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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55화 (553/1,567)

555화. 빌어먹게 반갑네! (5)

“이건 어디에 쌓습니까?”

“이쪽으로 옮기라고 했잖느냐!”

“사숙! 이거 더 높이 올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옆에 쌓으면 되지!”

백상의 진두지휘 아래 화산의 제자들은 쉴 새 없이 짐을 나르며 정리했다. 북해로부터 넘어온 귀한 선물들이 하나둘 분류되어 차곡차곡 곳간에 쌓여 갔다.

“허허허허.”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현영의 입꼬리는 어느새 귀에 닿을 듯 올라가 있었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이니 적당히 체통을 지키는 편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안면 근육은 좀처럼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허허. 허허허허.”

산처럼 쌓여 가는 물품들을 보고 있자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그런 그에게로 후다닥 달려온 백상이 자루 하나를 열어 보였다.

“장로님. 이건 대체 뭔지 모르겠습니다.”

“으응? 어디 보자……. 음, 이건 나도 처음 보는데……. 소단주. 이게 뭔지 아시겠소?”

분류 작업을 돕기 위해 은하상단 화음지부에서 올라와 있던 황종의가 자루 안을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크게 치떴다.

“이, 이건 설연실(雪蓮實)이 아닙니까?”

“귀한 것인가?”

“귀하다마다요! 이건 북해에서만 나는 귀한 약초입니다! 원래부터 그 수량이 많지 않아 귀히 여겨지는 약초인데, 북해와의 거래가 끊긴 뒤로는 아예 물량을 수급하지 못해 지금은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현영의 미소가 더욱 따스해지고 푸근해졌다.

“비싸다는 말이로군.”

좋구만. 아주 좋아.

허허허허.

“참 신기한 일일세. 북해에서 나는 물건은 어째 다들 비싸고 귀한 것 같으니 말이야.”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북해는 중원과는 그 환경부터 생태까지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북해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품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황종의는 자루 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물론 이제부터 북해와의 무역이 재개가 되면, 값이 조금씩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다섯 배……. 아니, 열 배는 비싸게 팔아 치울 수 있는 물품들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것만 쏙쏙 골라 받아 오셨는지.”

“허허허.”

현영은 한없이 자애로운 얼굴로 그의 옆에 앉아 당과를 흡입하는 청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사실 우리 청명이 녀석이 상재가 있는 편이지.”

“헤헤헤헷!”

“모르긴 몰라도 네가 상인을 했으면 아마 크게 성공을 했을 것이다.”

“에헤헤헤헤헤헷!”

짐을 들고 지나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 버린 조걸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장로님. 이건 빙궁에서 그냥 일방적으로 챙겨 준 물품들인데요? 청명이 놈이 고른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현영이 빙그레 미소 짓는다.

“조걸아.”

“예.”

“시끄럽다. 짐이나 날라라.”

“…….”

입을 삐쭉대며 다시 짐을 나르는 조걸의 모습에, 현영은 연신 혀를 찼다.

“쯧쯧쯧. 저놈은 명색이 상가의 자제라는 놈이 저리 속이 좁아서야!”

“사형이 좀 그렇긴 하죠.”

“에잉! 내가 말을 말아야지!”

듣는 조걸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청명이 놈이면 몰라도 어디 감히 현영에게 말대꾸를 하겠는가?

“상인으로 성공하려면 역시 우리 청명이처럼 배포가 커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소단주?”

“하……하하. 그렇지요. 암요.”

황종의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게 더 문제로구나.’

상계에는 그런 말이 있다.

노력하는 자는 똑똑한 이를 당해 내지 못하고, 똑똑한 이는 운 좋은 이를 당해 내지 못한다.

얼핏 황당하게 들리지만, 이는 상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말이었다.

상행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완벽한 계산과 계획이 필요하다. 가혹할 정도의 준비와 노력이 동반되어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고, 그래야 큰 이문을 볼 수 있는 법이다.

하나 때로는 계획이고 나발이고, 의도치 않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래가 그보다 더한 이문을 만들어 낼 때가 있다. 평생이 몇 번 오기 힘든 대운이 겹친다면 말이다.

‘그런데…….’

황종의의 시선이, 질리지도 않고 당과를 씹어 대는 청명에게로 향했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게…….’

