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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713화 (711/1,567)

713화. 같이 돌아가자. (2)

“죽었다고?”

“……예.”

만인방의 군사 호가명이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벼루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곰방대를 가져다 물고는 가볍게 손가락을 비벼 불을 붙였다.

몇 번 뻐끔대지 않았음에도 이내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후우우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그는 부복해 있는 이를 딱히 변화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남창으로 보낸 놈들이?”

“예.”

“내가 누굴 보냈었지?”

“거령도 막위와 일장홍 허형입니다.”

“막위와 허형이라…….”

끼이익. 끼익.

그가 중얼거리며 몸을 뒤로 살짝 젖히자 의자가 거친 마찰음을 토해 냈다. 눈을 반개한 채 천장을 물끄러미 보던 호가명의 입에서 나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이상한 일이군. 그 남창에 그들을 죽일 만한 이가 있나? 아니, 설사 우연히 그런 이가 방문했다 해도 이상하군. 제압한 것도 아니라 목을 베어 죽였다? 만인방의 이름을 듣고도?”

“…….”

탁한 연기가 허공에서 부옇게 흩어졌다.

“누구냐?”

“그것이…….”

부복한 이가 슬쩍 고개를 들어 호가명의 눈치를 살피다 더듬대며 입을 뗐다.

“그…… 아무래도 그…….”

“시간 끌지 마라. 나는 바쁜 사람이다.”

“예. 아무래도 화산파인 것 같습니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타닥거리며 타들던 담뱃불도 잦아들었다.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호가명이 천천히 고개를 내려 보고한 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화산?”

“예.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화산의 제자들이 남창에 왔다고 합니다.”

“……섬서에 있어야 할 놈들이 갑자기 남창에는 왜 나타났단 말이더냐? 그리고 아무리 화산 놈들이라고 해도 거령도나 일장홍이 그리 만만하진 않았을 텐데. 누가 왔다더냐?”

“화, 화산신룡이…….”

순간 호가명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화산신룡?”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놈이 화산오검을 이끌고…….”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군.”

아무래도 이놈은 만인방과 진한 악연으로 엮인 모양이다.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이 이름을 듣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으니 말이다.

“섬서에 있던 화산신룡이 갑자기 남창에 나타나서 거령도와 일장홍을 죽였다?”

허헛 하고 웃어 버린 호가명의 얼굴이 삽시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이건 우리 만인방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군. 방주께서 직접 화산을 방문하여 호의를 보였음에도 이따위로 나오신다?”

다른 이들이야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호가명은 패군이 그 먼 화산을 직접 방문해 준 것만으로도 굉장한 호의의 표현이라 보았다.

“어떻게 정보를 듣고 왔다더냐?”

“그, 그게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음?”

“사정을 들어 보니, 저들은 거령도와 일장홍이 남창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저 일이 꼬여서…….”

“꼬였다고? 그건 뭔 소리냐.”

부복한 이가 조심스레 설명을 시작했다.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호가명의 얼굴이 뒤틀렸다.

“뭔 이런…….”

사기꾼 놈을 잡으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그리고 먼저 공격해 오는 일장홍과 거령도를 베어 버렸다.

이러면 화산이 시비를 걸었다고 평하기에도 애매해다.

“……골치 아픈 놈이로군, 정말.”

호가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답답한 마음에 잠깐 내려놓았던 곰방대를 다시 집어 들려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다급하게 박차고 들어왔다. 그리고 부복해 있던 이의 바로 옆에 곧장 엎드렸다.

“군사!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또 뭐냐?”

“화, 화산신룡이…….”

호가명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저 망할 화산신룡 소리는 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한단 말인가?

“화산신룡이 뭐.”

“화산신룡이 광동에 왔습니다!”

쾅!

의자가 뒤로 쾅 넘어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호가명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지금 뭐라 했느냐?”

“화, 화산신룡과 화산의 제자들이 지금 광동에 들어왔다는 보고가…….”

“확실하느냐?”

“화산신룡의 얼굴을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아 확실하다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나 매화 문양이 새겨진 무복을 입은 무리가 광동에 들어온 것은 확실합니다.”

“……남창 쪽에서 왔겠지?”

