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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62화 (560/1,567)

562화. 그러게, 사람이 초지일관해야지. (2)

“아니라니까?”

“…….”

“사람을 왜 그런 눈으로 봐?”

청명이 기가 찬다는 듯 묻자 백천이 빙그레 웃었다.

“청명아.”

“응?”

“너를 아는 모든 사람은 이런 눈으로 널 보는 게 당연한 거다.”

“…….”

너무도 확신에 찬 그 말에 천하의 청명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백천이 그런 그를 빤히 보며 재차 물었다.

“진짜 아니냐?”

“아니, 그런데 이 양반들이?”

청명은 억울함에 가슴을 치며 백천을 째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일부러 약효가 떨어지는 영단을 주겠어? 내가 그렇게까지 할 사람으로 보여?”

“어.”

“응.”

“그래 보여.”

“아, 그래?”

청명이 멋쩍게 헤헤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말을 잘못했네. 헤헤헤.

다른 제자들 역시 하나같이 도무지 못 믿을 놈을 보는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백천이 물었다.

“그럼 왜 다른 자소단을 준 거냐?”

“사숙. 생각을 해 봐. 저 양반 병이 뭐야?”

“이음 하고도 반음 절맥?”

“아닙니다. 삼음 하고도 반의반 절맥이죠.”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여하튼 짝퉁 구음절맥.”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구음절맥이지. 구음절맥이 뭐야? 몸 안에 음기가 너무 많이 차서 대맥이 막히는 병이잖아.”

“그렇지.”

“빙정은? 북해의 한기가 모인 정수지?”

“……그렇…지?”

순간 머릿속에서 실마리를 잡은 백천이 말끝을 흐렸다. 청명이 혀를 차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런 양반 몸에 제대로 된 빙정으로 만든 자소단을 밀어 넣으면 어떻게 되겠어? 한기가 독이 돼서 거꾸로 몸이 박살 난다고.”

“…….”

“내가 제대로 그 몸에 맞는 걸로 준 거라니까? 거참 사람들 하고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당소소에게로 돌아갔다. 의학적으로 이 사실을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당소소는 뭐라 표현하기 힘들,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음…… 말은 맞는데, 이게……. 이게 논리상으로는 틀린 게 없는데…….”

“그런데?”

“사람이 틀려서 결론은 못 내리겠어요.”

“……이해한다.”

말이라는 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느냐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말을 하는 놈이 옳지 않은데 그 말을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걸 준 게 아니다?”

“엣헴! 내가 다 신경 써서 준 거라니까. 그 사람한테는 그 정도가 맞아요!”

“그래, 그래. 알았다. 우리 청명이 참 착하기도 하지.”

한 번으로 치료가 안 된다는 말을 굳이 안 해 주고, 자소단의 재료 중 제일 비싼 빙정을 싸구려로 쓰면서도 돈은 한계치까지 받아 챙기고, 연단을 제조하는 와중에 사람을 절벽으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굴려 댄 것만 빼면 참 착한데.

참 착한데 그게 영 돋보이지가 않네.

선의가 선의로 보이지 않는 것도 재주였다.

“그럼 녹림왕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평생 못 고치는 건가?”

“서너 번만 더 먹으면 돼. 그래서 미리 만들어 뒀잖아.”

“그럼 바로 주면 되잖아.”

“쯧쯧. 동룡아.”

“이 새끼가?”

백천이 눈을 희번덕댔지만, 청명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태 뭐 들었어? 음기가 차 있어서 빙정의 음기가 한 번에 많이 들어가면 되레 몸이 상한다니까?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먹어야 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

“한 번에 반년 정도?”

“……몇 알 더 먹어야 하는데?”

“한…… 네 알?”

백천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최소 이 년은 꼼짝없이 걸렸구나.’

청명의 말대로라면 몸을 완전히 치료하는 데는 약을 적어도 네 번은 더 먹어야 한다. 그 말인즉슨, 녹림왕은 앞으로 최소 이 년간 꼼짝없이 청명이 놈의 노예 생활을 해야 한단 의미다.

백천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청명이 사람을 낚아 대는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어째 갈수록 수단이 교묘해지는 것이 착각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 혹시 말이다.”

“응.”

“먹던 약을 안 먹으면 어떻게 되느냐?”

“에이. 뭐 빤하게 그런 걸 물어?”

“역시나…….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구나.”

“아니지.”

“응?”

백천이 눈을 살짝 치켜뜨자 청명이 화사하게 웃었다.

