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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00화 (598/1,567)

600화. 그럼 구파 새끼들이 욕을 좀 더 처먹지 않을까? (3)

“근데 이 새끼들이!”

“어딜 도망쳐!”

매화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검은 무복 차림의 화산 문도들이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산적들의 뒤를 쫓았다.

“아아아악! 살려 주십쇼!”

“착하게 살겠습니다!”

산적들이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며 비명을 내질러 댔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뒤쫓는 이들은 자비라는 걸 몰랐다.

“누가 죽인대? 거기 안 서?”

“서라! 지금 서면 덜 맞는다. 니들 계속 그렇게 뛰면 진짜 뒈진다?”

살벌한 위협에, 산적들은 더욱 입에 거품을 문 채 달렸다.

‘저 미친 새끼들!’

갑자기 대별산으로 쳐들어온 도사 놈들이 갈 곳을 잃고 대별산으로 모여든 불쌍한(?) 잔당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은 자비심이라는 것도 없나?’

산적들은 무참히 당하고, 형편없는 몰골로 눈물을 뿌리며 도주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산채에 있는 짐이라도 챙겨 달아날 수 있게 적당히 시간을 주는 게 기본 아닌가?

그런데 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놈들은 지체 없이 대별산으로 쳐들어와 산채를 점령하더니 달아나는 산적들마저 모조리 추격해 포박하는 중이었다.

“에라이! 거지보다 더한 새끼들아!”

“아니, 근데 저 새끼가?”

“말이 심하네?”

눈에 불을 켠 화산의 제자들이 더욱 속력을 높여 뒤를 쫓았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산적은 산적이다. 마음먹고 쫓아오는 화산 제자들을 따돌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결국 검집으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산적이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그러자 달리던 화산 제자가 그 등에 올라타 뒤통수를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입 또 털어 봐, 이 새끼야!”

“아악! 아악, 도사님! 잘못했습니다! 아아아악!”

뒤통수를 신나게 후려갈긴 곽회는 혀를 쯧 차고는 준비한 줄로 산적의 손을 묶었다.

“자신 있으면 한번 끊어 봐. 그 즉시 네 목숨 줄도 끊어 줄 테니까.”

“…….”

달아났던 다른 산적들도 화산의 제자들의 손에 줄줄이 묶여 돌아왔다.

“어차피 잡힐 건데 뭘 그렇게 열심히 달아나. 괜히 힘만 빼게.”

‘니들 같으면 안 달아나겠냐, 이 개자식들아.’

산적들은 분통이 터졌음에도 감히 말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놈들은 그동안 그들이 상대했던 정파와는 너무도 달랐다.

말이야 바른 소리지. 이놈들이 무슨 정파인가.

잡혀 오는 이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흑도 놈들도 사람을 이렇게까지 패 대지는 않는다.

‘이것들이 무슨 도사라고.’

“근데 이 새끼가 아까부터 눈을 부라리네?”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럼 내가 잘못 봤다고?”

“그, 그게…….”

곽회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때 뒤쪽에 서 있던 다른 제자들이 그를 만류했다.

“사형. 그럴 시간 없습니다. 빨리 가야 됩니다. 더 늦으면 청명이 놈 또 뒤집어질 겁니다.”

떠 있는 해를 보며 시간을 가늠한 곽회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래. 일단 빨리 돌아가자.”

“예.”

잔당들을 모두 제압하는 데 성공한 화산의 제자들은 줄줄 엮은 산적들을 이끌고 대별채로 향했다.

“……생각보다 많네.”

“그러게?”

녹채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대별채의 중앙, 포박된 산적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 주위로 검을 뽑아 든 화산의 제자들은 눈을 부라리며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곽회가 엮어 온 산적들을 끌며 앞쪽에 있는 백천에게로 갔다.

“사숙! 잡아 왔습니다.”

“음.”

엮여 있는 산적들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확인한 백천은 뭔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많이도 팼구나.”

“이 새끼들이 자꾸 입을 털어 대서…….”

곽회야. 너는 도사다.

사람이 입을 턴다고 얼굴을 털어 버려서야 되겠니? 그것도 도사가?