“예, 그렇습니다.”

호가명은 곰방대를 물고 깊숙하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폐 속 깊이 연초 향이 머금어지자 뒤흔들렸던 마음이 차츰 다시 가라앉았다.

“화산신룡……. 흐음.”

이윽고 호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께서는 아직 그를 필요로 하신다. 그러니 지금은 잡아 죽일 때가 아니지.”

“하면…….”

“하지만.”

호가명의 눈이 차가워졌다.

“방의 행사를 방해하고 겁도 없이 광동에 발을 들인 대가는 치러야겠지. 화산신룡은 살려 보내더라도 그와 함께 있는 화산의 제자들 정도야 죽인다 해서 별문제 되겠느냐?”

“…….”

“내가 직접 가겠다. 준비해라.”

“예!”

호가명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적당히 기를 꺾어 놓을 필요는 있지.’

그게 아니면 차라리 제대로 독이 오르게 만들거나.

어느 쪽이든 만인방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 없는 일이다.

* * *

“끄응.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

“……또, 또요?”

“이상하다. 분명 이쪽이었던 것 같은데……. 반대쪽인데 내가 잘못 생각했나?”

노인의 중얼거림에 진양건은 하늘이 노래지는 걸 느끼며 휘청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는 무려 네 시진째 표 노인을 업은 채 산을 타고 있었다.

차라리 확실한 목적지라도 있으면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여기가 확실하다 해서 가면 착각이라고 하고, 반대쪽이라고 해서 갔더니 아까 거기라고 하는 지옥 같은 뺑뺑이가 내내 반복되고 있었다.

“끄응. 아저씨! 기억하신다고 했잖아요.”

“아니. 그…… 그때 광경은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데 거기에 어떻게 가는지가 잘…….”

“평생 이 산만 타신 분이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합니까!”

“예끼, 이놈아! 너도 늙어 봐라!”

등에 업힌 표 노인이 진양건의 머리를 딱 소리 나게 때렸다.

그 둘을 지켜보던 윤종이 백천을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뭐가?”

“평소 같았으면 저놈이 미쳐서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오늘은 조용하잖습니까.”

“그러게.”

상상하기가 조금도 어렵지 않다. 거품을 문 청명이 노인장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한 대 맞으면 정신이 돌아오겠느냐고 사자후를 내지르는 광경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청명은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노인이라서 뭐라고 안 하는 거 아닐까요?”

“저 새끼는 노인만 보면 공격하던데.”

“…….”

아, 그렇지.

지금까지 청명이 때려잡은 빙궁주며 무당의 장로 등등 다들 노인이었다. 마교의 주교? 거긴 노인의 수준을 넘어서서 살아 있는 송장 수준이었고.

“여하튼 저놈이 평소 같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입니다. 험한 꼴을 안 보게 되어 다행…….”

그때였다.

앞쪽에서 움찔움찔하던 조걸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표 노인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응?”

“어?”

표 노인의 바로 앞까지 간 그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아니, 영감님! 노망이 나셨으면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거 여러 사람 피곤하게 왜 똥개 훈련을 시키고 그러십니까. 지금 이게 대체 몇 시진째입니까! 지금 엿 먹이시는…….”

“윤종아.”

“예, 사숙!”

“죽여라.”

“예!”

윤종이 앞으로 벼락처럼 달려 나가 몸을 띄우더니 무릎으로 조걸의 뒤통수를 찍어 버렸다.

“꺅!”

조걸이 앞으로 철푸덕 엎어지자 그 위에 바로 올라탄 윤종이 조걸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뒈져! 숭어도 안 뛰었는데 망둥이가 왜 뛰어?! 왜! 죽어, 그냥!”

“악! 아아악! 악! 사형! 악악!”

허리를 야무지게 획획 돌려 가며 때리는 걸 보니 어디서 잘 보고 배운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백천은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저걸 흐뭇하게 보면 안 되지. 그래도 내가 명색이 도산데.

조걸은 뒤통수를 양손으로 움켜잡은 채 비명을 질러 댔다.

“아악! 제가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악! 사, 사형 허리! 허리 부러집니다! 허리는 안 됩니다! 밟지 마시…….”