“음기가 차선 안 될 곳에 차서 자기 성질대로 몸을 바꾸는 게 구음절맥이잖아.”

“그렇지.”

“완치 안 하면…… 치료하기 전보다 더 빠르게 침식될걸? 산을 부수고 강에 다리를 놓아 둔 형국이라 두 배는 빠르게 침식되고 예전보다 더 안 좋아질 거야. 진짜 구음절맥 되는 거지, 그럼…….”

입가에 장난기 어린 웃음을 내건 청명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꽤액.”

“…….”

그런 그를 보며 백천의 두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우리 사질, 어쩜 이리도 흉악한지.

“……녹림왕께서는 어디 계시냐?”

“앓아누우셨는데요.”

조걸의 답에 백천은 눈에서 배어난 마음의 땀을 닦았다.

그럴 만하지.

충분히 그럴 만해.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삼음 하고도…… 여하튼 그 절맥이 일음절맥이 되었으니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기쁜 일도 슬픈 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청명이 아닌가.

‘무서운 놈.’

아무리 임소병이 나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녹림왕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영약 하나로 저렇게나 농락할 수가 있나…….

“어쨌든 그럼 이제 녹림의 일이 대충 정리가 된 거로구나.”

“정리가 되긴? 계산이 남았는데. 앞으로 받아야 할 돈이랑, 그 뒤에 받아야 할 돈이랑, 또 그다음에 받아야 할 돈까지 계산하고 도장 찍으려면 아직 한참 고생해야 돼.”

백천은 잠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가끔은 저놈의 몸에 똑같이 붉은 피가 흐른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끄응……. 그래.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마라.”

한숨을 쉬며 말한 그는 청명이 둘러맨 자루를 향해 턱짓했다.

“그런데 그건 왜 들고 있어? 의약당에 보관할 것이지.”

“보관은 얼어 죽을. 영약이든 음식이든 갓 만들어서 따끈따끈할 때 먹어야 약발이 잘 받지. 애들 다 모아.”

“……지금 바로?”

“힘들게 만들었는데 빨리 먹여야지. 비실비실해서 힘도 못 쓴다며?”

“실전으로 처리한다더니?”

“약한 놈들이 괜히 나가서 싸우다가 병신 돼서 돌아오면 누가 책임질 건데? 실전이고 나발이고 일단 빵빵하게는 만들어 둬야지.”

“……알았다.”

그래, 청명아.

그래도 네가 최소한 화산은 등쳐 먹지 않으니 정말로 다행이다.

정말로…….

잠시 후 연무장에 모인 화산의 제자들 모두가 말을 잃고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부산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청명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연무장 앞으로 옮겨진 커다란 탁자 위에는 무언가 동글동글한 것들이 쪼르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보던 거지?”

“예. 영 익숙합니다.”

“그래. 보던 건데…….”

화산의 제자들은 청명이 하는 양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자소단이네.”

“예. 자소단입니다.”

“아무리 봐도 자소단이네요.”

동글동글한 영단이 은은한 자색 광채를 내뿜는 모습을 보고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면 눈을 달고 다닐 이유가 없다.

‘왜 저게 또 있는 건데?’

‘원래 영약이라는 게 저렇게 시시때때로 그냥 막 만들어지는 건가?’

‘한두 개도 아니고 저게 뭔…….’

애초에 영약이라는 게 무엇인가?

천하의 모든 문파 중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소림에서도 기재 중의 기재에게만 준다는 진귀한 물건이 바로 영약이다. 그렇기에 소림의 대환단은 만금을 주어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저게 저렇게 막 널려 있어도 되냐?”

“……그러게요.”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는 그 소림의 대환단만큼……. 아니, 그보다 더 귀한 자소단이 동네 강아지 간식처럼 널려 있었다.

“……저게 돈이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약선의 무덤에서 시작된 조그만 눈덩이가 구르다 구르다 이젠 화산을 뒤덮고 있었다.

“근데 쟤는 또 뭐 하는 거냐?”

“그러게요?”

“저 병은 또 뭐고?”

“……청명이 놈이 뭘 저렇게 귀하게 다루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다른 문파 무인들이 보면 눈이 돌아갈 자소단을 대충 탁자 위에 굴려 놓은 놈이 손에 든 병은 신줏단지 모시듯 귀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술인가?”

“…….”

그럴싸한데?

