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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73화 (671/1,567)

673화. 여기에 모두가 있다. (3)

일대제자들이 선두에서 결연한 기세로 제자들을 이끌었다.

당가처럼 절도 있지도, 북해빙궁처럼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남만야수궁처럼 자유분방하지도 않았다. 하나 선두에 선 일대제자들에게선 분명 다른 문파와는 다른, 굳건함이 느껴졌다.

한없이 깊은 호수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

위압적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전해져 오는 깊이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절로 마른침을 삼키고 탄성을 흘렸다.

‘화산의 일대제자들은 딱히 대단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다 헛소리였구나. 하기야, 윗대가 제대로 서지 않았는데 아래 배분이 어찌 그리 명성을 날렸겠는가?’

‘그만한 이들을 키워 내는 것 역시 더없이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지! 아암!’

사람이 자리를 만들면, 그 자리는 다시 사람을 만든다.

천하에 수많은 문파가 있다고 하지만 화산만큼 다사다난했던 문파가 또 있겠는가? 일대제자들은 화산의 굴곡을 그 삶으로써 짊어지며 함께했던 이들이다.

이름을 날린 것은 화산의 어린 제자들이지만, 그 바탕에 이들의 존재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몇 되지 않는 일대제자들의 뒤로 화산의 이대제자들과 삼대제자들이 조금 간격을 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화정검이다!”

“저 사람이 바로 화정검이구나!”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를 이끌며 걸어오는 백천의 헌앙한 모습에 모두가 연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남의 진금룡을 격파하고, 무당의 진현마저 꺾었다는!”

“어허, 그뿐인가! 얼마 전에 있었던 무당과의 비무에서 일대제자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지 않는가!”

“멍청한 소리!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화정검 최고의 업적이라면 저 만인방의 대주인, 적사도 엽평을 꺾어 낸 것이 아닌가! 후기지수들 중 제일 강한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어떤 후기지수도 그만한 업적은 이루지 못했지!”

“아니지! 대별채를 토벌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은가?”

“……딱히 실감을 못 했는데, 듣고 보니 저 화정검이 그동안 한 일이 실로 어마어마하구먼.”

중인들은 새삼스레 실감하게 되었다. 화산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는지 말이다.

“그 뒤에는 오검 같은데?”

“화산오검! 그래, 화산오검이다!”

“북해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저들이 북해로 가서 마교의 발호를 막았다지?”

“저렇게나 어린데…….”

백천의 뒤를 따르는 유이설, 윤종, 조걸, 그리고 청명을 보며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저 다섯이 화산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기간에 명성을 끌어올린 화산의 중심에는 언제나 저들이 있었다.

아예 화산을 모르면 모를까, 이 문파를 아는 사람은 오검을 모를 수 없었다.

그 위풍당당한 다섯 명의 뒤로 이대, 삼대제자들이 줄지어 뒤따랐다.

“이들이 화산…….”

이 깎아지른 산을 오른 이들 중 대부분은 바로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다.

냉정히 말해 아직도 화산은 천하의 주류라고는 할 수 없는 문파다. 하나 그럼에도 중인들이 이 문파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화산오검이다.

이들이 성장하여 화산을 이끌어 나가는 시기가 온다면 천하의 누가 감히 화산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이곳에 모인 이들이 보려 했던 것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화산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눈앞에 바로 그 화산의 미래가 있다.

살짝 넋을 놓고 그들을 두 눈에 담은 중인들은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시선을 움직였다.

“그럼 누가 화산신룡이지?”

“오검 중에 있겠지!”

화산오검의 명성은 실로 대단하지만, 화산신룡이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지금의 화산을 설명할 수 없다.

천하제일후기지수.

이제는 그 별칭으로도 다 담을 수 없다.

눈을 부릅뜨고 이곳저곳을 확인하던 이들 중 하나가 순간 크게 외쳤다.

“화산신룡이다!”

