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화. 같이 돌아가자. (3)
“아니, 뭔 놈의 산이…….”
가끔 그런 산이 있다. 멀리서 볼 땐 높이가 대단치 않아서 만만히 느껴지지만 막상 들어가면 봉우리가 수도 없이 솟아 있고, 골짜기가 깊으며 여기저기가 툭툭 불거져 도무지 형태며 그 끝을 짐작할 수가 없는 산.
“뭐가 이렇습니까?”
“그래서 십만대산이다.”
윤종이 주변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마교가 십만대산을 근거지로 삼은 이유에는 중원 무림의 중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도 있지만, 산이 워낙 깊고 넓어 그 안에 숨어든 이들을 쉽사리 찾아낼 수 없단 점도 있었다더구나.”
“아.”
“여기는 십만대산의 초입에 불과하지만, 산세를 보니 이곳이 왜 중원의 운명을 가르는 격전지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
윤종의 말을 들으며 조걸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산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중원의 운명을 건 격전이 일어났다.
천마를 중심으로 한 마교와 화산을 중심으로 한 중원의 마지막 승부.
“대산혈사…….”
“그래.”
윤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에서 진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월은 많은 것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지.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신 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
“화산의 선조들께서 이곳에 잠드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화산의 제자라면 누구도 잊어서는 안 돼.”
조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낯설구나.’
이곳의 산세는 화산과 너무도 다르다.
화산의 산세가 가파르고 높은 대신, 어느 하나 숨기지 않고 곧은 직선의 지형을 지녔다. 하나 이곳의 산세는 완만한 대신 그 깊숙한 곳에 무언가 숨겨 놓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화산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이곳은 너무도 낯설기만 했다.
‘이런 곳에서…….’
이 낯선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살아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는 각오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감히 상상도 하기가 힘들었다.
“……모르겠습니다, 사형.”
조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윤종은 빙그레 웃었다.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그리고 그도 시커먼 산등성이를 눈으로 담담히 훑었다.
“서두르자꾸나. 게으름 부리다가는 청명이 놈이 칼을 물고 쫓아올 거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조걸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하여튼 저 새끼는 사람 속 뒤집어 놓는 데는 천하제일인 놈이라니까요. 평소에는 지랄을 해 대서 사람을 괴롭히더니, 지금은…….”
조걸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차라리 지랄이라도 하는 게 낫지.’
침묵하는 청명을 보는 게 너무 어색했다. 심지어 표정 없는 청명의 얼굴을 마주하는 건 더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타박조차 하지 못하니 위장이 뒤틀렸다.
“그러니 한시라도 더 빨리 찾아야지.”
“…….”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쉽게 흔들릴 놈이 아니다.”
조걸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매서워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번 샅샅이 뒤져 보죠.”
“그러자꾸나.”
검집으로 땅을 찌르며 앞서 가는 조걸의 뒷모습을 보던 윤종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조걸조차 걱정할 정도로 청명이 놈의 상태가 좋지 않다.
‘모르겠구나.’
때때로 윤종은 청명이 강철로 만든 인간처럼 느껴졌다.
청명을 만나기 전까지, 윤종은 그저 제자리를 지키며 싫은 일은 피하고, 닥쳐 온 일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모든 일을 부수며 전진하는 청명은 때론 지나치게 과격한 것처럼 보였고, 또 때로는 그렇기 때문에 눈부신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근 며칠간 윤종은 강철로 몸을 두른 청명의 속살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빌어먹을 놈.”
고개를 내저은 윤종이 검집으로 바닥을 세게 찔러 댔다.
* * *
“누구일까요?”
“응?”
유이설이 뒤따르는 당소소를 돌아보았다.
“지금 찾는 사람이요.”
당소소의 얼굴은 평소보다 어두워 보였다.
“무덤이나 유골……. 그렇게 말했으니 분명 사람일 텐데, 청명 사형이랑 어떤 관계일까요?”