모두가 끊임없이 속닥거리고 웅성거렸지만 청명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지금 북해에서 주교를 상대했던 그때처럼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내는 중이었다.

또오옥.

“아, 씨!”

한껏 집중하던 청명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약간 더 들어갔어. 개미 눈곱만큼 덜어 내야 돼.”

그러더니 준비한 바늘로 영단 위에 떨어진 액체를 빠르게 걷어 옆으로 옮겼다.

옆에서 보다 못한 현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이게 어떤 건 줄 아시고?”

청명이 핏발 선 두 눈을 형형하게 뜨고 현종을 바라보았다.

“자소단이야 재료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들 수 있지만, 이건 돈 주고 구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에요!”

“아, 알지.”

현종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청석유.

말로만 들었지, 눈으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영약 중의 영약.

‘그게 뭐 실감이 나야지.’

한 방울만 나타나도 강호에 피바람이 몰아친다는 공청석유가 병 안에서 술처럼 찰랑대고 있으니 도무지 현실감이 들질 않았다.

“공평하게 나눠야지, 공평하게! 원래 이런 거에서 개미 눈곱만큼 덜 받고 더 받으면 사람 속에 한이 남는 법이에요. 장문인이 백천 사숙 차 줄 땐 윗물 주고 저한테는 쓴 아랫물 주는 거 저도 알고 있거든요? 못 잊는다고요!”

“……너는 차를 안 먹고 다 남기잖느냐.”

“그래도 기분의 문제죠, 기분!”

쪼잔한 놈.

어쩜 저리 쫌생이 같을까. 현영이 고기 더 주는 건 말도 안 하고.

“그러니 개미 눈곱만큼도 더 들어가고 덜 들어가면 안 돼요.”

“아, 알았다.”

현종은 마지못해 대답하고 고개를 저었다. 가끔 보면 청명은 정말 쓸데없는 부분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곤 한다.

‘사람이 좀 대범할 줄도 알아야 하는…….’

“다 됐다!”

그때 청명이 이마에 땀을 닦으며 허리를 쫙 폈다. 얼굴에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이 차올라 있었다.

“고생했구나. 그런데…… 이건 왜 따로 빼 놨느냐?”

“아, 그건 장문인과 장로님들 거예요.”

“……으응?”

청명이 손으로 슬쩍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작게 속삭였다.

“그건 특별히 공청석유 두 방울씩 넣었어요.”

“…….”

“몸에 좋은 거니까 얼른 드세요.”

현종의 눈가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어쩜 이리 예의 바르고 윗사람을 공경할 줄 아는가.’

이 착한 아이를 타박했다니!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하지만 현종은 애써 자신의 자소단을 사양했다.

“나이가 들 대로 든 우리가 이걸 먹어서 뭐 하겠느냐? 아이들이나 좀 더 챙겨 주거라.”

“공청석유 효능 중에 수명을 늘려 주는 것도 있다고 해서 좀 더 넣어 봤어요.”

“병에 조금 남은 것 같은데 이왕이면 한 방울만 더…….”

“…….”

“…….”

크게 헛기침을 한 현종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좀 더 넣어 볼게요.”

“고맙다. 크흠.”

어여쁘기도 하지, 우리 청명이.

현종이 겸연쩍음과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듯 앞으로 한 발 나서선 크게 말했다.

“제자들은 듣거라!”

“예, 장문인!”

도열해 있던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크게 답했다.

“북해로 떠났던 이들이 고생 끝에 구한 재료로 만든 영단이다. 사형제끼리 서로 돕고 이끄는 것이 당연하다 한들 그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장문인!”

단상 주변에 선 청명 일행을 바라보는 화산 제자들의 눈엔 총기가 반짝였다.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영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이는 없다. 화산이 아무리 다른 곳보다 영단을 쉽게 제조할 수 있는 비법을 손에 넣었다고 한들, 저 영약의 가치가 줄어들진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청명이가 최고다.’

‘인간은 문제지만, 그래도 청명이만큼 우릴 생각해 주는 사람도 없지.’

‘착한데 못됐다. 못됐는데 착해.’

그때 청명이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다들 잘 먹고 잘 녹여 둬. 지금 먹어야 버틸 테니까.”

“…….”

“약발 없이는 못 버틸 만큼 굴려 주지.”

그런 청명의 뒤에서 백천과 그 무리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로…… 기괴하게.

화산의 제자들은 어쩐지 시야가 아득해져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약 주고 병 준다.

이건 이제 화산에선 너무도 당연한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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