“오, 누구! 누구!”

“저기 저 사람! 살짝 작은 사람!”

“……저 사람이…….”

오검의 가장 뒤쪽에서 청명이 휘적휘적 걷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리 진중하지 못한 자세지만, 똑같은 걸음걸이도 누구의 발끝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는 법이다.

명성과 실력이 부족한 이가 이런 자리에서 저런 모습을 보였다면 중인들이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하나 화산신룡은 이미 자신의 실력을 천하의 모두에게 증명했다. 그러니 저 가벼운 걸음걸이조차도 강자의 여유로 보였다.

“저자가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그 화산신룡이로군!”

“무당의 허공을 꺾었다는…….”

“과연! 한눈에 보아도 남다르구나!”

“화산신룡! 화산신룡!”

중인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높이 울려 퍼지자 청명이 주변을 슬쩍 돌아보더니 씨익 웃었다.

“크으. 뭐 대단한 사람 나왔다고. 그래요, 제가 그 화산신룡입니다.”

그러더니 긴장도 되지 않는지 얼굴을 한껏 풀고 헤헤 웃으며 여기저기에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콰득!

히죽히죽 웃던 청명의 옆구리에 유이설의 팔꿈치가 콱 틀어박혔다.

“끅…….”

청명의 손이 반사적으로 내려오며 옆구리를 감쌌다.

“…….”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려 유이설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걸을 뿐이었다.

“아니, 왜 사람 옆구리……!”

막 발작하려던 청명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콕. 콕콕.

자리를 의식해서가 아니었다. 등에서 느껴진, 한없이 싸늘한 감각 때문이었다.

핏기가 싹 가신 청명이 천천히 돌아보니 당소소가 화사하게 배시시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게 쥔 기다란 대침이 청명의 등을 살짝살짝 찔러 대었다.

“…….”

환한 표정과는 달리 섬뜩하게 가라앉아 있는 그녀의 눈을 확인한 청명은 얌전히 입을 다물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

“…….”

떨떠름한 눈으로 그 광경을 보던 중인들은 서로를 흘끔거리며 소곤거렸다.

“……맞지?”

“맞는 것 같은데…….”

……어쨌든.

화산신룡마저 모습을 드러내자 지켜보는 이들의 기대감이 하늘을 뚫기 시작했다.

사천당가, 북해빙궁, 남만야수궁에, 화산의 등장까지.

네 문파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모두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침내 화산이 중앙에 도열했다.

상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호의 명숙들은 자꾸만 굳어지는 표정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미타불.”

법계 역시도 작게 불호를 외어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하지만 네 문파를 바라보는 눈에 담긴 미묘한 불안은 미처 지우지 못했다.

‘확실히…….’

이리 보니 더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도저히 연합을 위해 뭉쳤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개성이 강한 문파들이다. 하지만 법계는 그 문파들 사이에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독과 암기로 천하에 인정을 받지만, 그렇기에 은근히 경원시되는 사천당가.

남만의 패자로서 강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야인이라 멸시받는 남만야수궁.

저 먼 혹한의 땅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살지만, 중원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북해빙궁.

그리고…….

‘한때는 천하에 이름을 떨쳤지만, 철저하게 무너졌던 화산까지.’

모두 주류와 벗어나 있으면서 중원과의 감정이 그리 좋지 않은 문파들이다. 그런 이들이 화산의 이름 아래 마침내 하나가 되어 뭉쳤다.

‘이제 강호가 대체 어찌 흘러갈 것인가.’

짐작할 수 없는 미래가 막막하다 못해 암담하게까지 느껴졌다.

이윽고 장내가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중인들의 시선이 단상 쪽으로 향했다. 이어질 순서가 무엇인지는 자명했고 기대감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단상 위로 네 사람이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화산의 현종.

사천당가의 당군악.

남만야수궁의 맹소.

북해빙궁의 설소백.