유이설은 잠깐 묵묵히 위쪽을 응시했다. 밤하늘을 두 눈에 담은 그녀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친인.”
“…….”
“친인이겠지.”
그녀는 알 것 같았다. 저 표정이 무엇인지.
유이설 역시 오래전에는 동경을 볼 때마다 흡사한 표정을 지은 제 얼굴을 마주했으니까.
힘이 없어서 어쩔 도리 없이 잃어야 했던 친인.
“하지만 백 년 전인데…….”
“나는 몰라.”
유이설이 고개를 내저었다.
“알아야 할 건 찾아야 한다는 것. 반드시.”
그 목소리에 단단한 각오가 어려 있었다.
당소소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이설은 평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의 마음속엔 더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과 화산을 지켜 내겠다는 의무감뿐이었다.
‘처음 봤어.’
그런 그녀가 이렇게 타인의 일에 의욕을 보이는 모습은 거의 늘상 붙어 있는 당소소에게도 생경한 모습이었다.
“꼭 찾아야겠죠?”
“응.”
“하긴 그래야 청명 사형이 평소처럼 돌아오겠죠. 까불거리고, 욕하고, 화내고…….”
당소소의 말끝이 흐려졌다. 평소처럼 돌아오는 게 과연 꼭 좋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유이설의 목소리가 당소소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아냐.”
“……네?”
유이설이 옮기던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돌아와. 찾아내지 못해도.”
“…….”
“아무렇지 않게 돌아와. 평소처럼.”
“……사고.”
유이설의 눈가가 아주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러니까 찾아야 해. 그건 보기 싫어.”
당소소는 유이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청명이라면 속에 어떤 아쉬움이 남아도 결국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만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말이지, 그 속까지 과거와 같다는 의미는 아닐 터.
‘과거와 같다라…….’
새삼 청명이라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괴물 같은 무위, 말도 안 되는 과단성, 폭력적이고 과격한 동시에 꼼꼼하고 섬세한 면.
하지만 그런 모습만으로 청명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소소는 지금껏 화산에서 가장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사람이 유이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말을 극단적으로 아끼는 사람이고, 그렇다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는 걸로 그쳐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은 오히려 청명이다.
그는 유이설과는 반대로 쉬지 않고 떠들어 대지만, 진짜 속내가 드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유이설이 침묵으로 자신을 감춘다면, 청명은 수많은 말과 행동으로 진의를 가리는 사람이다.
“사고는 청명 사형이 속으로 뭘 생각하는지 아세요?”
당소소는 궁금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이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는지 말이다.
“아니.”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녀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렇군요.”
“그런데.”
“네?”
유이설이 가만히 입을 닫고 있다가 슬쩍 당소소를 돌아보았다.
“알아야 할까? 굳이?”
“…….”
“속내 같은 거 몰라도 사질은 사질. 내 사질이야.”
구름이 잠깐 걷히고 달빛이 환히 드러났다. 그 아래에 선 유이설을 멍하니 보던 당소소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저도요! 저도요, 사고!”
“응. 너도.”
유이설의 등에 달라붙은 당소소가 그녀를 애교 있게 잡고 늘어졌다. 유이설은 무표정한 얼굴로 뒤로 휘청휘청했다.
“꼭 찾아요! 꼭 찾아내서 그 양반한테 우리가 찾았으니 한 턱 내라고 할 거예요.”
“비싼 걸로.”
“네! 비싼 걸로.”
“많이 비싼 거. 부자니까.”
“네! 많이 비싼 걸로!”
두 사람은 바닥을 섬세하게 더듬듯이 검을 찔러 넣었다.
‘꼭 찾아야 해.’
당소소의 눈에 강한 다짐이 어렸다.
유이설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소소는 청명이 처진 어깨로 화산으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너무 안 어울리니까.
‘걱정 마요, 망할 사형. 내가 어떻게든 찾아 줄 테니까.’
