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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63화 (561/1,567)

563화. 그러게, 사람이 초지일관해야지. (3)

인생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침상에 누운 임소병은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았다.

때때로 이리 누워 천장을 보다 보면, 흐려지는 의식과 뿌연 시야, 밀려오는 한기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곤 했다.

하나 지금은…….

‘따뜻하네.’

몸에 온기가 돌았다.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새 삶을 얻은 것 같았다.

천장의 무늬 하나하나가 선명하다 못해 금세 튀어나올 듯 생생히 보였다. 언제나 기력이 없던 몸에는 활력이 넘쳐, 곰과 씨름을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에도 바라마지 않던 변화였다. 말 그대로 간절히, 또 간절히 바라던 것의 실현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

천정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에서 투명한 물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람 팔자가 어찌 이리 기구할 수 있는가?’

본디 인간이란 처음부터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도 아쉬움도 느끼지 않는다. 가진 것이 사라질 때에야 비로소 아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느끼고 있는 감각과 이 활력이 사라지는 순간 그가 얻게 될 할 허탈감은 얼마나 클 것인가.

‘이건 마약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상황이 지랄 맞았다.

이 맛(?)을 알아 버렸는데, 무슨 수로 청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겠는가?

임소병은 자기객관화가 아주 잘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약발이 떨어져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면 스스로 무슨 짓을 할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끄으으으응!”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저 마귀에게 낚여서는…….

물론 청명과 친분을 쌓고, 관계를 맺는 것은 임소병이 바라마지 않던 바였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친분을 전제로 한 동맹을 맺고 싶단 의미였지, 이렇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내주는 관계를 원했던 건 아니었다.

심지어 그 주도권을 내어 주는 쪽이 임소병이라면 더더욱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막판에 허세라도 덜 부릴 것을.’

임소병은 반쯤 풀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 몸에 활력은 또 왜 이리 도는지…….

“끄으응. 내가 정말로 마귀를 만났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화산에 가면 안 된다고 말리는 수하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막아서는 놈들을 걷어차 가며 온 곳에서 이리 봉변을 당할 줄이야.

“앓느니 죽어야……. 응?”

그때 문득 들려오는 바깥의 소란에 그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여기 병자……. 아니, 병자였던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경우 없게.

그는 살짝 언짢은 손길로 이불을 걷어 냈다.

“엄마야!”

그런데 돌연 걷은 이불이 벽에 가 처박혔다. 늘 기력이 없던 몸에 갑자기 폭포처럼 활력이 도니 힘 조절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돌아본 그는 이불을 제자리에 돌려 두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케에에에에에엑!”

쿠우우웅!

“…….”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가 포탄처럼 날아와 전각 벽에 틀어박혔다. 임소병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스르르륵.

이내 벽에 처박힌 이가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지며 허물어졌다. 화산의 무복을 입은 걸로 보아 제자 중 한 명인 듯했다.

‘뭐야?!’

습격? 대체 누가 화산에…….

몸을 움찔움찔 떨며 바닥에 쓰러진 이를 확인한 임소병은 황급히 앞쪽을 바라보았다.

화산의 제자들이 모두 두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으아아! 죽어! 죽어어어어엇!”

“그걸로 죽겠냐!”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던 이가 목검에 허리를 맞더니 걷어찬 공처럼 빠르게 튕겨 나갔다.

‘죽었나?’

보통 저 정도면 죽어야 하는데? 아무리 목검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맞으면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는 거야 동일하지 않은가?

진검이 아니라 해도 저 정도로 세게 맞았으면 죽어야 예의였다.

심지어 싸움이 벌어진 곳은 한 곳이 아니었다.

다가가 보니 연무장 곳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뒈지십시오! 사수우우우욱!”

“그런데 이 새끼가?”

임소병은 눈앞의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섰다.

‘저자는 분명 화정검 백천인데…….’

화산오검이라 불리는 이들 중 수좌를 맡은 이가 바로 백천이다. 지난 천하후기지수비무대회에서도 나름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었다.

언젠가는 화산의 장문인이 될 게 확실한 이이기도 했다.

한데.

“꺼져라!”

“꺄우우울!”

그런 백천의 목검에 장렬하게 까인 이가 피를 뿌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경쾌하게 들려오는 타격음에 임소병의 몸이 절로 움찔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백천에게 달려드는 이들은 그 광경을 보고도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콱 찔러 버려!”

“사형이고 나발이고! 어차피 한 방만 제대로 들어가면 돼!”

