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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55화 (753/1,567)

755화. 제자는 괜찮습니다! (5)

“잠깐! 잠깐!”

거지 하나가 부리나케 부두 쪽으로 전력으로 질주했다.

“허억, 허억, 허억!”

부두에 다다라서야 허리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쉬더니 그런 여유도 사치인 듯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 아무나 붙들었다.

“저, 저기, 말 좀 물읍시다!”

“뭐요?”

“여, 여기 상선 하나가 오늘 오후에 출발하는 거 아니었소?”

“아, 그 배?”

“예!”

“거지가 상선은 알아서 뭐 하게!”

“그…… 아는 사람이 타서 그렇습니다. 그 배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 출발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일찍 모였다고 벌써 출항했소.”

“예?”

“아까 나갔지. 벌써 구강은 벗어났을 거요. 배를 알아보려거든 다음 배를 알아보시오.”

그 말에 거지가 망연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그의 손에는 붉은색 봉투에 든 서찰이 들려 있었다.

“아니, 배는 가 버렸다는데 이걸 대체 무슨 수로 전달하라는 거야. 나는 이제 왕초한테 맞아 죽었다…….”

야속할 만큼 끊임없이 흐르는 장강을 보는 눈에 망연함이 가득했다.

* * *

배는 유유히, 순조롭게 장강을 타고 움직였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광경이다. 장강을 오가는 배는 하루에도 수백 척이 넘을 테니까.

하지만 그 흔한 광경을 흔하지 않게 만드는 이가 선수에 서 있었다.

“어디 귀한 집 아드님이신가 본데.”

“귀공자가 이런 배는 왜 탔대? 화방(画舫: 놀이용 유람선)이나 탈 것이지?”

“그건 신물 나게 타 봤겠지.”

“여하튼 참 잘생겼구만,”

귓가로 들려오는 수군대는 목소리에 백천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눈에 띄지 말자고 그랬잖아.’

이건 시선을 피하기는커녕 아예 사람을 끌어모으는 수준이지 않은가. 하지만 차마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옆에는 하인인 모양이지.”

“귀공자니 당연히 머슴 놈이 따라붙겠지.”

“딱 봐도 머슴인데 뭘 묻나.”

백상을 바라보는 백천의 눈에 안쓰럽단 기색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백상은 반쯤 도를 얻은 얼굴로 눈을 반개한 채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씀 마십시오.”

“……상아.”

“위로받으면 울고 싶어지니까요.”

“…….”

잔인한 사람들 같으니.

저들 딴에는 들리지 않게 소곤대는 것이지만, 무인의 귀에는 너무도 또렷하게 박혔다. 그러니 저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응?

얘들아? 니들은 왜 거기서 같이 수군대고 있니?

‘뭐 저런 마구니들이…….’

이쪽으로 손가락질을 해 대는 윤종을 비롯한 화산 제자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땀이 찼다.

백천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백상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밖에 없었다…….

“손대지 마십시오. 머슴 묻습니다.”

“…….”

거 소심한 새끼.

“그나저나, 수적들이 오겠습니까?”

“쉿. 목소리가 크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조심하십니까. 여긴 선상이고 배는 이미 출발했는데 수적 놈들이 귀가 아무리 밝아도 여기서 하는 말이 들리겠습니까?”

“이 배에 수적이 타고 있을 수도 있다.”

그 말에 놀란 백상이 목을 살짝 움츠렸다.

“배에요?”

“수적들이 아무리 장강을 잘 안다고는 하나, 강을 오가는 배들을 모조리 다 꿰고 있을 수는 없지. 노리는 배에 한 명쯤 태워 신호를 보내게 할 수도 있다.”

“……딱히 무공을 익힌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적에 동조한다고 해서 꼭 무공을 익혔다고 할 수는 없다. 나 같으면 상인들 중 하나를 포섭하거나 선원을 포섭하겠지.”

“아…….”

백상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보면 참 옛날 백천 같은데 말이야.

“그래서 수적들이 올 거라고 보십니까?”

“일단 미끼는 뿌렸으니 그럴 거라 봐야지. 아마 어지간해서는 올 것이다.”

“이유는요?”