평생을 상행에 몸담은 이가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한 대운이 이 사람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빈말 조금 보태서 보따리 하나 둘러매고 발길 닿는 대로 떠나도 여의주를 물어 올 사람이다.

‘아무리 운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지만…….’

한 사람에게 주어질 운치고는 좀 과하지 않은가?

“끄으으응! 이건 왜 이렇게 무거워!”

“장로님! 한철은 어디에다 둘까요?”

현영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청명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건 따로 쌓아 둬. 당가에 팔 거니까.”

“어디다가?”

“저기 앞에 그냥 대충 쌓아 놔.”

“오냐. 알았다. 여기 앞쪽에다 쌓아라! 여기!”

“예!”

백상의 지시를 들은 이들이 한철을 냅다 던져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황종의의 목덜미는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뭔 만년한철을 고철 쌓듯이…….’

한 조각만 팔아도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귀물이 바로 만년한철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그 귀한 한철이 가득 든 자루를 마치 주워 온 고물들처럼 대충 쌓고 있다.

과거의 화산을 기억하는 황종의로서는 상전벽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허허. 빙궁주께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 주셨구나. 그러니까 이게 다 선물이라 따로 값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거지?”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크으으으. 빙궁의 배포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현영이 껄껄 웃으며 청명의 등짝을 팡팡 두들겼다.

“아악! 아프다니까요!”

“요 어여쁜 녀석!”

청명의 앙탈(?)을 마치 재롱 보는 듯이 흐뭇하게 바라본 현영은 황종의를 보며 말했다.

“어떤가, 소단주? 이 물품들을 다 처분할 수 있겠는가?”

“있는 물건을 팔아 치우지 못해서야 어디 상인이라 자처하겠습니까? 열흘 내로 모조리 팔아 드리겠습니다!”

“호오? 그럼 수수료는…….”

“하하하하. 저희 사이에 수수료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이. 그래도 상인들이 고생을 할 터인데 공짜로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장로님.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서운합니다. 화산과 은하상단이 남이 아닐진대 어찌 이문을 논하십니까.”

황종의의 말에 현영이 기꺼운 얼굴로 웃었다. 그러자 황종의가 조금 더 가까이 슬금슬금 다가와 현영과 청명의 눈치를 살피더니 작게 속삭였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말씀하시게.”

“북해와의 교역을 은하상단이 주도할 수 있도록 힘을 조금만 써 주시면…….”

슬쩍 말끝을 흐린 그는 주변을 살핀 뒤 소매에서 전표 뭉치를 꺼내더니 섬전처럼 현영의 품 안으로 찔러 넣었다.

“어?”

하지만 아무리 날래다 한들 청명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청명이 막 눈살을 찌푸리려는 찰나 또 하나의 전표 뭉치가 청명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전표를 꺼내 찔러 넣는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당가인이 보아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순간.

파아아앗!

청명의 눈에서 싸늘하기 짝이 없는 한기가 흘러나왔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죠?”

차갑게 식은 그의 눈을 본 황종의는 아차 하며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솟은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이런……. 그래도 청명 도장은 도인인 것을.’

돈으로 포섭하려 한 게 실수…….

그때 청명이 아주 작게 속삭였다.

“조금 전 전표 뭉치가 내 거보다 큰 것 같은데?”

“…….”

“하아, 섭섭하네. 섭섭해. 북해에서 칼바람 맞을 때도 이렇게 속이 시리지는 않았는데.”

“…….”

황종의가 말없이 전표 뭉치를 하나 더 꺼내 청명의 품 안에 찔러 넣어 주었다.

그러자 얼음처럼 차게 굳어 있었던 청명의 얼굴이 햇살을 받은 눈처럼 사르르 녹아 풀렸다.

“크으으으! 역시 중원은 따뜻하네요. 아아. 따땃하다.”

“…….”

이 새끼는 도사가 아냐.

이 새끼는…….

“하하하하핫!”

현영이 크게 웃으며 황종의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크흐흐흠. 우리가 남이 아닌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당연히 북해와의 교역은 은하상단이 맡아 주어야지!”

“헤헤. 그렇죠. 은하상단이니까요.”

화산 재력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순식간에 포섭한 황종의가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독점이다!’

독점.

이 얼마나 황홀한 말이던가?

물류를 다루고, 무역을 하는 모든 상인의 꿈이 바로 독점 공급이다. 독점의 이점이야 설명하자면 입 아플 정도로 많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급할 물량과 가격을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량과 가격을 잘만 조절할 수 있으면 막대한 이문을 남기는 건 일도 아니다.

