒤쪽에서는 유이설이 날렵한 표범처럼 등을 노려 오니, 아무리 수가 많아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대책 없이 밀리기 시작한 수적들을 보며 방충이 외쳤다.

“뭐, 뭐 하느냐! 화살을 쏘…….”

푸욱!

“끄르륵.”

하지만 그 순간 난간에 서 있던 이가 목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갔다.

상황 파악도 빠르게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방충은 순간적으로 기겁하며 고개를 뒤로 획 꺾었다.

쇄애애액!

조금 전 그의 이마가 있던 자리에 날카로운 비도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스쳤다.

“어머. 아까워라.”

당소소가 생긋 웃으며 방충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가 좀 답답해 보여서. 바람구멍 하나만 내면 딱 시원하고 좋을 것 같은데.”

“저…… 저 사갈 같은…….”

순간 목숨을 잃을 뻔했던 방충의 얼굴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게 대체 뭔 일이냐.’

그도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산적질이든, 수적질이든 결국은 도적질. 도적질을 하면서 오래 목을 붙여 놓기 위해서는 눈치가 필수였다.

이 배 위에서의 전투는 승기가 저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어떻게 이 어린놈들이…….’

강한 것이야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구파일방 놈들은 하나같이 괴물들이니까. 그리고 화산도 최근 들어 구파일방과 비견되는 문파, 아니 최근의 기세만 따지자면 구파일방도 무색하게 만드는 곳이다. 어린 제자라고 해도 당연히 강할 것이다.

하지만 어리다는 건 결국 경험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구파의 쟁쟁한 무사들도 강호로 나오면 횡액을 당하는 이유가 바로 그 경험 부족 때문 아닌가?

익숙지 않은 물 위에서 수많은 수적들을 상대로 싸우는 경험 같은 걸 해 봤을 리 없다. 특히나 지금처럼 배를 크게 흔들어 대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저놈들은 당황하기는커녕 순식간에 대처법을 찾아낸다. 마치 수도 없이 강호를 굴러먹었던 노강호들처럼 말이다.

“아아아아악!”

그 순간 또 하나의 수적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어딜 가, 이 수적 새끼들이!”

“흥분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화산의 제자들은 이제 완전히 기세를 올려 수적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전멸하는 것도 순식간일 듯 보였다.

방충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후, 후퇴! 후퇴해라!”

생각은 짧았고 결단은 빨랐다.

“조장?”

“에이잇!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빨리 후퇴해라! 물러나라! 배로 돌아간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적들이 뒤쪽으로 쭉 물러난다. 마치 이런 훈련을 여러 번 한 듯 날쌘 움직임이었다. 지진을 피해 달아나는 쥐떼처럼 일사분란하게 배에서 뛰어내린 그들은 걸어 둔 사슬을 타고 쾌속선으로 돌아갔다.

“놓치지 마라!”

백천이 일갈하며 달려들며 검을 휘두른다.

달아나는 적은 쫓지 않는다는 게 협객의 기본이지만, 화산에는 그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꼬리를 말고 달아나면 쫓아가서 엉덩이를 물어뜯는 게 화산의 방식이다.

“아아악!”

“이, 이 잔인한 놈들!”

미처 몸을 다 빼지 못해 등을 공격당한 수적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 역시 쉬이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일제히 배 밖으로 몸을 날렸다.

풍덩! 풍덩!

강으로 뛰어든 이들은 능수능란하게 헤엄을 쳐 빙 돌아서 쾌속선으로 올랐다.

미처 화산 제자들의 검을 피하지 못한 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기도 했지만 그 와중 대부분의 수적들은 갑판에서 달아나 쾌속선으로 기어올랐다.

“줄을 끊어라!”

눈치 좋게 미리 쾌속선으로 옮겨 탄 방충이 고함을 내지르자 두 배를 연결하고 있던 사슬이 끊어지며 강 아래로 축 늘어진다.