천우맹의 중심을 이루는 네 문파의 수장들이 단상 위에 서는 순간, 그 거대한 존재감을 실감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율했다.

이름 높은 거대 문파의 수장들.

말없이 중인들을 가만히 주시하던 그들 중 당군악이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그 냉막한 얼굴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독왕 당군악.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명성으로는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이가 당군악이었다. 그런 만큼, 천우맹의 개파를 알리는 이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당군악은 사위를 둘러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낮지만 힘 있는 음성이 화산의 정상에 퍼져 나갔다.

“천우맹의 개파를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 주신 분들과, 자리를 빛내 주신 강호의 명숙 분들께 천우맹의 이름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여유롭되 힘이 실린, 강자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단숨에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 당군악의 말이 이어졌다.

“화산파, 사천당가, 북해빙궁, 남만야수궁. 이 네 문파는 천우맹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강호의 무궁한 안녕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는 천우맹의 시작을 함께할 네 문파의 의지를 강호의 동도들에게 내보이고 선언하는 자리입니다.”

당군악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저희 네 문파는 이견 없이 화산의 현종 장문인을 천우맹의 맹주로 추대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화산의 현종진인께서 맹주가 되어 천우맹을 이끌어 나가실 것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현종에게로 쏠렸다.

모두가 예상했고,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공식적인 선언과 무게가 같을 순 없었다. 천우맹이라는 거대 연합의 중심이 화산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현종은 짧게 심호흡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보통은 거창한 축사와 찬사가 선행되기 마련이지만, 굳이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은 듯 담담한 움직임이었다.

당군악이 한 발짝 물러나고 현종이 중앙에 섰다.

“화산의 장문인인 현종입니다.”

당군악의 묵직한 음성과는 달리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듣는 이를 절로 마음 편하게 하는 현기가 듬뿍 어려 있었다.

현종은 포권 하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한 연합의 맹주가 하는 인사라기에는 허리가 과도하게 깊이 숙여지니 지켜보는 이들이 모두 당황했다.

절로 움찔하여 맞포권을 하려던 이들도 있었는데, 이내 그런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는 머쓱하게 손을 풀었다.

‘다르구나.’

‘저분이 현종진인…….’

누군가는 목을 세워서 위세를 찾는다.

하지만 현종은 되레 자세를 낮추어 그의 격을 증명한다. 드높은 자리에 올랐음에도 결코 오만하지 않은 이. 화산의 수장이자 천우맹의 맹주가 어떤 이인지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포권을 푼 현종이 모두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쿠웅!

앞쪽에 도열해 있던 이들 중 누군가가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단상에 있던 이들은 물론이고, 개파를 지켜보던 이들, 심지어 도열해 있던 이들마저도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 끝에 놓인 건 청명이었다.

그는 진각을 밟았던 자세를 다시 바로 세웠다. 그리고 더없이 반듯한 자세로 포권 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열해 있던 모든 이들이 청명을 따라 칼같이 포권 했다.

“맹주를 뵙습니다!”

수백의 무인들이 동시에 기운을 실어 고함을 내지르니 산 전체가 크게 떨리는 것만 같았다. 그 가공할 위세에, 지켜보던 이들의 온몸에 소름이 내달렸다. 한차례 부르르 떤 이들은 모두 새삼스럽게 현종을 다시 보았다.

저 인상 좋은 노도사가 이 거대한 연합의 수장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한 것이다.

‘저 녀석이…….’

현종은 청명을 보며 슬쩍 쓰게 웃었다.

청명은 주변 사람들에게 천우맹의 위세를 보여 주는 것과 동시에 현종에게도 말을 전한 것이다.

자세를 낮추는 것은 좋지만, 그가 이 많은 이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 그가 스스로를 너무 낮춘다면 이곳에 모인 천우맹 역시 낮아짐을 경계하라는 의미였다.

‘알고말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 현종의 눈이 이내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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