‘더구나 북해와의 독점 거래라니!’

중원에서 거래 좀 한다는 이라면 누구라도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 만한, 막대한 이문이 보장되어 있는 거래다.

물론 그 이문의 대부분은 화산이 먹을 테고, 그들이야 적당히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받아먹게 되겠지만, 떡이 태산처럼 크면 떨어지는 콩고물도 사막을 이루는 법 아닌가!

‘이 일로 은하상단은 다시 한번 도약하게 될 것이다!’

황종의는 화산과의 거래를 튼 황문약의 선견지명이 얼마나 뛰어났던 것인지를 새삼 다시 실감하였다.

“그럼 물품을 잘 분류하고…….”

그때였다.

투투둑!

제자들 중 하나가 짊어지고 나르던 자루 아래가 뜯겨 나갔다. 그리고 안에서 푸른색의 보석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를 본 황종의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저, 저……!”

“거 조심 좀 해라. 비싼 건데.”

“비, 빙정……!”

아니, 이 미친놈들이 무슨 빙정을 포대에 감자 담듯이…….

하지만 황종의가 충격을 받든 말든 현영은 심드렁한 얼굴로 청명에게 물었다.

“저 빙정도 내다 팔 거냐?”

“아니요. 저건 따로 쓸 데가 있어요.”

“흐음, 그래. 우리가 쓰자꾸나.”

황종의는 빠질 듯 벌어진 입을 억지로 다물었다. 그리고 대충 쌓이는 빙정들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보고 있다간 수명이 줄어들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창고 문이 벌컥 열렸다.

“장로님! 청명아!”

“응?”

그리고 백천이 떨떠름한 얼굴로 들어서며 말했다.

“나와 봐야 할 것 같다. 손님이 왔어.”

“손님?”

청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일으켰다.

화산에 손님이라니.

“뭐 얼마나 할 짓 없는 사람이기에 이 높은 데를 굳이 올라와.”

“……가 보면 안다.”

“쯧.”

청명은 투덜거리며 창고를 터덜터덜 빠져나갔다.

“…….”

“…….”

시선과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도사답지 않은 옷차림의 도사.

산적답지 않은 옷차림의 산적.

“……거…….”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새하얀 학창의를 입은 산적 놈이었다.

“……빌어먹게 반갑네!”

“크흠.”

그러자 천하의 청명이 헛기침을 했다.

“거 기다리고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안 줄까 봐. 뭐 또 얻어먹을 것 있다고 여기까지 직접 왔어요?”

“……어련히 알아서 주신다고요?”

심드렁한 청명의 목소리에 학창의를 입은 산적 놈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내가 아는 분이랑은 좀 다른 말씀을 하시네요. 돌아가면 바로 보내 준다더니 쌩하고 북해까지 가 버리신 분이 누군데.”

“왔으니 됐지 뭐.”

“……제발 됐으면 좋겠습니다, 도장. 제발!”

청명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간도 크지. 산적이 뭔 배짱으로 여기까지 온대?”

“당장에 뒈지게 생겼는데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집니까! 그새 이음하고 반 절맥이 삼음절맥으로 발전했단 말입니다. 요즘은 자다가도 추워서 깨고 그럽니다!”

학창의를 입은 사내.

녹림왕 임소병이 학을 떼고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내 살다 살다 산적 상대로 사기 치는 사람은 처음 봤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닙니다!”

“사기라뇨! 일이 좀 꼬인 걸 가지고!”

“……도장 뒤에 있는 사형제들은 그리 생각 안 하는 모양입니다만?”

“…….”

뒤에 선 백천과 그 무리를 슬쩍 돌아본 청명은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왔으니, 일단은 들어오세요.”

“……따뜻한 것 좀 주십시오. 무슨 산이 이리 험합니까. 아이고……. 이래서 사람은 평평한 평지에서 살아야 하는 법인데.”

“그게 산적이 할 말이에요?”

“산적은 사람 아닙니까?”

아웅다웅하며 안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화산의 제자들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숙.”

“응?”

“진짜로 화산에 산적이 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

백천이 빙그레 웃었다.

“이제 와 뭘 따지느냐.”

“……것도 그렇습니다만.”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쉰 그들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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