“뒤에서 까, 뒤에서!”

같은 무복을 입은 이들이 백천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마치 생사대적을 앞에 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상대하는 백천도 그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달려드는 이들을 가차 없이 걷어차고 후려쳤다.

“겨우 이 정도로 나를 쓰러뜨리겠다고? 십 년은 멀었다!”

“진짜 재수 없네!”

“방금 어떤 새끼야? 나와!”

죽기 살기로 서로를 공격해 대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임소병은 기가 질려 혀를 내둘렀다.

‘이게 수련이라고?’

제정신이 아니다.

녹림도 나름 훈련이 과격하기로 유명하다. 문파에 대한 소속감이 부족하고, 문도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운 녹림의 특성상, 수련에서라도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험하다는 녹림의 수련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건 숫제…… 대놓고 사람을 잡아 대는 방식이 아닌가?

“저, 저…….”

그때 마침 저쪽에서 조걸이 휘두른 검에 얻어맞은 이가 피를 뿌리며 나동그라졌다.

“저, 저건 정말 부상……!”

하지만 임소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떡!

피를 뿌리며 바닥에 처박혔던 이가 언제 나자빠졌냐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헐…….”

“이 새끼가?”

그리고 다시 목검을 틀어쥐며 쌍욕을 퍼붓더니 조걸에게 재차 달려들었다.

“내가 너는 죽이고 죽는다! 으아아아아아!”

“…….”

임소병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몸을 돌보지 않는 이 과격한 수련도, 그 수련을 하면서도 벌떡벌떡 다시 일어나는 화산의 문하들도.

“나왔어요?”

“응?”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임소병이 황급히 위쪽을 바라보았다.

처마 위에 앉은 청명이 태연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너무 당연하게 술병이 들려 있었다.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주변 상황이 번잡하고 혼란스럽다고는 하지만, 그가 어지간한 이의 기척을 놓칠 리는 없었다.

‘그새 더 강해진 건가?’

못 본 지 몇 달이나 됐다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잖아도 감당하기 힘든 마귀 놈이 천장을 뚫어 버릴 기세로 계속 강해지면 그걸 대체 누가 감당하란 말인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은 다른 걸 물어야 할 판이었다.

“저렇게 수련을 해도 괜찮습니까?”

“안 괜찮을 걸 시키겠어요?”

“네. 도장이라면 충분히.”

“…….”

청명이 떨떠름한 눈으로 임소병을 바라보았다.

임소병도 떨떠름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가?’

‘왜? 뭐? 내가 틀린 말 했나?’

눈빛으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 두 사람이 다시 화사한 영업용 미소를 내걸었다. 상계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노회한 상인도 감탄하고 박수를 칠 광경이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은 괜찮아요. 저 정도로는 문제없어요.”

“사람의 몸이라는 건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도장.”

“괜찮아요. 우리 애들은 강하거든요. 엣헴!”

청명이 진심으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쭉 내밀었다. 임소병은 답도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차라리 도장이 산적을 하시는 게…….”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청명은 술을 쭉 들이켜고 입가를 훔치더니 피식 웃었다.

“아니, 어떻게 눈으로 보고도 몰라요?”

“예?”

“잘 봐요. 다친 사람도 없는데 뭘 그리 걱정하세요. 녹림왕답지 않으시게.”

선선한 그의 목소리에, 임소병은 수련 중인 화산의 제자들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이들이라면 골백번은 더 쓰러졌을 공격이 오가는데, 화산 제자들 중 쓰러져 있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잠깐 쓰러진다 해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악착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영약을 괜히 먹인 게 아니라는 말씀.”

“아니, 그럼…… 저들도 제가 먹은 영약을 먹은 겁니까?”

“네. 더 좋은……. 아니, 어……. 네. 먹었죠.”

“…….”

임소병의 원망 어린 눈빛이 청명에게로 획 꽂혔지만, 청명은 애써 무시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군요.”

“네, 다들 두 개째예요.”

“으음.”

임소병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영약의 가장 좋은 효능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력의 증진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효능은 신체의 균형을 바로잡고, 강건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련 장면을 가만 들여다보니 눈에 보였다.

‘강건함도 회복력도 평범한 고수의 수준은 이미 넘었군.’