* * *
이런 묘한 기분을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저놈의 그리 크지 않은 등에서 문득 낯설음을 느낀 순간 말이다.
하지만 백천이 청명의 등에서 낯섦을 느끼는 건 대체로 그가 적을 상대할 때거나 백천의 앞에 서 있을 때였다.
그때마다 백천은 그에게서 나이에 맞지 않은 깊이를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
작다?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뭐랄까…….
마땅한 말을 찾으려던 백천의 입에서 끝내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애초에 저 등을 보며 느낀 감정을 말로 풀어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진 것이다.
푸욱.
청명의 검이 벌써 몇 번째 바닥을 찔렀다.
아래를 물끄러미 보던 청명은 천천히 저 먼 산등성이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솟은 봉우리들을 말없이 보는 그 모습이 백천에게 묘한 위화감을 떠안겼다.
“어떠냐?”
딱히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입을 연 건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 버리면 어쩐지 그와의 거리가 끝도 없이 벌어지다 끝내 멀어질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른 것에 가깝다.
“응?”
청명이 고개를 돌려 백천을 마주 보았다.
그 모습이 평소와 딱히 다르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보여 주었던 그 어두운 얼굴도 아니고, 그저 표정이 없는 낯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그 얼굴이 평소 같지 않고 낯설게 느껴졌다. 백천은 자신이 지금 과민하기 때문인지 잠깐 의심했다.
청명이 다시 물었다.
“뭐가?”
“……찾을 수 있겠어?”
“모르지.”
겨우 꺼낸 질문에 청명이 피식 웃었다.
“노력은 해 보는데, 그…….”
그러더니 뒷머리를 긁적였다.
“책의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최소 백 년은 지났어. 아직까지 뭐가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지.”
“……대산혈사에 참여했던 분의 유진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마 그럴 거야.”
청명을 빤히 보던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그래도 더 찾아보자.”
백천이 바닥을 다시 찌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청명이 그를 향해 물었다.
“사숙.”
“응?”
“안 물어봐?”
“……뭘?”
이제는 여유가 좀 생겼는지 청명이 뚱한 얼굴로 백천을 보았다.
“뭐 궁금한 게 많을 거 아냐.”
“많지.”
“그런데 왜 안 물어봐?”
“물어볼 필요가 없으니까.”
“……그건 뭔 소리래.”
청명이 투덜거리듯 말하자 백천은 어깨를 으쓱했다.
“설명해 줄 만한 일이면 하겠지.”
“…….”
“설명할 수 없는 일이면 안 할 거고.”
“…….”
“그런데 내가 왜 재촉을 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아니, 그래도 사람이란 게…….”
“됐어.”
백천은 말허리를 자르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여유가 생기고 설명할 수 있으면 그때 설명해.”
“…….”
“대신.”
“응?”
“거짓말을 할 거면 그냥 설명하지 마. 괜찮으니까.”
청명이 말없이 백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백천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런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그리고 착각하지 마.”
“응?”
“이건 네 일이기도 하지만, 화산의 대제자인 내 일이기도 해. 선조의 유진을 찾고 그 유해를 수습하는 건 어떤 일에도 비할 수 없이 중한 일이다.”
“…….”
“나는 화산의 제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그러니 방해할 거면 나중에 해. 난 지금 바쁘니까.”
말을 마친 백천은 청명의 옆을 지나 앞쪽으로 쭈욱 올라갔다. 그 굳건한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청명의 입에 허탈한 미소가 어렸다.
“동룡이 주제에.”
그의 눈앞엔 여전히 십만대산이 컴컴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청명은 자꾸 그곳으로 향하는 시선을 끊었다.
그때 백천이 뒤를 돌아보았다.
“얼른 와라.”
“…….”
“뭐 해?”
“……아니야.”
청명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살짝 쥐었다.
- 얼른 와라.
아무것도 아닌 말이다.
하지만…… 저 아무것도 아닌 말을 과거의 그도 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고개를 살짝 숙인 청명은 앞서 가는 백천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