고정되어 있던 배가 크게 한 번 출렁이더니 두 배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뭔 놈의 수적들이 저리 강단이 없어!”

조걸이 이를 뿌드득 갈고는 난간에 붙어서 삿대질을 해 댔다.

“사숙! 어떻게 합니까? 쫓습니까?”

“음.”

백천이 눈을 가늘게 떴다.

‘딱히 쫓지 못할 거리는 아닌데.’

지금이라면 저 배로 옮겨 탈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백천이 잠시간 고민하는 사이 거리를 벌리던 쾌속선이 다시 속도를 천천히 줄였다.

“응?”

드르르륵! 드르르르륵!

쾌속선의 난간 한쪽이 문처럼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 괴이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랗고 길쭉한 원통이 마치…….

“대, 대포?”

백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저 미친놈들이! 아무리 수적이라고 해도 대포라니! 관이 알면 어쩌려고……!”

“대, 대포가 아닙니다!”

별안간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획 돌아보니 어느새 다가온 선장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이, 이래서 수적은 건드리면 안 되는 건데……! 어쩌실 겁니까! 이제 우린 다 죽었습니다!”

“저게 뭔데 그러십니까?”

“저, 저건…….”

그때였다.

“쏴라아아아아아아!”

방충의 거대한 명령과 함께 원통이 불을 뿜었다. 그곳에서 발사된 거대한 작살이 수면과 맞닿은 배의 아랫부분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단단한 목재로 만든 배의 밑 부분이 단번에 꿰뚫렸다. 그리고 배 안으로 물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이 망할 놈들! 배랑 같이 장강 한가운데에 수장시켜 주마! 쏴라! 배가 완전히 박살 날 때까지 있는 작살을 다 쏴 버려!”

“예!”

덜컥! 덜컥!

난간의 겹문이 몇 개 더 열린다 싶더니 커다란 작살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훈련이 잘된 이들이 작살을 다루는지, 날아드는 족족 수면에 맞닿은 아랫부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그그긍!

크게 앓는 소리와 함께 배가 휘청이자 얼굴이 희게 질린 선장이 외쳤다.

“빠, 빨리 아래로 내려가라! 당장 물을 퍼내야 돼! 아니면 삽시간에 가라앉는다! 빨리, 빨리 이놈들아!”

그에 선원들이 기겁하며 허겁지겁 선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무, 무사님!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이대로 계속 맞으면 배가 부서집니다. 이 장강 한가운데서 배가 부서지면 그냥 물고기 밥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백천은 잠깐 고민했다.

“헤엄쳐 가기에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물 위를 뛰어갈 수도 없고, 한 번에 건널 수는 없는 거리고…….”

옆에 있던 조걸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속수무책이라는 의미네요.”

“아니. 속수무책은 아니지.”

“예?”

하지만 백천은 이내 씨익 웃었다.

“저쪽에서 작살을 쏜다면 이쪽에서는 정말 대포를 쏴 버리면 그만이니까.”

“대포요? 이 배에 대포가 있습니까?”

“있지. 그것도 특제로.”

“어……. 아!”

조걸이 깨달았다는 듯 획 뒤를 돌아보았다.

있다! 그것도 정말 특제로!

“흐흐흐흐. 저 빌어먹을 놈들.”

빙충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장강에서 고수를 만나는 건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다. 그때마다 수적들이 쓸려 나갔다면 지금 같은 장강수로십팔채의 명성이 존재했겠는가?

‘제아무리 대단한 놈도 물에 빠지면 제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한다.’

더구나 정파 놈들이면 물에 빠진 사람부터 구하려 들 터. 그때 장강 돌고래보다 더 날렵한 그의 수하들이 물 아래에서부터 공격해 들어가면 아무리 대단한 놈들이라고 해도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다.

“장강의 물고기들이 포식을 하겠구나! 뭣들 하느냐, 더 쏘…….”

