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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56화 (754/1,567)

756화. 죽으면 죽었지! (1)

“수, 수적이다! 수로채다!”

“빌어먹을! 왜 하필!”

우왕좌왕하는 승객들과 다가오는 수적의 쾌속선을 보는 유령문 등겸의 눈에 허탈한 빛이 스쳤다.

“……진짜 오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장강의 수적들이 특표를 노리니 한동안 장강을 오갈 때는 신분을 숨기고 최대한 조심하라는 명이 떨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특표가 배를 탄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으니, 수적이 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계획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분명 그런데…….

‘왜 이렇게 억울하지?’

생각해 보면 이건 등겸만 위험해지는 일일 수도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아무리 화산의 제자들이 함께 있다지만, 저 커다란 배에 탄 수적들이 모두 그 하나를 노리고 오고 있다 생각하니 심장이 쿵쿵대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등겸이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는 와중에도 쾌속선은 쉬지 않고 빠르게 가까워졌다.

당황한 승객들이 선장에게 달려가 물었다.

“피, 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립니다. 저 배가 우리 배보다 두 배는 더 빠릅니다.”

“그, 그래도…….”

“저항하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들 한곳에 모여 주십시오. 선실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나오라고 하십시오. 숨어 있다가 걸리면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아, 알겠소이다.”

승객들이 배 한쪽으로 우르르 모여 섰다.

그 양을 가만 보던 윤종이 백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사숙?”

“음.”

잠시간 고민하던 백천이 침착하게 명했다.

“일단은 함께 서자꾸나. 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봐야 할 것 같다. 검은 등 뒤에 숨겨라.”

“예.”

화산의 제자들도 승객들과 함께 배 한쪽에 섰다. 변복을 한 덕에 함께 서니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촤아아아아아악!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접근한 쾌속선에서 갈고리 달린 쇠사슬이 줄줄이 날아들었다.

커걱! 커걱!

갈고리가 난간에 걸리는 소리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끄그그극! 끄그극!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배가 한차례 기우뚱 기울었다.

‘이거…….’

윤종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멀리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수적의 배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아무래도 지금 그들이 몸을 실은 배의 두 배는 될 듯했다.

‘저 안에 탄 놈들이 다 수적이란 말인가?’

그런 윤종의 의문을 해결해 주겠다는 듯이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을 타고 푸른 빛 무복을 입은 일련의 무리들이 이동해 왔다.

탁! 타닥!

날렵하게 갑판에 내려선 이들이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승객들과 선원들을 일사불란하게 빙 에워쌌다.

쿠웅!

이윽고 수적보다는 산적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털북숭이 장한 하나가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벼이 훌쩍 뛰어올라 갑판에 내려섰다.

“크흥!”

크게 콧김을 뿜어낸 장한은 두 눈을 부라리며 좌우를 쭉 둘러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조걸이 작게 속삭였다.

“두목인가 본데요, 사형?”

“쉿.”

윤종이 입 다물라는 듯 눈치를 주고는 수적들의 면면을 침착하게 살폈다.

‘개개인의 무위는 산채의 산적들보다 뛰어난 것 같은데.’

수는 산적들이 더 많지만, 실력은 수적들이 더 나은 모양이었다.

“이놈드으으으으으으을!”

그 순간 장한이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로 일갈했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누구 허락을 받고 장강을 오가느냐!”

그 호통에 선두에 선 선장이 몸을 부르르 떨며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다.

“소인이 미욱하여 장강의 영웅들께 미리 허락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흐으으음!”

그 태도가 마음에 든 듯 장한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감히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장강을 건너는 건 목을 내어 놓아야 할 일!”

선장은 아예 머리를 묻어 버릴 기세로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우리 대경채(大鯨砦)는 장강의 주인들 중에서도 마음이 넓은 것으로 유명하니까!”

“감읍! 또 감읍합니다!”

그때 잘 참던 조걸이 또 고개를 갸웃거리며 윤종에게 속삭였다.

“……사형.”

“응?”

“장강에 고래가 삽니까?”

“그럴 리가 있나. 고래는 바다에 살지.”

“그런데 왜 대경채입니까? 민물에는 고래도 없을 텐데.”

“……글쎄?”

그때 백천이 시선은 전방에 둔 채 입술만 달싹이며 말했다.

“돌고래는 산댔어.”

“……돌고래요? 그래도 이상하죠. 돌고래가 사는데 왜 대경채입니까? 소경채면 몰라도.”

“소경채면 좀 그렇잖아. 소채(蔬菜)볶음 같고.”

“아아.”

속닥거림이 끊이질 않으니 결국 장한이 눈을 부라렸다.

“어떤 놈이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조걸과 백천이 찔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그때 선장이 재빨리 말했다.

“지금 바로 장강의 주인께 상납할 세금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됐다!”

“……예?”

“흐흐. 오늘은 그런 푼돈은 필요 없다!”

장한은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좌우를 살폈다.

“내가 듣기로는 여기 은하표행의 특표가 탔다던데?”

“…….”

“어느 놈이냐! 당장 나서라!”

커다란 목소리가 다시 한번 거칠게 쩌렁쩌렁 울렸다. 심약한 자라면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실금을 하며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원래부터 겁에 질려 있던 등겸은 당연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백천 일행을 힐끔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좀 해 달라고!’

하지만 백천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등겸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졌다. 이렇게까지 위험해질 줄 알았더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협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흐음?”

나서는 이가 없으니 장한의 두툼한 볼이 실룩였다.

“안 나오시겠다?”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껄껄 웃었다.

“은하표행의 특표들은 하나같이 몸이 가볍고 바람처럼 빠르다고 하더니, 간덩이도 가벼워 나부끼는 모양이구나. 겁이 난다 이거지?”