너무도 당연한 걸 당연하게 느끼지 못하게 된 사질들을 보며 백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고생했다. 저 안으로 밀어 넣어 둬라.”

“예!”

곽회는 포박해 온 산적들을 다른 산적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 꿇어앉혔다.

“별문제는 없었느냐?”

“칼이라도 뽑아 들고 저항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고분고분했습니다.”

“흠.”

그 말에 백천은 천천히 산적들을 둘러보았다.

“산적들이라 그런지 영 오합지졸이구나. 제 두목이 죽자마자 저항을 포기해 버리다니.”

대별채 산적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양심도 없는 새끼.’

‘저 새끼가 더 나빠!’

그들이라고 왜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이미 똑똑히 보았다. 화산이 녹채에서 어떻게 싸웠는지 말이다.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혈의인들을 모조리 베어 넘긴 것은 물론이고, 대별채에 왕처럼 군림하던 고홍의 목을 쳐서 날려 버리지 않았는가.

그 살벌했던 칼날이 그들의 목이라고 피해 갈 리 없었다.

괜히 칼이라도 뽑았다간 그날로 잿밥이나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될 게 빤한데, 무슨 수로 저항을 하겠는가?

하지만 백천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이 이들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별로 없죠? 저희가 일찍 온 겁니까? 잡힌 산적들의 수를 보면 또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다들 복귀했었지.”

“그럼 어디로…….”

“청명이 놈이 대별산에 산적 하나라도 남아 있는 거 걸리면 화산까지 물구나무서서 복귀한다고 해서, 다들 근처에 놓친 잔당이 있는지 확인하러 나갔다.”

“…….”

곽회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청명이 놈의 지랄 맞은 점이야 많다 못해 저 하늘의 별만큼 수도 없지만, 그중 가장 지랄 맞은 점 중 하나는 제 입으로 뱉은 말을 웬만해서는 지킨다는 점이었다.

응?

그게 왜 지랄 맞은 점이냐고?

‘당연히 지랄 맞지.’

보통은 그냥 농으로 하는 과장 섞인 협박 정도로 그치는데, 그놈은 진짜 해 버리니까. 섬서까지 물구나무서서 가면 수련도 되니 좋다고 박수를 치고도 남을 놈이었다.

“……저희도 합류합니까?”

“아니. 너희는 조금 기다려라. 너희는 산채 부수는 일을 해 줘야겠다.”

“예? 산채를 부순다구요?”

곽회가 고개를 획 돌려 눈앞에 펼쳐진 산채를 바라보았다.

이놈의 산적 새끼들이 뭘 이렇게 열심히 지어 뒀는지, 대궐 같은 통나무집 수십 채가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걸 다?”

“그래.”

“아, 아니, 왜요?”

“산채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갈 데 없는 산적 놈들이 모여들어서 다시 산적질을 할지도 모르니, 애초에 산채고 나발이고 없었던 것처럼 다 갈아 버리란다.”

“청명이가요?”

“그럼 누구겠느냐.”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예 대별산 산적들의 씨를 말리려고 하는구나.’

하기야 생각해 보면 옳은 일이었다. 일을 하려면 확실하게 하는 쪽이 낫다. 기껏 대별채를 정리해 뒀는데, 어중이떠중이 같은 산채가 다시 그곳에 자리 잡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그런데 청명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 있잖느냐?”

“예?”

“저기.”

곽회의 시선이 백천이 가리킨 곳을 향해 앞쪽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건물들 사이로 산적들이 뭔가를 지고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끄으으으으.”

“흐으으으으읍!”

죽을상을 하고 짐을 나르는 산적들 사이에서 누군가 손가락질을 해 대고 있다.

“그건 저기로.”

“예!”

“그건 저쪽.”

“예, 도장님!”

“…….”

곽회는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보았다. 손가락질을 하며 산적들을 부리는 건 현영이었고, 청명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당과를 처먹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곽회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약탈 중이다.”

“……예?”

태연하고 평화롭게 흘러나온 백천의 목소리에 곽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숙, 제가 뭔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백천은 표정을 굳히고 한숨을 푹 쉬었다.