그때였다.

“응?”

건너편 배의 난간 위로 누군가가 훌쩍 올라섰다.

“뭐야?”

금방 가라앉을 배의 난간에 왜 굳이 올라간단 말인가? 항복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그럴 일이 없다.

물론 항복을 받아 줄 생각도 없…….

“중?”

방충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난간 위에 올라선 건 승포를 입은 중이었다. 얼굴이 앳된 중은 난간 위에서 반장을 하더니 오른쪽 주먹을 천천히 제 옆구리에 가져다 댔다.

“뭐 하자는…….”

그리고 그 순간.

고오오오오오오오!

승포 자락이 미친 듯이 펄럭이더니 그의 몸에서 황금빛 불광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왔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방충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뭐, 뭐……. 저게 대체 뭐란…….”

“타아아아아압!”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중이 주먹을 단번에 내질렀다. 주먹의 끝에서 눈부신 황금빛 기운이 폭포처럼 뿜어졌고, 너른 장강을 격하며 그들이 타고 있는 쾌속선까지 그대로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던 방충이 슬며시 눈을 떴다. 예상했던 충격은 없어서 그는 이내 눈을 바로 뜨며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별것도 아니……. 헐, 씨발! 이게 뭐냐?!”

하지만 이내 그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쾌속선의 선수.

그 선수가 아예 보이질 않았다.

부서졌다기보다는 사라졌다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마치 거대한 칼로 깔끔하게 잘라낸 것처럼 배의 앞부분이 깨끗하게 증발해 버렸다.

장강에 둥둥 떠다니는 잔해들만이 이 배에 선수가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뿐.

“이게 뭔…….”

“으아아아악! 조장! 물! 물 들어옵니다!”

“가라앉는다, 빌어먹을! 배가 가라앉는다!”

“뛰어내려! 이러다 배랑 같이 수장된다.”

콰르르릉.

장강의 물이 배 안으로 가공할 속도로 쏟아졌다. 배는 빠르게 앞쪽으로 크게 기울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미친.”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방충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사기네.”

“소림에 입문할걸. 내가 왜 화산에 와 가지고.”

“오늘만큼은 동감한다.”

허무하게 가라앉는 쾌속선을 바라보며 화산의 제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요즘 워낙 친근해져서 한 번씩 잊는 사실이지만…….

‘이 양반도 사람 아니었지.’

저 청명이 인정한 괴물이니 오죽하겠는가?

“여튼…… 해결한 것 같네요.”

윤종이 백천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합니까, 사숙? 몇 놈 건져서 심문해 볼까요?”

“음. 그러는 게 좋겠구나.”

백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군.’

수적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은 건지, 화산이 생각보다 더 강해진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사형.”

그때 유이설이 답지 않게 조금 큰 목소리로 불렀다. 백천이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사매?”

“저기.”

“응?”

“……저기 와요. 저기.”

그녀의 손가락 끝에 놓인 곳으로 백천의 시선이 돌아갔다. 이내 당황한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이런…….”

강의 저편. 수평선에 이를 정도로 먼 강의 저편에서 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선단(船團)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수였다.

그와 동시에.

촤라라라락!

가장 중앙에 있는, 다른 배의 두 배는 될 듯한 커다란 배에서 커다란 돛이 펼쳐졌다. 검게 묵칠을 해서 위압적인 그 배에 걸린 돛은 두 개였다.

하나는 검은 용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고, 또 하나에는 대해를 종횡하는 거대한 고래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선장의 입에서 절망 어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요, 용선…….”

“예?”

“대, 대경채의 채주가 타고 있는 배입니다! 장강의 사신이라는 용선이라고요, 용선!”

그는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우린 이제 다 죽었다……. 장강의 용왕이시여. 우릴 굽어살피소서.”

점점 다가오는 거대하고 검은 용선을 바라보며, 백천의 눈이 사뭇 진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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