“특표가 장강을 건너는 일이 그리 흔하진 않을 테니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겠지.”

백상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정말 특표가 옮기는 귀물들을 노리는 건지,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건 특표를 노릴 기회가 자주 오진 않을 테니 기회가 오면 잡아챌 확률이 높았다.

구강의 정보에 아주 어둡다면 모를까, 소식을 들었다면 반드시 올 것이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요?”

“그럼 다행이지.”

“예?”

백천이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한두 번 반복해도 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딱히 목적을 가지고 특표를 노린 게 아니라, 그저 공교롭게 우연이 겹친 것뿐이었단 이야기니까. 그러면 일을 풀기가 쉽겠지.”

“아아.”

“하지만…… 글쎄.”

세상일이 그렇게 순조롭게만 풀린다면 이 고생을 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한동안은 별일 없을 것이다. 유속이 느려지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나타날 확률이 높으니까. 다만 혹시 모르니 그때까지 긴장 풀지 말거라.”

“예, 사형.”

백상이 작게 답하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넉살 좋게 승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질들을 보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든든하기는 한데…….’

이제는 화산의 제자들도 당당한 고수의 반열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오검들은 이미 실적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강호의 어디에 내어 놔도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만…….

‘물 위에서도 그 실력이 제대로 발휘가 될지.’

이건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오검의 실력을 생각하면 딱히 별문제야 있겠는가 싶지만, 저 쟁쟁한 문파들도 수적들을 소탕하는 건 꺼려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마냥 쉽게 볼 일은 아니다.

‘아무 일 없으면 좋겠건만.’

백천은 어떻게든 무슨 일이 터질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백상은 제발 그런 일이 없이 평안하기만을 바랐다.

그런 둘의 다른 생각을 품고 배가 장강을 천천히 나아갔다.

“……할 일이 없네.”

“그러게요.”

윤종의 얼굴에 따분함이 가득했다. 배 밖으로 펼쳐지는 장강의 경관을 보는 것도 이제 슬슬 감흥이 사라졌다.

청명이 놈이 화산에 온 이후로 이리 멍하니 시간을 때우는 경험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놈은 정말이지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니까.

“수련이라도 할까요?”

“아서라. 눈이 이렇게 많은데, 지금 너와 나는 평범한 상인이다.”

“……끄응. 죽겠네.”

조걸은 좀이 쑤셔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굳이 배를 타고 느릿하게 나아가며 장강의 풍광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과는 맞지 않았다.

경관을 즐긴다면 강보다는 차라리 산이 낫다. 산은 제 발로 뛰어오를 수 있으니까.

“수적이라도 빨리 오면 좋겠는데.”

“거 재수 없는 소리를…….”

“왜 그러십니까? 애초에 수적 찾으러 나온 길인데.”

“그래도 만나지 않을 수 있다면 안 만나는 게 낫다.”

“왜요?”

“끄응. 설명하자면 길다. 문제는 벌어지지 않는 쪽이 좋아.”

“청명이 놈이 없어서 그러십니까?”

조걸의 질문에 순간 윤종이 입을 다물었다.

딱히 그런 생각에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 막상 조걸의 물음을 듣고 나니 말문이 막혔다.

‘정말 그런가?’

만일 여기에 청명이 있었다면, 수적을 잡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그놈을 말리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수적들과 조우하는 걸 겁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굳이 이런 생각을 말할 필요는 없겠지.’

윤종은 짐짓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가 운을 떼기도 전에 조걸이 말했다.

“솔직히 저는 좀 불안합니다, 사형.”

“응?”

“……청명이요.”

윤종이 살짝 놀란 눈으로 조걸을 바라보았다. 오검 중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꼽으라면 첫 번째는 유이설이고, 두 번째가 조걸이라서였다.

“있을 때는 그냥 막 진짜…… 확 면상을 아주 확…….”

“진짜 눈앞에 없다고 마구잡이로 말하는구나…….”

“사실 아닙니까. 성질 같아서는 다 뒤집어엎고 싶거든요.”

“아니. ‘힘만 있다면’이겠지.”

“예, 그렇죠. 아무튼 그런데, 막상 놈이 없으니까…….”

조걸이 말끝을 흐렸다.