“대별채 창고에 있는 물건들 빼내는 중이다. 고홍인가 하는 놈이 알뜰살뜰히 잘도 모아 놨더구나.”

“아…….”

“왜 다짜고짜 대별채를 정리해야 한다고 발작을 해 대나 했더니…….”

백천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구파일방에게 엿을 먹인다는 좋은 명분……. 아니, 물론 그것도 정파의 제자로서 내세울 만한 명분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럴싸한 명분을 들이대더니.

‘실제 속셈은 이거였겠지.’

대별채는 녹림칠십이채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산채. 당연히 그동안 모아 온 재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목숨이 오가는 토벌 중에도 청명이 놈은 대별채에 있을 재물을 놓치지 않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집착이었다.

“……진짜 돈 없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아니죠, 사숙. 귀신은 청명이 놈한테 못 붙죠. 지들도 사람은 가리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구나.”

그래도 명색이 도산데…… 귀신이 붙으면 안 되겠지.

아니, 도사가 아니어도 저놈한테 귀신이 붙진 않을 테지만.

“그런데 역시 청명이네요. 저희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산채를 토벌했으면 당연히 재물을 챙겨야죠.”

백천이 말없이 곽회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는 산채 정도 털어 먹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제자들을 보며 무언가 근본부터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뿐이었다.

어느새 산처럼 쌓인 재물들 앞에, 현영이 근엄한 얼굴로 섰다.

“열어 봐라.”

“……예.”

자루를 열자 번쩍이는 보석과 장신구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현영의 눈도 그에 못지 않게 희번덕 빛나며 광망을 내뿜었다.

“후후후. 실로 비싸 보이는 패물들이로구나. 이 정도라면…….”

촥촥촥촥촥!

현영의 손이 주판 위를 쾌속하게 누비기 시작했다. 그 가공할 속도를 보고 있자면 이 사람이 왜 무학에서 손을 놓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과연! 과연 대별채로구나! 알뜰살뜰히도 모아 두었군! 아하하하하하하하핫!”

“…….”

“…….”

짐을 나르던 산적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 사람 진짜 도사 맞나?’

‘어떤 면에서는 채주보다 더 무섭다.’

하지만 그 살벌한 반응을 오히려 반기는 이도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좀 값이 나갈 만한 물건인가 봐요?”

“그렇다마다! 이놈들이 정말 제대로 모아 놓았다. 대별채, 대별채 하기에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이 정도면 웬만한 문파 하나가 수십 년간 모아 둔 재물보다 더 많을 것 같구나!”

현영이 흥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어 젖혔다.

“산적질이 이렇게 돈이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화산파고 나발이고 진즉에 화산채로 업종을 바꾸…….”

“에헤이! 듣는 귀가 있어요! 듣는 귀가!”

“크흠. 그래. 그렇구나.”

현영이 입을 가리고는 작게 헛기침했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청명의 머리를 움켜잡고 격하게 흔들었다.

“요놈! 요 귀신같은 놈! 그 와중에도 돈 벌 구석을 찾아내다니! 내가 이래서 네놈을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악, 아파요!”

“요놈! 요놈!”

청명의 머리를 애정 실어 꽉꽉 누른 현영은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하게 웃었다.

여하튼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는 놈이다.

“하여, 이젠 어쩔 테냐. 이 짐들을 통째로 들고 화산으로 돌아갈 생각이냐?”

“흐음.”

청명은 산처럼 쌓인 짐들을 보다 눈을 빛냈다.

“그래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겠죠? 보는 눈들도 있을 거고?”

“그렇겠지.”

“그래서 말인데요.”

“응?”

어째 빛나는 두 눈이 더없이 사악해 보였다.

“어차피 지금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이왕 엿 먹일 거 제대로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냐는 듯이 현영이 청명을 돌아보았다.

“낄낄낄낄. 일단은 처분부터 하고요.”

현영은 그런 청명을 보며 그저 흐뭇하게 웃었다.

요 예쁜 내 새끼.

어쩜 이리 마귀 같은지.

하필이면 이놈과 원한을 쌓은 구파일방을 처음으로 동정하게 되는 현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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