“그냥 좀 죽어, 이 새끼야!”

조걸을 아예 빨래처럼 짓밟아 버린 윤종이 헉헉대며 몸을 세우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좀 진중해지기 마련인데 너는 어떻게 하루하루가 새롭냐, 이 새끼야.”

“……사형도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 가시는 것 같은데.”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인마!”

윤종이 손을 들어 올리자 조걸이 움찔하며 머리를 감쌌다.

백천은 그 양을 가만 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녀석도 참.’

청명이 놈이 내내 굳은 얼굴로 침묵하는 게 너무 어색해서 괜히 분위기를 풀기 위해 저러는 것이다. 효과가 있든 없든, 다 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조걸은 얻어맞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슬쩍슬쩍 청명이의 기색을 살폈다.

백천 역시 조용히 청명을 살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청명아.”

“응?”

“어쩔 테냐. 이제 곧 해가 진다.”

“음.”

“밝은 대낮에도 찾아내지 못했던 곳이다. 해가 진 후에는 알아보기 더 어렵지 않겠느냐. 아무래도 오늘은 이쯤 해야 할 것 같다.”

청명은 고민하는 듯 느리게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노인을 향해 물었다.

“어르신.”

“예?”

“어쨌거나 그 비급을 발견한 곳이 이 근처라는 말이죠?”

“암요. 그렇습니다요.”

표 노인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양건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려 줘 보거라.”

“끄응…….”

진양건이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에 주저앉자 표 노인이 내려서선 주변을 돌아보았다.

“쇤네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산이나 저 옆 산 어딘가였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내일 하루쯤 더 돌아보면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겁니다요.”

청명은 표 노인이 가리킨 산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때의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아, 그게…….”

노인은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제가 아주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그때 잡은 짐승이 여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우?”

“예. 저 앞쪽에서 여우를 발견하고 바로 활을 쏘았습죠. 입에 뭔가를 물고 가기에 당연히 토끼 같은 산짐승을 사냥한 줄 알았는데, 잡고 나서 그 자리에 가 보니 산짐승이 아니라 웬 서책 하나가 떨어져 있지 않겠습니까.”

청명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이 사람에게 가져다주셨고?”

“예, 예. 사실 제가 까막눈이라 그 책에 뭔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는데, 서책에 칼 든 사람 그림이 여럿 그려져 있기에 저놈에게 가져다주면 괜찮겠다 싶었지요.”

표 노인이 진양건을 흘끗 보며 말했다.

“그래도 이놈이 글줄깨나 읽을 줄 아는 데다가 그 무공인지 뭔지를 익힌다고 소문이 나 있던 차라.”

“흐음.”

청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테니 이만 내려가 보셔도 됩니다.”

“예? 아직 찾지 못했는데…….”

“괜찮습니다.”

표 노인이 슬쩍 청명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럼 조금 전에…….”

노인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아챈 백천이 대신 대답했다.

“수고비는 그대로 받으셔도 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나으리들. 정말 감사합니다.”

백천은 차가운 눈으로 진양건을 보며 당부했다.

“어르신을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그대의 집에 머물고 계시오. 미리 말하지만 달아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꾸, 꿈도 꾸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좋소.”

진양건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표 노인을 업고 산을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백천이 청명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쩔 셈이냐?”

“어차피 거길 찾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냐. 중요한 건 이 근처 어딘가에서 그 비급이 발견되었다는 거지.”

“음.”

“산짐승이 비급을 물고 먼 거리를 이동했을 리는 없어. 근처일 거야.”

“그렇구나. 그럼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게 뭐냐.”

그 말에 청명이 가만히 백천을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눈빛이었다.

잠시 후에야 청명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무덤.”

“…….”

“그게 아니면 백골. 아니, 옷자락, 시신…… 무엇이든 좋아.”

그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무리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흔적만이라도 찾아내야 해. 부탁한다.”

모두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역을 나눠 흩어져서 찾아보자.”

“예, 사숙!”

일사불란하게 구역을 나누고 분담하는 모두를 보던 청명은 빠르게 어두워져 가는 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도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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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된 시기에는 중국에 담배가 전파되지 않았지만, 작중 허용으로 곰방대를 피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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