그그극.

이내 그는 허리춤에 매달린 도집에서 도를 뽑아내었다. 깔끔하게 관리되지 못한 도가 검집과 마찰하며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 냈지만, 그 소리가 되레 듣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었다.

“오냐. 안 나온다면 찾아내면 그만이지. 나올 때까지 한 놈 한 놈 잡아 죽여 주마! 뭣들 하느냐! 하나씩 끌어내라!”

“예!”

승객들을 둘러싼 수적들 중 하나가 가장 앞쪽에 있는 이를 잡아 끌어내려 했다.

“히이이이익! 저, 저는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겁에 질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국 보다못한 등겸이 눈을 질끈 감고 나서려던 바로 그때였다.

퍼억!

“아아아아악!”

앞쪽의 중년인을 끌어내려던 수적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뒹굴었다.

“뭐냐!”

“웬 놈이냐!”

수적들이 흉흉한 기세로 병장기를 바짝 들어 승객들을 겨누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백천이 승객들 사이로 점잖게 걸어 나왔다. 그 뒤를 화산의 제자들이 당당한 걸음으로 따랐다.

“……이건 뭐야?”

장한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일그러졌다.

“웬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

“지금 나와 장난치자는 거냐!”

만나는 놈들마다 해 대는 소리라 이젠 화도 나질 않았다. 독창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욕설에, 백천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저는…….”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 같은데, 꼬마야. 여기는 물 위다. 네가 어떤 신분이든, 무슨 배경이 있든 그 주둥이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뜻이지.”

“그게 아니라 저는…….”

“아니면 그 반반한 얼굴을 믿는 모양인데, 아쉽게도 나는 그쪽으로는 취미가 없다. 아니, 아니지. 그런데 네놈 얼굴을 보아하니 비싸게 팔릴 것도 같은데?”

“아이고, 조장! 비싼 정도가 아닙니다. 떼돈 받고 팔아 치울 수도 있습니다.”

“으헤헤헤. 웬만한 여자보다 나은 것 같은데!”

뿌드드득!

결국 평온하던 백천의 턱이 악물리고 입술 새로 이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화산의 제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좋게 풀긴 다 틀렸다.’

‘아니, 왜 하필 저런 이야기를 꺼내 가지고.’

‘눈치를 다 수장시켰나.’

그 눈치 없는 수적 중 하나가 백천에게 다가와 손에 든 단도를 들이밀고 위협했다.

“자자. 긴말할 것 없고 이리 와라, 예쁜아.”

“……아라.”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주둥아리 닫아라. 뒈지기 싫으면.”

“뭐?”

빠아아아악!

수적의 고개가 하늘을 향해 획 부러질 듯 격하게 꺾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풀썩.

쓰러진 수적의 입에 게거품이 물려 있었다. 방심하던 와중에 턱을 얻어맞아 단번에 의식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승객들도 수적들도 이 황당한 광경에 너나 할 것 없이 입을 쩌억 벌렸다.

“쓰으읍.”

심호흡으로 화를 가라앉힌 백천이 두목으로 보이는 장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섬서성 화산파에서 온 사람들이오.”

“화, 화산파?”

화산파라는 말에 수적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백천의 칼날 같은 눈빛이 장한에게로 꽂혔다.

“이전에 은하표행의 특표를 습격한 이들이 당신들이오?”

내려다보며 취조하는 듯한 말투에 장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이 감히 누구에게……. 그렇다면 어쩔 테냐!”

거친 외침에 백천은 검을 허리춤에 차고 손잡이를 가볍게 잡았다. 어깨를 쫙 편 그에게선 싸늘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까지 고운 도련님으로만 보이던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수적들이 하나둘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물러났다.

“그렇다면…….”

스르르릉.

백천이 천천히 매화검을 뽑았다.

“화산의 친구를 건드린 대가를 받아야겠지.”

동시에 뒤를 지키던 화산의 제자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허…….”

장한은 그 광경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화산파?”

“…….”

“눈에 보이는 건 샌님에, 상인 놈들에, 중놈 하나인데. 너희가 그 화산파 놈들이라고?”

“그러지 않았으면 당신들이 오지 않았을 테니까.”

수적들의 얼굴이 일순간에 굳어졌다.

화산파의 명성은 그들도 익히 들었다. 몇 년 전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지금 화산의 이름은 장강수로채의 일원인 그들로서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드높았다.

“조장…….”

어찌할 것인지를 묻는 부름에 장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모두 죽여라!”

“조장! 여기에는 몇 놈 없지만, 화산파 놈들이 알게 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화산파?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이 장강 위에서는 우리가 왕이다! 저 건방진 놈들을 모조리 토막 쳐 물고기 밥으로 던져 줘라! 오늘이 저놈들 허명이 땅에 떨어지는 날이다!”

“예!”

명령이 떨어진 이상 뒤는 없다.

수적들은 날카로운 병장기를 틀어쥐고 화산파 제자들을 에워쌌다. 그러자 화산파 제자들은 백천을 중심으로 간격을 벌리며 뒤쪽에 있는 승객들을 지키듯 섰다.

백천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제압한다.”

“예, 사숙!”

두 집단이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리고!

“모조리 죽여라아아아아!”

커다란 함성 소리와 함께 쾌속선에 남아 있던 수적들까지 일제히 넘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화산의 제자들을 포위하고 있던 수적들이 덩달아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단숨에 무찔러라!”

“예, 사형!”

“예, 사숙!”

“가자!”

화산의 제자들이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거센 강바람에 백천의 장포 자락이 거칠게 날렸다.

앞으로 단숨에 짓쳐 달려든 그의 검이 푸른 무복을 입은 수적의 가슴을 단번에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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