검술과 경지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아직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육체의 완성도라는 측면만을 본다면 화산의 제자들은 이미 구파일방의 수준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대체 어느 문파에서 제자들에게 그만한 영약을 두 알씩이나 먹인단 말인가? 그게 가능한 문파가 있었다면 이미 천하를 제패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돈이 넘치다 못해 썩어 난다는 소림이나, 소수의 직계만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사천당가에서도 엄두를 못 내는 일이거늘.

임소병의 얼굴이 슬쩍 심각하게 굳어졌다.

화산은 이미 청명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문파들은 엄두도 못 낼 수준의 발전을 이뤄 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진 강호에 회자조차 되지 않던 화산이라는 이름이 지금 만천하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만 봐도 명확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상승세의 핵심이 바로 저 백자 배와 청자 배들이었다.

이름조차 없던 이들이 천하비무대회에서 그 명성을 떨치고, 저 만인방의 공격을 막아 냈다. 강호사를 다 뒤져 본다고 해도 문파의 어린 제자들이 단체로 저만큼 가파른 발전을 이뤄 낸 경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강해진다는 건가?’

수련이란 결국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그 방식이 정해진다. 제아무리 대단한 수련법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받는 이가 버티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 화산의 제자들은 임소병조차 엄두가 안 나는 수련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버텨 내는 육체도, 정신력도 이미 일반적인 상식을 아득하게 추월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강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계산을 다시 해야겠군.’

밖에서 알음알음 정보를 끌어모아 파악한 화산과 눈으로 직접 지켜본 화산은 전혀 다른 곳이다.

임소병은 생각했다.

어쩌면 화산이란 문파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해질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그때 청명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파악은 다 했어요?”

“……무슨 파악 말입니까?”

“에이.”

임소병이 되묻자 청명은 농담하지 말라는 듯 웃었다.

“설마 녹림왕씩이나 되시는 분이 영약 하나 받겠다고 화산에 쳐들어와 드러눕지는 않으셨을 텐데? 그 핑계로 화산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 아니에요?”

“…….”

“이쯤 봤으면 이제 대충 파악 끝났을 텐데, 그래서 감상이 어떠세요?”

임소병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다.

‘하여튼 마귀라니까.’

청명의 괴팍한 행동을 보며 그가 생각이 없고 충동적으로 일을 벌인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임소병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 청명의 속내에는 평범한 이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계산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더 상대하기 어렵고 껄끄러웠다.

하나.

‘위에 오르는 이들은 대체로 그런 법이지.’

어깨를 으쓱한 임소병은 조금 날카로운 눈으로 청명을 보았다.

“도장의 머릿속은 어떻습니까?”

“뭐가요?”

“그대에게 녹림이란 어떤 곳입니까? 적당히 화살받이로 쓰다가 내다 버릴 곳입니까?”

“착각하는 모양인데…….”

“네?”

“나는 그 누구도 화살받이로 쓰지 않아요. 그게 얼마나 더러운 짓인지 모르지 않으니까.”

나직하게 중얼거린 청명에게서 일순 섬뜩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임소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명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세를 가라앉히며 잠깐 먼 곳을 보다 말을 이었다.

“아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죠. 친구와 친구인 척하는 것들.”

“…….”

“녹림은 어느 쪽이죠?”

임소병은 그런 그를 가만히 보며 말했다.

“세상은 마음만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닙니다. 화산이 녹림과 손을 잡는 것이 껄끄럽듯이, 녹림 역시 화산과 손을 잡는 것이 커다란 부담입니다.”

“흠, 그렇겠죠.”

“하나.”

임소병이 싱긋 웃었다.

“친우라는 것은 상황에 예속되지 않는 법이죠.”

그리고 당당히 위를 향해 손을 뻗어 내밀었다.

“일단은 거기부터 시작하는 건 어떻습니까?”

청명은 그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보더니 히죽 웃었다.

“아니, 난 아직 친구가 되겠다고는 안 했는데.”

“…….”

“산적이랑 친구 먹기는 좀 껄끄럽기도 하고, 내가 그래도 명색이 도산데.”

“…….”

“그건 일단 됐고.”

“되, 되긴 뭐가 됐…….”

“일이나 이야기해 봐요.”

“음?”

청명의 눈이 반짝거렸다.

“처리해야 할 산채가 있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을 테고, 그게 또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겠죠. 전대 녹림왕의 자제라고는 해도, 녹림은 약육강식의 율법이 먹히는 곳이잖아요. 그러니 반발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겠죠?”

임소병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진짜 귀신이 따로 없네.’

하지만 청명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듯 가볍게 웃었다.

“말해 보죠. 서로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결국 임소병은 깊게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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