“뭐랄까……. 설명을 잘 못 하겠는데.”

“됐다. 안 들어도 안다.”

윤종이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쓰게 웃었다.

조걸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의외였을 뿐, 무슨 심정인지는 이해가 갔다. 그도 똑같은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미 예상은 했지만, 막상 실제로 겪은 청명의 빈자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그래도 약한 소리 하지 마라. 돌아가서 청명이 놈이 죽어라고 놀리는 거 듣고 싶지 않으면.”

“예, 사형.”

조걸이 평소답지 않게 조금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하세요, 사고?”

난간에 서서 강을 내다보던 유이설이 당소소의 물음에 고개를 돌리며 짧게 답했다.

“화산.”

“여기까지 와서도 화산 생각하세요?”

“집이니까.”

당소소의 얼굴에 살짝 묘한 표정이 스쳤다.

‘집이라.’

당소소도 어엿한 화산의 제자지만, 아직 유이설만큼 화산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화산의 제자들 중 누구도 유이설만큼 화산을 생각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두고 온 사형이 걱정되시는 건 아니고요?”

“사고뭉치. 어디서든 알아서 잘해.”

“……그렇긴 하죠.”

“장문인이 걱정이지.”

“……그것도 맞는 말이고.”

유이설이 무표정한 얼굴로 당소소를 빤히 보다 물었다.

“걱정돼?”

“아뇨. 걱정 안 돼요. 걱정은요.”

“아니, 사질 말고.”

“…….”

당소소가 선뜻 대답을 못 하자 유이설이 작게 저었다.

“걱정하지 마.”

“네, 위험할 때는 사고가 지켜…….”

“너도 당당한 화산의 검수야.”

“…….”

“약하지 않아. 그러니까 괜찮아.”

순간 잠깐 멍하니 유이설을 바라보던 당소소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번쩍 들며 웃었다.

“네, 사고! 이번에는 제가 지켜 드릴게요!”

유이설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그래.”

그리고 그때였다.

선수에 서 있는 백천을 향해 혜연이 다가가 작게 말한다.

“백천 시주.”

“예, 스님.”

“저 앞쪽에 다가오는 배가 조금 이상합니다.”

“예?”

혜연이 굳은 낯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지나간 배들은 이 정도 접근하면 미리 선수를 돌렸는데, 저 배는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은 먼 거리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백천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혜연이 가리킨 배를 살펴보았다.

‘외양은 딱히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군.’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다.

수적의 배라는 걸 미리 알아볼 수 있다면, 멀리서 확인하는 즉시 당연히 도망을 칠 테니까. 피할 수 없는 위치까지 정체를 숨긴 채 접근하는 게 상식이다.

“백상아.”

“예, 사형.”

“애들을 불러라.”

“예!”

백상이 조심스럽게 배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제자들을 불렀다. 재빠르게 백천 주변으로 모여든 모두의 얼굴에 가벼운 긴장이 스쳤다.

“왔습니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런데…….”

여전히 배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백천이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방향을 바꾸지 않는군.’

기본적으로 역풍을 받는 쪽은 방향을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순풍을 받는 쪽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배라면 당연히 지금쯤 방향을 틀었을 것이다.

하나 이제는 이쪽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접근했건만, 저 배는 방향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조타수도 저 배가 방향을 틀지 않으니 이쪽의 방향을 틀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때, 건너편에서 접근하던 배에 새 돛이 펼쳐졌다.

“헉!”

“저, 저거!”

모두가 충격에 숨을 헉 들이켰다.

금방이라도 장강으로 뛰어들어 헤엄칠 것 같은 생생한 흑룡의 문양. 장강수로채였다.

“수적이다!”

“수적이 온다!”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가 배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백천은 긴 숨을 내쉬며 크게 동요하지 않는 얼굴로 입을 뗐다.

“아무래도…….”

하지만 그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모두 봇짐에 숨겨 두었던 매화검을 꺼내었다.

제 검을 넘겨받은 백천은 검을 살짝 뽑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수가 먹힌 모양이구나. 준비해라, 온다!”

“예!”

모두가 더없이 날카로운 눈으로 점점 다가오는 수적의 배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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